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07)
407화
“더 빨리! 서둘러!!”
우렁찬 고함이 공방의 안을 시끄럽게 울렸지만, 그 소리에 바삐 움직여야 할 드워프와 인간 장인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하나같이 퀭한 눈빛의 그들은 이미 대다수가 한계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아으으, 죽겠다.”
“왜 우리가 전쟁 치르는 거 같지.”
“젠장. 작업은 단순한데 할당량이 너무 많아.”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하마르는 다그침을 멈추지 않았다. 한때는 공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던 체형이 반쪽이 되고, 그만큼 핼쑥해진 얼굴임에도 목소리는 점점 커지기만 했다.
“탄창과 리베라티오 공급이 떨어지면 결국 우리도 다 죽는다! 특히 드워프들! 죽더라도 할당량 다 만들고 죽어!”
살기까지 느껴지는 박력 어린 외침에 반박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공방장님, 이제 좀 쉬시지요.”
“쉬기는 뭘……!”
“다리 떨리시는데요.”
테마르가 갈고리 손을 들어 그의 다리를 가리키자, 그제야 후들후들 떨리는 자신의 다리를 인식한 하마르가 신음을 흘렸다.
“할당량 달성 못 하면! 먹지도 마! 자지도 마!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그러면 더 일을 못 합니다. 악순환이에요.”
옆에서 중얼거리는 테마르의 목소리는 애써 무시했다. 각오를 그 정도로 하라는 거지, 정말 먹지도 말고 자지도 말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배식은 고기 팍팍 넣어서 영양가 넘치게, 숙직실 침대 쿠션들도 확인했지?”
“예. 장인들 컨디션 유지에 모든 초점을 맞추라고 했습니다.”
“그래. 다그치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넌 열심히 다독여. 채찍과 당근, 알지?”
“물론입니다. 그러니 좀 쉬시지요.”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타메르의 어깨를 두드린 후 돌아서려던 하마르는, 피곤한지 멍하니 손을 놓고 있는 드워프를 발견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기, 드에르! 넋 놓고 있지 마! 내가 다 보고 있어!”
“공방장님, 제가 단속하겠다니까요. 좀 쉬세요.”
“그래, 그래. 알겠다고. 에휴”
자신의 고함에 화들짝 놀라 움직이는 드에르를 본 하마르는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떨리는 다리를 주무르며 집무실로 돌아왔다.
확실히 근래에 너무 무리를 한 것 같았다.
‘잠깐이라도 자야겠어.’
털썩.
의자에 몸을 던진 하마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자겠다는 확실한 의사 표현이었지만, 그는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으으으, 젠장. 잠을 못 자겠어.”
머리를 감싸 쥐며 욕설을 뱉어 내는 하마르 역시 다른 이들처럼 낯빛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이유야 분명했다.
불안감.
초전에서의 승리 소식도 그 불안감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최고의 장인이 멍청할 수는 없는 법. 하마르 역시 이번 승리가 정보의 비대칭으로 이뤄진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다시금 전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황제군의 규모는 더욱 어마어마했다.
모든 수가 밝혀진 맥라인이 과연 버텨 낼 수 있을 것인가.
그 의문에서 오는 불안감이 그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였다.
물론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포기할 수 없어. 절대.”
동부 대륙의 드워프들을 모두 모아 드워프를 위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결심, 다시금 드워프의 부흥을 일으키겠다는 결심은 왕실의 도움하에 차츰차츰 이뤄지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맥라인은 지켜져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뭔가 될 것만 같은 아쉬운 느낌이 미련이 되어 자꾸만 잠을 쫓아냈다.
“더 좋은 수가 없을까? 저걸 양산할 방법만 있어도…….”
하마르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붉은빛’ 탄창을 단 연사 석궁으로 향했다.
폭탄궁.
그란디아 내전 당시 소수만 만들어서 보급했던 무기.
그리고 단가 대비 전투 성능과 생산에 걸리는 시간 등, 생산 효율이 맞지 않아 결국 포기해 버린 무기.
그것의 개량에 대한 미련이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불가능한 것임을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량 생산만 가능해진다면, 정말 전쟁을 끝낼 만한 무기인데.’
