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릴 적, 간신히 사물을 분간하고 세상을 인식하던 시절에 어미가 죽었다.
염원의 힘이 다해 갈 때쯤 세상에 묻혀 사라지는, 신수로서의 당연한 죽음이 아니었다. 살해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원수들의 손에 자신마저 죽기 직전에, ‘친구’에게 구원을 받았다.
– 끼이잉.
신수의 운명대로 사라져 가는 어미의 시신을 붙잡고 울던 자신을 챙긴 것도 그 친구였다.
– 검은 뱀. 이것들이 내 적이야. 그리고 이젠 네 적도 되겠구나.
– 낑…….
친구를 도와 놈들을 사냥했다. 그때는 너무 어렸기에 그저 영혼의 냄새를 맡고 추적하는 것이 전부였다.
친구는 그걸로도 충분하다 했지만, 자신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친구의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응했다.
– 천 년, 족히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을 거야. 그보다 오래갈 수도 있어. 괜찮겠어?
– 컹컹!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이미 검은 뱀 놈들의 흔적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너무나도 강했고, 그만큼 놈들은 세상 구석구석에 꼭꼭 숨어 버렸다.
자신이 냄새조차 맡지 못할 정도로.
친구도 그랬지만, 작고 약했던 자신의 마음속에 맺힌 한은 그 정도로는 해결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봉인을 택했다.
그런데, 친구의 예측이 틀렸다.
– 컹?
미약한 흔들림을 느끼고 오랜 잠에서 깨어나 보니 주변엔 온통 혐오스러운 마기 덩어리뿐이었다. 신수를 보며 소원을 빌어 줄, 그리고 염원의 힘을 전해 줄 인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해와 달이 백 번쯤 뜨고 지는 동안은 참았다. 친구가 말한 또 다른 친구가 와서 자신을 데려가 줄 것임을, 또다시 검은 뱀을 사냥할 수 있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직 어린 티르에게, 염원의 힘을 섭취하지 못한 채 그 이상을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살기 위해선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줄 선물이라 말한 염원의 힘, 그 정수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 나는 많이 기다렸다.
– 늦은 놈이 나쁜 거다.
등등 변명을 생각하며 또다시 기다렸다.
그렇게 수백 번의 해가 부질없이 떠오르고, 다시 저물었다.
하지만 친구가 말한 친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 친구가 날 속인 걸까.
처음에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외로움에 사무쳐 울었다.
친구가 남긴 염원의 정수는 신수가 성장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강대했지만, 정신적 외로움을 달래 주진 못했다.
그러자 눈이 주변의 기분 나쁜 생명체들에게 돌아갔다.
끈적끈적한 마기. 그 검은 뱀 놈 중 일부가 가지고 있던 것과 비슷한 부류의 힘을 담고 있는 것들.
거슬렸다.
긴 기다림과 외로움에 지친 티르는 그렇게 그것들을 사냥했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친구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기분 나쁜 것들을 사냥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셀 수도 없는 세월이 흘렀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도 진득하니 배어 버린 마기.
이제는 자신이 신수인지 마수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할 무렵, 자신의 영역 안에서 꿈에서나 그리던 그리운 기운이 느껴졌다.
– 친구가 찾아왔다!
컹!
한달음에 달려가 봤지만, 나타난 것은 친구와 비슷한 기운을 가졌을 뿐인, 한없이 약한 다른 인간이었다.
– 설마 이게 친구가 말한 다른 친구인 걸까.
친구가 남긴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는 것을 보니,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친구를 따라나섰다.
수백 년, 아니 어쩌면 수천 년이었을지도 모를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도착한 친구의 집에서 검은 뱀의 향기를 풍기는 인간을 보자, 그제야 옛 원한이 떠올랐다.
순간 발작할 뻔했지만, 참아 낼 수 있었다.
새로운 친구가 참으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잊은 줄 알았던 원한이 다시금 스멀스멀 살아나기 시작했다. 자신과 함께 있다 보면 놈들을 찾게 될 것이라는 친구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인간들의 영역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한 향기가 풍기는 검은 뱀들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크와아아앙!”
머리가 세 개 달린 황소만 한 늑대가 울부짖는 순간, 검붉은 빛의 파동이 성벽 위를 휩쓸었다.
“아아아악!”
“끄아악!”
“사, 살려!”
일순간에 전장을 초토화시키는 레이저 브레스.
하지만 정작 그 목표가 되었던 검은 뱀 놈들은 전부 피해 버린 뒤였다.
자신의 전후좌우로 흩어져서 덤벼드는 원수들.
티르는 그것들의 공격을 인식한 후에야 자신이 성급했음을 깨달았다.
또한 분노했다. 그 아득한 옛날, 어미를 공격했던 놈들이 다시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 크고 강했던 어미가 쓰러지던 과정도 기억났다.
작은 인간들을 상대하는 데 쓸데없이 커다란 덩치는 필요 없었다.
