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국왕 폐하 만세!”
“맥라인 만세!”
“제국을 박살 내 주십시오!!”
“우와아아아!”
카일의 동쪽 성문으로 들어서는 백여 기의 기마를 향해 시민들이 열열한 환호를 보냈다.
“저, 저분이 국왕 폐하…….”
“옆에 왕비님도 너무 아름다우셔.”
“기사님들도!”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왕의 친정은 카일의 시민들에게 희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 국왕이 직접 이곳에 올 정도면, 승산이 있는 거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전쟁 소식으로 불안에 떨던 이들일수록 국왕 일행을 더욱 열렬히 반겼다.
‘그렇기에 이 광대 짓이 의미가 있는 거지.’
행렬의 가장 앞에서 시민들의 환호에 답해 주던 로건은 웃는 얼굴 그대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계속 웃는 모습을 유지하느라 입꼬리에 미미하게 경련이 일어난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안쓰러운 광경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서부의 자경단 전원이 이미 카일에 모여든 이상, 시민들의 사기 고취가 곧 전력의 상승으로 이어질 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그나마 아내를 보고 있는 순간에는 진심으로 미소가 나왔으니, 조금이라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그는 자꾸 옆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된 행진이 끝난 후에야 로건은 간신히 내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푸후, 이거 정말 못 할 짓이군.”
“수고 많으셨습니다, 폐하.”
“자네도 고생 많았어.”
로건은 물잔을 건네며 고개를 숙이는 호르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불안하지 않은가?”
“예?”
“4, 5군단과 왕국 연합의 지원군을 모두 남북의 요새로 보내 버리고 이곳에는 자경단만 소집했는데, 불안하지 않냐는 말이다.”
아직도 고정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여전히 자경단의 힘을 의심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에일렌과 로니안, 빅토르, 부르델, 그리고 빅토리아까지, 새로운 초인 5인방에 대한 정보도 아직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충분히 불안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계시는데요.”
한때는 위켄 칼리아의 가장 우수한 부장이었던 최상급기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험, 험.”
오른쪽 이마에서 왼쪽 입술 위까지 그어진 흉터를 씰룩거리는 거한. 그 옆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그런 스승이 부끄럽다는 듯이 먼 곳을 보며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하하, 물론 골렘 마탑의 마법사분들과 마법 병단이 든든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런 호르헤를 보며 로건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지어진 요새들보다는 훨씬 많은 병력을 수용할 수 있는 카일 성의 구조 때문에 그리 결정한 걸세. 짐작하고 있겠지만.”
북쪽의 요새 쉴드에는 2군단과 4군단, 그리고 리버티의 병력이 주둔한다. 초인 전력은 스승인 검공, 부르델, 루터 카일, 그리고 리버티의 대공인 군터 리버티가 배치되었다.
남쪽의 요새 아머에선 3군단과 5군단, 그리고 테로난의 병력이 힘을 합쳐 제국군을 막을 것이다. 초인 전력은 로니안과 빅토르, 위켄 칼리아, 그리고 테로난의 철벽 라틴 로렌스와 마도사 구스타프 클레멘이 함께한다.
그리고 아머엔 스승님이나 자신 같은 강력한 전력이 부족하다는 판단하에, ‘티르’가 로니안의 뒤로 따라붙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연무장에 나타났던 귀신 놈들은 왕궁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티르에게 물려 죽었을 것이다.
– 평온. 심심.
티르가 전해 오는 풍경을 보면, 아직은 남쪽의 요새도 조용하기만 했다.
‘여기부터 시작되겠지.’
아마도 최초의 전장이 될 이곳 카일 성에는 1군단과 마법병단, 그리고 30만에 가까운 자경단이 합류할 것이다.
‘초인은 나와 에일렌, 클레이튼, 그리고 빅토리아.’
그리고 전시의 왕국 치안은 나머지 20만의 자경단이 맡을 것이다.
사실상 왕국 병력을 극한까지 쥐어짜 세 군데의 성에 집중한 병력 배치. 이 모두가 동익왕의 정보(제국군의 초인 전력 분산 등)와 측근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최대한 균형 있게 전력을 투사한 것이었다.
물론 자경단의 규모와 마법 병단을 생각하면 카일 성의 병력 배치가 다소 과하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 검혼과 삭풍의 마도사가 있습니다. 거기다 제국 중앙군의 정예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남북의 병력보다 수가 적다고 하나 실제 전력은 더 강할 수도, 아니 충분히 더 강할 겁니다.
