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96)
396화그렉은 뒤쪽으로 바짝 붙어 선 아군 마도사들까지 감싸는 오러의 방벽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오러유저가 방어라니.’
차라리 검을 들고 셋 중 하나라도 노리는 게 합리적이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성벽 밖 허공에 떠 있더라도, 마법을 쏟아 내는 와중에 한 번쯤은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
그 붉은 오러의 막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의 비수와 전방에서 쏟아지는 폭염의 세례, 사방에서 몰아치는 암석의 폭풍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버티는 것을 보고서는 안색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을 한층 더 쏟아부어도 끄떡없는 붉은 방벽에 그렉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설령 검혼이라도 자신들을 모조리 때려잡으면 모를까, 저런 짓은 하기 힘들 것이었다.
‘끄응, 저년도 돌연변이였군. 젠장!’
신경질이 날 수밖에 없었다.
마나를 사용하는 마법사들에게 있어 포스유저란 참 황당한 생명체였다. 일개인의 힘으로, 세상에 넘쳐나는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마법사와 비등한 전투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런 관점에서 포스유저의 정점에 있는 오러유저는 불가해한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마법으로도 불가능한 이적을 태연하게 저지르면서 고작 ‘특성’ 이나 ‘권능’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설명하는 이들.
자신이 가진 힘의 원리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바보이자 괴물.
특히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괴상한 이능을 각성한 오러유저들은 정말로 생체 실험이라도 해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마도 방어에 특화되었을 저 여기사 같은 이들을 말이다.
그렇기에 소수의 마도사들은 그런 오러유저를 인간이 아닌 돌연변이라고 불렀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임이 분명하다는 황당함과 경이를 담아서 말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거기까지였다.
“그대로 웅크리다 죽어라!”
그렉은 가일층 힘을 끌어 올려 마법에 쏟아부었다.
저 오러의 장막 안에서는 적의 마도사들 역시 마법을 쓰기 힘들 터. 저 여기사가 힘이 다하는 순간, 이 싸움은 끝이 날 것이다.
하지만 그렉은 곧 그것이 너무 낙관적인 기대였음을 깨달았다.
여기사의 검을 따라 오러의 방어막이 살짝 들려지는 순간.
“그래비티 프레셔(Gravity Pressure)!”
중후한 음성과 함께 자신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인력이 느껴졌다.
우우웅.
“윽!?”
“이런……!”
“흡!”
적을 압박하여 타격을 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위치를 변동시키는 마법. 그 안에 들어간 마력이 자신 못지않다는 것을 느낀 그렉의 눈이 커졌다.
‘이런 젠장.’
유지하던 마법이 흐트러지고, 몸이 성벽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주변을 보니 셀린이나 렉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오히려 그냥 허공에 떠 있던 그와는 달리 두둥실 떠오른 돌덩어리와 물방울 등에 의지하고 있던 터라, 더 빨리 성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렉은 성벽에 무슨 마법이 펼쳐져 있었는지를 절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몸을 유지하던 모든 에너지가 일순간 3할 가까이 감소하며 비틀거리게 된 것이다.
“윽!”
억지로나마 유지하던 마법, 메가 플레어가 사라지고 그 반작용으로 현기증이 찾아왔다.
짧다면 짧은 비틀거림. 하지만 그가 다시 정신을 다잡았을 때는 이미 2m 남짓한 덩치의 돌 거인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골렘?’
하지만 그 속도는 도무지 마법으로 만든 인형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그를 향해 내민 주먹, 전신에 어린 짙은 갈색의 마력이 마치 잔상처럼 길게 늘어져서 보일 정도로.
‘젠장!’
황급히 끌어 올린 마법이 본능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콰아아아아앙!
우르르릉.
“큭!”
내장이 뒤집히는 충격과 함께 밀려난 그렉은 이내 성벽의 난간에 부딪혀 피를 토해 냈다.
푸확!
피를 뱉어 내고 나자 흐려져 가던 정신이 조금이나마 돌아오는 듯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이미 골렘의 주먹은 다시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사람 머리통만 한 주먹이 자신의 머리를 박살 내는 미래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 내가 이렇게…….’
그렇게 그의 얼굴에 체념의 빛이 떠올랐을 때.
콰아아아앙!
