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아, 안 돼!’
황제의 마법진에 휩쓸린 빅토리아는 비명을 질렀다.
마력과 함께 정신이 녹아내리는 느낌.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거력에 사로잡혀 몸부림을 치던 그녀는 이내 패배를 직감했다.
‘이건 어쩔 수 없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거란 무력한 느낌이 전신을 엄습해 왔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무력감이 최악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또래에 비해 똑똑했기에 더욱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어린 시절. 자신보다 4살 더 많을 뿐인 오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던 그때.
차라리 내가 없으면 오빠가 더 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삶을 포기하려 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극복해 냈다.
은인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노력으로.
‘그런데 고작 이런 곳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어.’
아무리 거대한 마법이라 한들 그때 느꼈던 세상의 무게보다 막막하지는 않았다.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그 시절의 기억, 그 각오가 아득히 멀어지려던 빅토리아의 정신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작은 의지가, 그녀가 지니고 있던 왕관을 통해 그녀의 몸이 존재하는 대마법진의 힘을 움직였다.
우우웅.
다섯 개의 마법진 중 정신과 영혼을 보호하는 마법진의 힘이 그녀의 영혼에 힘을 보탰다.
‘으으으.’
‘스승님!’
그리고 그녀의 영혼을 통해 동조화했던 스승, 클레이튼의 정신까지 되돌렸다.
‘부끄럽구나. 내가 먼저…….’
‘지금 그런 말씀 하실 때가 아니에요! 집중하세요!’
‘……그래.’
우웅.
두 사람 역시 마도사였다.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황제보다 부족하다고는 하나, 일단 정신을 차리는 순간 다시 마력의 흐름에 휩쓸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자 솟구치는 푸른빛 속에서 희미한 갈색의 마력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마법의 흐름에서 벗어나 몸으로 돌아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듯했다.
그렇게 클레이튼이 정신을 더욱 집중하는 순간, 빅토리아가 딴죽을 걸었다.
‘그냥 돌아가서는 안 돼요!’
‘뭐?’
‘이 마법, 그냥 두면 성과 우리 군에 큰 타격을 입힐 거예요!’
사실 터무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아무리 7서클의 대마도사가 쓴 마법이라고는 해도.
커다란 마정석과 수많은 아티팩트들의 힘이 더해졌다고는 해도, 결국 일개인이 만든 마법이다.
그런 마법이 성을 날려 버릴 수 있다면 군대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빅토리아는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마법이 성을 완전히 박살 내거나 군대를 모조리 분쇄하지는 못하더라도, 분명 치명적인 일격을 쏘아 낼 것 같았다. 자신의 감각에 느껴지는 이 거대한 마력도 마력이지만, 황제에게 제압되었을 때 막사에서 보았던 광경은 실로 충격적이었으니까.
‘이 마법을 구축하는 핵들이 7클래스 아티팩트 4개예요!’
‘뭐!?’
마법의 특성상 9서클이나 9클래스, 신인의 경지에 이른 이가 지극히 희귀한 재료로 간신히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7클래스의 아티팩트다.
용의 뼈나 피, 신수의 신체 부위가 기본 재료로 들어간다는 소문도 있는 전설의 아티팩트. 마법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초고대의 시절에도 희귀했던 최고급 아티팩트는, 지금으로선 소문으로도 접한 바가 없는, 문자 그대로 전설 같은 물건인 것이다.
세간에서는 제국 황실에나 하나쯤 있지 않을까 생각해 온 보물이 무려 4개나 존재한다는 게 놀라울 뿐인데.
‘황제는 그런 물건들이 영영 마력을 잃거나 오랜 기간 작동하지 못하게 될 위험성을 감수하고 쓰는 거라고요!’
달리 말하면, 황제까지 포함해서 7서클의 대마도사 다섯 명이 모여 구사한 마법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심지어 생전 처음 본 거대한 크기의 마정석이나 다른 수많은 아티팩트들까지 동시에 소모해서 말이다.
