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
4화로건이 아버지에게 약속했던 3개월이 지났다.
선산을 내려와 내성의 저택으로 가는 길에서 로건을 마주한, 아니, 멀리서라도 그를 본 하인들과 가신들은 일찌감치 그를 삥 돌아 피해 갔다.
그것은 비단 로건의 악명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 거지?”
“왜 내성에 거지를…….”
“쉿, 조용히 해! 대공자님이야.”
“저 거지……분이?”
“쉿. 입 닫아 이년아!”
그들이 아무리 작게 말해 봤자 감각이 월등히 증폭된 로건에게는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로건의 신경은 오직 한 가지에만 쏠려 있었다.
‘이제 곧 그 시기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 조금 일찍 내려왔지만, 그래도 일주일 안으로 사건이 일어날 것이었다.
개인의 무력 다음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
‘돈.’
그 돈을 얻을 수 있는 사건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할 수 있어.’
우우웅.
의지에 따라 반응하는 굳건한 포스, 달라진 육체.
확연히 성장한 능력이 다음 목표 역시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 * *
“아으. 석 달 동안 시궁창에서 구르다 오셨습니까?! 선산에서 대체 뭔 짓을 하신 거예요?!”
“수련했다니까.”
“아으. 무슨 수련을 진창에 구르면서 하셨나. 아이고 내 코.”
벅벅.
촤아악.
릭은 구시렁거리면서도 연신 물을 끼얹고 때밀이 솔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더러운 것(?)에 가까이 가기 싫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피력하고 있었지만.
거의 구정물 수준으로 검게 나오는 땟국물을 보니 할 말도 없었다.
“아.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고?”
머쓱하여 던진 말.
“별일은 없죠. 공자님 없으니까 성이 아주 조용…… 아하하. 그러니까 제 말은…… 심심했다. 예, 심심했다는 말입니다. 예, 그럼요.”
“…….”
“새, 생각해 보니 별일이 있긴 있습니다! 근데 그게…….”
“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대공자가 작은 공자와의 대련을 피해 도망갔다.
비교당하는 것이 싫어 다 포기하고 은둔 중이다.
기사 가문의 후계자로 그런 겁쟁이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3개월간의 폐관 수련이 가문 내부에 이상한 소문으로 변질되어 퍼져 있었다.
피식.
“어처구니가 없군. 뭐, 대략 누구 짓인지 알 것 같은데.”
“소, 소문은 신경 안 쓰신다고 하셨잖아요? 그쵸?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 괜찮아. 어차피 아버지를 만나면 다 해결될 문제니까.”
상급기사인 아버지가 자신이 각성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것을 아버지가 인지하는 순간 어차피 이런 소문 따위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로건의 안일했던 생각은 단 하루 만에 부서져 버렸다.
페관 수련이 끝났음을 보고할 겸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
로건은 관저의 앞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마주했다.
“뭐라고 했지?”
“가법에 따라 직계 혈족들도 사전 통보 없이는 가주님을 만나실 수 없습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흘낏 뒤를 돌아보자, 릭이 자신 없는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몇백 년 전에 있었던 가법인 건 맞아요…….”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린가?
“내가 불과 3개월 전에 그렇게 만났는데?”
“그럼 그때 경비 담당자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공자님.”
로건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사십 대의 기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생에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회귀 전의 과거와 다른 선택을 했으니 미래도 바뀌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게 대접이 더 안 좋아지는 방향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 순간, 로건의 증폭된 감각이 관저 안에 몸을 숨긴 병사들의 대화를 고스란히 듣고 말았다.
“기사님 미친 거 아냐? 그래도 대공자인데.”
“몰라. 원래 막 나가는 분이잖아. 곧 은퇴한다고. 너도 돌아가는 쪽에 걸었으면서.”
“진짜 돌아갈까? 난동을 부릴까?”
“열네 살 어린애한테도 겁먹은 겁쟁이라잖아. 그럼 돌아가지 않을까?”
“뭐 어쨌건 책임은 기사님이 질 거고…….”
“우리는 쉬는 시간이라 몰랐던 거지.”
지금, 이 시점. 바닥 그 이하로 떨어진 자신의 평판을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는 대화였다.
