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16)
416화- 절대 막사 안에 들어서지 마라. 너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이번에도 실수하면 가문의 이름으로도 널 구해 주지 못한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제롬은 좀 전에 격려랍시고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간 숙조부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얼굴만 보면 자신의 또래라고 봄 직한 마도사는 핏줄에 대한 정보다 가문이 우선일 뿐이었다.
제국의 신성이라 불릴 때에는 ‘역시 내 조카손자야, 으하하하’ 하며 등을 두드리던 사람이 이제는 가문의 수치 취급을 하고 있으니.
‘이것도 가문 덕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황제가 자기 자식을 죽이려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스승이 적에게 패사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두 가지 이유가 맞물려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황제가 거하는 막사의 호위병.
전장의 상황이 생각처럼 풀리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 한들 제국군이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실수할 수 있을까.
그저 나라의 대계가 펼쳐지는 이 시기에, 오러유저로서 경비병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정녕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바로스 전하…….’
충성을 맹세한 대상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은 그 대가를 이렇게 치르고 있었다.
물론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의 도리를 떠나서, 만약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그 패륜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양쪽을 다 만족시킬 방법이 없었을까.’
그런 방법 따윈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곱씹게 된다. 제롬은 긴 한숨을 내쉬며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 우와아아아!
콰아아앙.
– 아아악!
꽝!
비명과 고함, 폭음이 난무하는 전장.
금룡의 문장이 지워진 전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불꽃의 문양뿐이었다.
‘맥라인…….’
우습게도, 바로스 황자에게 충성을 맹세한 곳이 저 맥라인이었다. 한데 지금 맥라인 원정에서, 자신이 이 꼴이 되어 있는 모습은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 막막하기만 한 질문은 자연스레 몇 년 전 황실에서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욱신.
이미 아문 오른쪽 눈의 상처가 쓰려 오는 기분.
‘로건 맥라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까드득 이가 갈렸다.
당시에는 초인도 아니었던 애송이가 만들어 놓은 치명적인 상처.
그때의 상처가, 그때의 패배가 제국의 신성이라는 이름을 빼앗아 갔다.
그 대신 새로이 떠오른 이름이 그란디아의 별, 그리고 이제는 맥라인의 태양을 넘어 아예 대륙제일검이라고 불리는 저 소국의 왕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차이가 벌어졌을까.
아니면.
‘……원래부터 차이가 컸던 걸까.’
불과 서른의 나이에 오러를 깨치고 자만심이 넘치던 시절.
이십 대 초반에 불과했던, 오러유저도 아닌 최상급 포스유저는 그저 훈계의 대상일 뿐이라고 여겼다. 자신도 20대 중반 즈음에는 달성한 경지인 만큼 큰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 방심하지 않았다면…… 아니, 아니지. 아직도 스스로 변명이나 하고 있구나, 제롬.’
대련 시작 때는 방심했지만, 얼굴에 상처를 입은 이후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졌고, 오른쪽 눈을 잃었다.
반면에 그자는 어떠했던가.
과거의 그때를 떠올리니 여전히 격정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쪽 눈을 잃은 아픔은 그만큼 생생했던 것이다.
하나 남은 눈을 감으니 그때의 광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폭풍처럼 쏟아지던 놈의 검격.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은 특성, 절대 시야(Absolute sight)의 진정한 활용법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가 막힌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놈은 시야를 가리는 수를 쓰고, 결정적인 일검을…….
뻐어어어억!
‘무슨?!’
갑자기 턱에 둔탁한 충격이 느껴지더니,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상이 이상하게 실감 난다는 착각과 함께, 제롬의 의식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자신이 행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는 입을 헤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쉽다니? 초인이?’
너무 놀라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집중이 깨질 정도였다.
‘정신 차려!’
‘예, 옛!’
마력으로 연결된 스승의 호통이 아니었다면 정말 모든 작전이 무산되어 버렸을 뻔한 순간이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자 턱이 부서진 채 꿈틀거리는 제롬 디카이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끝장을…….’
‘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자 자신(골렘)을 향해 달려오는 기사들과 이쪽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모두가 놀란 표정인 것은 확실했다.
서둘러야 했다.
‘칫!’
초인을 상대할 수 있는 자신의 골렘이라지만, 이 상황에서는 장시간 유지하는 것도, 100% 위력을 내는 것도 어렵다.
빅토리아는 최대한 감각을 집중시켜 골렘과 동조율을 높여 갔다. 달려드는 기사 셋을 박살 내는 데에는 그 상태로도 불과 수 초면 충분했다.
‘시간을 끌지 마!’
‘알고 있어요!’
다행히 다른 모든 초인은 이제 전장에 있다. 황제에게 호위가 있다 해도 이 골렘을 막아설 수는 없다.
빅토리아는 그런 확신을 안고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드넓다고 할 수 있는 막사의 중앙, 황금빛 갑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홀로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머리, 노란 피부.
그것을 확인하는 즉시 빅토리아는 골렘과의 동조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자신을 바라보는 황제의 눈동자가 커지고, 주변의 소리도 조금씩 들리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중저음으로 깊게 깔리는 황제의 목소리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용이 좀 이상했다.
피식.
“재밌구나.”
재밌다고?
살벌한 미소를 머금은 황제는 분명 그리 말했다.
그에 찜찜한 예감이 든 빅토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는데.
‘빨리!’
스승의 재촉이 다시 현실을 일깨워 줌과 동시에 막사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빅토리아는 골렘을 조종해서 황제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그래. 찜찜하고 자시고 다 필요 없다.
‘여기서 황제를 죽이기만 하면…….’
그 의지를 받든 골렘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돌진했다.
‘끝이다!’
진갈색의 강력한 마력이 담긴 골렘의 주먹이 황제를 후려치려는 순간.