아마도 이제는 전설에나 나오는 8, 9서클의 마법에 준하는 파괴력이 나오지 않을까.
계산이 서는 순간 클레이튼 역시 다급해졌다.
‘그럼!?’
‘우리가 이 마법을 비틀어야 해요.’
‘뭐라고!? 그건 불가능…….’
‘그저 위치만 조금 비틀면 돼요! 성이 아니라 성 앞으로!!’
‘끄응. 그래, 해 보자.’
말이 쉽지, 사실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이제 겨우 본연의 마력을 되찾아 본체로 돌아가려던 참이었으니까.
마법진의 마력에 간섭하려면 그것을 역으로 풀어야 했다. 즉, 다시 이 거대한 마력의 흐름에 스스로 휩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아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 가면서, 이 대마법의 방향을 비틀려는 시도까지 하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 거다.’
‘해 봐야 알죠!’
클레이튼은 제자의 굳건한 의지를 확인하는 순간 결심했다.
‘그럼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주마.’
‘예?’
‘시간 없다. 마법 구현이 가까워진다!’
‘스승님, 그렇게 되면 스승님이……!?’
‘시간 없다니까! 이걸 제안한 것은 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 말을 따라!’
거대한 마력이 전장에 임하기 직전.
그 사이로 다시 녹아든 작은 갈색빛들은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우우우우우우웅!
하늘 위로 솟구친 푸른빛 마력의 기둥이 전장의 모든 시선을 끌어모으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원래 진행하던 방향에서 ‘살짝’ 각도가 아래로 틀어진 탓에 성이 아닌 한쪽 성벽으로.
‘좀만 더! 조금만 더! 안 돼!!’
그 마력에 속해 있던 영혼, 빅토리아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위치를 틀긴 했지만 마법이 직격하려는 각도에는 제국군뿐만 아니라 맥라인의 정예도 존재했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사람.
맥라인의 군주, 로건 맥라인이.
이건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돌아가…….’
‘안 돼요, 스승님!’
‘……자.’
자신을 대신해 심대한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스승의 영혼은 상황을 인식할 여력도 없었다.
‘안 돼!!!!!’
빅토리아의 영혼은 마법이 구현화되기 직전 스승의 인도를 따라 본체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랬기에 그녀는, 그 순간 그 전면에서 솟구쳐 오르는 황금빛 빛줄기를 보지 못했다.
‘뭐야!!??’
한껏 고양된 영혼에서 느껴지는 전능감을 만끽할 틈도 없이 살이 떨리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특성 업(Up)에 의해 능력치가 최고조로 증폭된 지금의 상태로도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에너지. 말도 안 되는 마력을 품은 거대한 빛줄기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일견하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피할 수 없다.’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도 에너지지만, 마법 자체에 공간을 차단하고 영혼까지 타격하는 ‘격’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쳐 낸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양된 영혼은 이미 오러마스터의 영역에서도 끝을 넘보고 있는 수준. 손안에 들어온 엄청난 힘은 한계를 모르는 자신감을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갑자기 작동하기 시작한 애검 룩스의 시간 가속이 그에게 또 다른 영감을 불어넣었다.
‘할 수 있어.’
아티팩트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룩스의 힘이 닿기에는 너무 높게 올라와 버린 격. 룩스에서 발현된 내츄럴 마법이 그의 영혼에 가장 알맞은 것이라 해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기에는 부족했다.
다만, 그 마법 자체가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시간 가속.
룩스에서 발현된 힘이 왜 하필 그것인지 여태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시간을 거슬러 회귀한 자신은 지금껏 모든 시간, 모든 사건의 결과를 바꿔 왔다. 그 본질이 한없이 열화되어 발현된 마법이 바로 룩스의 시간 가속인 것이다.
자신의 영혼에 쌓인 업(業)이 비로소 인식되었다.
‘이미 결정지어진 결과를 비틀어 버린다.’
그 깨달음이, 편법으로 오른 경지로는 손도 닿지 못했어야 할 비전까지 닿았다.
