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95)
395화
“좋아! 놈들의 공세가 약해지는 게 확연히 보인다! 정확히 10분 후, 바람의 방벽을 해체하고 총력전으로 나선다!”
대규모의 마법진을 형성한 채 전력을 다해 마나를 뿜어내는 마법사들의 시선이 고함을 지르는 사람에게로 몰렸다. 본래 유난히 급한 성정으로 유명한 폭염의 마도사, 그렉 마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분노로 얼룩진 그 얼굴은 지금처럼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그렉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마법사들 역시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직후부터 예상치 못한 고전의 연속이었으니까.
“이게, 이게 말이 돼!?”
연사 석궁은 예상한 바였다.
이제는 제국 역시 병사들의 필수 장비로 채택한 효율성 높은 무기.
황실에서 비밀리에 개발 중이던 무기가 저 소국에서 먼저 나왔다는 이상한 소리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비슷한 무기는 이쪽에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쏟아지는 쿼렐의 양이 예상의 5~6배를 훌쩍 넘어섰다.
‘저것만으로도 재앙인데…….’
거기에 생각지도 못한 충격이 하나 더 더해졌다.
2서클 수준으로 보이는 폭발 마법이 연달아 터지며, 마치 땅 위에 불꽃의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지면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지휘부 대다수는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근대의 전투에선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되는 성벽이, 너무나도 굳건한 방벽이 되어 제국군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광경.
그 재앙을 끝내기 위해 삭풍의 마도사 갈렌 디카이드가 먼저 나서서 시선을 끌었다.
그의 분전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다만, 그 대가로 전선에서 이탈하여 명상 중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 숨겨진 초인이라는 놈들 중 다수가 여기 있다.
세 곳의 진군로 전부에 맥라인의 초인 전체를 상대하고도 남을 초인 전력이 배치되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를 꼽자면 역시 이 중앙군이었다. 검혼과 삭풍으로도 모자라 오대 마탑의 수장들까지, 제국에서도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모인 병력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라면, 오직 그것 하나만이 긍정적인 소식이라는 것.
“빌어먹을……!”
이미 전황은 제국군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중앙군에는 우리가 있다. 하지만 남북의 군세에는 마법사 수가 현격히 부족해. 설마 그곳에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어차피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대체 저 안에 병사가 몇이나 있는 거야? 또 마법사는?! 참모부는 뭐 하러 있는 거야! 적에 대한 정보 하나 건지지 못하고!”
그렉은 신경질적으로 땅을 걷어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마법진을 해체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었지만, 소리라도 질러야 다급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진정될 것 같았다.
그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옆에 있던 지휘관 중 하나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렉도 얼굴을 알고 있는 이였다.
이번 맥라인 침공을 주도하고 전략을 세운 제국군 참모 중 하나.
그란디아 출신이라고 했던가?
“맥라인에서 일반 백성들에게 연사 석궁을 보급하고 훈련까지 시켰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폭발을 일으키는 것도 마법이 아니라 스크롤 같은 무기입니…….”
갈색 눈에 평범한 외양을 한 지휘관의 말에 그렉의 인상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뭐라고!? 그런 중요한 얘길 왜 이제야 하는 거야!?”
“일전에 보고를 했…….”
“누구한테!?”
“…….”
“흐, 참모부도 썩었군. 변명만 주워 삼키는 놈을 지휘부에 두다니.”
괜히 말을 꺼냈다 면박만 당한 지휘관, ‘루첸 탈로스’는 목까지 치민 욕설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가 최초로 보고를 했던 자의 이름을 지금 꺼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말을 했는데 너희 제국 놈들이 믿어 주지 않았다! 바로스 황자도! 황실도!’
평민에게 기사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쥐여 준다는 게 말이나 되냐면서.
또 스크롤이 얼마나 비싼데 그런 걸 소국의 내전에서 뭉텅이로 쓰겠냐면서.
‘이게 다 오만의 대가다. 멍청한 제국 놈들…….’
물론 그렇다고 제국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지만, 예상외로 선전하는 왕국군의 모습에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지금 그의 처지는 굉장히 미묘했다.
한때는 그란디아 왕국의 변경백으로 2왕자 파의 참모 역할을 했던 그가 아니던가.