스르르르륵.
거대했던 덩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더 줄일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힘이 육체가 아닌 염원의 힘과 마기에서 온다고 해도, 육체가 너무 작으면 그 출력에도 지장이 생기니까.
그저 이렇게.
쾅!
주르르르르륵.
쿵.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도면 적당했다.
“크르르.”
이 타격감.
티르는 자신의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전율을 만끽했다.
이제는 정말 원수들과 싸울 수 있다.
그 쾌감에 눈이 뒤집혔다.
“신수 확인.”
“마수 같기도.”
“변수 무의미. 계획대로.”
여섯 놈이 이상하게 중얼거리는 것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검은 뱀과의 치열한 전투라니.
친구의 도움 없이 자신이 직접 원수를 징벌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자신은 있었다.
셀 수도 없는 세월 마수림에서 마수들을 잡아 온 터라, 단 한 번의 수 교환에도 견적이 나왔으니까.
– 내가 더 세다.
하지만 조금 예상을 벗어난 점이 있었다.
놈들 하나하나의 속도와 힘은 얼마 전에 처리한 놈들과 비슷한 수준.
여섯이면 좀 버거울 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화르르륵.
콰아아앙!
스각.
검붉은 칼질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피하면 그만이었다.
자신은 신수 일족 중에서도 공간의 힘을 다루는 천랑(天狼)족, 짧은 거리의 공간 이동은 숨 쉬듯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결코 자신을 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우우웅.
“신수.”
“사냥.”
“개시.”
괴상한 말과 함께 놈들의 칼에서 뻗어 나온 검붉은 기운이 권능의 활용을 방해했다.
여섯 중 둘의 기운이 전신을 속박하고, 나머지 넷의 기운이 자신을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긍.
쾅!
“크르르르”
옆구리를 후려친 충격에 비틀거리는 순간, 어미가 쓰러졌을 때의 기억이 하나 더 떠올랐다.
– 권능 봉쇄.
놈들이 신수를 사냥하던 방법이었다.
왜 이걸 진작 떠올리지 못했을까.
순식간에 더러워진 기분을 떨쳐 내려 몸을 한층 빠르게 움직였지만, 점차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콰아아앙!
“컹!”
신경질이 났다.
몇 차례 타격을 받은 끝에, 티르는 로건의 당부도 잊고 본체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일단 이 속박을 끊어 내야 뭘 하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변신.”
“한다.”
“자중.”
그런데 놈들이 오히려 눈을 빛내며 공세를 늦추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살짝 마음에 걸린 티르가 멈칫한 순간.
스각.
가벼운 절삭음과 함께 티르의 움직임을 봉쇄하던 놈 중 하나의 팔이 떨어졌다.
“적!?”
쾅!
회색 오러를 번뜩이는 푸른 머리 짝눈 사내의 등장.
팔이 잘린 이를 포함, 티르를 옭아매던 검은 기사 둘이 새롭게 나타난 적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것을 본 티르는 변신하려던 것을 멈추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적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놈들?’
빅토르는 전면을 후려치는 충격에 황당함을 느끼며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처음 습격으로 이상한 기운을 뿜어내는 놈 중 하나의 팔을 잘라 낸 것은 쾌거였다.
그런데 그 후의 반응이 너무 이상했다.
마치 팔이 잘릴 걸 알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쪽 팔로 자신을 가격하는 놈.
알았다면 팔이 잘릴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이 말이 안 되고, 몰랐다고 하기엔 그 대응이 너무 빨랐다. 마치 그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라는 지침 같은 게 몸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팔이 떨어지는 상황에 대한 반복 학습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순간 뇌리를 채웠지만, 이내 다가온 검붉은 오러를 보며 빅토르는 마음을 비웠다.
“합!”
팔이 잘린 놈을 포함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놈은 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오러유저 중급 하나에 중급 둘이 붙는.
물론.
‘너희 기준에 말이지.’
빅토르는 그간 전투를 치러 오며, 자신의 특성을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고민을 거듭했다.
끝없는 재생력. 말은 좋지만 결국은 상처 회복이 빠른 것뿐이다. 넘치는 생명력으로 동급에 비해 강력한 포스를 가졌다는 것 정도는 쓸 만했지만, 그것도 친구인 로니안이 가진 7개의 혼이나 왕비님이 가진 불굴의 성채에 비하면 전투에서의 효율이 낮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화력의 단점을 메꿀 방법을 넘치는 회복력에서 찾았다.
“타압!”
쩌어어억.
빅토르의 검에서 뻗어 나온 회색빛 오러가 30m 전방을 일자로 갈랐다.
신검 비전 3식, 대지 가르기.
이내 튕겨 나간 적을 향해 다시 검을 겨누는 순간, 회색빛 응축된 빛줄기가 팔을 잃은 놈의 가슴을 향해 번개처럼 쏘아졌다.
신검 비전 2식, 금속 가르기.
