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00)
400화세상이 들끓었다.
자신만만하게 진군한 제국군이 예상치 못한 대패를 당한 것이다.
3면에서 동시에 시작된 전쟁.
그 시작 전만 해도 세상의 초점은 오직 한 가지에 맞춰져 있었다.
– 과연 맥라인이 얼마나 버틸 것인가.
양적으로도 2배 이상, 질적으로는 비교 불가의 정벌군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예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전혀 달랐다. 세 경로 모두에서 제국군이 완패한 것이다.
제국군이 전체 전력의 2할을 넘게 잃고 패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단 하루였다. 게다가 그 패배의 결과 중에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검혼이 맥라인의 태양을 협공으로 상대하고도 패사(敗死)했다.
불과 몇 달 전 노비엔스에서 신검에게 패퇴하여 명성에 흠집이 난 검혼이었지만, 다시 싸웠을 때도 검혼이 또 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적어도 제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예 죽어 버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더 이상 돌이킬 여지가 없는 추락인 것이다.
대륙제일검이 졌다.
맥라인의 태양이 대륙 최강자다.
참혹한 패배의 결과와 더불어 퍼져 나간 소문은 제국의 위상을 더욱 떨어트렸다.
후퇴한 제국군은 여전히 적들의 요새와 성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지만, 이젠 그 누구도 더 이상 제국의 온전한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 * *
“패배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대전을 잠식하고 있던 무거운 침묵이 노쇠한 목소리에 깨어졌다.
“우선 첫 번째로는 맥라인의 초인 전력이 저희의 예상을 아니, 세간의 상식을 월등히 벗어났다는 점입니다.”
얼핏 변명처럼 들리는 발언에도 대전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이번에 드러난 맥라인의 초인 전력은 충격적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숨겨진 전력이 있을 거라는 보고에, 저희는 검혼과 삭풍을 비롯하여 기존의 예측보다 배수에 가까운 19명의 초인을 파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패배했습니다.”
재상, 록터스 구스펠트는 슬며시 황제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상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에 그는 차분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로건 맥라인이 벌써 검혼을 쓰러트릴 강자가 되었다는 것도 상식 밖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남부 요새에서 맥스웰 군단장을 비롯한 초인 셋을 쓰러트린 괴수입니다.”
북쪽 요새에서 초인 둘을 죽인 검공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의 무력은 이 둘에 비하면 놀랍지도 않은 수준이었으니까.
“참모부에서는 그것의 정체가 이미 천 년도 전에 사라진 신수의 일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말에야 상석에서 처음으로 목소리가 들렸다.
“……신수?”
담담한, 하지만 순식간에 대전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위압적인 음성에 록터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예. 그것 외에는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세히.,”
“예. 고대의 자료를 조사한 결과, 초인을 셋이나 상대할 수 있는 마수나 몬스터라면 그것을 유지하는 데만 해도 하루 수십의 인명이 제물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사슬이 목을 옥죄는 분위기.
실시간으로 입술이 말라 가고 주름이 늘어나는 기분에, 록터스는 마른 입술을 적시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설령 맥라인에 전설에나 나오는 마수사나 몬스터 테이머가 있어서 그 괴물을 사육했다 하더라도, 소문이 안 났을 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주 낮은 확률이라도 남은 가능성은 그것뿐입니다.”
“신수……. 하, 신수라…….”
톡. 톡.
옥좌의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서, 록터스와 대신들은 얌전히 고개를 숙인 채 황제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4년여 전 제국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가능성 넘치는 애송이에 불과했던 놈이 검혼을 죽이고, 고대에도 희귀했던 신수가 놈의 명을 따라 제국의 장군들을 죽였다. 허……. 놈이 무슨 신이 내린 영웅이라도 된단 말인가?”
헛웃음이 섞인 목소리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반박하기에는 이미 드러난 결과가 너무 엄청나고, 수긍하면 황제가 신이 내린 영웅의 적이라고 하는 꼴이 된다.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은 대전에 다시 황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번째 이유는?”
“예!? 아……, 예. 두 번째는 바로 놈들이 리베라티오라 부르는 소모성 아티팩트입니다. 제작 단가가 얼마나 저렴한 것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퍼부어지는 폭탄이 전선의 판도를 뒤집었습니다.”
“……리베라티오(Liberatio)? 해방이라……. 뭐, 적의 영혼이라도 해방시키겠다는 뜻인가. 고약하군.”
설마 지금 웃으라고 하는 말일까.
“……흠, 흠. 당초 관련된 보고가 있었습니다만, 너무 허황되다는 판단하에 상신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관계자에 대한 처벌을…….”
순간 당황한 록터스가 헛기침과 함께 말을 잇는데, 담담한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사형.”
“……예?”
“그 보고를 누락한 놈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모두 처형하라. 작위에 관계 없이.”
그 말에 록터스의 얼굴이 흐려졌다. 담담한 어조와는 달리 황제 역시 극도로 분노하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진 것이다.
‘아니, 당연한 일이지. 폐하께서 가장 화가 나시겠지. 하지만…….’
그 화를 그리 푸시면 가뜩이나 바닥인 군의 사기가 더욱 떨어질 수 있습니다.
록터스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마음의 소리를 억지로 삼켰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따위 충언으로 목숨을 날리는 것은 제국을 위해서도, 황제를 위해서도 의미가 없는 개죽음일 테니까.
“……예. 그리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세 번째 원인은 각 성과 요새에 펼쳐져 있는 대마법진입니다. 제국의 기사나 병사라면, 수준을 가리지 않고 3할에 가까운 전투력 감소를 일으키는 대마법진이 요새마다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삭풍은 뭐라던가?”