골렘의 동작이 그녀의 의지를 벗어나 우뚝 멈춰 섰다.
“골렘이라……, 더군다나 이렇게 원거리에서. 골렘 학파라더니, 제법이구나.”
내용과는 달리 비웃는 티가 역력한 어조.
작은 손짓 하나로 골렘을 멈춰 세운 황제였다.
그리고 빅토리아는 그제야 처음에 느꼈던 찜찜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드넓은 막사 중앙에 혼자 서 있던 황제.
그의 발밑으로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거대한 마법진의 흔적이, 그 엄청난 마력이 그제야 그녀의 감각에 인식되었다.
커다란 마법진의 구석구석 박힌 엄청난 크기의 마정석이나 강렬한 빛을 내는 범상치 않아 보이는 아티팩트들.
그 모두가 서서히 마법진에 녹아드는 모습도 그제야 확연히 보였다.
‘도대체 이 마법진 하나에 얼마를 쏟아부은 거야!?’
골렘의 감각에 동조하느라 둔해진 기감이 그제야 작동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마법진을 조율하는 마력의 주인이었다.
‘대마도사?!’
골렘에 눈이 있다면 이 순간 몇 배는 커졌을 것이다, 황제의 무위에 대한 정보는 그야말로 전무한 상황.
하지만 그 누구도 황제가 초인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금의 황제는 세수 50을 넘어서는 지금까지 보통 사람처럼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 왔다.
그뿐만 아니라 역대 황제들 대다수가 보통 사람처럼 늙어 갔고, 수명이 다해 죽었다. 세간에 전해진 소문과 달리, 제국 황실에 오러나 마법에 대한 특별한 비전이 없다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황제가!?’
스승 역시 당황했는지, 동조가 깨어지며 주변의 지형지물이 일순간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 안 되지. 집중하시게들.”
화아악.
황제가 그리 말한 순간 골렘에서 멀어지려던 의식이 강제로 선명해지며 확장되었다.
“어디 보자……. 아하,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군. 어쩐지…….”
끈끈한 마력이 자신들의 영혼을 잡아끄는 느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대체 어떻게?’
사제가 동시에 당황하는데, 그 감정을 읽었는지 황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7클래스에 도달하려면 영혼에 대한 이해가 필수지. 새겨 두도록 해, 후배님들. 아, 물론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지만.”
딱.
황제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골렘의 몸이 저절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도사 둘의 영혼과 마력이 제 발로 내 손에 들어와 준 덕에 시간을 꽤 단축할 수 있겠구나. 고맙다.”
무슨 뜻일까?
의아해하던 순간, 빅토리아는 막사 안에 있던 거대한 마법진의 전체를 강제로나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 마법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초거대 규모의 파괴 마법. 이걸 혼자……!?’
‘뭐라고?’
골렘을 계속 허공에 띄우고 있던 황제가 마치 독백하듯 덤덤한 어조로 물었다.
“금룡이 왜 제국의 상징인지 아느냐?”
우우웅.
‘윽!?’
‘이, 이건!?’
골렘의 일부가 부서져 나가며 서서히 마법진 안에 녹아들었다.
문제라면, 클레이튼과 빅토리아 역시 골렘이 파괴되는 만큼 통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대의 골드 드래곤은 용 중에서도 가장 현명한 존재로, 모든 마법에 통달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골드 드래곤 중 최고의 용은 신룡이라 불리던 용들의 지배자였다고 하지.”
덤덤한 황제의 표정과 다르게 빅토리아와 클레이튼의 심정은 다급해져만 갔다.
‘안 돼!’
‘이런 젠장!’
골렘에 사로잡힌 정신과 마력이 그대로 마법진에 녹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빅토리아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다며 고맙다 했던 황제의 말뜻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제물.
이것을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었다.
그것도 카일 성을 파괴하기 위한 대파괴 마법의 제물.
이미 배치된 거대 마정석들과 아티팩트들 역시 빠른 속도로 녹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고대의 대마도사 타론 아레스 님은 용들이 사라진 시대에서 용의 화신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마법에 통달한 대마도사이셨다. 그 힘의 일부를 대대로 전승하는 방법까지 개발하셨을 정도로.”
황제의 말 따위는 이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황제의 마력에 영혼까지 사로잡힌 그들은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우우웅.
비록 그 발악은 골렘의 파괴를 조금 늦추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분은 또한 인류를 제물로 삼아 ‘대악마’를 불러내려던 이들을 물리치고, 진정한 의미의 인류 해방을 이끌어 낸 영웅이셨지. 즉, 그 핏줄과 힘을 이어받은 우리 아레스 황족,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나야말로 인류의 적법한 지배자인 것이다. 그러니…….”
파지지직.
골렘의 전신을 감싼 푸르스름한 마력이 골렘을 강제로 분쇄하기 시작했다.
“너희의 같잖은 발악에 내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 이 어리석은 것들아!”
일그러진 얼굴로 고함을 내지르는 황제에게서 지극한 분노가 느껴졌다.
스스로 침략해 놓고 그 정당한 반항에 분노하는 이.
하지만 그 표정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제 사라져라. 그리고 영혼이 분쇄되는 고통 속에서 그 죄악을 참회하라.”
그그그그극.
‘아악, 제, 젠장!’
‘리아! 정신 차려라!’
영혼이 갈려 들어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그들이 절규하는데.
“너희들의 비명이 맥라인 멸망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정당한 대계를 일그러트린 네놈들, 특히나 맥라인 일족과 그 주도자들의 씨를 말려 주마.”
황제의 선언하는 듯한 말과 함께 골렘이 마법진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막사를 가득 채운 마법진에서 푸른 빛줄기가 막사 지붕을 뚫고 하늘까지 꿰뚫을 듯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