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04)
404화- 황제의 맥라인 친정 선포.
– 용의 이빨을 제외한 뿔과 날개, 발톱까지 모든 전력을 동원하라.
– 사방왕 중 서아왕(西牙王)을 제외한 북각왕(北角王), 동익왕(東翼王), 남조왕(南爪王)부 전력 동원령.
제국의 서부를 맡은 서아왕부를 제외한 사방왕 중 3부와 황실 중앙군의 전격 투입이 선언되었다.
세인들의 눈엔 성국과 제국의 갈등에서 시작된 불똥이 엉뚱하게 동쪽에서 점화된 것처럼 보이는 사태였다.
– 제국이 정복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 아니다. 뜻밖의 패배에 분노한 제국의 당연한 복수일 뿐이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한 가지 예측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바로 이 전쟁이 결코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
* * * 제국 동부 끝에 자리한 대도시 루스펠하임에서 서북쪽으로 삼 일 거리. 동익왕부가 자리한 대도시 펜나(Penna)엔 며칠 전부터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맴돌았다. 제국 동부 지역의 통치를 위임받았던 동왕부의 전력이 출정 준비를 위해 펜나에 모인 것이다.
전장이 동쪽의 맥라인인 이상, 사방왕부 중 동왕부가 가장 먼저 전쟁에 투입될 것은 확정적이었다.
그에 도시 전체가 시끄러워지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그 내성, 왕부 깊숙한 곳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더는 안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하.]“……그러한가.”
[예. 비선 하나하나 잘려 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황실에서 눈치챈 것 같습니다.]“자네는 어찌할 셈인가.”
좀처럼 보기 힘든 동익왕의 굳은 얼굴에 통신구 속 남자가 담담히 웃었다.
[아마 저 역시 곧 발각되겠지요. 이게 마지막 통신이 될 것 같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전하.]“……내가 면목이 없네.”
[아닙니다. 전하께 받은 은혜를 이렇게라도 갚을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저도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늦지 않게 피하십시오.]“고맙네. 정말.”
[부디 보중하십시오, 전하.]자네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선적일까 싶어 망설이는 사이, 통신구에서 빛이 사라졌다.
“음…….”
동익왕, 제라드 폰 아세리안은 눈을 질끈 감고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잘생긴 금발의 기사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레인이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바로 피하셔야 합니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전하!”
“……이미 나를 특정하고 조여 오는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그럼…….”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봐야지. 우선 왕부를 벗어날 핑계부터…….”
하지만 황실의 손길은 그의 예상보다 더욱 빨랐다.
“동익왕 전하, 황실에서 나왔습니다. 모시겠습니다.”
통신실에서 나오는 즉시 앞을 막아서는 기사들.
금룡의 문장을 갑옷 전신에 빼곡하게 새긴 6명의 기사는 눌러쓴 투구의 바이저조차 열지 않은 채 길을 막았다.
그 특수한 복장과 거만한 태도에 제라드의 얼굴이 흙빛으로 굳어졌다.
‘황실 감찰부.’
특수감찰부라 불리는 귀신들이 음지의 존재라면, 이들은 양지에서 황제의 권위를 대변하는 존재다.
귀신이 한밤중에 남몰래 찾아와 목숨을 가져간다면, 이들은 대낮에 당당하게 찾아와 모든 것을 박살 내는 쪽. 어떤 의미에선 소문만 무성한 귀신들보다 더욱 무서운 이들이었다.
제라드의 안색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황실에서? 무슨 일이지?”
동익왕, 황족 다음으로 고귀한 신분이라 할 수 있는 사방왕 중 한 사람의 날 선 추궁에도 마주 선 이들은 미동도 없었다.
“따라와 보시면 압니다.”
6명의 기사 중 조장인 듯한 이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평이한 어조를 이어갈 뿐.
제국의 지배자 중 한 사람인 사방왕에게 너무나도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 모습에서 이미 결과가 정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군.’
제라드는 반발하는 대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이.”
“예.”
“베어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휘둘러지는 칼.
동시에 뿜어져 나온 상서로운 붉은빛이 일순간 복도를 물들였다.
번쩍.
스각.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칼자루를 잡고 있던 황실 기사들은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그대로 절반으로 갈라졌다.
투두두둑.
모두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일제히 무너진 가운데, 조장이었던 기사는 하반신이 잘려 나간 상태에서도 얼마간 숨을 붙이고 있었다.
“커, 커흐윽. 쿨럭.”
물론 그마저도 오래가진 못했다.
“오, 오러……?!”
콰직.
유언 한 마디 제대로 남기지 못한 조장의 머리가 밟혀 으스러지는 순간, 제이는 뒤로 돌아서서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명을 수행했습니다.”
