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05)
405화- 서방 10개국 전격 연합- 제국에 전쟁 선포.
맥라인을 향해 거침없이 진격해 가던 제국군을 주춤하게 만든 악재.
– 제국은 암살을 시도한 적 없다. 검은 뱀의 수작이다!
제국의 첫 번째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시기도 시기이거니와, 제국의 소행이라는 증거까지 발견된 마당에 조작된 증거라는 말만으로는 피해자들을 설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황제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다만,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미 전장 근처까지 다가간 제국 중앙군이 회군하는 일은 없었다.
– 나는 제국의 서부 군단이 우리의 결백을 지켜 줄 것이라 믿는다.
– 빠르게 동부를 정리하고, 무도한 서방의 무리들을 토벌하겠다.
전쟁 선포와 동시에 연합군을 결성하기 시작한 서방 10국의 움직임과 항의를 그냥 무도하다는 말 한마디로 뭉개 버리는 황제.
이제는 대륙 정복의 야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황제의 선언에 온 대륙이 들끓었다.
* * *
“멈추지 않는다라…….”
로건은 카일의 내성에서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회심의 한 수가 등장했는데, 적이 수를 받아 주지도 않았다.
가정했던 상황 중 하나임에도 막상 현실이 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혹시 쉽게 전쟁을 끝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던 기대가 결국 기대로 끝난 것이다.
“결국 끝장을 봐야 하는 거로군. 수고했어, 데미안.”
[아닙니다. 어차피 제 공작이 먹혀 든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이들의 테러 때문에 성사된 일입니다. 아마도…….]“카셀 마탑의 짓이겠지.”
[예. 일부 현장에 남겨진 귀신의 시신과 아티팩트들까지,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심지어 제국 황실의 증표를 남긴 곳도 있더군요. 전 아레스 황족이 수여한 증표가 위조 가능하다는 것을 지금 처음 알았습니다. 허허.]사실 제국이 이 시점에 이런 짓을 할 리는 없으니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피해를 본 서방의 국가들 역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현장에 증거가 남았으니 여론을 따를 수밖에 없다.
사정을 아는 맥라인은 굳이 제국을 변호해 줄 이유가 없으니, 결국 서방 국가 연합의 결성은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문제라면.
“다시 한번, 아니 몇 번의 공세를 더 버텨 내야 하겠군.”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폐하. 이미 해낸 일, 두 번은 못 하겠습니까.]“그래, 그렇지.”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로건은 이 사실이 영 마땅치 않았다.
‘언제까지 막아 내기만 해야 하는가…….’
이번에도 제국의 공세를 막아 낸다면, 맥라인이 승리한다면 제국군은 그냥 돌아갈까.
또 돌아가지 않는다면, 전쟁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만약 돌아간다고 한들 과연 침략을 포기할까?
수많은 부정적인 의문들이 뇌리를 가득 메웠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 모두가 제 것인 양 오만하게 웃으며 광오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시선의 주인이.
“……황제를 죽인다면.”
[예?]“황제를 죽일 수 있다면, 제국이 야욕을 거둘까?”
[……역사적 사례라면, 패배 후 20년쯤 뒤에 다시 전쟁을 일으켜 그 나라를 멸망시킨 적은 있습니다만.]데미안의 말에 로건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그래. 그랬으니 제국이 됐겠지.”
“그렇지.”
상기된 데미안의 얼굴엔 그야말로 확고한 믿음이 어려 있었지만, 정작 그 믿음의 대상은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운이 많이 따라 줬어.’
이제는 더 아는 미래의 지식도 없었다.
자신이 지배자로 있는 한 이번 전쟁을 막아 낸다면 왕국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애초에 국토의 크기와 인구수부터 너무 차이가 났다. 혹여 마정수 농법이나 리베라티오의 배합 비율, 아티팩트 대량 생산의 비전 같은 것들 중 하나라도 제국에 흘러들어 간다면 발전 속도 역시 금세 따라잡힐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방어만 해서는 안 돼.’
지킨다.
지켜야 한다.
가족과 내 울타리 안의 사람들을 지키겠다. 반드시.
전생의 속죄를 위해서, 그 생각만 하면서 살아온 삶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막연한 가능성을 넘어서 불가능하게까지 느껴지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이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국을 토벌해야 한다.”
스스로 뱉고도 몸이 떨리는 이야기.
제국의 침략을 막아 내는 것과 그 제국을 토벌하는 것은 아예 차원이 다른 말이었다.
당연히 그 말을 들은 이의 반응도 격할 수밖에 없었다.
[예?!]조금 전까지 열렬히 ‘믿습니다!’를 외치던 데미안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어어어어…… 폐하? 저 지금 되게 불안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요!? 제가 환청을 들은 거겠죠!? 그렇다고 말해 주세요! 제발!!!!]“……자네, 어째 반응이 점점 릭이랑 닮아 가는 느낌인데?”
[무슨 그런 악담을 하십니까! 아니, 아니 그 전에 정말로 좀 전에 뭐라고 하신……?]데미안의 간절한 눈동자는 제발 헛소리라 말해 주길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로건은 자신의 꾀주머니라 할 수 있는 이 가신에게 좀 전의 속내를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그가 또 무언가 기가 막힌 해결책을 제시해 주길 바라며.
그리고 잠시 후.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한순간에 눈빛이 퀭해진 데미안이 로건의 상상을 긍정했다.
“뭐?”
[저도 너무 희망찬 생각만 하고 있었네요. 아무리 사람이 다 그러기 마련이라지만……. 에혀, 인생…….]X발 어쩌고 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지만, 착각일 것이다.