언제 생겨난 건지 모를 투명한 방벽이 골렘의 주먹을 막아 내며 그를 구했다.
쿵! 쾅! 쾅!
시리고 푸른 기운이 어린 방벽을 두드리는 골렘의 모습은 현실감이 없었다.
죽었다 살아난 느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덜 된 그렉이 멍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는데.
콰직.
계속 이어지는 골렘의 주먹질을 견디지 못한 방벽에 금이 가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갑고 투명한 방벽.
그가 알기로 이런 느낌에, 저 무식한 골렘의 힘을 막아 낼 만한 마력의 소유자는 제국에 단 한 명뿐이었다.
“갈렌 님!?”
화색이 된 그렉이 뒤를 돌아보자, 멀리 허공에서 성벽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삭풍의 마도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못마땅했을까.
[정신 차려라, 그렉! 전장이다!]매서운 호통이 담긴 메시지 마법이 그의 정신을 다시금 일깨웠다.
그제야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그렉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내가, 한순간이라지만 싸움을 포기했다고?’
다른 두 동료, 렉시와 셀린이 아슬아슬하게나마 골렘의 공세를 막아 내고 있는 광경이 그의 부끄러움을 키웠다.
같은 경지라고는 하나 평소 반 수 이상 아래라고 생각했던 이들조차 저리 선전하고 있는데, 자신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물론 약간의 의문은 있었다.
이 말도 안 되게 강력한 골렘들의 공격을 막아 내는 동료들의 모습이 평소와 너무 차이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마치 자신을 옭아매는 이 끈끈하고 더러운 약화 마법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처럼.
‘이게 어찌……?’
이유는 모르겠지만 동료들 중 자신만 마법에 당한 듯했다.
로브에 새긴 금룡의 문양이 부끄럽고, 무겁게 느껴졌다.
까드득.
‘만회한다!’
부끄러움은 곧 적을 향한 분노로 바뀌었다.
콰아앙!
때마침 삭풍의 방벽이 부서지며, 골렘이 그를 향해 쇄도해 왔다.
“박살을 내 주마!”
그렉의 전신에서 쏟아지는 폭염이 골렘을 연신 강타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쾅!
우르르르릉.
폭염이 터지고, 성벽이 흩날리며, 때아닌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 재해와도 같은 힘을 담은 각양각색의 마력이 공간을 일그러트리듯 성벽의 일각을 감쌌다. 마도사들의 전장은 성벽 내에서도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내며 타인의 간섭을 불허하고 있는 것이다.
“아악!”
“컥!”
우연히 휩쓸린 여파만으로도 일반 병사들은 그대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 살벌한 전장에 날카로운 푸른 바람이 끼어들었다.
“삭풍……!”
3명의 마도사를 간신히 묶어 놓고 있던 클레이튼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내 그의 마력이 또 한 갈래로 갈라져 새로운 상대를 묶기 시작하자, 그 위력이 약화되며 다른 세 마도사의 기세가 올라갔다.
“놈들의 한계다! 몰아붙여!”
“갈렌 님이 오신다!”
“찢어 죽여 주마, 이놈들!”
꽈아아아앙!
그그그그극.
폭염과 폭우. 섞일 리 없는 두 마법이 섞이며 불꽃의 비를 만들어 내고, 골렘들과 클레이튼 일행의 발판을 흔드는 지진이 일어났다.
짙은 갈색의 마력을 갑옷처럼 두르고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마도사들을 몰아치던 골렘들은 자잘한 균열을 일으키고 회복되는 것을 반복했다.
“조금만 더 버텨라, 리아!”
“예! 스승님!”
주르륵 흘러내린 코피를 닦을 새도 없는 빅토리아와 그녀만큼이나 창백한 얼굴로 제자를 격려하는 클레이튼.
그 모든 것이 에일렌의 흔들리는 시야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까드득.
에일렌은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무의식적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움직여!’
불굴의 성채를 3배로 확장한 상태에서 마도사들의 집중 포화를 견뎌 내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충격의 여파가 사라진 후에도 몸을 추스르기가 버거웠다.
하지만 이미 모두가 무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맥라인이 우세하다고는 하나, 희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아악!”
“사, 살려!”
“맥라인을 위해!”
