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08)
408화황제의 친정 선언 이후, 본격적으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중앙군의 모습은 무수한 화제를 생성했다.
이미 카일 성 앞에 주둔하고 있는 3개 군단은 아세리안이나 그 근방의 치안군만 보아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규모.
하지만 제국령 내의 모든 도시에서 조금씩 모여든 황실 중앙군의 본대는 그 3배에 달하는 9개 군단, 무려 45만 명에 가까운 대군이었다.
동부 8군단과 서부 7군단, 사방왕부에 힘을 흩어 놓은 듯했던 제국 황실의 진짜 모습에 세간의 모든 이가 전율했다.
제국령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 중앙군의 정예들이 신분을 감춘 채 숨어 있었다.
자연히 순식간에 이런 소문이 퍼져 나갔다. 그만큼 병력의 규모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대군이 전열을 정비하고 출정하기까지 고작 2주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제국 각지에서 모여든 병력을 생각하면, 아세리안 내부에서만 50만 대군을 운용할 수 있는 병참이 상시 준비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황제군은 그렇게 겉으로 드러난 규모만으로도 세상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세인들이 한 가지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부분이 있었다.
– 초인 전력은?
아무리 서부 국가들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지만, 서부 군단장들을 한 명도 차출하지 않은 것은 다소 이상했다.
이미 맥라인에서 희생된 초인 전력만도 상당했고, 초전의 패인이 병력 부족이 아니었던 만큼 최정예 전력의 부재에 대해 의문을 가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공식적으로 황실 친위대에 남아 있는 초인은 고작 두 명에 불과했다.
본래 10명이었던 친위대 소속 초인 중 서부 7군단장 막스 일레이아를 대신하여 파견된 이반 로드리게스, 마창 그리트 아인츠하인의 빈자리를 메꾼 제이미 길란, 그리고 검혼을 비롯한 6명의 초인이 맥라인과의 전쟁에 파견되었으니까.
하지만 무려 21명의 초인 전력이 파견된 전장에선, 이미 초전에서만 10명이 죽어 넘어졌다. 그리고 그중에는 무려 검혼이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남부 정벌군에서는 7명의 초인 중 무려 6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고도 남은 병력이 맥라인군의 2배 가까이 되지 않았다면, 진즉 반격으로 쓸려나갔을 뻔한 것이다.
그런데 추가 전력은 고작 2명이라니?
막대한 병력에 비해 초인 전력이 너무 빈약하다는 판단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전쟁의 결과를 이렇게 예측했다.
– 제국이 이기겠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만큼 초전에서 보여 준 맥라인의 선전이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더하여, 초전의 승리로 인해 극도로 고양된 맥라인의 백성들은 오히려 승산을 점치기도 했다.
“이젠 우리 폐하께서 대륙제일검이시잖아.”
“그럼, 그럼. 제국 초인이 떼로 덤벼도 안 될 텐데 병력이 많다 한들 무슨 소용이야!”
“아직 서른도 안 된 분이 대륙최강이라니, 그런 일이 역사에 있었나?”
“당연히 없지.”
“그럼 우리 폐하야말로 신이 내린 영웅이지!”
로건에 대한 칭송이 수도 그랑은 물론 시골의 구석구석까지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맥라인에만 있는 특수한 체계, 자경단 덕분에 한 집 건너 한 명씩은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백성들. 그들로선 초전의 전과를 보고 희망에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 이번 전쟁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초인들의 면면도 그들의 희망을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선 가장 유명해진 초인, ‘삭풍의 마도사를 막아 낸 철혈의 여전사’는 무려 왕비였다.
그 전에도 맥라인 여군의 창시자이자 최초의 여기사로 이름이 나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특이성 때문이었다. 왕국의 보수적인 문화는 이미 몇 차례 증명된 에일렌의 무력조차 그저 여자라서 과대평가된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였으니까.
