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이놈들, 뭔가 이상하군.’
처음 봤을 때부터 기이한 느낌을 주는 놈들이었다. 마치 인간을 흉내 내 만든 껍데기에다 영혼을 억지로 끼워 맞춘 듯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랄까.
심지어 놈들이 오러를 뿜어내는 순간부터는 영혼이 흔들리며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눈에 선명히 보였다.
저런 식으로 영혼을 ‘소모’하는 일이 가능했던가?
신기하기도, 소름 끼치기도 했지만, 막상 그리 위험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버티기만 하면 알아서 죽을 놈들로 보였으니까.
그랬기에 로건은 오러유저 중급으로 추정되는 이들 열다섯이 그를 포위했을 때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공격은 시작부터 특이했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검붉은 오러가 실린 검을 휘두를 듯하던 놈들. 그들 중 가장 앞에 섰던 다섯이 자리에 멈춰 서더니, 갑자기 그를 향해 검을 겨눴다.
우우웅.
‘음?’
로건이 그 뜻밖의 움직임에 당황한 것도 잠시.
검에 서린 오러가 희미한 아지랑이의 형상을 띠더니, 이내 실타래처럼 분화하며 그의 전신을 옭아맸다.
마치 오러가 아닌 마법과 같은 움직임.
동시에, 포위망을 구성한 다른 열 명의 검에서 검붉은 오러가 직선으로 쭉 뻗어 나왔다.
‘하!?’
어떤 기합이나 신호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사 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모습에 로건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채챙!
쾅!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붉은 오러들은 로건의 전신을 휘감은 황금빛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검은 아지랑이 같은 속박도, 살상력을 극대화한 듯한 검붉은 오러블레이드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요즈음 들어 더욱 강력해진 휩블레이드가 사방 20여 미터의 공간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공에서 뱀처럼 휘어지는 그 움직임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마치 로건의 주위에 황금빛 벼락이 치며 적들의 공세를 튕겨 내는 것 같았다.
‘이거……?’
하지만 그 공격의 위력과는 별개로, 검은 기사들의 움직임이 로건의 눈에 거슬렸다.
‘검혼의 검술?’
얼마 전 겪었던 제국 최강자의 기본 검술이 검은 기사들의 검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다만, 확실히 이상한 점은 있었다.
‘응용이 안 되는 건가?’
척.
발을 내딛는 동작에서부터 팔을 뻗는 각도가 완벽했다. 휘어지는 검에서 뿜어지는 검붉은 오러는 확실히 위력적이었다.
동작에 낭비가 하나도 없는, 완성도 있는 검술.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스르륵.
채채채챙!
황금빛 채찍 같은 휩블레이드가 자유롭게 휘어지면서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격을 모조리 튕겨 냈다.
하지만 그 후 로건이 일부러 반격하지 않고 놈들을 지켜보자, 주르륵 밀려 나간 놈들이 다시금 쇄도하며 좀 전과 똑같은 공격을 퍼부었다.
마법인지 오러인지 모를 수법으로 자신의 몸을 묶으려고 하는 놈들 역시 마찬가지.
이 검은 기사들은 그것이 지상 과제인 양 여전히 줄기차게 검붉은 실 같은 아지랑이를 뿜어내며 로건을 압박하려 했다. 자신들의 공격이 로건에게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같은 상황에서는 같은 수법만 쓴다? 인형인가?’
물론, 이 정도만 되어도 하수들은 반항 한 번 못 하고 즉사할 테지만.
어쨌거나 이건 사람이 아닌 전투 인형이라고 봐야 했다.
‘초인을 흉내 내는 병기라. 하지만 이 정도 전투력에 시간제한까지……. 고작 이런 게 제국의 비밀 병기인가?’
혹시 엄청난 숫자로 찍어 낼 수 있는 놈들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도, 검붉은 오러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게 다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이만 끝내자.’
동일한 검술을 한 몸처럼 쏟아 내는 합격진은 분명 강력했지만, 조금만 무리를 한다면 못 깰 것도 없었다. 응용이라곤 전혀 못 하는, 진짜 인형에 불과한 놈들이라면 어쩌면 조금도 다치지 않을 수도 있다.
놈들에 대한 정보를 다 파악했다 확신한 로건은 방어로 일관하던 태세를 전환했다.
파바바박.
콰콰쾅!
허공에 황금빛 방어막과 벼락을 생성하며 공세를 튕겨 내던 휩블레이드가 사라지는 순간, 검붉은 오러블레이드들이 가운데 있던 로건의 몸을 꿰뚫었다.
이내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로건의 몸을 보며 검은 기사들이 아주 잠깐 움직임을 멈출 때였다.
“역시…….”
스각.
