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11)
411화
“크르르르.”
우드드득.
몰려오는 제국군을 보는 순간, 로니안의 옆에 있던 티르가 짙은 살기를 내뿜으며 일순간 3배 가까이 덩치를 불렸다.
이 오만한 신수가 덩치를 자유자재로 바꾼다는 것은 로니안 역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렇게 짙은 살기를 내뿜은 건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야, 티르?”
“크르르르.”
하지만 아쉽게도 로니안은 그의 형처럼 신수의 마음을 읽지는 못했기에, 그저 다가오는 제국군이 이전보다 위험하다는 신호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 있게 웃을 수 있었다.
“그래 봤자 우리가 이겨.”
“크르르르.”
티르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적들이 몰려오고 있는 이 상황에 괜히 티르와 소통해 보겠답시고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로니안은 티르를 뒤로한 채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는 어떤 아티팩트보다 손에 착 감기는 애검 마네(Mane)가 그의 힘을 받아들여 찬란한 주황빛 오러를 뿜었다.
“들어라!!”
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선 아버지, 패드릭 맥라인 대공을 대신하는 맥라인 3군단의 실질적인 군단장이자 맥라인 왕국의 국왕의 동생.
그리고 이제는 저 주황빛 오러와 왕실 특유의 적발과 적안 덕분에 ‘석양의 기사’라는 이명까지 얻게 된 로니안의 모습은 아군 병력의 시선을 대번에 집중시켰다.
“형편없이 패퇴했던 적이 울면서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혹시 그것에 겁먹은 자 여기 있는가?!”
“와하하하!”
과장된 호통에 호응하는 과장된 웃음소리가 밀려오는 전투의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켰다.
“자, 다시 한번 겁쟁이들이 엉덩이를 걷어차 주자! 우리의 땅은 우리가 지킨다!”
“우와아아!!!”
“쏴라!”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아군의 사기를 북돋는 아들을 지켜보던 패드릭이 공격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쏟아지는 쿼렐의 비와 리베라티오의 폭격.
그것은 북부와 마찬가지로 이전처럼 화끈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다만, 거기까지는 모두 예상한 바였기에 지휘부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강한 자신감은 초인 전력의 압도적인 우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미 지난 격전에서 무려 다섯 명의 적 초인을 죽였다.
그나마 둘 남은 초인 중 하나, 지휘관 맷 디커슨도 빅토르와 동귀어진하다시피 하여 반쯤 시체가 되어 돌아갔으니…….
엄청난 재생의 힘을 지닌 빅토르가 엊그제나 되어서야 부상을 회복한 것을 생각하면, 그 또한 전선에 나서기 힘들 터였다.
‘설령 황실 친위대의 나머지 두 명이 다 이쪽으로 왔다 해도 뭐, 우리가 압승이지.’
로니안은 빅토르와 티르를 번갈아 바라보며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며칠 전 그에게 전해진 형의 계책.
– 약화 마법진의 대상을 불꽃 문양을 가진 자를 제외한 전부로 바꿔라. 마정석의 소모량이 급증한다지만, 거기 있는 마법사들만으로도 그 정도 수정은 가능할 것이다.
형은 혹시나 헛된 낭비로 끝날 가능성을 걱정했지만, 로니안은 그저 형의 과한 걱정이라 치부했다.
‘형님의 계책은 이제까지 틀린 적이 없었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야 무모하다느니, 생각이 없다느니 폄하하는 발언을 하지만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는가.
형님은 세간의 소문처럼 신이 내린 영웅이니, 그 계책이 절대 실패할 리 없다.
로니안은 진심으로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당사자인 형이 알았다면 부끄러움에 얼굴을 감싸쥘 만한 생각이었고, 패드릭이 알았다면 넘겨줬던 지휘권을 다시 돌려받고 싶어 했을 황당한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로니안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무조건적인 믿음이 외부엔 자신감으로 표출되니, 그를 바라보는 아군 역시 사기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금룡의 문장을 지우고 자신만만하게 돌진한 제국 기사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억!?”
“이, 이게!?”
“폐, 폐하의 뜻이!”
성벽 위에 발을 디디자마자 헛숨을 토해 낸 제국의 기사들을 맞이한 건, 기다렸다는 듯 날아드는 칼날 세례였다.