‘릭이랑 너무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를 해 둬야겠어. 말투가 너무 닮아 가네…….’
로건이 그렇게 잠시간 엉뚱한 생각을 하는 동안.
데미안은 그새 고민을 끝냈는지, 조금 더 늙어 버린 얼굴로 담담히 제 생각을 늘어놓았다.
[폐하가 계신 이상, 제국의 도발은 언제까지고 막아 낼 수 있다는 제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후대를 생각하면 분명 이대로는 답이 없겠네요. 제국은 계속해서 팽창 정책을 고수해 왔으니까요.]“그렇지.”
[우리가 막아 내도 결국 서방으로 영토를 넓히겠죠. 최근 하는 꼴로 봐서는 서방의 가이아나 린든도 결코 제국을 막아 내지 못할 것 같고.]내가 있어도 앞으로는 마찬가지야.
‘이제 알고 있는 수는 전부 썼다고.’
로건은 목구멍까지 솟아오른 진실의 소리를 삼킨 채 담담히 되물었다.
“그러면?”
후대가 아니라 불과 몇십 년 뒤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그럼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아직 제국의 공격이 끝난 것도 아닌데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로건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것은 앞으로 왕국이 가야 할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대화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정확히는, 당장 이 전쟁의 목표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그래서야 자손들 볼 면목이 없겠죠.]“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우리 전력으로 제국을 토벌하는 게 가능할까?”
[어렵지요. 하지만 꼭 토벌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뭐?”
[루스펠하임, 아니 펜나까지만 우리가 먹으면 됩니다. 대륙 동부를 장악하는 거지요.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지금 제국 영토의 삼분의 일 수준? 그거면 되겠어?”
[넘치지요. 그 정도면 제국도 현재의 영토를 지키기에 급급해질 테니까요.]“흐음. 삼분의 일이라.”
토벌보다는 확실히 부담이 덜하다. 로건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의 꾀주머니는 곧바로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게 우리 전력으로 가능할지가 문제지요. 대마법진이 없고, 신무기의 파괴력이 현저히 낮아지는 회전에서 제국의 정예를 박살 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그 방법부터 고민해 봐야겠습니다.]그 말에 로건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해 봐야지.”
[……복안이 있으신 거겠죠?]“일단 부딪쳐 보고…….”
[아 쫌! 무작정 저지르기 전에 생각 좀 하시고……!!]데미안의 한숨 섞인 고함과 함께, 그날의 대화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 * * 제국의 황제군이 국경을 지나고 있다는 말이 들릴 때쯤.
카일 성에는 로건과의 독대를 청하는 손님들이 동시에 찾아왔다.
“맥라인의 지배자를 뵙습니다.”
둘만 자리한 자리.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는 중년 사내를 보는 로건의 눈빛은 복잡했다.
정치적으로야 동익왕이라는 지위가 더 거물이겠지만, 로건 개인의 관심사로나 당장의 전력으로는 눈앞의 인물에 비견할 수 없었다.
‘신검이라…….’
전해 듣기로 신검, 하먼 킬러브루는 갈색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평범한 인상에 대륙 서부에 흔히 보이는 인종이라 하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는 새하얗게 빛나는 은발에 눈동자까지 새하얀, 과거 악연이었던 월광의 기사 플란츠보다 오히려 더욱 독특한 은빛의 소유자였다.
‘이렇게 변장할 거면 차라리 옷만 허름하게 바꿔 입는 게 낫지 않았을까?’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외모.
하지만 그 특이한 외모 안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힘이 헛생각에 따라오는 웃음기를 날려 버렸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외모가 좀 특이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은빛의 사내는 그만큼이나 완벽한 기력의 통제를 보여 주고 있었다.
자신의 감각으로도 그 역량이 읽히지 않는 상대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로건은 잠시간의 탐색을 마치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인사를 받아들였다.
“……먼 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칭하면 될까요? 방문첩에 적어 주신 대로 헤이먼 경이라 부를까요?”
가명조차 너무 허술하기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신검은 그저 굳은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불러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폐하.”
자신을 보는 신검의 눈동자는 확연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이 느낀 바와 비슷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호각. 정면으로 싸우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는 느낌.
더 오랜 시간 대륙에 명성을 떨쳐 온 신검으로선 아마 꽤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로건은 반대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예상보다 좀 더 강하지만…… 뭐, 충분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특성을 발현한다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미소를 짓는 찰나, 신검 역시 비슷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단순히 의례상 보이는 미소라기보다는 뭔가 자신감이 묻어나는 표정에 로건의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도 무언가 한 수가 더 있는 것일까.’
머릿속이 절로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성국에 있을 누군가가 떠올랐다.
‘일리아가 정말 이자에게 나를 치라 했을까? 대체 왜?’
빅토르에게 물었어도 확실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뿐.
‘주의하면 그만이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로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쩌면 적이 될지 모르는 아군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습니다, 헤이먼 경. 그런데 외람된 말씀이지만, 헤이먼 경의 특징 때문에 벌어질 제국과 ‘그곳’의 분쟁에 대해선 저희가 책임을 지지 않을 것입니다. 알고 계시겠지요?”
그 말에 신검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지만, 그것은 정말로 잠깐이었다.
“물론 감안하고 있습니다.”
성국과 제국 사이에서 또다시 분쟁이 일어난다면 맥라인으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일.
그렇기에 더욱 의심이 가는 마음을 한쪽에 접어 두며, 로건은 다시 웃음을 보였다.
“그 후의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제국군의 공세가 다시 시작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으니 충분히 쉬십시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물러나는 그 순간까지 발걸음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신검의 뒷모습을, 로건은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