신검 비전 9식, 빛 가르기.
그것은 단순히 빛을 쪼갠다는 의미도 아니고, 빛을 쪼갤 만큼 빠르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빛조차 가른다.’
인과(因果)에서 인(因)을 지우고 새로 써, 원하는 과(果)만 취하는 것. 자신보다 먼저 두 번의 회귀를 경험한 검신이기에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비전일 것이다.
그리고.
‘염원의 힘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극의.’
동생이나 다른 이들은 9식을 익히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검신조차 익히지 못했다는 10식은 대체 뭘까?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로건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떠오른 잡생각을 황급히 털어 내며 검을 들었다. 그러고는 염원의 힘을 담아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그 파멸적인 빛을 향하여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성벽을 향해 쏟아져 내리던 빛의 기둥이 또 한 번 살짝 꺾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무너진 성벽을 향해 돌진하던 제국군의 최정예들이 모여 있었다.
“음?”
“저게 뭐야!?”
“대체……!”
번쩍!
빛에 직접 닿은 이들 수천 명이 비명도 없이 일순간에 증발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콰콰콰콰콰콰콰.
“아아아악!”
“으아악!”
“이게 무슨……!?”
그 폭발 지점에서 시작된 충격파가 그 열 배수에 달하는 병력을 종잇장처럼 날려 버리고.
우르르르르르릉.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는 땅이 군대의 진군을 멈춰 세우며 다시 그 몇 배의 부상자를 양산했다.
“으아아악!”
“끄으…….”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살려 줘!”
그러고도 남겨진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은 일순간 전장에 펼쳐진 모든 마법을 멈추거나 역류시켰다.
“꺼, 꺼흑.”
“끄르륵.”
“아, 악마의 술……수.”
양군의 마법 병단이 동시에 피를 토해 냈지만, 당연하게도 그 피해는 빛줄기에 직격당한 제국 쪽이 훨씬 컸다.
“쿨럭.”
“저, 저주…….”
“이런 재앙이…… 끄, 끄윽.”
3천여 명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피를 토하며 꼬꾸라졌다.
바람의 장막이 뚫렸을 때의 타격은 차라리 가볍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 한 번의 마법이 만들어 낸 결과는 그야말로 끔찍했다.
얼핏 봐도 최소 수만, 최대 10만 명은 될 법한 전력이 일제히 전투력을 잃었다. 푸른 빛의 기둥이 한편의 지옥도 같은 광경을 만들어 내며 전장을 휩쓸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재앙 같은 이적의 전면에서, 로건은 다시금 황금빛 검을 들어 올렸다.
“보았느냐! 이것이 침략자를 향한 천벌이다!!!”
영문 모를 광경에 경악하던 전장의 시선이 일순간 그에게 모였다.
“제국 황제의 끝없는 욕심에 신벌이 내린 것이다!”
전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멀쩡한 상태에서 들었다면 누구나 고개를 갸웃했을 만한 말이었지만, 그 목소리가 초토화된 제국군의 모습과 겹쳐지자 어쩐지 그럴듯하게 들렸다. 방금 전 광경은 현시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뭐라고?”
“저, 정말인 거 같은데?”
“제국이 신벌을 받았대!”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맥라인 진영에서뿐만이 아니었다.
“우, 우리가 침략을 해서?”
“이럴 수가…….”
“정말 우리에게 신벌이……?”
군기가 엄정한 황실 중앙군 역시 패닉에 빠져들었다. 그만큼 지금 벌어진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충격을 받고 물러나 취소된 마법에 의한 여파를 다스리던 삭풍의 마도사 갈렌 디카이드가 한 박자 늦게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분위기가 일변한 지금, 그의 외침은 뒤늦은 발악처럼 들릴 뿐이었다.
오히려 이어진 로건의 고함이 그의 목소리를 덮어 버리며 다시금 전장에 울려 퍼졌다.
“신의 뜻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전군 공격!! 제국의 개들을 박살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