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98)
398화
“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제이미 길란이 분노 섞인 한탄을 뱉어 내며 비틀거렸다.
흙이 마른 흔적이 아직 뚜렷하게 남아 있는 신생 요새.
그리고 그 요새를 공격한 20만 대군.
4개의 군단, 7명의 초인이 함께한 제국의 북부 정벌군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박살이 났다.
시야를 까맣게 뒤덮는 쿼렐의 비 정도야 이미 예상한 수준이었지만, 그 사이로 쏟아진 붉은 돌들이 문제였다. 2서클 수준의 폭발 마법이 들판에 카펫처럼 깔리는 광경은 지금 생각해 봐도 황당해서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 아아악!
– 사, 살려 줘!
– 콰아아아아앙!
제국의 정예들이 지르던 비명이 아직도 귀에 선했다.
‘말도 안 돼.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투성이야.’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스크롤 가격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제국, 아니 세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나라도 전쟁에서 소모용 아티팩트를 저리 낭비한 적은 없었다. 전쟁 한 번 치르고 나라를 망해 먹을 생각이 아닌 바에야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심지어 어떻게든 그 엄청난 공세를 뚫어 내야 할 제국의 기사들은 성벽 위에 도달하기도 전에 ‘붉은 오러의 화살’에 꿰뚫려 추락했다. 그것을 피해 기껏 성벽에 올라선 기사들조차 기괴한 탈력감을 느끼며 힘없이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전세를 뒤집고자 단숨에 성벽 위로 뛰어오른 7인의 초인 역시 영문 모를 마법의 압박 속에서 생각보다 강력한 저항을 맞이했다.
이를테면.
“이 빌어먹을 덩어리가……!”
“푸하하하. 어떠냐, 얍삽아! 그때의 내가 아니다!”
“마법의 덕을 보는 주제에 뻔뻔하구나!”
“두 놈이 같이 덤비는 건 안 뻔뻔하고? 여전하구나, 얍삽이 놈!”
2군단장 지펜과 3군단장 블레이크를 막아선 엄청난 덩치의 거인이라던가.
“처음 보는 문장이군. 어디 소속이냐?”
“리버티의 대공 군터 리버티다! 내 이름을 똑똑히 새겨 두거라, 제국의 초인이여!”
친위대의 채퍼빌을 막아선 노년의 기사 같은.
뭐, 백번 양보해서 거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4군단장 드렉슬러가 생전 처음 보는 활잡이 오러유저를 밀어붙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었다.
금발보다 흰머리가 더 많이 보이는 반백의 장년인.
그의 정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올해 일흔이 넘은 것으로 알려진 그란디아, 아니 맥라인 최강의 초인. 검공, 펠릭스 에스페란자.
“괴물 같은 늙은이…….”
제이미는 마창, 그리트 아인츠하인이 사망한 뒤 황실 친위대에서 제국 동부 1군단장으로 보직이 옮겨진 이였다. 그가 마창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오러유저 상급의 초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갑옷은 거의 걸레처럼 박살이 나 있었고, 전신엔 칼자국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상이 심한 곳은 배였다. 손으로 틀어막고 있지 않으면 내장이 흘러나올 것처럼 쩍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적은 상대적으로 멀끔한 모습이었다. 안색은 다소 창백했지만, 팔다리에 난 긁힌 듯한 상처 몇 개가 전부였던 것이다.
심지어 그조차 제이미 홀로 한 것이 아니라 3명의 초인이 힘을 합한 결과물이었다.
“제이미, 후퇴해!”
“피해가 크다. 물러서!”
황실 친위대의 옛 동료들, 밀레스와 멜빈이 혼신의 힘을 다해 늙은 괴물을 막아서는 것이 보였다. 치명타를 입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이대로 물러선다면 동료들 중 하나, 혹은 둘 모두가 그대로 목숨을 잃을 게 분명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고전하는 데에는 초인까지 약화시키는 이상한 마법 탓이 컸지만, 무엇보다도 상대의 실력 자체가 알려진 정보와 아예 달랐기 때문이었다.
‘검공, 분명 상급 중에서도 말석으로 판단된다 했는데.’
실제로 적은 최상급, 그것도 한 발 걸친 게 아니라 완숙한 경지에 다다른 최상급 오러유저였다.
