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15)
415화 ‘좋아!’
자신만만한 사람일수록 믿었던 것이 깨어지면 더욱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람의 장막을 찢어 버리고 다시 폭격을 시작한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이, 이게 다 뭐야!”
“으윽, 살려 줘!”
꽈아아아앙!
“아아악!”
실제로 패닉에 빠진 제국군의 전위가 제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하고 지리멸렬하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마도사들은 대마법을 조율하고 있을 테니 당장 오지도 못할 테고.’
만상붕괴로 마도사 중 한둘이라도 전투 불능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과한 기대일 것이다.
어찌 되었건 지금이 기회였다.
‘황제를 죽인다. 지금!’
번쩍.
허공을 꿰뚫을 듯 솟구친 황금빛 오러가 다시금 전장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오라, 제국의 개들아! 나, 로건 맥라인이 여기 있다!”
콰콰콰콰.
허공에 쏘아 낸 오러는 적들을 위축시키기 위한 퍼포먼스인 동시에, 아군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은근슬쩍 성벽에서 몸을 빼는 빅토리아와 클레이튼을 확인한 순간, 로건의 심장이 좀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부탁합니다, 클레이튼 공. 부탁한다, 리아.’
두근두근.
작전은 어찌 보면 간단했다.
하먼과 자신이 적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클레이튼과 빅토리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에일렌이 그들을 보조 겸 호위한다.
적들의 마도사는 대마법의 유지를 위해 후방에 있을 테니 직접적으로 공격해 오진 못할 것이다. 제롬이나 혹시나 추가되었을지 모를 한두 명의 초인은 그와 하먼, 그리고 동왕부의 초인 제이 펄슨이 저지하면 될 터였다.
그렇게 하먼이 신성 오러를 뿜어내고 자신과 제이가 전장에서 날뛰면, 두 마도사에 대한 존재감은 지워질 것이다. 그들이 준비할 비수는 보통의 전장이었다면 극히 비효율적이고 의미 없는 수에 불과했겠지만, 황제라는 ‘약점’이 있는 현 제국군에게는 치명적인 한 수가 될 수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황제만 죽이면 돼.’
그것을 위해 전장의 시선을 계속 성벽에 묶어 두어야 했다.
로건은 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검을 휘둘렀다.
“적장…… 끄르륵.”
스각.
“왕이…… 끄아악!”
쩌어억.
“전부 덤벼라! 내가 여기 있다!”
쩌렁쩌렁한 고함과 함께 황금빛 휩블레이드가 사방 이십여 미터를 자유자재로 누비며 희생자를 양산했다.
“누, 누가 좀 막아 봐!”
“아아악!”
“끄르르륵.”
검격 하나도 막지 못하는 판에, 궤도를 예측할 수 없는 휩블레이드의 움직임은 제국군에게는 재앙 그 자체였다.
그렇게 주변을 초토화하면서도, 로건의 시선은 흘깃흘깃 전장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혹시나 모를 변수를 찾는 맹수의 눈빛.
그 눈빛이 저 멀리,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한 하먼의 모습을 포착했다.
‘이제 정신을 차렸나.’
창백한 안색이 다소 불안해 보였지만, 다행히도 헛짓거리를 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덤벼드는 적들을 베고 또 베는 모습만이 보일 뿐.
스각.
쩌어억.
“아아악!”
“오러!?”
“초인이다!”
다만 유감인 것은, 애초에 의도했던 것처럼 신성 오러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힘을 절제한 검격에 보이는 신성 오러는 지극히 희미하기만 했다.
전쟁 직전까지 호언장담하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극도로 힘을 아끼는 모습.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크게 다친 사람 같기도 했다.
‘꿍꿍이가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물론 오러를 쓰고 있는 만큼 주변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전쟁 직전에 보인 폭발적인 신성력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활약이었다. 저래서야 제국 측에서 신성 오러를 눈치채기도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와중에 다행이라면, 하먼이 아닌 다른 쪽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시선을 끌어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이서스! 얼굴을 보여라! 제국의 황제가 숨어만 있을 셈이냐!”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금발 벽안의 중년 사내.
