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09)
409화황제군의 전력 역시 3갈래로 갈라졌다.
북부와 남부에 각각 2개씩의 군단이 더해지고, 무려 5개의 군단이 중앙 대로를 통해 카일 성으로 진격해 왔다. 대군이 움직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협소한 북부 사냥꾼의 길이나 남부 모험가의 길보다는, 드넓은 벌판이 있는 중부에 다수의 전력이 집중된 것이다.
물론, 그 중앙에 적의 왕이 있다는 사실도 중요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추가된 25만의 제국군의 전력이 진군해 오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쿵. 쿵. 쿵.
지평선을 까맣게 메우며 다가오는 엄청난 규모의 군대. 멀리서 다가오는 병사들의 걸음걸음이 땅을 뒤흔드는 느낌에 루첸 탈로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이건 새로운 대륙제일검이 있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자신이 줄을 잘못 선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다시금 들었다.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야.’
직급이 올랐음에도 원군을 맞이하는 지휘관 대열의 가장 끄트머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 또한,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자신의 보고를 무시한 대가로 처형된 상관들이 어째서 자기 책임이라는 말인가?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 이후, 제 윗선부터 이미 죽은 검혼의 참모까지 무려 다섯 명의 귀족이 목숨을 잃었다. 그 덕분에 진급했지만, 참모진 안에서는 대놓고 유령 취급을 받고 있었다.
‘실력 중심이라는 제국도 결국은 인간 사회라는 거지. 이런 텃세라니…….’
애초에 자신의 보고를 씹지 않았다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렇게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원군이 가까이 온 것도 뒤늦게 눈치챘다.
– 황제 폐하께 경례!
앞선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루첸은 황급히 오른손을 심장에 대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 만세! 만세! 만만세!
사방 천지에 우렁차게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잠깐의 정적 뒤, 전방에서부터 뭐라 뭐라 이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보나 마나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먼 곳에서 엄중한 호위를 받고 있을 황제의 말이 몇 사람을 거쳐 이쪽으로 오고 있을 터.
‘내가 지금 저기 호기심을 가질 때가 아니지.’
루첸 탈로스는 불편한 자세를 유지한 채 전쟁이 끝난 후의 제 미래에 골몰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허례허식이 모두 끝난 듯, 진영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황제군의 지휘부가 진영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였다.
“모두 물러서!”
“뒤로 물러서라고!”
“윽! 내 발!”
멀리서 보면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물러서는 제국군이었지만, 내부에서는 소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기껏 만들어 놓은 진형의 가운데로 두 배 가까운 군대가 밀고 들어오는 상황. 아무리 훈련이 잘됐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루첸 역시 그 중간에 껴서 힘겹게 중심을 잡았다.
그런데.
“루첸 탈로스 남작.”
갑작스러운 호명에 고개를 들자, 인상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는 콧수염이 보였다.
지미 보르자 백작. 참모진의 중진으로, 본래부터 자신을 싫어하던 이였다.
“예? 예! 각하!”
곧바로 대답하면서도,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자가 갑자기 왜?
“황제 폐하의 지시다. 오늘 저녁부터 최고 회의에 참여하도록.”
“……예?”
“못 들었나?”
“아, 아닙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충성!”
어쩌면 빌어먹게 꼬여 버린 운이 다시 풀릴지도 모르겠다.
치솟는 기대감에 루첸 탈로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 * * 밤하늘을 환하게 밝힐 정도로 가득한 횃불들.
루첸 탈로스가 그 거대한 군세의 가장 안쪽, 가장 큰 천막에 들어서자 십수 명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삭풍의 마도사를 비롯한 마도사 넷과 지미 보르자 백작을 비롯한 참모부의 수뇌들 셋, 그리고 기존 중앙 군단의 만인장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세 명의 기사와 처음 보는 얼굴들 몇몇.
하지만 불행히도, 그들 중 그를 기꺼워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장 그를 부른 지미 보르자 백작만 해도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장 지위가 낮은 자가 가장 늦다니. 이거 원 어이가 없어서…….”
들으란 듯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막사 안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만인장들과 가까워 보이는 낯선 이들, 즉 다른 중앙군의 만인장들로 추측되는 이들까지 어느새 고까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부러 늦게 알려 줬구나.’
지미 보르자의 치졸한 수작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지금 그 말을 해 봐야 변명으로 들릴 것이 뻔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막사의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을 수밖에.
그리고 그렇게 쏟아지는 시선이 한 번 지나간 후에야 조금 이상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제롬 경이 없어? 그런데 내가 왜……?’