비웃음과 함께 검은 기사 둘의 목과 하나의 팔이 떨어졌다. 오러를 이상하게 변용하여 움직임을 제약하려 하던 이들에게 갑자기 벌어진 재앙이었다.
하지만.
“뒤!”
비명도 없이 적의 위치만을 가리키는 놈들.
둘의 목이 떨어지는 사이 나머지 셋이 순식간에 반응하는 것이 신기했지만, 그뿐이었다.
“……정말 인형들인가.”
동료의 죽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 검을 겨누는 모습은 일견 기괴하기까지 했으나, 로건은 이제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귀신 그림자의 잔영만으로도 농락 가능한 놈들이라면 그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 순간 검은 기사들의 눈빛도 일변했다.
“열다섯으로도.”
“무리.”
“끝낸다.”
동시에 놈들의 영혼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이 로건의 감각에 잡혔다. 반면 놈들의 기운은 폭증하기 시작하는 것도.
우우웅.
직접적인 공격을 포기한 듯, 남은 열셋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기운이 순식간에 로건의 전신을 압박해 왔다. 휘둘러지는 검, 번뜩이는 휩블레이드로도 쉽게 끊어 내기 힘들 만큼 촘촘한 오러의 그물이었다.
‘씁!’
로건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지는 순간.
최근에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하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그가 어찌 메시지를 보내 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금세 사라졌다.
로건은 잠시 묻어 뒀던 과거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죽음이 다가온 순간 자폭을 서슴지 않던 귀신들의 모습.
그때 놈들은 분명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완전히 다르다.
‘고작 그 정도로는…….’
인원 차를 감안하더라도 자신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본인도. 죽을 뻔.]이어진 하먼의 메시지에 로건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기사들의 갑옷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상태로 속박을 유지한 채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 또한.
‘칫!’
동시에 로건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솟구치며, 검붉은 빛과 황금빛이 한순간 섞여 들었다.
–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폭발 이후, 한 박자 늦게 이어진 엄청난 폭음이 전장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쪽 성벽이 아닌, 남쪽과 북쪽 성벽에서 접전을 벌이던 제국군과 맥라인군까지도 순간 돌아봤을 정도였다.
그 진원지 근처에 있던 이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충격파에 찢겨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드넓은 서쪽 성벽의 가운데가 무너져 내렸다.
“아아악!”
“성벽이 무너진다!”
“피, 피해!”
중심이 폭파된 탓에 V자로 무너져 내린 성벽은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만들어 냈다.
맥라인군에게는 재앙이었고, 제국군에게는 기회였다.
양 진영의 희비가 엇갈린 그 순간.
“폐, 폐하가 계시던……!?”
한 맥라인군 기사의 경악 어린 외침에 무너지지 않은 성벽 좌우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던 맥라인 병력 대다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이내,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서 황금빛 상서로운 빛살이 솟구쳐 올랐다.
‘빌어먹을.’
로건은 오러를 퍼트려 솟구치는 먼지와 잔해들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포스, 심장에서 여력을 쥐어짜듯 떨리는 포스코어는 그렇게 힘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웅웅거렸지만.
‘사기가 꺾이면 끝이다.’
로건으로선 다분히 의도적인 퍼포먼스였다.
다행히도 그 의도가 먹혀들었는지 성벽 위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폐하께서 건재하시다!”
동시에 폭발의 진원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 추락한 다수의 기사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것도 보였다.
그 주변으론 이미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든 자경단과 병사들의 시체들이 무수히 널려 있었지만, 맥라인군은 로건이 멀쩡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기를 되찾았다.
물론, 당사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순간 소름이 돋아 로건은 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악물었다.
최근 자신의 실력이 빠르게 향상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공간참의 권능을 전신으로 발휘할 수 없었더라면 정말 이곳에서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먼.’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귀신의 자폭 수준을 짐작하여 공간참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역시, 빅토르의 걱정이 과한 거였어.’
로건은 하먼이 있을 오른쪽 성벽을 흘낏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자신이 쓸어 내 버린 흙먼지 사이로, 흉흉한 눈빛을 번뜩이는 제국군들이 보였다.
“적장이다!”
“죽여라!”
“성벽이 무너졌다!”
“돌진하라!”
두서없이 터져 나오는 고함들.
성벽이 무너진 참사에 맥라인의 폭격이 잠시 멈춘 틈을 타, 제국군은 무너진 성벽 틈새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앞에서 로건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그들을 마주 보며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기사들은 진형을 갖춰라! 내가 선두에 서겠다!”
허공으로 솟구치는 황금빛.
그 빛이 다시금 맥라인 병력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추락 속에서도 살아남은 기사들이 비틀거리면서도 로건의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제국 놈들은 성안에 단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할 것이다! 전력으로 놈들을 막아라!”
“예!”