“병사들이 없어서 지금 안에 전갈을 전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공자님.”
거기다 뻔뻔하게 미소 짓는 기사의 얼굴이 어우러지자, 로건의 심기가 제대로 뒤틀리고야 말았다.
‘하, 이 새끼 보게?’
본래 로건의 성격은 절대 얌전한 편이 아니었다.
다만 편안한 가문을 떠나 겪은 수십 년 동안의 용병과 독립군 생활은 망나니에게 본디 존재하지 않았던 참을성을 넘치도록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굳이 이런 얕은 도발에 어울려 놀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기사의 주변에서, 저택 안에서.
노골적으로, 혹은 은근슬쩍 이쪽을 보고 있는 많은 가솔들.
하지만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거나 딴 곳을 보는 척하며 아예 웃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 아니 전부였다.
정도를 벗어난 기사의 행동을 제지하는 이는커녕, 탓하는 눈빛조차 하나 없었다.
이 시기 자신이 무시당할 짓을 하고 있었고 평판 역시 바닥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체감하는 기분은 또 달랐다.
‘이 정도였나? 이건 좀 곤란한데…….’
아버지를 찾아올 때 생각했던 계획.
아버지에게 바뀐 모습을 보여 주며 인정받아 서서히 평판을 뒤집겠다는 계획이 이 순간 폐기됐다.
‘나중으로 미룰 필요 없어.’
머리로는 무시했지만, 아직은 어린 육체에 있던 가슴속 불길이 계산된 분노에 실려 두 눈으로 옮겨갔다.
“이름이 뭐지 기사?”
“도미넌입니다, 공자님.”
기사는 이제는 대놓고 로건을 무시할 작정인지 싱글벙글 웃기까지 하며 대답했다.
“그래, 도미넌. 너는 이미 사장된 가법을 빌미로 나를 모욕했다.”
“……예?”
“나, 로건 맥라인은 부당한 모욕을 갚기 위해 기사 도미넌에게 결투를 청한다.”
무심한 듯 이어진 로건의 말에 기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철썩.
로건이 품 안에서 꺼낸 수련용 장갑이 도미넌의 흉갑에 부딪친 뒤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채 황당한 눈으로 로건을 바라봤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릭이었다.
“고, 공자님! 안됩니다!”
기사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릭이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로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로건은 얼마 전에 작은 공자한테도 진 애송이(?)였다.
그런데 기사한테 결투라니, 절대 무모한 짓을 하게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릭. 어차피 퇴물이 다 된 놈이야.”
로건은 오히려 기사를 더 도발했다.
“공자님?!”
릭이 하얗다 못해 퍼렇게 질린 안색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도미넌의 얼굴은 이미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로건이 가문에서 공식적으로 가진 직함은 없었다.
하지만 기사 가문의 특성상, 성년이 되기 전에는 기사 수련생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사 수련생이 명목상 ‘상급자’인 기사에게 대련을 신청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권장되는 것이 전통.
그러나 대련이 아닌 결투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거부해도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왜? 거부할 텐가? 도미넌 경? 소문난 겁쟁이한테 꼬리를 말 거면 그렇게 하던지.”
하지만 도미넌은 거부할 수 없었다.
대공자가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순간, 그의 뇌리에는 이미 자신이 먼저 로건을 조롱한 사실은 사라지고 없었다.
‘퇴물이라니!’
아무리 상대방이 대공자라도.
이런 모욕을 당하고서 참으면 사람이 아니다.
맥라인의 기사로서 직계의 핏줄과 결투를 할 경우, 이긴다고 할지라도 그 후유증은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도미넌은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분노가 이성을 잠식한 것이다.
“결투,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드득, 도미넌의 이가 부서질 듯 갈렸다.
* * * 결국 저택의 입구에서 시작된 시비는 기사 연무장으로 옮겨졌다.
수련하던 기사들은 졸지에 대련의 참관인이자 증인이 되어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중에 로건이 이길 거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가진 흥미의 척도는 대공자가 기사를 상대로 얼마나 버티는지, 혹은 얼마나 형편없게 나가떨어지는지였다.