그 충실한 호위기사의 모습을 보며, 제라드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너무 빠르군……. 생각보다 너무 빨라.”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왕부를 빠져나가시지요.”
제이가 그렇게 말하며 다시 검을 뽑아 들었지만, 제라드는 선뜻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호위기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불쑥 튀어나온 말.
“……초인이라면 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음을 잘 알 텐데, 정말 후회하지 않겠느냐?”
그 질문에 기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온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왕비님께서 구해 주신 거지 꼬마는 그 은혜를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한도요.”
교차하는 무거운 눈빛.
제라드는 한참 후에야 제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지금은…… 맥라인으로 가야겠구나.”
“마탑으로는…….”
“탑주에게는 연락만 하는 것으로 족해. 적어도 지금은.”
“모시겠습니다.”
끄덕.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동익왕과 그 호위기사가 동익왕부에서 사라졌고, 제국은 다시 한번 뒤집혔다.
* * *
– 동익왕이 맥라인과 결탁하여 제국을 배신했다.
듣는 이들 대다수가 귀를 의심할 만한 소식이 세상을 강타했다.
“사방왕이 왜?”
“제국을 두고 뭐 하러?”
“헛소문 아냐?”
좀처럼 믿기 힘든 소식에 온 대륙이 들썩였지만, 제국 황실은 동익왕 제라드 폰 아세리안과 그 혈족을 반역자로 수배하고, 왕부에 그와 연관된 모든 이를 즉결 처형하며 그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황도 아세리안을 건축하여 그 이름까지 성으로 하사받았던 제국 유수의 왕족 가문이 공식적으로 축출된 것이다.
그것은 제국군의 사기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황제의 발표는 떨어지는 제국군의 사기를 다시 하늘 끝까지 치솟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맥라인 정벌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이에게 동익왕의 자리를 하사하겠다. 이는 제국 황제의 약속이다.
제국군, 특히나 군단장들을 비롯한 장수들이 눈에 불을 켜게 만드는 선언.
그 말 하나로 동익왕의 배신에 대한 뉴스는 완벽하게 파묻혔다. 심지어 맥라인의 국경으로 향하는 제국군의 진군 속도가 훨씬 빨라진 것 같다는 목격담이 속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무렵, 여전히 카일 성에서 황실 중앙군과 대치 중이던 로건은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현재 다시 진군해 오고 있는 제국군의 규모는 이미 그들에게도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눈앞에 진을 친, 패퇴한 제국군을 공격하러 나설 수도 없다는 것이 지금 맥라인이 처한 딜레마였다.
‘원군이 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검혼과 그렉 마빈이라는 초인 둘을 죽이고 1할이 넘는 병력을 소모시켰지만, 그럼에도 이 성을 벗어나서는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
초전의 승리는 대마법진의 효과와 성벽 위에서 투사하는 석궁 및 리베라티오의 힘이 컸으니까.
문제라면, 그것을 적도 알고 아군도 알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달갑지 않은 손님까지 찾아온 것이다.
“하아…….”
로건은 손안에 들린 고급스러운 재질의 서신을 보며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귀족들의 망명이야 시대에 따라 종종 있어 온 일.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낫기에 정쟁에 패한 왕족이나 권력에서 밀려난 권신들이 목숨이라도 건지기 위해 종종 택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 하는 법이다.
“제국의 사방왕이 망명이라니?”
“……황제의 덫이 그분을 조여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맥라인을 도왔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나더러 책임을 지라는 소린가?”
로건의 목소리엔 바짝 날이 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신이라고 찾아온 이가 맥라인 왕궁에 있어야 할 루이사 공주였다.
‘잠정적인 적, 그것도 마도사가 최전방의 아군 진형에…….’
당장은 제국과 적대 관계라고는 하나 신뢰가 없는 사이.
로건의 입장에서 루이사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를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이가 이 시기에 최전방에 찾아오기까지 했으니, 그로서는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사유가 동익왕의 망명이었다. 거의 군단급이라는 동왕부의 군사를 일부라도 끌고 온다면 모를까, 당장은 그가 맥라인에 넘어와 봤자 실익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로건이 폭탄이나 마찬가지인 루이사를 죽이지 않는 것은 오로지 제국전을 앞두고 검은 뱀의 테러까지 감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이사의 태도는 당당했다.
“책임을 지라는 뜻이 아니라 미래를 보시라는 겁니다. 무조건 받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실질적인 이득이 있으니까 권하는 것입니다.”
“이득?”
“아버지, 동익왕과 함께 망명을 오는 호위기사 제이 펄슨이 오러유저니까요.”
“……호오?”
그 말에는 로건도 당연히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숨겨진 초인이라니?
다만, 의문점은 있었다.
“초인이 제국의 반역자를 따른다고?”