초인인 제롬 디카이드조차 참석하지 못한-비록 과거의 과실이 있다 해도-자리에 자신이 있다는 것은 분명 기회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 루첸의 마음이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동안, 막사 안엔 무거운 분위기가 맴돌았다.
한동안 흐르던 침묵이 깨어진 것은 막사의 뒤쪽이 열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였다.
“황제 폐하 듭시오!”
저벅저벅.
칠흑같이 새까만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열을 맞추어 등장했다.
‘검은 갑옷? 제국에 저런 단체가 있었나?’
루첸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기사들 사이로 황금빛 갑옷을 입은 황제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삭풍의 마도사, 갈렌 디카이드의 선창을 시작으로 자리하고 있던 모든 이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오연하게 내려다본 황제는 단을 높인 상석에 천천히 앉았다.
“모두 일어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리 예의를 다할 필요 없다, 갈렌. 내가 여유가 넘쳐서 직접 여기까지 온 것 같은가?”
“……송구합니다, 폐하.”
당황하는 갈렌의 모습을 보며 짧게 혀를 찬 황제는 좌중을 둘러보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내 들었다.
“지금부터 쓸데없는 인사치레 및 과례는 생략한다. 여기 있는 그대들이 이 중앙군의 두뇌. 눈치 보지 말고 저 무도한 왕국 놈들을 처리할 방안을 말해 보라.”
황제 앞에서 예의도 차릴 필요 없다. 그냥 전략이나 말해라.
그 파격적인 말에 멍해지는 좌중.
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먼저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기만 하는 모습에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구석에 있던 루첸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당연하지. 그 말만 믿고 정말 의견을 냈다가 무슨 꼴을 볼 줄 알고.’
비제국 출신으로 제국의 상류층에 발이라도 걸쳐 본 루첸의 경험상 제국 역시 그리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었다. 특히나 황실의 권위는 높고도 높아, 자칫 황족의 그림자라도 밟았다가는 귀족도 곤경에 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황제 앞에서 누가 선뜻 입을 털겠는가.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것 같다는 철안(鐵顔, Iron-Face)의 재상 록터스 구스펠트가 괜히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속마음이라도 읽은 것일까.
어느 순간 황제의 검은 눈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본 루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내가 모르는 얼굴인 걸 보니, 네가 바로 그란디아 출신이라는 그 참모겠구나.”
“만…….”
반사적으로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치며 무릎을 꿇으려던 루첸은 가까스로 황제가 직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끅, 예, 예. 제가 루첸 탈로스, 그란디아 출신의 ‘제국인’입니다.”
혀를 조금 씹기는 했지만, 그는 나름대로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리가 후들거리고, 이마에 식은땀이 솟구치기는 했지만.
황제는 그런 그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 네가 먼저 의견을 개진해 보라. 최대한 피해 없이 저 성을, 맥라인 왕국을 함락할 방안을.”
주변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루첸의 눈에는 오직 황제의 검은 눈동자만이 보였다. 무슨 마력이라도 있는지 보는 순간 빨려들 것 같은 검은 눈동자가 영혼을 압박하는 느낌이었다.
“설마 참모라는 놈이 그런 방안 하나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
그 느낌, 거대한 압박감에 루첸은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토해 냈다.
“아, 아닙니다!”
꿀꺽.
“맥라인의 군사력은 세 곳의 성에 거의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 성에 마련된 신무기와 마법진이 우리 제국군의 공세를 막고 막대한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
지미 보르자가 작은 목소리를 내다가 황제의 시선을 받고는 바로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그것에 묘한 쾌감을 느끼며 루첸은 혀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물론 우리 제국군의 현재 전력이라면 그런 요소에도 불구하고 적들을 대파하고 함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은 그쪽이 아닙니다.”
“하면?”
황제의 흥미롭다는 목소리가 루첸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가장 최선의 방책은 저 성을 공격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쟁을 위해 와서는 공격을 하지 않는다?
좌중의 시선이 루첸에게 쏠리고, 황제의 얼굴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떠올랐다.
“호오?”
“초전에서 승리했음에도 성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겁쟁이들 따위는 무시하시고, 적의 본토를 공격하시지요.”
그 말에 누구는 인상을 찡그리고, 누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본토라…….”
황제 역시 턱을 주억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 모습에 루첸은 힘을 내서 말을 보탰다.
“왕국 전역이 초토화되고 있으면 놈들도 성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그 마법진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어지고, 높은 곳에서 쏟아지던 신무기의 위력도 반감될 것이 확실합니다.”