얼마 전 치러진 공개 대련에서 로니안에게 개망신을 당한 로건을 보지 못한 기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형편없는 건지, 로니안이 천재인 건지 궁금하겠지.’
이 상황에 자신이 기사를 이긴다면, 과연 어떤 소문이 퍼질까.
로건은 대련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뒤의 일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희생양으로 삼을 기사는 훌륭하게 로건의 전의를 북돋고 있었다.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대공자.”
분노로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도미넌의 말투는 정중했다.
시비를 걸어 댔던 주제에 많은 수련기사들 앞에서 가문의 직계 혈족을 향해 욕설을 뱉어 낼 배짱은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 로건 맥라인과 기사 도미넌의 공식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무기는 안전을 위해 목검으로 제한하겠습니다! 두 사람 다 최선을 다하시길!”
연무장에서 수련 중에 얼떨결에 심판을 맡게 된 기사.
그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진검을 뺏고, 무기를 제한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포스를 다루는 기사라면 목검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기에 여전히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나 일을 되돌리기에는 로건의 고집이 너무 강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내 책임은 아니야. 그래도 도미넌 경, 제발 살살하길.’
그가 불안한 마음에 얼굴을 씰룩이는데, 그의 기대와는 달리 도미넌은 로건을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타앗!”
돌진하는 도미넌의 몸에서는 희미한 붉은 아지랑이가 줄기줄기 뿜어졌다.
포스가 몸 밖으로 새고 있다는 증거. 미숙한 컨트롤의 증명이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꽤나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버릇을 고쳐 주마.’
파아앙.
거친 소음과 함께 날아드는 목검은 어느새 상중하의 세 개의 검영으로 분리되어 로건의 전신을 노렸다.
‘단숨에 끝낸다!’
도미넌은 직전의 모욕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먹어 가는 나이, 치고 올라오는 후배.
마흔 줄에 접어들어 기사단 최하위, 53위의 서열을 받아들였을 때 이미 은퇴는 결심했다.
그저 적당히 무난한 일이나 처리하며 기사로서 마지막 생활을 즐기던 와중이었다.
그러나 대공자의 말은 기사의 마지막 자존심에 불을 질렀다.
‘난 퇴물이 아냐!’
비록 도미넌은 기사 중에는 부족한 재능이었지만, 그간의 경험이 가져다준 자신만의 필살기 정도는 있었다.
어차피 은퇴를 결심한 몸.
그것으로 단숨에 대공자를 제압하여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에게 주제를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그가 자신하는 비기, 삼중살(三重殺)을 보면서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대공자의 모습을 보며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따아악!
“꿹!”
일순간 울려 퍼지는 타격음과 극심한 손목의 통증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기괴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텅.
데구르르.
짧은 비명과 함께 기사의 손에서 팽개쳐진 목검이 땅바닥에 구르는 순간.
연무장은 잠시 정적에 잠겼다.
“손목도 안 움직이는 페인트가 무슨 의미가 있나. 설마 기사라는 놈이 고작 이게 최선이야?”
오연한 자세로 말하는 로건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연무장의 침묵을 깨트렸다.
그러자 마치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사방에서 경악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마, 말도 안 돼!”
“그 대공자가?”
“난 아예 보지도 못했는데?”
당황한 시종들과 가신들의 목소리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포스 유저라고?”
“대공자가?”
“허…….”
무엇보다 놀란 이들은 참관하고 있던 기사들이었다.
지난 몇 년간 그들에게 로건 맥라인이란, 그저 피하고 싶은 더러운 똥에 불과했다.
실력도 없으면서 사고만 치고 패악질을 부려 대는 직계의 핏줄.
근처에도 가기 싫어했던 그 개망나니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보통은 침착해야 할 기사들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시종들보다 더 웅성거릴 때.
“심판, 한 번쯤은 도미넌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은데. 어때?”
로건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사람들의 이목을 한데 주목시켰다.
“……그, 그러십시오. 도미넌, 괜찮지?”
넋이 나가 있던 심판이 채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도미넌을 바라보자, 도미넌은 처음보다 더욱 붉게 달아오른 일그러진 얼굴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