저것은 연사 석궁처럼 일반인이 기사를 ‘위협’하거나, 죽일 ‘가능성’이 있는 수준의 무기가 아니다.
일반인도 기사를 확실히 죽일 수 있는 무기, 전장의 상식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무기이기에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리베라티오의 배합식을 아는 마법사들은 연사 석궁의 구조 및 기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자신들은 그 소모성 아티팩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내게 마법적 재능이 조금이라도, 아니 조상들의 정령만 있었어도.’
그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젠장…….”
결국 하마르는 연신 욕을 중얼거리면서도 다시금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려면 안 될 게 뻔한 실험이라도 한 번 해야 잠이 올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 콰아아아아아앙!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폭음이 들렸다.
“뭐, 뭐야!? 설마!?”
화들짝 놀란 하마르는 이내 그 폭발음의 진원지를 대략 파악하고는 이를 갈며 집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역시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난장판이 된 마도 공방 깊숙한 곳에서 번지기 시작한 불길이었다.
“젠장! 창고!”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내달리는 그의 주위로 일을 하다 말고 우르르 몰려가는 장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비켜! 비키라고! 가까이 갈 거면 가서 불이나 꺼! 기사들은!?”
하마르는 연신 소리를 지르며 공방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사고가 아니야.’
인위적인 폭발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그런 짓을 할 만한 이들은 너무나도 뻔했다.
‘제국.’
왕성보다 엄중한 타렌의 다중 경비망을 뚫고, 그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공방의 창고에 불을 지를 만한 놈들.
악마 같은 주인이 경고한 귀신이라는 놈들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불이 난 창고 근처에서 웬 갈색 로브의 시체(?)가 허공을 떠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축 늘어진 모습의 사내가 마치 허공을 널뛰는 듯한 모습으로 점차 멀어져 가는 광경. 마치 투명한 무언가가 사람을 둘러매고 담을 타 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기괴한 모습도 모습이지만, 그 늘어진 사내의 뒤통수가 너무나도 익숙했다.
“에난!?”
전장으로 떠난 클레이튼을 대신하여, 리베라티오의 배합 및 생산을 맡고 있던 그의 둘째 제자.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하마르의 입에서 비명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막아! 기사들 전부 저기, 멀어지는 마법사를 쫓아라! 제국의 귀신이다!”
그 고함에 창고로 모여들던 기사들의 시선이 사라지는 에난에게로 쏠렸다.
그것을 확인한 하마르는 근처에 항시 비치되어 있던 조랑말에 올라타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에난이 제국에 납치되면……, 혹시라도 리베라티오에 관해 토설하게 되면 절대 안 돼!’
맥라인 영지에서 금광을 개발할 당시 생긴 말 공포증 따위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저 드워프들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조랑말을 사 놓았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달가울 뿐이었다.
‘공방의 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직접 설계와 공사까지 담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급하게 뛰쳐나오던 와중에 폭탄궁을 챙겼다. 이 무기라면 웬만한 기사 몇 명 이상의 무력은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내 눈에 띌 정도면 주인을 습격했다던 수준의 괴물들은 아니야. 할 수 있어. 그래, 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해.’
하마르는 에난의 몸이 움직이는 방향을 유추하며 빠르게 조랑말을 몰았다.
그때, 바로 옆에서 비슷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공방장님, 같이 가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선명하게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눈 밑이 시커먼 테마르가 갈고리 달린 오른손에 또 하나의 폭탄궁을 장치한 채 조랑말을 달리고 있었다.
“너……!?”
“오래 같이 일하다 보니, 생각하는 게 비슷해졌나 봅니다. 퇴로를 막아야지요!?”
“무리하지 마! 기사들이 쫓고 있을 거야!”
“예! 예! 공방장님도요!”
두두두.
‘이 녀석이…….’
평소에는 얄밉기만 하던 녀석이 웬일로 조금은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것이 다급한 마음을 어쩌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랴!”
히히힝!
