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97)
397화 ‘근원 가르기는 안 돼. 쉽게 피할 거야. 금속 가르기는…… 아니, 아니야.’
허공에 떠 있는 적을 보며 고민하던 에일렌은 문득 떠오른 직감에 따라 적이 쏘아 낸 마력의 흐름에 정신을 집중했다.
‘어차피 내 공격이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면…….’
자신의 보호와 성벽 위 세 사람을 향한 공격. 네 방향으로 갈라졌지만 어차피 하나의 마법이다.
흐름을 알 수 있다면, 그 흐름을 끊어 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신검 비전의 포스코어는 그 주인의 신체 능력과 기감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다. 일반 각성이 아닌 특수한 능력을 획득한 그녀와 로니안, 빅토르가 동급의 다른 오러유저들과 신체 능력만으로도 대등한 힘을 낼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원래부터 초월적인 신체 능력과 감각을 가진 남편은 아예 마나를 눈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녀는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마력이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파괴의 바람으로 변화되기 직전의 흐름.
그 흐름이 말도 안 되게 빠르고 투명한데다가, 주인이 의도적으로 감추려고까지 했지만.
‘찾았다!’
우우우웅.
그녀의 검에서 솟구친 붉은 오러가 일순간 이십 미터 가까이 솟구치며 거대한 거인의 검, 아니 몽둥이 형상으로 변했다.
이내 붉은 몽둥이가 적이 아닌 사방의 허공을 향해 연달아 휘둘러졌다.
파아아아아앙!
적을 향한 것이 아닌 엉뚱한 허공을 향한 참격.
하지만 그 결과는 훌륭했다.
콰콰콰콰.
일순간 세 사람을 난도질하려던 삭풍의 군세가 깔끔하게 끊어져 나갔다.
“푸핫!”
“살았다!”
클레이튼과 빅토리아가 창백한 얼굴로 탄성을 토해내자 갈렌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나마 저 마도사들은 약간의 자상을 입은 듯했지만, 여기사는 아예 스친 상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애초에 오러유저의 칼질 한 번에 끊길 마법이었으면 삭풍의 군세가 그리 명성을 떨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른 ‘마도사’가 마력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또 그것을 끊어 낼 만한 파괴력까지 갖추어야 분쇄가 가능한 마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갈렌보다 더욱 상위의 마도사여야만 한다는 것이 세간의 상식이었다.
무리한 일격을 쏟아 낸 여기사가 그 대가로 식은땀을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감히!!”
제국에서도 머리 위로 단 두 사람만을 둔다는 오만한 마도사가 격노하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이내 그의 공격이 이어지려던 찰나.
– 됐다!
성안에서 들려온 커다란 함성과 함께 기묘한 파동이 카일 성 안팎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힘이!”
“힘이 돌아온다!”
성벽 위에서 일방적으로 추락하고 있던 제국 기사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들을 옭아매던 대마법진의 힘이 확연히 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쪽, 그 밑에서 분투하던 제국군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마, 마법이!”
“이런!”
푸확.
막 전방에 합류한 제국의 마법 병단, 3천여 명의 마법사들의 입에선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법을 쓰다 말고 각혈하는 마법사들도 속출했다. 전열을 향해 쏟아 내려던 각종 보조 마법이 일순간 취소되며, 마력이 역류해 버린 것이다.
“쿨럭.”
“이, 이게 대체!”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오래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하지만 빅토리아라는 세기의 천재가 알 수 없는 연구 일지에서 발굴해 낸 ‘대(對)마법 결계’.
빅토리아와 맥라인의 마법 병단이 한 수, 아니 몇 수 위의 제국 마법 병단을 봉쇄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승기를 잡게 해 준 대마법진의 효과조차 일순간 깎아 먹는 극단적인 수였지만, 그만큼 그들은 적 마법 병단의 힘을 크게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그 효과는 마도사들의 전장에서 더욱 극대화되었다. 결계의 발동과 동시에 역류한 마나가 그 주인들에게 심대한 충격을 준 것이다.
결계의 효과, ‘안티 마나 필드(Anti-mana Field)’는 성벽 안팎의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었지만, 미리 각오하고 있던 맥라인 측과 갑작스레 당한 제국 측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클레이튼과 빅토리아가 비틀거리며 이를 악무는 수준에서 끝난 것과 달리.
“악!”
해일의 마도사 렉시는 단말마와 함께 쓰러졌고.
푸허헉.
지진의 마도사 셀린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컥! 이, 이게……!”
그리고 폭염의 마도사 그렉은 훨씬 큰 타격을 받은 듯 눈과 코, 입에서 피를 흘리며 휘청거렸다.
물론 그럼에도 버텨 내는 자는 있었다.
“이, 이런 빌어먹을!”
