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아무리 대단한 마도사라도 군단 단위의 병력을 한 번에 갈아 버릴 수는 없다.
삭풍의 마도사가 벌인 퍼포먼스 역시 지금 맥라인 군이 몰려 있는 카일의 서쪽 성벽 위, 중앙에 자리한 병사들의 공세를 그치게 만드는 데 치중되어 있었다.
게다가 범위가 넓은 만큼 그 위력이 분산되어, 살상력도 현저히 낮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로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간간이 집중된 삭풍의 힘은 소수의 병사들을 말 그대로 갈아 버리고 있었다.
“사, 살려 줘…….”
허옇게 얼어붙어 상체만 남은 병사가 동료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주변 병사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렸다. 평범한 병사들이 눈앞에 닥쳐 온 죽음의 공포를 견뎌 내기란 사실상 무리였다.
자연히 성벽 아래를 향하던 공세도 주춤해졌다. 삭풍의 마도사 혼자서 맥라인 군의 공세를 확 꺾어 버린 것이다.
그 틈에 붕괴하던 제국군의 전열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마도사가 전쟁에서 맡은 역할의 120%를 해낸 모습.
그야말로 위업이라 불러 마땅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로건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적진의 한가운데서 마법을 투사하는 마도사를 처리할 방법은 없었다.
“젠장!”
하지만 다행히도 맥라인 역시 그에 대항할 전력이 있었다.
우우웅.
뒤쪽에서 강력한 마력의 유동이 느껴지더니, 일순간 멀리 허공에 떠 있는 삭풍의 마도사가 비틀거렸다. 로건의 눈에는 그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까지 또렷하게 보였다.
허공에서 휘청이던 것도 잠시, 이내 일그러진 표정의 마도사가 서서히 지면으로 추락하면서 성벽에 몰아치던 삭풍이 멎어 들었다.
‘누가?’
뒤를 돌아보니 성벽 뒤쪽에서 눈을 감고 선 빅토리아와 클레이튼이 보였다. 그 아래엔 부서진 마정석이 널려 있었다.
훌륭한 성과였지만 식은땀을 흘리는 그들을 칭찬할 시간은 없었다.
그 짧은 틈을 타 제국의 기사 중 일부가 성벽 위로 올라온 것이다.
로건은 그런 놈들을 환영해 주기 위해 직접 나섰다.
“제국을 위…… 음?!”
“뒈져…… 뭐야!?”
“적의 수괴가 여기…… 윽?”
성벽에 올라선 제국의 수위기사들은 그 용맹에 어울리지 않게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의 이상을 체감하기도 전에 황금빛 오러의 세례가 그들 위로 쏟아졌다 촤아아악.
“아아악!”
“끄악!”
“이, 이게…….”
속절없이 무너지는 기사들.
허공을 유영하는 황금빛 뱀이 사방 20여 미터 범위를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그중에는 만인장의 견장을 찬 최상급기사도 존재했다.
그 믿지 못할 광경에 다시금 사기가 오른 맥라인 군은 연신 석궁을 쏘고 검을 휘둘렀다.
“폐하께서 함께하신다!”
“맥라인의 태양!”
“태양이 우리와 함께한다!”
성벽의 한가운데서 자신만의 공간을 구축하며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그 황금빛이 전장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군의 사기는 한껏 올라갔고, 적군에겐 절망이 엄습했다.
“계속 쏴!! 공격하라고!”
지휘관들의 고함 속에서 정신을 다잡은 병사들과 기사들은 다시금 폭발적인 화력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박.
꽈아아앙!
꽝!
“아아악!”
“피, 피해!”
“막아!”
다시금 제국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 준 연사 석궁과 리베라티오의 세례.
몇몇 기사들이 용케 성벽에 올라섰지만 그들은 일순간 찾아온 탈력감에 순간 멈칫했다.
“윽?!”
“죽어!”
그리고 그 순간을 노린 기사들에게 철저히 난도질당했다.
– 성벽 위에 올라선 순간, 제국 놈들의 움직임이 둔해질 것이다. 그 틈을 노려라.
지휘부에서 전달된 지침.
그 속사정까지는 몰랐지만, 전쟁을 앞두고 그 방침을 숙지하지 않은 기사는 없었다. 덕분에 초전의 전세는 다시금 맥라인으로 기우는 듯했다.