정보가 어긋나도 너무 어긋났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 차이가 이 파탄을 만들어 냈다.
채채챙챙!
“윽, 이게 대체…….”
쾅!
“아아아악!”
파바박.
“사, 살려 줘!”
사방에서 울리는 비명이 전부 제국군의 것처럼 들렸다.
“우리가 너무 오만했어…….”
이제 와 후회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지만 절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대로는 황제 폐하를 뵐 면목이 없다.’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면 ‘활잡이 오러유저’와 ‘맥라인 최강의 초인’이 모두 이쪽에 있다는 것.
막강한 전력이 이곳에 몰려 있는 만큼 중앙군이나 남쪽의 군대는 아무래도 저항을 덜 받을 것이다.
그리 결론을 내린 제이미는 이내 결심을 굳혔다.
‘이 늙은이와 이 말 같지도 않은 마법진의 조합이라면 검혼 각하를 막아설지도 몰라.’
성국에서 크게 다쳤다는 소문이 있는 트리스 혼스비였기에 조금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제국의 대군이 이렇게까지 수세에 몰린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어차피 죽음으로 속죄할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해야 했다.
“밀레스, 멜빈! 틈을 만들어라!”
목숨을 바쳐서라도 제국의 마지막 걸림돌을 뽑아 버리겠다는 각오.
그 각오에 동료들이 응답했다.
“으아압!”
사신(Grim Reaper)이라는 이명을 가진 밀레스가 자신의 애병인 거대 낫, 소울테이커를 크게 휘둘렀다. 허리춤에 기다란 검상을 감수하면서 휘두른 그 일격은 검공이 있는 공간 전체를 비스듬히 가르는 폭발적인 오러블레이드를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폭열검 멜빈의 검이 아예 폭발하며 오러가 맺힌 검신의 조각들이 전면을 뒤덮었다.
검공이 피할 공간까지 박살 내 버리겠다는 듯한 난격의 비기들이 한군데서 얽히는 순간.
검공의 몸에서 붉은 번개 같은 오러가 번뜩이더니, 일순간 그의 몸이 붉은 벼락이 되어 공간을 가로질렀다.
콰콰콰콰콰쾅!
‘아직도 저만한 여력이…….’
초인의 동체 시력으로도 간신히 움직임을 좇을 정도였으니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제이미는 복부의 출혈을 막고 있던 포스까지 모조리 창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전신을 내던지듯 창에 실어 돌진했다.
평생을 연마해 온 기마 돌격. 애마는 성벽 아래 두고 왔지만, 생명을 불태운 순간의 두 다리는 말 이상의 돌진력을 발휘했다.
랜스 마스터(Lance Master) 제이미 길란의 모든 것이 붉은 유성이 되어, 어느새 멜빈의 뒤를 잡은 붉은 벼락, 검공의 등을 찔렀다.
‘성공……!’
콰아아아앙!
급속도로 푸석해지던 제이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 것도 잠시, 창끝의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생각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간 듯한 느낌.
그 위화감은 이내 밀레스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되어 제이미의 귀에 꽂혀 들었다.
“멜빈!!!!!”
멜빈?
동시에 흐릿하게 사라지는 검공의 몸.
이내 눈앞에 나타난 건 자신의 창에 복부가 꿰뚫린 멜빈의 창백한 얼굴이었다.
동료를 죽였다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생명력보다 정신적 충격이 더 커서 일순간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쯧. 그렇게 큰 소리를 내고도 모른 척해 주길 바랐나?”
붉은 벼락 같은 오러까지 구현해 낸, 무척 실감 나는 잔상을 만들어 놓은 적의 목소리와 함께 목에서 화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이 제국 동부 1군단장, 제이미 길란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잠시 후.
“적장을 쓰러트렸다!”
맥라인 서북부의 요새, 쉴드(Shield)에는 전투의 끝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크하하하! 어떠냐, 이놈!”
남부의 요새 아머(Armor)를 공략하던 4~8군단의 책임자이자 황실 친위대의 초인, 맷 디커슨이 환호성을 질렀다.
자신을 지겹게 물고 늘어지던 짝짝이 눈깔 놈의 배에 커다란 구멍을 뚫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독한 놈.”
요새에 올라서자마자 느껴진 힘의 제약만 아니었어도 이미 한참 전에 이루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적이 지독했던 만큼, 적어도 이 순간만은 온전히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실제로도 요새에 올라서기 전 본 막심한 피해가 일순간 뇌리에서 잊혀질 만큼 기뻤다.