“아아아악!”
“이런 젠장!”
“마법진이 그대로……!”
2개의 군단이 새로 합류했지만, 남부 정벌군은 이미 지난 초전에서 거의 비슷한 규모의 병력을 잃어버린 바 있다.
그런 와중에 성벽에 올라선 기사들이 이전보다 더 쉽게 무너지면서, 초반의 승기는 순식간에 맥라인 측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어느새 바람의 장벽을 회수한 마법사들이 일제히 전선에 따라붙어 전방의 기사와 병사들을 보조하기 시작하자, 전세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한 변수도 있었다.
성벽에 올라선 적 기사들을 난도질하고 있던 로니안이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는 광경. 성벽 위 다섯 군데에서 일제히 솟구친 상서로운 붉은빛이었다.
“다섯이라고!?”
7군단장 그레임 피터슨과 나머지 둘의 정체는 금방 알아보았다. 이미 알려진 황실 친위대의 초인들, 그리고 얼굴을 모르는 나머지 둘도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들의 복장이 다른 황실 친위대 초인들과 완전히 같았으니, 아마도…….
‘숨겨진 초인이 둘이나 더 있었다? 칫, 역시 제국이라는 건가.’
충분히 강력한 변수였지만, 거기까지만 해도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쪽의 초인 역시 자신과 빅토르, 테로난의 철벽 라틴 로렌스와 마도사 구스타프, 그리고 위켄 칼리아까지 다섯이었으니까.
거기에 지난 전투에서 초인 셋을 끝장낸 막강한 신수 티르가 있는 곳이 바로 이 요새 아머였다.
그러나, 그 안일한 생각은 곧바로 이어진 광경을 보는 순간 뒤집혔다.
“아아악!”
“초, 초인!”
“여기도!”
갑자기 여기저기서 솟구치기 시작한 검붉은 오러가 아군의 기사들을 무차별로 베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순간적으로 더해진 그 숫자가 무려 여섯이었다. 하나같이 새까만 갑옷에 투구를 눌러썼기에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검붉은색 오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즉, 저 여섯 중 누구도 서부 군단장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 말이 안 된다.
“오러유저가 그렇게나 많다고!?”
아무리 제국이라 해도 그렇지, 초인을 찍어 내듯 만든 것이 아닌 이상 저 숫자가 말이 된단 말인가.
일순간에 두 배로 많아진 적 초인의 숫자에 놀란 로니안은 순간 멍하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 순간, 빈틈을 놓치지 않은 칼날이 그의 눈앞에 다가왔다.
“죽어!”
스각.
“꺼윽.”
본능적으로 휘두른 반격에 죽어 넘어진 제국의 기사가 남긴 볼의 상처.
그 화끈한 감각에 로니안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런 빌어먹을 것들이!”
촤라라라락.
일순간에 발휘된 은하검.
로니안의 주변으로 번뜩이는 오러의 검 여섯 개가 생겨났다.
그러나 직전에 공격을 허용한 탓일까.
“적장이다!”
“석양의 기사!”
“죽어라!”
무려 일곱 개의 오러소드를 보면서도 제국 기사들은 겁도 없이 로니안을 향해 몰려들었다.
물론 7개의 마음으로 7개의 검을 다루는 로니안은 이제 포스가 바닥나지 않는 한 방심 따위 하려야 할 수도 없는 몸이었다.
스각.
쩌어억.
하나의 검처럼 동시에 휘둘러진 검들이 순식간에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푸슈슉.
동시에 여기저기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아악!”
“허, 허윽.”
각기 목이나 심장을 부여잡은 제국 기사들이 일시에 원을 그리듯 쓰러지며 로니안의 주위로 빈 공간을 만들어 냈다.
“괴, 괴물…….”
달려들다 얼어붙은 듯 멈춰 버린 제국 기사들.
하지만 로니안의 시선은 그들 너머, 새로 나타난 초인들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먼저 시선이 마주친 이는 멋들어진 망토를 걸친 채 붉은 오러가 이글거리는 도끼를 든 초인이었다.
“석양의 기사? 훗.”