꽈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틈을 향해 달려오는 다른 놈의 위로는 전신에서 쏟아 낸 회색빛 오러의 파도가 쏟아졌다.
신검 비전 1식, 파도 가르기.
그렇게 튕겨 나간 적들을 향해 다시금 회색빛 거인의 검이 휘둘러졌다.
그 둘 모두를 한 번의 공격으로 박살 내겠다는 생각으로.
꽈아아아아앙!
이것이 바로 그가 생각해 낸 최고의 공격법이었다.
힘의 분배 없이, 일격 일격에 전력을 소모하는 신검 비전의 연쇄.
그러나 이 사정을 모르는 적들로서는 알려진 경지를 상회하는 공격력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
“하다.”
투구 아래로 피가 잔뜩 흘러내리는 것에 비해 너무나도 멀쩡한 목소리.
그에 빅토르는 놈들이 그저 다친 척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거기다…….
‘왜 한마디를 둘이 나눠 말해?’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적들을 다시금 파랑참으로 튕겨 내자, 좌우로 나가떨어진 적들이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이상.”
“변수.”
그러면서도 하는 말이 소름 끼칠 뿐.
“니들만 하겠냐!”
빅토르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버럭 외치며 옆의 전장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이 괴상한 놈들 중 나머지 넷은 여전히 티르에게 붙어 있었지만, 상황이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밀리던 티르가 오히려 적들을 압도하기 시작한 게 확연히 느껴진 것이다.
‘할 수 있어!’
후딱 끝내고 로니안을 도우러 간다.
빅토르는 다시금 전력을 다해 놈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은 기사들은 서로 텔레파시라도 통하는지, 빅토르와 티르의 공격을 절묘한 협공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빅토르의 공격을 티르를 상대하던 놈이 갑자기 튀어나와 막는다든가, 그 반대의 경우라든가.
마치 그때 그 시점에 가장 적합한 놈들이 튀어나와 한 몸처럼 공방을 이어 가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빅토르와 티르의 동선이 엉켜서 몇 번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생겨나자 빅토르는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 대체 뭐야!?”
“크르르르.”
승기를 잡은 쪽에서 짜증을 내는 이상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검은 기사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활동 시간.”
“한계.”
“최후의 수.”
몇몇 놈이 또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이내 그들의 움직임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콰직.
티르의 이빨이 목을 파고드는데도 피하지 않는 놈.
푸우욱.
빅토르의 칼날이 가슴을 관통하는데도 피하지 않는 놈.
그리고 그 순간, 그 두 놈의 전신에서 솟구친 검붉은 오러가 빅토르와 티르의 전신을 속박했다.
“지……금.”
“이다.”
투구 사이로 울컥 피를 토해 낸 놈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황제.”
“폐하.”
“만세.”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성벽의 일각을 무너트리는 굉음이 요새, 아머의 전장을 가득 메웠다.
우르르르르릉.
‘뭐지!?’
어느새 피에 흠뻑 젖은 로니안의 시선이 소음의 근원지로 향했다.
다행이라면 힘이 빠진 그를 밀어붙이던 두 초인의 이목 또한 그곳으로 돌아갔다는 것.
그리고 그 소음의 근원지가 로니안의 정면, 그들의 뒤쪽이었다는 것은 정말 다시 없을 행운이었다.
‘기회!’
우우우웅.
로니안은 그 순간 남은 기력을 전부 끌어모아 검에 실었다.
얼마 전에야 간신히 터득한,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강의 일격.
애검 마네에 담긴 주황빛 오러가 일순간 7개로 갈라지며 전방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였다.
번쩍.
신검 비전 6식, 근원 가르기 7중첩.
“뒈져라!”
검에서 뿜어져 나온 석양빛 오러가 성벽을 뒤덮었다.
뒤늦게 실책을 깨달은 제국의 초인들이 황급히 도끼와 검을 휘둘렀지만, 그들이 내뻗은 오러블레이드는 그들이 있던 공간 자체를 뒤덮는 주황빛에 그대로 삼켜지고 말았다.
꽈아아아아아앙!
뒤늦게 이어지는 폭음.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성벽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의식을 잃은 것처럼 축 늘어진 몰골로 성벽 아래로 추락하는 자를 붉은 눈동자가 쫓았다.
‘죽었나? 살았나?’
마지막에 동료를 방패로 쓰다니, 판단이 빠르다고 해야 할까, 재수없다고 해야 할까.
로니안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쫓아갈 힘은 없었다.
“끄으으응.”
심장에서부터 느껴지는 짜릿한 통증에 심상치 않은 내상이 짐작됐지만, 감수할 만했다.
상급의 오러유저 둘을 상대로 거둔 승리다.
스스로도 얼떨떨한 와중에 둘 중 하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좀 전에 시선을 사로잡은 폭발이 더 궁금할 뿐.
‘티르, 빅토르……. 설마 당하진 않았겠지.’
로니안의 초조한 눈길이 폭발의 근원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