과연 제국 최고의 마도사는 무언가 다른지, 갈렌 디카이드는 새파랗게 변한 얼굴로도 마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때, 에일렌이 움직였다.
‘지금!’
번개처럼 쏘아져 나간 에일렌은 자리에 주저앉으려는 폭염의 마도사를 먼저 노렸다.
“뭐……!?”
창백한 안색으로 눈앞의 검을 바라보는 멍한 눈동자.
에일렌의 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스각.
“안 돼!”
무언가 마법을 쓰려다 뜻대로 되지 않은 듯 갈렌이 분노에 찬 고함을 터트렸지만, 그렉의 머리는 이미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다음!’
바닥을 드러낸 포스와 누적된 충격에 온몸이 삐걱거리는 것 같았지만, 에일렌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마도사들이 단체로 결계에 걸려들 상황은 이제 다시 없어!’
그 의지가 없는 여력을 쥐어짜 그녀를 움직였다.
그러나, 그녀의 검이 닿은 곳에 더 이상 적은 없었다.
우우웅.
그렉의 죽음은 막지 못한 갈렌이었지만, 이내 무언가 요령을 찾아낸 듯 다시 마법을 발동한 것이다.
에일렌이 다른 마도사들에게 다가서기도 전에 이미 그들은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대마법 결계가 펼쳐졌는데도 마법을 쓴다고?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황당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 마법을 발굴해 낸 빅토리아조차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갈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상식을 무너트린 이는 오히려 일그러진 얼굴로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크흐흐. 이런 황당한 일이……. 고대의 안티 마법진을 복구했다고……? 대체 누가?”
품위 없는 웃음, 입가에 가늘게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 확실히 그도 멀쩡하진 않은 것 같았다.
에일렌을 죽일 듯 노려보던 갈렌의 시선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의 눈에 창백한 안색으로 스승에게 기대듯 서 있는 빅토리아가 들어왔다.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에일렌이 다시 갈렌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천재, 세기의 천재라 이거지…….”
갈렌은 어린 마도사를 보며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에일렌은 더 이상 공세를 취하지 못했다. 분명히 큰 타격을 받은 것 같은데도 미묘하게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미묘한 대치 상태에서 먼저 뒤돌아선 것은 삭풍의 마도사였다.
“두고 보자. 두 번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마친 잘생긴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을 때.
성벽 아래에서 갑작스레 함성이 터져 나왔다.
– 우와아아아!
성벽 위 모든 이의 시선이 아래의 전장으로 쏠렸다.
* * * 죽음을 각오한 듯한 검혼의 검격은 무섭도록 살벌했다.
한 번의 휘두름에 반경 수십 미터가 그대로 잘려 나갔고, 한 번의 발 구름에 지면이 쩍쩍 갈라졌다.
말 그대로 초월적인 무력이었다.
그러나 로건은, 그의 검이 두렵지 않았다.
수십 미터를 전권에 두는 검격은 자신의 오러와 권능으로 상쇄할 수 있었고, 지형이 터져 나갈 정도로 위력적인 발 구름은 그저 불필요한 힘의 낭비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 사이사이로 자신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빙결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싸움은 진작 끝났을 것이다.
오히려 조금 전, 성벽 위의 검혼이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상한 상황.
‘왜 이렇지?’
실시간으로 주름이 늘어 가는 트리스의 얼굴은 기괴했고, 그의 검에 실린 힘과 속력은 성벽 위에서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그리고 자신은 변한 것이 없었다.
검신 일맥의 유물들로 증폭된 신체 능력이 이 정도 차이를 메꿀 정도인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애검 룩스의 시간 가속조차 이미 써 버린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피하기에 급급한 상황이 이어져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여유가 있었다. 천하의 검혼이 펼치는 검술을 보며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대체 내가 어떻게?’
의아해하던 로건은 순간 자신이 분기점에 섰음을 직감했다.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경지에 도달할 가능성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렇기에 전장임을 잊고서 일단 수비로 일관했다.
그리고 한참의 공방이 지나서, 검혼의 검술을 반복적으로 본 끝에 깨달았다.
자신이 검혼의 모든 수를 미리 읽고서, 한발 앞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군.’
관련된 지식이 없기에 깨달음이 너무 늦었다.
호흡을 읽고 수를 읽는 것은 전사로서 갖춰야 할 당연한 기량.
하지만 이건 그런 기량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기량이라면 누가 봐도,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검혼이 우위였으니까.
지금 이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달라진 자신의 시야, 정확히는 감각에 있었다.
‘영혼을…… 볼 수 있다.’
트리스 혼스비의 움직임이, 그 생각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어쩌면 그 자신조차 알 수 없을 임기응변에 가까운 움직임까지 예상이 될 정도로.