하지만 그 일방적인 화력 투사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 제국에 영광을!
우우우웅.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성벽 아래에서 몰아치기 시작한 바람.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막대한 마나의 향기가 쏟아지는 쿼렐의 비와 리베라티오의 폭발을 받아 내고 있었다.
‘이건?’
그 기시감이 느껴지는 광경에 로건의 얼굴은 다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분명 예전에 경험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가문의 숙적이 실행했던 방안.
그렇기에 이 이상 사태의 진원지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람의 방벽!’
제국군의 뒤쪽에서 수많은 마법사가 하나의 마법을 엮어 내는 광경이,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마나가 그의 눈에 고스란히 보였다.
제국의 마법 병단, 아세리안의 일곱 마탑 중 다섯 곳의 정예가 뭉쳐진 병력이 제국군에게 쏟아지는 재앙을 막아 내고 있었다.
‘우리 마법 병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이미 성벽의 안쪽에 그려진 거대한 마법진 위에서 마주 마력을 투사하는 마법사들이 보였다.
5대 마탑의 수장들이 오망성의 꼭짓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마나를 움직이고, 그 중심부에서는 희한하게도 클레이튼의 수제자 그릭이 무언가 조율을 하고 있었다.
그 예상 밖의 광경에, 로건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 클레이튼이 한 말을 떠올렸다.
– 많이 발전했지만, 저희 마법 병단은 아무래도 제국에 비하면 아직 부족합니다. 그러니 최악의 경우엔 그 전력을 모아서…….
클레이튼은 분명 그리 말했다.
하지만.
‘왜 벌써?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그러나 지금 그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결국 로건은 마법 병단에 대한 기대를 접어 버리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자경단은 뒤로 빠져! 기사와 병사들은 적극 항전하라!”
너무 빠르긴 했지만, 어차피 제국군에서 대응책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예상은 했던 터.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막아 낸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 로건은 다시 성벽에 올라서기 시작한 제국의 기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을,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막아섰다.
“오랜만이군.”
노인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타오르는 듯한 붉은 오러가 쏘아져 들어오는 황금빛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차라리 잘됐어.’
노인, 검혼을 보는 순간 로건은 오히려 기회라고 여겼다.
돌진하는 기세 그대로 뻗어 낸 황금빛 검.
스각.
검혼이 만들어 낸 붉은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던 황금빛 뱀은 그대로 검혼의 오른쪽 허벅지에 기다란 검상을 새겼다.
푸슉.
“!?”
뿜어지는 피와 함께 일그러지는 검혼의 얼굴.
‘이해가 가지 않겠지.’
하지만 로건은 그가 상황을 이해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쿵.
거칠게 내디딘 진각이 성벽의 일각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 힘을 고스란히 실은 황금빛 검격이 그대로 붉은 공간을 갈랐다.
신검 비전 7식, 공간 가르기.
아직은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한 영혼 가르기를 제외하고는 당장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비전.
하늘 높이 솟구친 황금빛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가로지르며 검혼의 몸을 양단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우웅.
잘려 나간 것은 검혼의 잔상과 그가 있던 자리의 성벽뿐.
그리고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나타난 검혼의 시선은 로건이 아닌 성벽의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아악!”
“이, 이게!”
“몸이 둔……!”
성벽에 오를 때의 기세와는 달리 너무도 쉽게 공략당하는 부하 기사들.
이를 부드득 간 트리스의 시선이, 살기를 가득 담아 그에게로 돌진하는 로건에게로 향했다.
“대마법진! 감히 이런 꼼수를!!”
대륙의 전쟁에서 언제부터 마법이 꼼수가 되었을까.
하지만 트리스는 그렇게 매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제국에서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인 대마도시대의 유물이, 한낱 소국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걸 선뜻 인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또한 자신을 몰아붙이는 새파란 애송이가 벌써 자신과 동등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무수한 증거도 검혼을 정신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마지막 자존심을 내려놓고야 말았다.
“넬리!!!”
그 고함과 함께 검혼을 향해 쇄도하던 로건의 몸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새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합!!”
우드득.
황금빛 오러와 함께 떨쳐 낸 빙결의 마법.
하지만 그사이 검혼의 검은 로건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서슬 퍼런 오러와 함께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는 듯한 기현상.