그 말에 막사 안에 있던 모든 이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황제 역시 흐릿한 미소를 보였다.
“……그래. 그럴듯한 이야기로군. 이쪽 중앙 대로의 정벌군은 그럴 만한 여유가 있으니.”
마수림이나 남부 산맥, 협곡 등으로 우회로가 막힌 남북의 군단들과 달리 중앙 군단은 그 수도 많고 길도 뚫렸으니 충분히 가능한 작전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지금 서부의 상황은 듣지 못한 건가?”
“연합이 결성되고는 있으나 그들도 섣불리 저희 제국을 공격하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맥라인과의 전쟁이 길어지는 기미만 보여도 간을 보려 할 텐데.”
그것을 감수하는 게 전략적으로 나은 선택이다.
그렇게 주장하려던 루첸은 그 순간 황제의 눈빛을 보고서는 바로 입을 닫았다.
불쾌감이 감도는 눈빛.
효율을 떠나, 제국이 먼저 침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황제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인 듯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적을 분쇄할 방안은?”
“……우세한 전력으로 포위해 공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누가 몰라.”
지미 보르자의 목소리가 또다시 끼어들었다.
‘저 정도로 X신이었나?’
루첸이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때였다.
황제의 눈빛이 뒤에 늘어선 검은 기사들에게 향하고, 그들 중 일부가 움직였다.
“시, 실언을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그에 안색이 창백해진 지미 보르자가 황급히 외쳤지만, 검은 기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팔을 붙들어 끌어냈다.
– 아악!
막사 밖에서 들리는 단말마에 루첸의 안색이 일순 창백하게 질렸다.
“……참모부에 아직도 쓰레기가 있었군.”
정말로 쓰레기를 치운 것뿐이라는 듯, 황제의 눈초리가 다시 루첸에게로 향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심한 태도에 루첸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황제가 다시 물었다.
“그대로 밀어붙일 시 예상되는 피해는?”
“로건 맥라인을 비롯한 초인들과 그 마법진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크게는 3할 이상의 피해가 예상됩니다.”
혹여나 늦게 대답했다가 지미와 같은 꼴이 날까 싶어 루첸은 번개처럼 빠르게 답을 했다. 그 답변에 황제가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할 틈도 없었다.
그런데 황제의 반응이 의외였다.
“그 문제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폐하?”
“준비는 충분하다.”
모두가 의아해하는데, 황제가 주위를 둘러보며 예기치 못한 말을 꺼냈다.
“내일 하루, 기사와 병사들의 갑옷에 새겨진 금룡의 문양을 모두 지워라.”
“예!?”
제국을 상징하는 영광스러운 문장을 지우라니?
막사 안의 모두가 놀랐지만, 황제는 유일하게 아! 하고 감탄사를 터트리는 갈렌을 흘깃 본 후, 다시금 입을 열었다.
“두 번 말하게 할 셈이냐. 실행하라.”
“예!”
그 말에 갈렌을 비롯한 모든 이가 복창했다.
황제의 시선이 다시 루첸에게 쏠렸다.
“루첸이라 하였느냐?”
“예, 예, 폐하.”
“고향의 영토를 초토화하자는 너의 계획은 쓸 만했다. 너는 확실히 제국인이구나.”
그 말에 루첸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확한 방법은 모르지만, 황제는 다 계획이 있었다. 이 자리는 그저 그 계획을 확인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내가 엉뚱한 대답을 했으면…….’
루첸은 새삼 느껴지는 섬뜩함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빠르게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여, 영광입니다, 폐하.”
“내가 왜 금룡의 문양을 지우라 했는지는 짐작하겠느냐?”
잠시간 루첸의 머리가 번개처럼 돌아갔다.
의미심장한 황제의 말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 그리고 좀 전의 삭풍의 마도사가 보인 반응이 더해지자 이내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물론 스스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답을 뱉어 냈다.
“그, 적의 마법진에 대항하기 위한 방책 같사옵니다.”
“……똑똑하군. 머리 회전도 빠르고.”
“가, 감사합니다. 폐하! 하오나…… 적 초인에 대한 대책은……?”
흡.
자신도 모르게 황제에게 반문했다는 사실에 놀란 루첸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다행히도 그조차 황제의 눈에는 좋게 보인 것 같았다.
피식.
“배짱도 있고.”
주변에 늘어선 검은 기사들을 바라본 황제의 입가에는 막사에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들이 초인에 대한 대책임을 짐작한 루첸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숙일 때.
“앞으로 지켜보지.”
루첸의 가슴을 들뜨게 만드는 한마디가 막사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