‘그런 내가 설마 썩은 줄을 잡았을 줄이야.’
그란디아에 내전을 유발하여 국력을 소모시키면, 왕국이 아닌 제국의 백작위를 주겠노라 약조했던 황자는 지금 제국의 반역자로 수배 중이다.
옛 그란디아의 변경백은 이제 한낱 남작위의 참모일 뿐이다.
그러니 그는,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공을 세워야 했다.
‘왕국 서부는 훤하다. 길 안내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그러니 무너져라. 제발.’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카일 성은 좀처럼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멀리 성벽의 일각을 장악했던 붉은 오러의 구체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성벽 밖으로 튕겨 나온 흐릿한 그림자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는 거리였지만, 추측은 쉬웠다.
‘검혼이!? 설마!?’
– 와아아!
아니길 바랐건만 이 먼 거리까지도 사기가 한껏 올라간 듯한 적군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대체 어떻게!?’
그는 옛 고향을 굳건히 지켜 내는 방벽을 보며 침음성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것은 당연히 루첸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쿼렐과 폭발의 세례를 피해 성벽에 올라선 기사들마저 일방적으로 쓰러지자, 곧 제국군의 전방에 있던 깃발들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성벽. 이상. 마법.
“젠장! 모두 서둘러! 마법 병단 전원, 고속으로 전진!!”
그 신호를 해석한 그렉 마빈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마법사들의 발밑에서 마나를 빨아들이던 마법진이 빛을 잃었다.
쿵.
우우우웅.
“악!”
“이런……!”
“쓰러진 놈들에게 신경 쓰지 말고 서둘러라!”
지진의 마탑주 셀린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주변에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마법진의 축을 틀어 버림으로써 마법을 멈춘 것이다.
마법 병단에서도 약한 축에 속하는 3서클의 마법사들 몇 명이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것 같았지만, 정황상 옳은 판단이었다.
이제는 마법 병단이 전장에 전폭적으로 참여해야 할 때였다.
고작 3천의 병력이지만, 하나하나가 최소 3서클의 마법사다. 심지어 오직 전투를 위한 병진까지 익혔다. 7대 마탑 전부가 아닌 5대 마탑의 정예들뿐이지만, 어떤 구성이라도 전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법 병진을 훈련한 것이다.
“가자!”
“움직여! 빨리!”
해일의 마법사들이 물의 보호막을 펼치자, 폭염의 마법사들이 그 물을 증기로 바꿔 다섯의 마법사를 하나로 묶는 거대한 구형 보호막을 만들었다.
곧바로 지진의 마법사들이 자신이 속한 조의 땅을 움직이고, 삭풍의 마법사들이 바람으로 그 등을 밀었다.
거기에 빙결의 마법사들이 삭풍의 힘을 이용하여 지면을 얼려 마찰을 없애는 순간, 보호막을 두른 마법사들이 전장을 향해 쏜살같이 나아갔다.
저들이 전장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전황은 다시금 뒤집힐 것이다.
3천 명의 마법 병단은 단순히 적을 향해 화력을 투사하는 용도가 아니었다. 저들이 발휘할 온갖 마법은 그 열 배수 이상의 제국 기사와 병사들을 월등히 강화시키며, 적들에게 절망을 선사할 것이다.
“셀린, 렉시. 우리도 간다!”
“갈렌 님은!?”
“기다릴 시간이 없어!”
엄중한 호위 병력에 둘러싸인 갈렌을 힐끗 바라본 그렉은 곧장 기사의 말을 잡아채 전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역시 보조 속성으로 바람을 다루지만, 그는 갈렌처럼 허공을 날면서 마법 폭격을 가할 정도로 마력이 넘치지도, 경지가 높지도 않았다.
6서클 마스터(Master)인 갈렌과 익스퍼트(Expert)인 그의 차이는 고작 한 단계였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니까.
물론 그 역시 대체할 수단은 있었다.
“가자!”
마력(Magic force, 혹은 Mana force)이라고 구분되는 마도사의 힘은 특별한 마법적 조처 없이도 기사들의 포스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거기에 조금의 마법이 더해진다면…….
“히이이이이잉!”