그 말에 눈이 뒤집힌 제국 기사들이 덤벼들었지만, 그의 주변에 휘몰아치는 특이한 형태의 불꽃 마법은 좀처럼 그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아아악!”
한 번의 손짓으로 서넛의 기사, 혹은 십수 명의 병사를 불태우고.
스각.
“이런 쥐새끼 같은!”
기사들의 포스가 실린 공격도 붉은 불꽃의 방패로 튕겨 내거나 마법사답지 않은 쏜살같은 움직임으로 피해 내는 이.
마법사와 기사를 적절하게 섞어 놓은 듯한, 너무나도 효율적인 그 전투 방식은 경지조차 뛰어넘는 파괴력을 발휘하며 이목을 끌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동익왕!?”
“반역자 제라드다!”
“죽여라!”
일부 기사들에 의해 신분이 밝혀지고부터는 그야말로 근방의 모든 제국 기사가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제국 기사들.
– 반역자를 죽이는 공은 내 거다!
그 투구 속 표정들을 안 봐도 알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였다.
“반역자의 목을 쳐라!”
“그 목은 내 것이다!”
“누구 맘대로!”
서로 경쟁하듯 포스를 피워 올리는 최상급기사들이 다섯이나 그를 향해 몰려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옆에선 붉은 오러를 빛내는 기사 한 명이 제라드에게로 향하는 치명적인 공격을 모두 막아 내고 있었다.
“오, 오러!?”
“오러유저가 또 있다!”
“젠장!”
전(前) 사방왕, 현(現) 반역자.
제라드, 그리고 그 곁에 있는 오러유저의 등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로건 이상으로 시선을 끌었다.
‘대륙제일검보다야.’
‘이쪽이 쉽지.’
‘반드시 잡는다!’
처치 시 얻을 공에 비해 들일 수고가 적다는 것.
그것이 수많은 불나방을 불러 모았다.
화르르르륵.
퍼어어어엉.
“아아악!”
“죽여!”
“죽어라!”
주연은 예상과 다르지만 그 내용은 비슷한 무대가 전개되고 있으니 안심이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제발 부탁한다, 리아.’
로건이 지금쯤 내성의 지하로 향하고 있을 세 사람을 떠올릴 때.
“목표.”
“확인.”
그의 눈앞으로 온통 새카만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뭐지, 저놈들?’
처음에는 그저 일반적인 기사 수준으로 보였지만, 가까워질수록 무섭게 올라가는 속도와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다 놈들이 그의 공간 안에 들어오는 순간.
우우웅.
“황제.”
“폐하.”
“만세.”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 열다섯의 몸에서 동시에 검붉은 오러가 솟구쳤다.
* * *
“와, 왕비님, 처, 천천히……. 끄, 끄륵.”
“왕비님, 더 빨리요! 더! 더!”
사제의 상반된 목소리가 에일렌의 귓가에 번갈아 울렸다.
물론 에일렌은 그중 젊은 쪽의 말을 받아들여 발에 한층 힘을 더했다.
“으아아!”
“좀만 더!”
그에 목덜미를 잡힌 채로 끌려가는 마도사들의 안색이 더욱 하얗고 붉게 변해 갔다.
아무리 마력(Mana Force)을 터득해 기사에 준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마도사라지만, 정말 초인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더구나 그녀 고유의 비기, 깃털 걸음을 응용한 에일렌의 속도는 이제 맥라인에서도 따라잡을 자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
‘좀 더 빨리!’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전장이었기에 전황 확인은 필수였다. 혹시나 적 마도사들이 대마법에 관여치 않고 튀어나오거나, 새로이 합류된 초인이 예상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런 상황이라면 기존의 계획을 포기하고 수비에 몰두하기로 남편과 약속했었다. 물론 정작 전투가 시작된 이래 확인된 초인의 수가 생각보다 적은 탓에, 지금은 괜히 성벽에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건 남편의 상상치 못한 일격으로 전황은 순식간에 맥라인으로 기울었다.