“여자니까 약할 거라고 한 놈들은 대체 누구야?”
“제국에도 여자 오러유저는 거의 없다던데, 우리 왕비님은 어쩜…….”
“그러게. 역시 폐하는 신이 내린 영웅이 분명해. 반려마저도 초인이라니.”
백성들, 특히나 여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에일렌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단순히 귀족들이나 기사들 사이에서만 유명하던 에일렌 플로이드의 이름이 세간에도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에일렌과 비슷한 방향으로 엮여 같이 유명해진 이가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18세의 마도사, 빅토리아였다. 클레이튼과 함께 싸운 탓에 시각적 임팩트는 크지 않았지만, 그 두 사람이 제국의 마도사 셋을 밀어붙이는 것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골렘마스터’ 클레이튼의 이름이 상대적으로 유명한 까닭에 빅토리아의 활약을 폄하하는 이도 소수 있었지만, ‘미성년자 초인’이라는 엄청난 수식어는 맥라인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아가 역사가 기록된 이래 최연소 마도사라는 타이틀은 소수의 의견 따위는 단숨에 묻어 버릴 힘이 있었고, 오히려 그 덕에 너무 과장된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사실은 그동안 스승을 배려해서 나서지 않았던 거래.”
“진짜?”
“그래. 사실 예전부터 골렘은 스승보다 훨씬 잘 다뤘다고 하더라고. 골렘 마탑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었대!”
“와, 그럼 골렘마스터라는 별명의 주인도 바뀌어야 하는 거 아냐?”
“에이, 아무리 그래도…….”
“스승이 골렘마스터니까 골렘 여제라고 불러야 하나?”
“에이, 그래도 이제 막 이름을 얻었는데. 그냥 공주 정도가 그럴듯하지.”
골렘 공주(Princess of Golem).
후일 빅토리아가 이를 갈며 혐오하게 될 별명이 그렇게 탄생되었다.
거기에 사상 최초의 오러유저 궁수, ‘붉은 사신’ 부르델.
주황빛 오러를 뿜어내는 왕제, ‘석양의 기사’ 로니안 맥라인.
국왕의 호위기사로만 알려졌었던,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불사의 기사’ 빅토르까지.
초인이라고 하기에는 젊다 못해 어린 인재들이 동시에 다섯이나 등장한 것은 그야말로 국왕 로건 맥라인이 신의 계시를 받은 영웅이라는 풍문을 너무나도 확고히 심어 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그사이.
“우리 국왕 폐하께선 신수도 기르신다는데?”
“에이, 그건 너무 갔다.”
“진짜야! 남쪽 요새에서 봤다는 사람이 많아!”
마기 때문에 애써 단속까지 했던 티르에 관한 소문까지 알게 모르게 퍼져 나가며 소문을 부풀렸다.
로건 맥라인은 9대신이 내린 영웅.
맥라인 왕국은 신이 돌보시는 나라다.
결국 맥라인 백성들 사이에선 근거 없는 소문이 끊임없이 퍼져 나갔다.
그렇게 왕국 전체에 희망찬 분위기가 가득한 가운데, 정작 최전선에 있는 이들은 심각한 분위기로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 * *
“초인의 숫자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의 수가 다 밝혀진 것이 더 문제죠.”
데미안의 단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리베라티오와 대마법진이 이미 노출되었습니다. 제국군이 대책을 생각했을 겁니다.”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로건의 반문에 데미안이 막사 안의 지휘부들을 훑어보았다.
“대략적인 의견을 취합해 보았습니다만, 다들 생각이 비슷했습니다. 리베라티오는 아마도 지난번처럼 마법사들을 투입해서 막을 겁니다. 효과적이라는 게 이미 증명되었으니까요.”
“……그렇겠지. 일단 성벽에 올라서고 나면 그 마법사들도 공격에 나설 테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초전 당시 카일 성의 제국군 피해가 가장 적었으니, 이번에도 똑같은 전략을 쓸 것 같습니다.”