데미안의 의견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고, 그랬기에 병력 배치가 이렇게 완료된 것이다.
물론 이 배치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기는 했다.
“자경단 훈련은?”
“……지시하신 대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적응은 빠른 편입니다.”
“그래?”
“기간이 짧긴 하지만 명하신 바가 워낙 간단한지라 지장은 없을 듯합니다. 물론 실전에서야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이제 와서 무언가 획기적이고 복잡한 훈련을 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군 속에서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않게 할 제식 훈련과 적이 성벽에 올라왔을 시 성벽 뒤로 퇴각하는 훈련 등 실전에 필요한 기초적인 훈련이었다.
실제로 맥라인 전역에서 모인 자경단은 오직 연사 석궁을 다루는 훈련만 한 동네 아저씨들이었다. 당연히 대규모 전투를 가정하고 훈련한 적도 없었다. 적들이 성 밖에 있을 때야 제 몫을 하겠지만, 난전이 되면 그야말로 고기 방패밖에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로건의 지시는 그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한 훈련, 아니 훈련이라고 말하기도 뭐한 지침일 뿐이었다.
“무기들은?”
“탄창과 리베라티오가 놀라운 속도로 쌓이고 있습니다. 타렌의 마도공방에서 생산 물량의 절반을 이곳으로 우선해서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놀라울 정도?”
“예. 진작 이렇게 생산했으면…….”
“마도공방에서 곳곳에서 드워프들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폐하.”
호르헤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잇는데 엉뚱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클레이튼 공?”
“제가 잠깐 들러 봤습니다만, 하마르 그 친구 눈이 반쯤 돌아갔습니다. ‘내 나라’를 지켜야 한다면서요. 적어도 한동안은 소모품 무기가 모자라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하마르가요? 허…….”
그 인간, 아니 그 드워프가 감시와 갈굼 없이 스스로 일을 열심히 한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는 얘기였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황당함에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로건은 더 이상 괘념치 않고 그냥 넘어갔다. 괜히 잘되고 있는 일에 딴지를 걸 만큼 상황이 여유롭진 않기 때문이었다.
“제국군 위치는?”
“3일 내에 시야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아직은 정보가 들어맞는군.”
로건은 다시금 동익왕의 얼굴을 떠올렸다.
‘정말 제국을 배신할 생각인가? 사방왕이?’
그 신분과 무슨 말을 해도 싱글거리는 얼굴을 생각하면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진 그가 전해 준 정보에 틀린 점이 없었다.
“예. 그러니 지금이라도 일전에 말씀드린 계획을 실행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 제국의 보급선을 끊자던?”
“예.”
호르헤의 눈빛은 진지했고, 그 의견은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었다. 동익왕이 보내 준 정보에는 제국군의 보급로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으니까.
다만, 그 계획은 이미 제국의 선전 포고 직후부터 측근들 사이에서 나왔던 의견이었고, 결국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의견이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군단과 함께 이동하는 보급량만 해도 족히 며칠은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양이지. 그런데 제국의 뒤를 치기 위해 우리 전력을 분산하면, 과연 성을 지킬 수 있을까?”
현대의 국가 간 총력전은 기사와 마법사, 혹은 오러유저와 마도사 같은,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는 괴물들의 충돌이 승패를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높다란 성벽을 계단처럼 뛰어넘거나 아예 부숴 버리는 괴물들의 싸움이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승부가 나는 것이다.
전생의 그란디아 내전처럼 양측에서 전력 소모를 극도로 꺼리며 몸을 사리지 않는 이상, 한 성에서의 전쟁이 몇 주 단위로 이어지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최선을 다하면 며칠이야…….”
“또 우리는 이번 전쟁에 전력을 쏟아부었지만 제국은 아니야. 자원도 마찬가지지. 보급로를 끊는다 해도 그걸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
“그리고 무엇보다 ‘첩자’의 정보를 아직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일단 지금까진 정확했지만, 앞으로도 쭉 들어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최대한 신뢰를 쌓은 뒤 결정적인 순간에 거짓을 전할지도 모른다. 정보원의 특성상 그 의심은 떼어 놓을 수가 없으니, 맥라인으로선 최대한 신중히 판단해야 할 일이었다.
그 신랄한 지적에 호르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
“라고 까였어.”
로건이 뚱한 표정으로 호르헤의 말을 끊었다.