큰 힘을 동원하지 않고 그저 속도에만 치중한 일격에도 공간의 권능이 깃들었다는 증거였다.
‘확실히 이 상태의 나보다는…….’
한 수 위다.
로건은 그 사실을 체감했다.
특성 ‘업’을 쓰자면 못 이길 것도 없겠지만, 특성을 쓰고 탈진했다가는 협공 중인 넬리나 어디선가 보고 있을 제롬에게 틈을 보일지도 몰랐다.
다만 그에게는, 한 수가 모자라더라도 그 틈을 메워 줄 다른 방도들이 있었다.
우선 지금처럼 눈앞에 칼날이 다가와 있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생각을 이어 갈 수 있는 이유.
우웅.
드워프 대가급 장인의 혼이 실린 명품, 애검 룩스가 황금빛 오러를 한껏 빨아들이며 시간 가속의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렸다. 붉은 오러로 장악된 주변의 공간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한계까지 올라간 집중력, 로건의 붉은 눈이 검혼의 검에 깃든 공간의 권능을 확실하게 파악해 갔다.
그리고 시간 가속이 끝나는 순간.
쿵.
발을 구름과 동시에 풍신의 부츠가 민첩성을 극대화시켰고, 검을 내뻗는 순간 괴력의 건틀릿이 근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수호의 견갑이 느려진 시간 속에서 억지로 가속을 하며 가해진 몸의 부담을 한층 덜어 주었다.
이미 초인이라 불리는 오러유저의 힘까지 증폭시키는, 현시대 아티팩트의 상리를 벗어난 아티팩트.
검신 일맥의 보물들이 그에게 막강한 힘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한순간 공간의 권능을 담은 검이 그대로 찔러 오는 검혼의 검을 후려쳤다.
권능과 권능의 충돌. 그 뒤에 남는 것은 결국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꽈아아아아앙!
우르르르릉.
강렬한 폭음과 함께 성벽을 떨어 울리는 진동이 광기 어린 전장의 가운데서도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충돌의 여파가 가라앉은 뒤에 드러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푸확!”
피를 토하며 성벽 밖으로 튕겨 날아간 사람은 제국제일검, 트리스 혼스비였다.
“……!?”
“각하!!”
“무슨 일이…….”
제국군도.
“폐하!?”
“어!?”
“이게 대체…….”
맥라인군도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일순간 그 주변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지고, 그 느려진 전장 한가운데서 단 한 사람만이 튕겨 나간 검혼을 향해 쏘아지듯 돌진했다.
‘끝낸다!’
약화 마법진이 검혼의 힘을 일부 약화시키는 틈을 타 허벅지를 노려 기동력을 감소시켰다. 그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아티팩트를 동원한 일격을 먹였는데도 끝장을 내지 못했다.
다음번에는 이처럼 절호의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기에 성 밖,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도박을 강행한 것이다.
한편 성벽의 아래에선 제국의 기사들이 무릎을 꿇은 검혼을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몸을 던지고 있었다.
“막아!”
“각하를 지켜라!”
“목숨으로 막아!”
적의 수괴가 눈앞에 나타났음에도 누구도 그 목을 노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제국군에게는 검혼의 패퇴가, 그를 몰아치는 적의 모습이 생소했던 것이다.
“전부 꺼져라!”
촤아아아악.
쩌어어어어억.
다급한 마음의 로건이 룩스를 거칠게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뻗어 나온 황금빛이 거대한 거인의 검으로 변해 사방 30여 미터를 휩쓸었다.
“아아아아악!”
적군의 비명이 합창하듯 터져 나왔지만 로건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연달아 시전한 신검 비전에 포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데, 토해 낸 피로 입술과 앞섶을 새빨갛게 물들인 검혼이 검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이제야 몸이 좀 가벼워졌군.”
새하얗게 변한 적의 검 끝에서 불꽃처럼 붉은 오러가 타올랐다.
동시에 검혼의 얼굴에선 주름이 실시간으로 늘어났다.
심상치 않은 예감에 로건의 발걸음이 주춤하는 순간.
“그 나이에 최상급이라……. 흐흐, 폐하의 가장 큰 적은 성국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내가 오만했어. 사과하마. 그러니 이제…….”
로건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섬뜩한 붉은 빛이 검혼의 눈동자에 번뜩였다.
“같이 죽자꾸나!”
죽자,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혼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