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01)
401화- 맥라인이 제국을 상대로 승리했다.
그 믿기지 않는 소식에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아무래도 제국이었다. 그리고 가장 신나 하는 것은 당연히 맥라인의 백성들이었다.
하지만 한쪽에는, 충격을 받은 동시에 맥라인만큼이나 신나 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딘지 모를 거대한 동굴.
넓이가 짐작되지 않는 거대한 동공엔 횃불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바닥에는 희미한 빛을 내는 고대의 문자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 빛들이 동공의 가운데에 서 있는 왜소한 노인을 밑에서부터 음산하게 비추고 있었다.
“하? 그 정도면 그냥 승리도 아니고 압승이 아니더냐. 맥라인에 그런 저력이 있었다고?”
도무지 몇 살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노인이 싯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노인에게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즐거운 표정. 통신구 너머의 검은 머리 미녀는 그 모습에 눈을 빛내면서도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예. 초인 전력의 상당수를 숨겨 둔 듯합니다. 무엇보다 국왕의 무위와 국왕에게 복종한다는 그 괴수, 그리고 왕의 스승이라는 검공의 힘이 가장 컸습니다. 셋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분명 한군데는 뚫렸거나 큰 피해를 보았을 테니까요.]“그래, 그래. 운명을 바꾸는 자라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런 것 치고는 별 기대가 없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예상을 벗어나야 운명을 바꾸는 자라 할 수 있지. 그런 면에서 이런 변수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나에게 엿을 먹인 놈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무엇을 떠올렸는지, 웃고 있던 노인의 표정이 일순간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그 기억을 떨치려는 듯, 노인은 팔을 벌려 과장된 동작을 취하고는 말을 이었다.
“황제가 이대로 포기할 리는 없으니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그만큼 ‘힘’은 쉽게 모일 것이다. 즉, 우리가 바라마지 않던 ‘그때’가 한층 가까워질 거란 뜻이지.”
히죽 웃으며 쿵 하고 내딛는 한 발.
그에 호응하듯 거대한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조금 더 밝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통신구 속 미녀, 루이사의 얼굴은 반대로 조금 어두워졌다.
[그런데 스승님.]“음?”
[정보를 전해 드리는 것은 굳이 제가 아니어도 되지 않습니까? 제가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요? 로건 왕을 찾을 ‘사도’라는 것들이 정말 있다고는 해도, 그는 저를 전장에 데려가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할 의미를 찾을 수가…….]스승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틈을 타 내내 묻어 두었던 불만을 어필하려는 시도.
하지만 그 시도는 이어진 스승의 한 마디에 곧바로 무산되었다.
“성검의 행방은 찾았느냐?”
[……꾸준히 탐색하고 있지만, 반응이 없습니다. 국왕이 가지고 있거나 왕궁이 아닌 다른 곳에 숨겨 둔 것 같습니다.]“흠, 그렇군. 그래도 좀 더 찾아보거라.”
[스승님. 제가 여기 머물러야만 하는 이유가 정말 있기는 한 겁니까?]“그럼, 있지.”
[그 사도라는 것이…….]“성검은 대업에 있어 필수 요소다. 운명을 바꾸는 자가 전장에 있다면 반드시 사용하게 될 테니, 굳이 네가 갈 필요는 없다. 그리고 만약 어딘가에 숨겨 놓았다면, 분명 그 왕궁일 것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혀 상상외의 장소일 수도…….]“그 물건의 가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결코 멀리 두지 못한다.”
[예?]“아무튼 그리 알고 더 찾아보거라. 너의 소명이 막중하다.”
더 이상 반문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에, 루이사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전쟁의 경위는 지속적으로 보고하도록. 믿겠다. 그날이 올 때까지.”
[예. 그날이 올 때까지.]재촉을 포기한 루이사가 어두운 얼굴로 통신을 끝낸 순간.
노인은 직전과는 달리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다른 2개의 성물을 확보했다. 설령 성검을 제때 찾지 못하더라도…….”
성검을 찾으면 좋지만,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미 그 이상의 조건을 채울 상황이 만들어졌으니까.