영혼을 다룬다는 오러마스터의 경지, 그 의미를 이제는 정말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한 순간에야 벌겋게 핏발이 선 트리스의 눈동자가 보였다.
“정말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구나!”
이 노기사 역시 패배를 직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네놈도, 결국 너머를 보았느냐!?”
메마른 목소리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분노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 영문 모를 분노를 굳이 상대해 줄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끝낼 때가 된 것이다.
챙! 채채챙!
꽈아아아앙!
쩌어어어억.
“잘 배웠소.”
대지가 갈라지고, 눈앞에 모든 것이 초토화되는 전장.
격렬한 부딪침 속에서도 여유로운 로건의 목소리가 트리스의 귓가에 또렷이 박혔다.
“……용납할 수 없다!”
깊어진 주름, 꺼져 가는 눈동자.
마지막을 직감한 노기사는 끝까지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의 끝자락에서 쥐어짜 낸 생명력이 검 끝에 맺혔다.
“결코, 혼자 죽지는 않는다!”
그 말과 함께 멈춰 선 검혼.
폭풍처럼 몰아치던 검격이 사그라들고, 불꽃 같은 오러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마치 이제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거세게 타오르는 오러의 불꽃은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를 억지로 가라앉혔다.
이내 시야가 깨끗해진 순간, 그 거대한 오러의 불꽃이 사라지며 검혼의 검이 길게 그어졌다.
쉬이이이익!
로건의 머리 위에서 발끝으로 깨끗하게 내리그어진 검격.
수년 전 제국의 황궁에서 손가락으로 보여 주었던 힘.
검혼이 평생에 걸쳐 일구어 낸 검술의 극치, 소울 블레이드(Soul Blade)가 그의 모든 오러를 담아 펼쳐졌다.
한때 대륙최강의 오러유저라 불리던 자가 혼을 담아 휘두른 일격.
로건이 세상을 다시 보게 해 주었던 그때의 일격이, 검혼의 생의 끝에서 그 무엇보다 찬란한 붉은빛을 터트렸다.
사위를 물들이는 황홀한 붉은빛.
전장의 광기가 일순간 사그라들고, 주변의 모든 이가 치열하던 싸움을 멈춘 채 멍하니 빛의 폭발을 바라보았다.
그 일검엔 그만큼 사람의 영혼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
그것을 마주한 로건의 얼굴에는 오직 안쓰러움만이 떠올라 있었다.
‘위력적이긴 하지만…….’
아마도 검혼은 오래전에 벽을 마주한 뒤로 끊임없이 그 너머를 갈구했을 것이다. 그러던 끝에 도저히 닿지 못할 그 상승의 경지를 어떻게나마 흉내 내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 저것은 흉내였다.
‘자신의 혼을 담았을 뿐, 혼을 갈라 내는 권능은 아니야.’
막막한 벽 앞에서 수십 년을 분투해 온 한 기사의 고뇌.
그 절망.
그리고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희망이 그 일검에서 고스란히 보였다.
그래서 로건은 이 노기사의 마지막을 전력을 다해 배웅해 주기로 했다.
그가 넘보고자 하는 권능의 끝을 보여 줌으로써.
쿵.
결심을 하고 한 발을 내디딘 순간, 특성 ‘업’이 발동되며 엄청난 힘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모든 힘을 담은 깨끗한 검격이 검혼을 향해 마주 그어졌다.
똑같은 각도, 똑같은 범위로 그어진 황금빛 검격이 다가오는 붉은빛을 상쇄했다.
콰콰콰콰!
편법으로 벽을 넘은 이의 일격이, 그 벽 앞에서 좌절한 노기사의 세월을 마주했다.
그야말로 찰나라고 할 수 있는 더없이 짧은 시간, 그 뚜렷한 차이가 확실히 비교되며 로건의 영혼에 새겨지듯 각인되었다.
‘덕분에 곧 온전히 벽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소.’
신검 비전의 8식, 영혼 가르기.
조금의 준비 과정도 없이 펼쳐진 비전이, 타오르는 황금빛이 노기사의 마지막 생명력을 불태우며 나아갔다.
그 찬란한 빛이 전해 준 충격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그 전에 생이 다했을까.
영혼을 가르는 빛이 육신에 닿기도 전, 검혼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무섭게 일그러진 표정 하나만을 남긴 채로.
“스승님!”
쉼 없이 틈을 노렸음에도 끝끝내 끼어들지 못한 외눈의 기사가 비명 같은 고함을 토해 내고.
“안 돼!”
생전 처음으로 어떤 마법도 통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한 마도사가 창백한 안색으로 절규했다.
그 충격적인 현장으로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로건이 검을 들어 올렸다.
특성 발동의 후유증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포스, 사방을 둘러싼 제국군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검혼을 쓰러트렸다!”
전장을 울리는 목소리가 전투의 끝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