“맥라인에 세기의 천재 마도사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갈렌 경이 성년도 되지 않은 마도사를 직접 확인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대마법진도 그 마도사의 작품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 미성년 마도사라, 허…….”
보고를 끝낸 록터스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심각한 심중의 갈등을 겪었다. 사실 보고해야 할 말이 하나 더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폐하께 이 말씀을 드리는 게 옳을까?’
괜히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꼴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록터스는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국은 황제의 것. 그 방향성에 관한 판단을 자신이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고개를 든 것이다.
“그리고, 불확실한 4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불확실한?”
“예. 증거가 없기에 추론뿐이고, 그렇기에 앞선 3가지 이유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말하라.”
“……그 전에 다른 이들을 물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황제의 검은 눈에 이채가 서렸다. 지금 이 살벌한 분위기에서 독대를 청한다는 것은 재상이 목을 걸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황제가 바로 손을 내저었다.
“이후 지시는 재상을 통해서 전달하겠다. 모두 나가서 대기하도록.”
“예, 폐하!”
한 사람이 말하듯 동시에 복창한 대신들은 이내 발소리를 조심하며 썰물처럼 대전을 빠져나갔다.
그그그긍.
대전의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황제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록터스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초전의 참혹한 결과는 앞서 말한 3가지 이유가 9할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밖에, 중앙에 모인 민간인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한 역할도 있…….”
“요점만.”
황제의, 아니 자신의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말을 길게 늘이던 록터스가 순간 숨을 멈췄다.
그러나 이내,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말씀을 드리자면, 이 추론은 결과가 나온 다음에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도 있습니다. 그 사실을 유념해 두시고…….”
“판단은 내가 한다.”
“……예.”
본론을 말하기 전부터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록터스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3개의 진군로에 배치된 적군의 초인 전력이, 우리 측 초인들을 저격하기에 너무도 알맞게 짜여 있었습니다. 군단 배치는 몰라도 초인들, 특히 친위대 소속 초인들에 대한 배치는 제국에서도 극비에 속해 있었던바…….”
“……우리 고위층에 첩자가 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추측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추론이 추측이라는 단어로 바뀌며 록터스의 목소리도 더욱 작아졌지만, 이미 황제의 눈빛은 살벌하게 바뀐 뒤였다.
“첩자, 첩자라…….”
톡. 톡. 톡.
황제의 손가락이 옥좌의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한참을 울려 퍼졌다.
‘이 시기에 제국 수뇌부를 뒤엎자고 하시면 어찌해야 하나.’
그 앞에서 록터스는 얼어붙은 듯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잠시 후, 무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너무 성국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어. 결국에는 다 내 잘못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에 순간 멍해졌던 록터스는 이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엎드렸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어찌 그것이 폐하의 잘못이겠습니까. 못난 신하들의 잘못입니다.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쿵. 쿵.
연신 머리를 찧는 록터스.
그의 이마가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어 가는데, 황제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쥐새끼로 의심되는 이가 누군가?”
“송구하오나, 동왕부입니다. 루이사 공주가 아직 맥라인의 왕성에 있다고 합니다. 약혼을 빌미로 암암리에 맥라인의 요새 건설을 도와준 적도 있습니다.”
“제라드? 그놈 딸이 아직 맥라인에 있다……. 확실히 이상하군. 하지만 정말 놈이라면, 일 처리를 그따위로 할 리가 없어. 그렇게 허술한 놈이 아니야.”
“그저 확률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일전에 전과도 있으니까요.”
일견 타당해 보였지만 황제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 녀석은 황실을 배반할 만한 배짱이 없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제 아내까지 직접 처형한 놈이다.”
“말씀드렸듯, 그저 확률을…….”
“아니, 이만 되었다. 그래, 조사를 해 보면 될 일이지.”
황실의 특수 감찰부는 요인 암살에만 특화된 것이 아니니까.
황제는 그 한마디로 첩자에 대한 논란을 일축하고는 갑자기 엉뚱한 말을 꺼냈다.
“혹시 재상은 신전에서 신수를 어찌 취급하는지 아는가?”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제국의 재상 자리는 도박으로 딴 것이 아닌바. 그는 이내 관련된 지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고대의 교단에서는 신수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9대신의 신성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사냥을 했다는 기록까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전의 레솔루티움(Resolutium) 이후 재성립된 교단은 신수에 대해선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때는 이미 신수가 존재하지 않을 때니까.”
“그렇습니다.”
갑자기 신전은 왜?
아, 설마……?
“맥라인에 나타난 신수에 관한 일을 성국에 전달하라. 9대신의 신성을 침범하는 신수를 부리는 자가 있다고. 제국의 이름으로 확인했다고.”
“아!”
“이전에도 맥라인에는 ‘버림받은 이들’에 관한 이슈가 있었다. 그것과 묶어서 맥라인을 이단으로 몰면, 성국도 절대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제국이 신전을 침략에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성국도 알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일 거라는 데에 록터스는 자신의 목이라도 걸 수 있었다.
광신도는 이성보다 믿음이 앞서기에 광신도라 불리는 것이니까.
‘고대의 기록 하나로 이런 수를…….’
록터스가 속으로 감탄하는데, 황제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후, 내가 직접 맥라인 정벌에 나서겠다.”
“폐하!?”
“황실 중앙군과 친위대를 전부 동원하라. 잠시 어긋난 대계의 시작을 내가 직접 바로잡겠다.”
록터스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