그 덕에 충분히 유리해진 상황에서 최후의 한 수를 쓰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인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기분 탓일 것이다.
자경단이 제국 중앙군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지만, 성벽 위에서 석궁을 쏘아 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나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에일렌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한창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예 기사 수십을 지나쳐 그대로 내성의 지하 광장에 들어섰다.
과거에는 감옥으로 쓰였던 모든 시설을 철거하고, 오직 대마법진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광장이었다.
“서, 서둘러요!”
십여 분 만에 사람 둘을 붙잡고 수 킬로미터를 내달린 에일렌이 가쁜 숨을 내쉬며 두 마도사를 마법진의 중앙으로 던졌다.
“으아악!”
“스승님, 집중!”
덩치와 반비례하는 간덩이를 증명한 클레이튼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착지하는데, 빅토리아는 오히려 화색이 도는 얼굴로 재빨리 품 안에서 웬 왕관을 꺼내 썼다.
지배자의 왕관(The Crown of Ruler).
그란디아 왕국의 보물이자 국왕의 상징.
그리고 현 맥라인 왕이 즉위식 때만 쓰고 내버려 둔 아티팩트.
5서클 배리어와 4서클 피로 감소 및 해독 마법이 기본으로 장착된 최고의 아티팩트였지만, 최근에 또 다른 기능 하나를 더 확인한 참이었다.
바로.
‘그랑의 대마법진의 능력을 일부 차용할 수 있는 기능.’
빅토리아는 이를 질끈 물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랑의 대마법진을 그대로 복사한 이 마법진에도 왕관의 효과는 적용될 것이다. 물론 그 힘은 대마법진의 전력에 비하면 극히 일부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왕관을 쓴 이가 마도사급 마법을 한 번은 쓸 수 있을 정도의 힘은 만들어 낼 수 있을 터였다.
더군다나 그 힘을 빌리는 사람이 애초에 마도사라면, 그리고 대마법진의 바로 위에서 사용한다면 그 몇 배의 힘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성벽 강화 마법진, 활력 마법진, 약화 마법진은 절대 못 건드려. 마법 방어진……은 혹시 모르니까, 정신 방어진의 힘만 조금 빼서.’
우우웅.
빅토리아의 인도에 따라 거대한 마나가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여 자신의 마력으로 가공했다.
일시적으로 체내에 엄청난 힘이 흘러들며 부하를 일으켰다.
까드득.
빅토리아는 이를 갈며 통증을 이겨 내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침중한 안색의 스승, 클레이튼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절대,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알고 있지?.”
끄덕.
목소리를 내어 대답할 여력은 없었다.
핏발 선 제자의 눈을 본 클레이튼이 조용히 자신의 마력을 끌어 올려 제자의 의식을 유도했다.
잠시 후, ‘바람’과 ‘대지’의 속성을 깨달은 마도사의 힘이 대지와 바람을 타고 그들의 의식을 적진의 후방으로 옮겼다.
넓고도 깊은 진영.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하며,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마나에 덮여 있는 막사.
그리고 그 입구를 막고 있는 외눈의 기사.
그 광경이 둘의 심상에 보였다.
‘제롬 디카이드.’
‘예상 범위 내예요.’
굳이 초인을 상대할 필요는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차피 목적을 위해선 상대할 수밖에 없지만, 초인을 ‘먼저’ 상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 막사를 우회하여 우르르 지나가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천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로브를 입은 이들.
‘제국의 마법 병단.’
그들이 우수수 지나치더니, 그중 한 사람이 제롬의 앞에 섰다.
‘갈렌 디카이드.’
삭풍의 마도사가 제롬의 어깨를 두드리며 뭐라 말을 건네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조카손자를 남겨 두고는 빠르게 전장으로 향했다.
‘잘됐어.’
그리고 그들이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는 순간.
‘지금!’
‘예!’
제롬 디카이드의 앞에서 사람만 한 크기의 골렘이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