자경단은 고기 방패가 되어 학살당하고 있었고, 격렬한 전투 끝에 죽어 나가는 기사나 병사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적군의 희생은 그 배 이상으로 보였지만,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는데 자신만 쉴 수는 없었다.
“으아압!”
스스로도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로 귓가에 들리는 이명을 떨쳐 낸 에일렌은 기감에 잡히는 강대한 마력의 주인을 향해 돌진했다.
아무리 자신이 마도사를 상대로 극상성에 가까운 특성을 가졌다지만, 지금 상태로 삭풍의 마도사를 처리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저 약속대로 시간을 끄는 수밖…….
‘응?’
실시간으로 회복되어 가는 감각이 이상한 것을 포착했다.
‘금룡의 문양? 왜?’
화르르르륵.
“모조리 태워 주마!!”
콰아아앙!
달아오른 얼굴로 전신에 불꽃을 두른 채, 마법사답지 않게 날뛰듯 움직이는 마도사.
그 마도사의 가슴에 새겨진 금룡의 문양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국가보다 마탑이나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더 크기 마련인 마법사들은 로브에도 자신들만의 상징을 그려 넣는다. 클레이튼과 빅토르가 골렘 학파의 문양을 고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관습을 무시하듯 제국의 상징인 금룡의 문양을 새긴 로브를 입은 마도사가 있었다.
‘별종인가? 하필…….’
물론 당장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약화 마법진의 영향을 받을 터이니 당장은 전투가 유리해진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빅토리아가 재구성해 낸 맥라인 대마법진의 효과는 아직 밝혀져서는 안 된다. 마법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유도해야지, 문장이 타겟이라는 진실은 철저히 숨겨야 한다.
물론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그것이 이번 전쟁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여기서 죽여야 해.’
물론 당장은 코앞으로 다가온 삭풍의 마도사를 막아 내는 것이 먼저였다.
에일렌은 치밀어오르는 살심을 감추며, 눈앞에 쇄도하는 푸른 바람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아앙!
콰콰콰콰콰.
오러와 정면으로 충돌한 푸른 바람이 중심이 되는 마력을 잃고 그저 돌풍이 되어 사라졌다.
그 매서운 바람이 흐릿해져 가던 에일렌의 정신을 다시 날카롭게 벼렸다.
“삭풍의 마도사도 별거 없군. 덤벼라!”
“하……!?”
유치한 도발에 성벽 밖 허공을 유영하듯 움직이는 삭풍의 마도사가 탄성을 흘렸다. 물론 그 도발에 응해 줄 생각은 없는 듯, 탄성에 담긴 감정에는 의외라는 기색만이 가득했다.
아마도 몽둥이 같은 오러로 자신의 마법을 분쇄하는 여기사가 신기하기 때문이겠지만, 보고 있는 에일렌은 속이 탈 수밖에 없었다.
‘왜 안 내려와?’
흘깃 뒤를 돌아보지만, 클레이튼은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을 뿐이었다.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 한 가닥이 삭풍에게 닿았음은 분명하건만,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동급의 마도사 세 명을 성벽에 묶어 두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 셋을 부족한 경지로도 몰아붙이고 있는 빅토리아의 힘은 더 부언할 필요도 없었다.
‘나만 잘하면 돼.’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적 역시 파악한 듯했다.
“제, 제국을 위해!”
“뒈져라! 침략자!!”
“제국은 무슨!”
“아악!”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서 제국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여유가 생긴 소수의 병사와 기사들은 성벽 밖에서 보란 듯이 허공을 날고 있는 마도사를 향해 석궁을 쏘고 리베라티오를 던졌다.
쾅!
타다다당.
“흐.”
자신에게 날아드는 쿼렐과 폭탄을 손쉽게 튕겨 낸 삭풍의 마도사는 그런 병사나 기사들은 무시한 채 손가락으로 에일렌 일행을 가리켰다.
단순한 행동과는 달리 금발이 하늘 끝까지 솟구쳐 오른 외견은 제국 최고의 마도사가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내 에일렌이 한 번 분쇄했던 푸른 바람이 직전보다 훨씬 더 커진 규모로 그녀와 빅토리아, 클레이튼을 휘감았다.
‘삭풍의 군세!’
하나의 스펠(Spell)로 소규모는 물론, 대규모 방어와 공격도 가능하다는 이 시대 최고의 전투 마법이 다시 펼쳐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