“부족한 성물은 그 이상의 피로 채우면 된다. 보다 큰 혼란, 보다 큰 전쟁이 필요할 뿐이지. 그렇기에 나는 맥라인의 선전이 너무나 기껍구나.”
제자, 루이사가 맥라인 왕궁에 있어야 할 이유는 성검 때문이 아니다. 혹시나 모를 사도에 대한 보험은 진실이지만, 그 확률은 극히 낮다.
다만.
“네가 거기 있어야 황제가 동익왕을 의심하지 않겠느냐. 고귀한 핏줄일수록 업(業)이 높은 것이니, 너희의 피가 대업을 더욱 앞당길 것이다. 저 아이와 같이.”
노인의 시선이 마법진의 구석, 투명한 수정관에 누워 있는 검은 머리 검은 눈의 청년을 향했다.
“그러니 너는 너의 역할을 다하거라, 제자야.”
그것이 비록 네게는 불행이 될지라도.
노인은 그리 생각하며 끌끌 웃었다.
죄책감은 없었다.
그저 가장 중요한 진실을 굳이 알려 줄 필요가 없으니, 작은 진실로 더 큰 진실을 가렸을 뿐이다. 말이 쌓는 업(業)이 경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마도사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화술에 불과했다.
우우웅.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통신구를 켰다.
이내 검은 로브를 입은 노년의 사내가 통신구에 얼굴을 비추었다.
[찾으셨습니까, 탑주님.]“그래, 결과는?”
그 밑도 끝도 없는 물음에 로브의 사내가 잠시 움찔하더니 입을 열었다.
[서방 왕국 연합에서의 작업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맥라인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부터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있습니다.]“뭐라?”
[맥라인의 선전이라기보다 제국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연합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생겼습니다.]“흐, 역시 인간들이란…….”
[세뇌한 자들로 설득하는 것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싶습니다.]“곧 황제가 움직일 것이다.”
[예?]“제국의 진짜 힘이 움직일 거라는 말이다.”
[지금 맥라인의 기세를 보면 그래도 꽤 버티지 않겠습니까? 그 안에는 충분히 설득할 수 있습니다.]“아니, 황제를 무시하지 말거라. 우리가 황실과 협력해서 만든 비전은 귀신뿐만이 아니니.”
[그 말씀은…….]“이번에 맥라인이 승리한 건 정보의 편중 때문이다. 이제 모든 수가 밝혀진 상황에서 황제가 직접 움직인다면, 맥라인은 결코 오래 버티지 못해. 그 후엔 서방 국가들이 연합해 봤자 소용없다. 각개 격파가 될 뿐이지. 그래서는 흐를 피가 너무 적다.”
이미 몇만 단위의 사람이 죽었고, 이후로도 족히 몇십 배가 죽어 나갈 전쟁을 이야기하는데 피가 너무 적다고 말하는 노인.
하지만 검은 로브의 사내는 그 살벌한 말에도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황제가 움직였을 때, 연합이 제국을 공격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그래. 그것이 가장 이상적이지.”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렵습니다. 맥라인이 멸망하기 직전에라도 연합이 성립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상황이 이렇게 흘렀으니 설득은 필요 없다.”
[예?]“제국의 이름으로 각국의 왕들을 습격해라. 성공해도 좋고, 실패해도 상관없다. 귀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좀 더 정확하겠지.”
[아……!]“대륙의 동서가 동시에 피바다로 변해, 억울한 영혼이 천지에 가득하게 만들어라. 그것이 곧 우리의 대업을 더욱 앞당길 것이니.”
[예. 기꺼이.]“나는 대륙의 중심에서 혼란을 만들겠다. 그러니 서둘러라. 대업의 때가 머지않았다. 그날이 올 때까지.”
[예. 그날이 올 때까지.]사내의 그 대답을 끝으로 통신구는 또다시 빛을 잃었다.
* * *
“사제님들이 직접 축성하신 성수입니다!”
“성지 순례 지도입니다. 지도 사세요! 순례를 시작하시는 분들의 필수품!”
“기념품 사 가세요, 기념품!”
성도, 노비엔스는 얼마 전 큰 전쟁을 치른 도시답지 않게 시끌벅적했다.