황제가 인재, 특히나 초인(이 될 가능성 있는 사람 포함)을 얼마나 아끼는지 직접 겪어 본 적이 있는 로건으로선 더욱 의심스러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루이사는 코웃음을 치며 그 의심을 일축했다.
“제국군 모두가 황제에게 충성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 부녀를 보면 아실 텐데요.”
“흠……. 뭐, 오러유저의 합류라. 그것 또한 사실이라면 망명을 거부할 이유가 없긴 하지. 다만 그 친구 역시 ‘그쪽’ 소속이라면 조금 곤란한 이야기인데.”
“걱정 마세요. 그 친구는 오직 저희 어마, 아니 아바마마께만 충성하는 사람이니까요.”
“그 동익왕 역시 그쪽 사람이니 하는 말 아닌가.”
“……그 친구는 믿으셔도 됩니다. 탑의 마검사 출신도 아니고 순수 오러유저니까요. 폐하께서 한 번 만나 보시면 바로 알 수 있지 않나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동익왕에게만 충성한다는 이가 굳이 우리의 전장에 나서 줄 것 같지 않은데? 애써 받아 줬더니 후방에서 자기 주군만 호위하고 있다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 쪽에서는 그가 첩자라는 의심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데 말이야.”
“……그럴 리 없어요.”
“음?”
“아버지께서도 직접 전장에 나서길 원하고 계시니까요.”
“호오?”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우리 부녀가 황제를 증오한다는 것을 이제는 폐하께서도 아시리라 믿어요. 그리고 부왕께서도 알려진 바와 같이 ‘탑’의 마법을 쓰지 않는 순수 마법사이시니 크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하지만 동익왕이 굳이 왜 직접……?”
“이 전장에는 황제도 나올 테니까요.”
“그게 무슨 상관이지?”
“확률은 낮겠지만, 혹시라도 황제의 목숨을 직접 끊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니 무조건 나서실 거예요. 그리고 저도.”
“허…….”
황당한 마음에 로건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동익왕, 5서클의 마법사가 전장에 추가되는 것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더구나 오러유저까지 함께라면.
하지만 대체 어떤 원한이길래 일국의 왕족이 가문까지 말아먹어 가며 직접 전장에 뛰어들 생각을 하는 걸까.
로건은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억지로 정리하며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좋소. 동익왕과 그 호위의 망명을 받아 주고 전력 편성에도 넣어 주지. 단, 그것은 아마도 최전방이 될 것이오.”
“아버지도 바라는 바일 거예요.”
이런 것까지 받아들인다고?
그냥 질러 본 말에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오자 로건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는 최후의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들은 몰라도 루이사 공주, 당신은 안 돼. 이유는 본인이 더 잘 알겠지?”
그 말에 루이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현재 제국은 검은 뱀을 색출하겠다는 구실을 맥라인 정벌의 핑계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카셀 마탑의 마법이 등장해 버리면 그 거짓 명분이 진실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미 전쟁이 벌어진 마당에 아직도 명분을 따지시는 겁니까!?”
루이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시작은 명분이 있더라도 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남는 것은 서로를 향한 증오뿐이다. 이미 격화된 전쟁에서 다시 명분을 찾는 것이 우스워 보일 수 있다.
더 노리는 것이 없다면 말이다.
“물론. 서방 국가들이 뭉쳐서 제국에 대응해 줘야 하니까.”
“하……!?”
“최소한 그때까지는 카셀 마탑이 진짜 등장해 버려선 안 돼.”
모든 국가가 맥라인 같지는 않다. 제국의 속셈이 눈에 빤히 보이더라도, 이쪽에서 명분을 성립시켜 줘 버리면 친(親)제국파들이 걸고넘어질 게 분명하다.
데미안이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해서 서방 국가에 제국의 야욕을 알리고 있는 마당에, 이쪽에서 직접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흔적은 남기지 않아요. 뒤에서…….”
“안 된다고 했네, 공주.”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목숨이 위험할 때, 혹은 당신 아버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마법을 쓰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있나?”
그 냉정한 말엔 루이사도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건…….”
“당신을 전장에 내보내느니 이 자리에서 목을 베어 버리는 게 내게는 더 나은 선택이야. 망명 신청은 전쟁 참여라는 조건부로 받아들이지. 하지만 당신은 돌아가.”
로건은 그렇게 루이사의 말을 일축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제국의 원군이 다시 맥라인 국경을 앞두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폭탄이 터졌다.
– 서방 국가들의 수장 암살 및 암살 미수 사건 대량 발생.
– 귀신의 짓으로 추정.
서방 국가들의 지지부진하던 연합 결성을 대번에 성립시키는 거대한 폭탄이.
망명을 청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