“후……. 그 대(對)마법 결계, 안티 마나(Anti-Mana)는?”
“어차피 한 번 이상 쓸 만한 작전은 아니었습니다. 대마법진의 효과가 약해지니까요. 적이 대책을 강구했다면, 우리 마법진만 날리는 자충수가 됩니다.”
“허……. 그럼 대마법진은?”
“……이쪽은 특별한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귀신이나 특수 병력을 동원해서 마법진을 부수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그거대로 대비하고 있으니까요.”
데미안의 말에 지휘관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별다른 이견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로건은 입술을 짓씹으며 고민에 잠겼다. 하마르가 던진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로건의 시선이 한쪽으로 흘렀다.
“리아.”
“예? 예, 폐하.”
스승의 곁에 가만히 서 있던 빅토리아가 깜짝 놀라 한 발 앞으로 나서자 로건이 불쑥 물었다.
“약화 마법진의 타겟을 지금 변경할 수 있을까?”
“……예!?”
“폐하!”
“갑자기 무슨 말씀을…….”
“황제군이 적어도 사흘 뒤면 도착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당황하는데도 로건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 빅토리아의 눈동자 역시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
“……제국에서 벌써 눈치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최악으로 가정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 해도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대안이 언뜻 떠오르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대안이 생긴다 한들 마법진을 수정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카일 성이야 어찌 시간을 맞춘다 해도 쉴드와 아머, 두 요새에는 마법진을 수정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찜찜함이 가슴속 한군데 진득하니 들러붙은 듯했다.
‘그래. 눈치챈다 해도 바로 지금은 아닐 거야.’
큰일을 앞두고 너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좋지 않다.
과한 걱정이다.
과해.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며 마른세수를 해 보지만, 그 찜찜함은 좀처럼 가시지를 않았다.
“……만약 약화 마법진이 무력화된다면 예상되는 피해는?”
“리베라티오가 막힌다는 전제하에, 지금 오고 있는 황제군의 규모가 절반이더라도 패배가 확정입니다.”
빅토리아의 말에 막사 전체에 침음성이 흘렀다.
적의 기운을 3할 억제한다는 말은 단순히 적 전력을 7할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고수였던 이가 동수(同手)가 되고, 동수였던 상대가 하수(下手)가 된다.
개개인의 승패 자체가 바뀌는 것이 계속해서 엮여 전쟁의 승패까지 바뀌게 만드는 절대적인 수.
그러니 빅토리아의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신이 내린 영웅이신 로건 맥라인 폐하가 있으니 어쨌거든 해 주실 거라 믿지만요.”
딱딱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빅토리아가 나름대로 유머를 시도했지만, 로건으로선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그래. 골렘 공주가 제국 마도사 세 명 정도는 가볍게 짓밟아 주면 좀 더 쉽겠지.”
“폐하! 그 이, 이상한 별명은 좀……!”
“철혈의 왕비가 삭풍의 마도사 목도 가볍게 따 주면 더 좋고.”
“폐하. 농담은 좀 상황을 가려서…….”
발끈하는 빅토리아와 눈빛이 싸늘해진 아내를 보며, 로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게 안 될 테니 어쨌건 최악을 대비해야겠지.”
어지간히 현실성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도, 그 대가가 목숨이라면 한 번쯤 고려해 보는 것이 인간이다.
하물며 언제가 되었건 이루어질 것만 같은 일이 좀 더 빨리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 대가가 나라의 패망이라면.
어찌 대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바꿔야겠어.”
“예?”
“리아. 약화 마법진의 타겟을 바꾸는 게 힘들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폐하.”
“그럼 타겟을 아예 없애는 것도 어렵나?”
“……예?”
대체 무슨 소리지?
어리둥절한 빅토리아의 시선이 로건에게 꽂히고, 이후 로건의 말이 이어지는 내내 그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