“정말 활기찬 분위기군요. 얼마 전에 전쟁이 있었던 것 같지 않게.”
특이한 회색 눈동자를 가진 서른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감탄을 표했다.
그러자 그 옆에서 나란히 걷던 갈색 머리, 푸른 눈의 중년 기사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희생을 잊고자 신전에서 물자를 풀어 밝은 분위기를 부추긴 까닭도 있지요. 그런데 이 분위기에 크게 일조하신 필립 상단주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참 이상하게 보입니다.”
“하하. 그야 저는 돈을 좇는 상인이니까요. 성국이 위난을 극복한 것이 신들의 가호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 덕에 순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니, 그저 돈 벌 기회다 싶어서 찾아온 것뿐입니다.”
“맥라인 왕의 지시 때문이 아니고요?”
“아하하하, 당연히 그것도 있지요. 불문율을 깨고 전쟁터에 사제분들을 보내 주셨는데, 답례는 해야 하니까요.”
“흠, 솔직하시군요. 그런데 상단주님은 이상하게 걱정이 없어 보이십니다?”
“예? 아……. 걱정이 안 될 리야 있겠습니까. 그냥 믿는 것이죠.”
“정말 왕국이 제국을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렇다기보다는, 폐하를 믿는 것이지요.”
“로건 맥라인 폐하를 말입니까.”
“예.”
하먼은 너무나도 쉽게 대답하는 사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어린, 크흠, 젊은 국왕께서는 정말 대단한 분이신가 보군요.”
“그럼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분이시니까요.”
이를테면 빚더미에 올라앉은 망한 상인에게 수십만 골드를 선뜻 쾌척한다거나.
상품성 없는 물건들을 사들여서 세상에 없던 획기적인 물건을 만들어 내고.
산에 구멍을 뚫어서 강물의 길을 바꾸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금광이나 마정석 광산을 척척 찾아내는.
‘그리고 일개 남작의 아들이 왕이 된다든가 하는 짓을 말이죠.’
필립은 로건이 최근 7~8년간 해 온 일들을 하나씩 생각해 보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나같이 믿기지 않는 기적들의 연속.
그랬기에 객관적으로 불리해 보이는 전쟁도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폐하께서 지켜 내신다 했습니다. 그러니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이유를 따지지 않는 믿음이자 굳건한 확신, 신념에 가까웠다.
그리고 순수한 믿음을 무상의 가치로 섬기는 성기사는 그 눈빛을 보며 감탄하고 말았다.
“과연, 그렇군요.”
지난번에 보았던 초인들도 그렇고, 이 사내도 그렇고. 무력이나 금력으로 범인에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역량을 가진 인재들이 고작 믿음이라는 말 아래 목숨을 걸고 재산을 바친다.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먼 동쪽 왕국의 왕이 새삼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럼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여기 계실 생각이십니까?”
“성도 밖으로 나갔다가는 언제 죽을지 모르잖습니까. 제가 맥라인 출신이라는 거, 이젠 제국에서도 비밀이 아닌데요.”
“하하. 그러시지요. 이곳에서 오래오래 머물다 가십시오. 그리고 정말 왕국이 승리한다면, 저도 한 번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그때 다리를 놔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신검께서요? 그야 당연하죠.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수십 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사내는 정말 친구처럼 웃었다.
“아, 그런데 죄송하지만 성녀님, 아니 교황 성하는 언제쯤 뵐 수 있을까요?”
“허허. 또 재촉하시는군요. 그 빅토르 경의 부탁 때문인가요?”
“예, 뭐……. 좀처럼 그런 부탁을 하지 않는 녀석이니 이 기회에 빚을 지워 놔야죠.”
“하하, 그런 우정이 부럽군요.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듯 지난번에 입으신 타격을 기도로 치료 중이십니다. 빅토르 경은 성하께서도 은애하시는 분이니, 성력을 회복하시고 나면 어련히 찾으실 겁니다.”
“여전히 기약은 없으시고요.”
“예. 그거야…….”
하먼이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순간.
“단장님! 성하께서 출관하셨습니다!”
멀리서 두 사람 모두를 놀라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