불꽃의 마력에 휩싸인 기마가 엄청난 속도로 전장을 향해 돌진하자, 갈색과 푸른색의 마력을 띈 말 두 필이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두두두두.
“비켜! 전부 비켜라!”
그렉은 연신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질주했다.
전장이 가까워지자, 검혼과 넬리가 적의 국왕을 일방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게 보였다.
황금빛과 금빛, 그리고 새하얀 마력이 어우러져 그들만의 전장을 만들어 내는 곳.
검혼의 제자까지 그 전권 밖에서 틈을 노리고 있는 광경 속에서 황금빛은 점차 구석에 몰리고 있었다.
자연히 머릿속에 적 국왕의 최후가 그려지면서 다급하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 듯했다.
‘굳이 저곳에 전력을 더하는 것은 낭비다.’
지금 자신과 동료들이 해야 할 일은 삭풍의 마도사를 추락시킨 다른 마도사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그렉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그 순간.
쾅!
땅에서 불쑥 솟구친 손 모양의 무언가가 기마의 발목을 잡아챘다.
‘골렘?’
히이이이잉!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던 말이 단말마와 함께 그대로 들판을 나뒹굴었지만.
“흡!”
다행히 그 전에 마력의 유동을 느낀 갈렌은 이미 말을 밟고 허공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성벽에 가까워진 지금, 어차피 기마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의 마법으로 적 마도사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저쪽!’
그는 일순간 일으킨 바람의 계단을 밟고 성벽 위로 날아올라, 마법의 흔적을 찾았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 목격한 성벽 위의 광경에 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기껏 성벽에 올라선 제국의 기사들이 손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성벽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도사의 눈에는 그 외에도 보이는 것이 있었다.
‘아티팩트? 적 기사들이 전부?’
비틀거리는 아군 기사들도 기사들이지만, 그들을 공격하는 적 기사들 전부에게서 약하지만 확실한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것이 성벽 위의 전세를 더욱 불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보고 느끼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제국의 모든 예산을 동원해도 2천에 가까운 기사들 전부에게 아티팩트를 맞춰 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저게 대체……!?’
성을 정복하고 나면 적 기사 놈들을 고문해서라도 토설하게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으며, 그렉은 가까워지는 목표를 바라보았다.
솟구치는 마력의 흔적과 그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붉은 오러의 여기사.
‘마도사 둘, 오러유저 하나.’
분석은 금방이었고, 그중에서도 붉고 푸른 오드아이의 소녀에게 시선이 갔다.
‘그 헛소리가 정말……이었군.’
곱게 말해 헛소리다. 그 말을 한 게 검혼이 아니었다면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비웃었을 말이 진실로 드러났다.
마나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저토록 어린 마도사라니. 고대에 태어났다면 그야말로 신인(神人)이 될 재능이 아닌가.
갈렌이 내심 감탄하던 그때, 성벽 위로 날아오르는 그를 보며 아군의 기사들이 소리를 질렀다.
“성벽이 뭔가 이상합니다!”
“조심하십시오!”
자신들이 칼을 맞는 와중에도 전투의 승리를 생각하는 충성스러운 자들.
하지만 그 역시 이미 주의하고 있는바.
‘성벽이 이상하다면 올라서지 않으면 그만.’
자유롭게 날며 마법을 퍼붓지는 못해도 순간 멈춰 서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성벽의 한끝 밖에서, 날아오르던 모습 그대로 허공에 정지한 그렉이 이내 준비한 최강의 마법을 꺼내 들었다.
“메가 플레어(Mega flare)!”
화르르르륵.
쿠아아아아앙.
그의 앞에 생성된 불덩어리들이 그를 향해 날아드는 쿼렐들을 모조리 태워 버리며,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
그 옆에선 성벽의 일각이 부서지며, 돌덩이의 폭풍이 같은 목표 위로 퍼부어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촤라라라라락!
갑자기 하늘 위에서 쏟아진 빗방울들이 작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하늘 위에서부터 그들을 노렸다.
제국이 자랑하는 7대 마탑, 그중 3인의 마도사가 작심을 하고 쏟아 낸 공격들.
그 앞을, 붉은 오러를 장막처럼 두른 여기사가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