달그락거리는 발굽 소리가 유난히 느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의 노고는 헛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똑같은 건물들이 계획적으로 지어진 타렌 성 내부의 지름길로 접어든 순간, 서쪽 성벽으로 향하는 투명한 납치범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 섰거라!”
이런 멍청한 새끼가.
애써 길을 선점해 놓고 괜한 고함을 지르는 타메르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하마르는 에난의 아래쪽, 사람이 있을 만한 공간을 타메르의 뒤통수라 생각하고 폭탄궁을 갈겼다.
파바바박.
“공방장님! 에난은요!?”
아군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위협부터 했던 테마르가 기겁해 소리를 질렀다.
콰콰쾅!
물론 그에 돌아오는 것은 폭음의 뒤에 이어진 호통뿐이었다.
“쏘기나 해! 멍청아!”
에난이 죽더라도 상관 말고 붙잡으라는 뜻.
어찌 보면 너무나도 냉정한 결정이었지만, 폭염을 뚫고 나오는 에난(?)을 보는 순간엔 테마르도 이를 갈며 폭탄궁을 쏘아 대는 수밖에 없었다.
콰콰콰쾅!
하마르와 테마르가 가진 도합 20발의 폭탄궁은 금세 수명을 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타격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에난을 둘러매고 가던 검은 복면인의 형체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눈에 띄게 비틀거리기까지 하는 복면인.
그런 와중에 어깨에 둘러멘 에난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떠도는 소문의 절반만 사실이라도 하마르나 테마르가 놈을 멈춰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을 테니까.
‘폭탄궁을 몰랐겠지.’
아마도 처음에 하마르가 쏘아 낸 폭탄궁을 피하지 않고 쳐 내려 했던 것부터가 놈의 패착이었을 것이다.
하마르는 어느새 놈의 뒤쪽으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기사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놈이 다쳤다! 잡아!”
이내 가까이 접근한 기사들이 귀신을 포위한 채 파상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놈을 잡아라!”
“죽여!”
그리고 그 상황에서 하마르는 황당한 광경을 보았다. 기절한 에난의 몸에 닿는 빗나간 공격들까지 복면인이 막아 내고 있는 광경을.
‘황제의 명만을 따르는 살인 인형이라더니.’
새삼 세간에 퍼진 귀신에 대한 소문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마르가 본 것을 기사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인질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 기사들은 아예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고, 결국 복면인의 마지막 발악은 채 5분을 가지 못했다.
* * * 타렌의 습격 소식은 금세 카일에 있는 로건에게도 전해졌다.
“……그래, 다행이로군. 허, 정말 수고 많았다.”
그야말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소식에 로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마르를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방으로 가는 보급 부대에서도 산발적인 습격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최전방의 성에는 그런 일이 없나?]“……없을 리가 있겠나.”
로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반 병사나 기사들이 귀신의 습격을 완전히 막아 낼 수는 없는 노릇. 매일 밤 소수의 귀신들이 들락날락하며 맥라인군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소량이지만 리베라티오의 강탈 역시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리베라티오의 샘플이 제국에 넘어가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주인.]“그거야 별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그런다 한들 배합식은 밝혀내지 못할 것이라 장담하지 않았나?”
[그야 그렇지만, 그 양이 꽤 되다 보니……. 아니, 아니겠지. 클레이튼 그 양반의 분석이 맞겠지, 뭐.]그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더라도 배합식을 아는 마법사를 납치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이번 전쟁에서 리베라티오가 제국 측에서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순간.
하마르가 섬뜩한 소리를 보탰다.
[그런데, 귀신의 시체에서 신체 강화 아티팩트 같은 게 나왔다. 아마도 약화 마법진에 대항하려 소지한 것 같은데…….]“허?”
[이놈들은 약화 마법진이 먹힐 리가 없지 않나? 문장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래서 더 찜찜하다.]한순간에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간신히 잠재웠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마르는 그 불안감을 더욱 키우는 말을 꺼내 들었다.
[타렌에 숨어든 놈들이야 일단 다 잡았지만, 못 잡은 놈이 있을 수도 있다고 봐. 그런데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결국 제국 측에서도 약화 마법진의 타겟이 뭔지 알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