자신을 비웃으며 다가오는 황실 친위대의 초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도끼에 어린 선명한 형상의 오러는 그가 오러유저 상급의 초인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젠장!’
만만치 않은 상대. 아니, 경지만 따지자면 오히려 높은 상대.
그런 상대가 다가오는데도 로니안의 시선은 그 뒤쪽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초인이 오러유저 상급이라면, 나머지 놈들은…….
그 시선에 담긴 초조함을 느꼈는지, 아군의 최강자가 응답했다.
–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
‘티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적의 병력을 거침없이 물어 죽이던 티르가 검붉은 오러의 주인들이 있는 곳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황소보다 더 커져 버린 몸뚱어리와 검붉은색으로 변한 털.
세 개로 불어난 머리에선 12개의 붉은 눈동자가 살벌한 안광을 흘렸다.
흡사 신화 속 괴물처럼 변한 티르가 검은 유성처럼 적들을 향해 쏘아졌다.
그 압도적인 박력은 티르가 여태까지 숨겨 왔던 힘이 자신의 상상을 훨씬 벗어난 수준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더하여, 그 몸에서 흘러넘치는 기운이 소문과 같은 신성한 힘이 아니라 진득하고 끈적끈적한 마기라는 것 또한 느껴졌다.
그 순간, 형이 남긴 당부가 떠올랐다.
–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티르가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막아라.
하지만…….
‘지금이 그 최악의 상황인 듯합니다, 형님.’
로니안은 형의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황급히 털어 냈다.
그사이 붉은 오러가 넘실거리는 도끼가 바로 눈앞에 다가온 탓이었다.
“애송이, 죽여 주마!”
뿌드득.
“꺼져라!”
이를 간 로니안은 눈앞까지 다가온 초인에게 서슴없이 전력을 퍼부었다.
신검 비전과 은하검이 절묘하게 합쳐진 비기, 파랑참 7중첩.
주황빛 오러의 파도가 끊임없이 전면의 적을 향해 몰아쳤다.
콰콰콰콰콰콰!
“헙!”
‘애송이’의 생각지도 못한 발악에 대경한 적이 도끼를 휘둘렀다. 그의 도끼에서 붉은 오러가 드높게 솟아오르며 주황빛 파도를 갈랐다.
그 충격에서 오는 반발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로니안은 뒤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다시 티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허?’
무슨 생각인지, 그 검붉은 오러의 주인들 역시 일제히 티르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저들이 전부 흩어져 다른 초인이나 병력을 습격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었지만,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오러는 도무지 초급 수준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저 티르라고 하더라도…….
‘여섯은 너무 많아!’
결국 로니안은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빅토르!!!!!”
근처에서 또 하나의 황실 친위대 초인을 맞이하여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친우.
그의 시선을 억지로 돌린 로니안이 고함을 질렀다.
“티르를 도와!! 여긴 내가 맡겠다!!”
“큭!”
빅토르는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팔에 기다란 상처가 생긴 것이다.
물론 갑옷이 갈라질 만큼 깊은 상처였음에도 아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놀라운 광경을 본 적이 기가 찬다는 듯 물었다.
“하? 네 녀석 인간이 맞느냐?”
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틈은 없었다.
‘저 녀석이 왜?’
다급한 와중에도 빅토르의 붉고 푸른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가 상대하던 초인은 오러유저 상급. 그리고 현재 로니안의 뒤를 쫓아가는 도끼를 든 초인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다.
중급인 로니안이 상급 둘을 동시에 맡겠다고?
하지만 로니안이 눈짓한 곳을 바라본 순간, 빅토르는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변신한 티르의 주변으로 얽히기 시작한 검붉은 오러들.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또한 버럭 고함을 지른 친우의 생각도 바로 유추할 수 있었다.
막강한 재생력을 가진 자신은 약한 다수를 상대하기에 유리하고, 순간 화력이 압도적인 로니안은 강한 소수를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으니까.
‘약화 마법진도 있고.’
……물론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위험하겠지만.
“버텨라!”
“너야말로!”
하나도 장담할 수 없는 강적 둘을 친우에게 맡기고, 빅토르는 몸을 돌렸다.
‘이게 최선이야.’
이를 악문 그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