기사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수만 명의 적군.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로건을 포함한 100여 명의 기사가 전부였다.
위쪽 성벽의 3분의 1이 무너졌다지만 V자로 갈라진 끝은 고작 성문의 너비 정도였기에, 그 모습은 마치 뚫린 제방의 구멍으로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하지만.
– 우리에게는 로건 폐하가 계신다.
– 대륙제일검.
– 맥라인의 태양.
기사들의 시선은 선두의 군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더구나 성벽이 무너졌다 한들 그들이 선 위치까지는 대마법진의 범위 내. 몸에 활력을 더해 주는 마법진의 효과는 충격을 받은 기사들의 컨디션 회복을 빠르게 보조하고 있었다.
더불어 다른 수단도 존재했다.
추락으로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맥라인의 기사들은 그 수준을 떠나 모두가 저서클의 아티팩트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저마다 발동한 아티팩트들이 그들의 몸을 감싸며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끌어 올려 주었다.
선두에 서 있는 대륙 최강의 군주와 약화 마법진. 그리고 아티팩트.
– 막아 낼 수 있다!
기사들의 마음속에 무모한 자신감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진군해 오는 적들 사이로 각양각색의 로브를 입은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스피드 업(Speed up)!”
“아머(Armor)!”
“샤프니스(Sharpness!)!”
우우우웅.
마치 푸른빛의 홍수처럼.
그들이 쏟아 내는 마법이 제국군의 최전방에 쏟아졌다.
돌진하는 속도가 가일층 빨라지고, 흙의 마나가 갑옷 위에 더해져 방어력을 끌어 올렸으며, 각자의 무기가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저 정도면 아티팩트나 약화 마법진의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지 않을까.
자신만만하던 맥라인 기사들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런 그들의 앞으로 제국의 마도사들이 기사들을 제치며 질주해 오고 있었다.
“검혼 각하의 원수를 갚아 주마!”
은빛 로브를 걸친 희끗희끗한 금발의 잘생긴 마도사.
그의 손에서 쏟아지는 마력이 금세 차가운 바람(朔風: 삭풍)이 되어 로건의 사방을 조여 오고.
“이번에는 반드시 박살을 내 주마!”
은발에 에메랄드빛 눈을 한 미녀가 일전의 수치를 갚으려는 듯 전방을 통째로 얼려 버리는 새하얀 마력을 쏟아 냈다.
“그대로 뒈져라!”
꿀렁이는 땅을 미끄러지듯 달려온 뚱뚱한 중년 여인이 험한 입만큼이나 거칠게 로건의 발아래 지면을 흔들며 그를 구속하고.
“끝이다!”
표독스러운 인상의 중년 여인이 허공에서 엄청난 물을 쏟아 내며 삭풍의 군세와 빙하의 마력에 물리력을 더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제국 최고의 마도사 4인방의 합동 마법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그 뒤에서 허공을 날아 뛰어내리는 신원 미상(?)의 은발 용병, 헤이먼과 금발의 젊은 오러유저가 없었다면 말이다.
“흐아압!”
“어딜!”
은빛과 붉은빛의 오러가 합동 마법을 위쪽에서부터 깨트리는 순간.
쾅!
로건은 검을 지면에 내려찍는 것만으로 지진을 부숴 냈다.
“컥!”
그러고는 왈칵 피를 토해 내는 뚱보 마도사를 무시한 채 허공을 향해 검을 들었다.
이내 삭풍과 빙하, 해일이 섞인 마법의 조화를 교란하는 은빛과 붉은빛 오러 사이로 햇살을 닮은 황금빛 오러가 찬란히 퍼졌다.
쩌어어어억.
콰아아아아앙!
합동 마법이 깨지고, 튕겨 나가는 마도사들의 인상이 찡그려졌지만.
“어림없다!”
고함을 지른 삭풍의 마도사를 필두로, 그들은 또다시 저마다 마법을 구성하며 로건을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새하얗고 푸른빛이 로건의 눈앞에서 어지럽게 섞이며 다시금 전면을 뒤덮는 강대한 마법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 뒤에서 밀려오던 제국의 대군까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바로 그때.
‘지금.’
로건은 아끼고 아껴 두었던 최후의 수를 꺼내 들었다.
우우웅.
그의 심장에 자리한 8개의 포스코어가 진동하며 또 하나의 핵을 토해 내고, 이내 9개로 늘어난 포스코어가 일제히 공전하며 바닥을 치던 포스를 다시금 최대로 증폭시켰다.
한껏 고양된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드높은 격을 품고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할 수 있다.’
로건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감에 고취되는 순간.
번쩍!
전장을 환하게 밝히는 빛줄기가 제국군 본영에서 솟구쳐 올랐다. 마치 하늘을 받치는 기둥처럼 거대하고 웅장한 푸른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