‘남은 초인을 정리하고 전세를 뒤집는다. 아직은 가능해!’
초인 전력이 압도적이라는 것은 이렇듯 불리한 전세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의 포효가 너무 일렀던 듯했다.
푸우우욱.
“커, 커헉. 이, 이 미친…….”
당연히 죽어 넘어졌어야 할 놈이 어느 틈에 다가와 자신의 배에 칼을 꽂아 넣었다.
배에 머리만 한 구멍이 뚫렸는데 움직일 수 있다고?
아니 그 전에.
‘살았다고?’
놈의 그것에 비해서는 한참 작은 상처였지만, 내장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일순간 힘이 쫙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새끼!”
뻐어억.
간신히 휘두른 주먹을 피하지 못한 놈이 앞에서 나뒹구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또라이 같은 새끼…….”
오러유저가 자살 공격이라니.
저렇게 정신 나간 놈이 어떻게 초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을까.
‘아니, 어린놈이었지. 새파랗게.’
혼미해진 정신에 별 잡생각이 떠오른다 싶을 때.
눈에 보이지 말아야 할 모습이 보였다.
배에 구멍이 뚫린 시체가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마저도 조금씩 메워지는 기괴한 광경이 펼쳐졌다.
“지, 집중하면…… 이, 이런 것도, 되……더라고.”
희번덕거리는 짝짝이 눈깔이 이제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흐, 흐흐. 이게 대체…… 무슨 엿 같은…….”
엿 같은 마법보다 더욱 엿 같은 상황이었다. 어린 시절 설화 속에서 들었던 기괴한 괴수들의 이야기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이런 병신 같은!’
짝.
맷은 스스로 뺨을 후려갈기며 냉정을 되찾으려 애썼다.
쓰읍.
‘그래. 특이한 특성을 각성한 거야. 저런 것도 있을 수 있지. 오러유저면…….’
그렇다면 아무리 봐도 중급의 수준으로 자신의 공방을 따라온 신체 능력이 더 말이 안 되지만.
‘아, 그건 이 더러운 약화 마법 때문인가.’
어떻게든 설명할 구실은 있었다.
또한, 누가 더 손해를 봤는지를 따져 본다면 분명히 상대다. 이대로 다시 전투를 시작한다면 분명 자신이 이길 것이다.
저놈이 목이 잘려도 살아나지 않는 이상.
‘그래. 할 수 있어.’
하지만 이내 보이는 광경은 다시금 맷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저건 또 뭐……!?”
맥라인 기사 놈들과는 복장이 다른 커다란 체구의 중년 초인이 7군단장 그레임과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테로난의 철벽이라는 이명은 자신도 들어 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동료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광경만이 보였다.
물의 마법을 다루는 마도사와 오러유저 주제에 바람의 힘을 다루는 이상한 말라깽이의 조합이 8군단장 베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게다가 도무지 몇 개인지 모를 오러소드를 휘두르며 6군단장을 압박하고 있는 앳된 얼굴의 장한도 보였다.
황당했지만 장한의 붉은색 머리를 보니 납득이 갔다.
‘맥라인 왕실이 숨겨 놓은 비밀 병기쯤 되겠지.’
2대1의 상황, 맥라인의 비밀 병기.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까지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다른 쪽이었다.
친위대의 3명은 상급의 오러유저.
그런데 그중 자신을 제외한 2명과 중급의 경지인 5군단장 맥스웰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제 눈으로 보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
“뭐야!!!!! 대체 저게!!”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눈동자에 절망의 빛이 어린 맷 디커슨이 비명 같은 고함을 토해 냈다.
“대체 왜!!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엿 같은 마법이다.
환상이다.
그렇게 소리쳐 보지만 오러유저에게 하찮은 환상 마법 따위가 통할 리 없다는 것은 그 자신이 훨씬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
남부 정벌군의 지휘관 맷 디커슨이 이토록 발작을 하는 이유는 그 상대가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환상검(幻象劍) 크리스티안 밀러, 광전사(狂戰士) 앤소니 브라운, 풍영창(風影槍) 맥스웰 커터를 밀어붙이는 놈, 아니 것은.
고작 ‘개새끼’ 한 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