“……예?”
“내가 딱 그렇게 주장하다가 데미안한테 열나게 갈굼을 당했다는 말이야. 생각이 없다고. 그래서 참 반갑네, 동지.”
“……예?”
“푸하하하!”
어색하게 웃는 호르헤의 뒤에서 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와 시선을 집중시켰다.
붉게 물든 얼굴로 입을 막으며 고개를 숙인 빅토리아. 이번에는 그 스승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제자를 내려다보다가 로건을 향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폐하.”
피식.
“괜찮습니다. 저도 재밌는 일이니까. 아, 호르헤 경.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고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나라를 위하는 의견은 언제 어디서나 환영이니까. 설마, 나랑 똑같은 수준이라는데 기분 나빠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폐하. 오히려 영광입니다.”
호르헤는 왕의 따듯한 배려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무척 온화해지셨습니다. 멋진 배려심이었습니다, 폐하.”
집무실을 나와 성벽을 둘러보려는데, 바로 따라붙은 클레이튼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했다.
그에 로건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배려요?”
“호르헤 경의 사기를 유지시키기 위한 배려…… 아니셨습니까?”
“아……? 아! 예, 그렇죠. 배려. 하하, 맞습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성장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언제까지 갈굼이나 무력으로 사람을 다룰 수는 없지요, 하하.”
로건은 바로 웃으며 답했지만, 처음의 침묵이 너무 길었다.
‘진심이었어!?’
클레이튼은 한순간 젊은 군주의 성장을 기뻐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그리 생각하면서도 속이 훤히 보이는 순수함이 이 젊은 군주의 매력처럼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도 참 단단히 홀렸군.’
처음엔 그저 제자들의 미래를 위해, 안정적인 수입원을 위해 물주를 잡아 정착하려던 것이었다.
한데 어떻게 그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지게 되었을까.
큰 전쟁을 앞둔 탓인지 클레이튼이 때아닌 감상에 젖어드는데, 젊은 군주는 그의 웃음을 오해한 것 같았다.
“진짜라니까요? 그게 다 호르헤 경을 배려해서 웃음을 주려고 한 말입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클레이튼은 맥 빠진 한숨을 내쉬며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3일 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예상했던 시간에 딱 맞게 제국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 온다!”
“제국군이다!”
“비상!”
왕의 친정으로 더없이 올라갔던 카일 성의 사기는 들판 저편에서 제국군의 깃발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은빛으로 번뜩이는 갑옷과 찬란하게 빛나는 무기들.
가슴이나 방패에 금룡의 무늬를 새긴 병력은 15만이 넘는 숫자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앞에 선 기사들과 병사들까지도 완벽하게 각이 잡힌 채 일정한 속도로 다가오는 모습에선 형언하지 못할 박력이 느껴졌다.
“뭐야, 저 이상한 것들은?”
“기분 나빠…….”
웅성웅성.
일반 병사들을 불쾌감으로 그 압박감을 표현했지만, 군사적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들은 모두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뭘 어떻게 훈련하면 저 거대한 병력이 하나처럼 호흡을 맞추며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섬뜩한 공포마저 자아내는 그 움직임에 로건 역시 안색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것이 제국 중앙군…….”
전생의 그란디아 정벌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제국의 진짜 정예들이었다.
“놀라운 훈련량입니다. 아니, 저게 훈련으로 되는 건지도 의심스럽군요.”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이다.”
“예. 저희도 준비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 그렇지.”
호르헤의 그 한마디에 로건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어차피 이제 물러설 길은 없다.
아니, 어쩌면 기다렸던 순간이다.
‘드디어…….’
전생의 가문을 무너트리고 나라를 망가트린 분기점.
스스로 망가트린 인생을 돌이킬 수 없게 확정지은 재난.
그 재난을 자신의 손으로 극복할 기회가 온 것이다.
로건은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두근대는 심장을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성벽을 움켜잡았다.
콰직.
그 압력을 견디다 못한 성벽이 그의 손안에서 부스러지는 순간.
어느새 전방에 다가온 제국군이 진형을 재정비했다.
그 모습을 보며, 로건은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복잡한 감정을 담아 힘껏 소리쳤다.
“맥라인의 국왕 로건 맥라인이 제국제일검 트리스 혼스비에게 일대일 대결을 청한다!”
포스가 가득 실린 로건의 음성이 카일 성의 성벽을 넘어 들판 전체를 진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