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19)
419화
“신의 뜻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전군 공격!! 제국의 개들을 박살 내라!”
로건의 외침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바로 근처에 있던 갈렌 디카이드였다.
“개소리!”
마법이 역류한 것 자체가 저 푸른 빛기둥이 마법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였다.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황제가 하려고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마도 지금의 사태는 그것이 무언가 잘못되며 벌어진 일일 터였다.
“이것은 황제 폐하의……!”
버럭 고함을 지르려던 갈렌은 순간 멈칫했다.
뭐라고 하지?
황제 폐하의 마법이다?
한데 그 마법이 제국군을 박살 냈다?
누가 믿겠는가를 떠나서, 그 말을 믿어도 문제였다.
로건은 말문이 막혀 버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계속 말해 보시지, 삭풍의 마도사.”
뿌드득.
절로 이가 갈릴 만큼 깊은 분노가 가슴을 넘어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갈렌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 대마법으로 인해 거리가 좀 멀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50여 미터에 불과하다. 저자의 역량으로 보면 거의 바로 옆이나 다름없는 거리였다.
그런데 왜 마법의 후유증에 비틀거리는 자신을, 동료들을 공격하지 않는 걸까?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답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적장이 지쳤다! 죽여라!”
그러나 그 고함에 돌아온 대답은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는 쿼렐의 비와 붉은 돌 세례였다.
파바바바바박.
꽝!
콰앙!
콰아아앙!
“제국 놈들을 죽여라!”
“제국군을 박살 내라!”
“신들께서 우리를 가호하신다!”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맥라인의 공세.
중앙이 완파된 성벽에서 퍼부어지는 공세가 초전 때보다 더욱 강성해진 듯한 느낌은 착각일까.
“으아아악!”
“끄으윽.”
“도, 도망가!”
폭격이 쏟아질 때도 멈추지 않고 진군하던 중앙군.
그 굳건하던 기세와 늠름함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최전방에서 모든 병력을 이끌던 중앙군 최정예들의 대다수가 조금 전 증발해 버린 이유가 컸다.
“적장을 죽여! 지쳤단 말이다!”
갈렌이 목이 터져라 외쳐 대도 호응해 주는 자가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넬리! 셀린! 렉시!”
“저는…… 싸울 수 있습니다.”
“가, 각하, 조금만 더…….”
“으윽…….”
그나마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넬리 코르다 역시 그 아름다운 얼굴에 푸른 핏줄이 돋아 있었다. 그녀 역시 정상이 아닌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갈렌이 부상을 무릎쓰고 억지로 마력을 끌어 올리려는 순간.
엉뚱한 이들이 그의 고함에 반응했다.
“허, 이런 기사가…….”
“추태를 보였습니다, 폐하.”
뜻밖의 참상을 보며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은발과 금발의 오러유저.
엄청난 파멸의 힘을 선보인 푸른빛, 그리고 그 빛을 꺾어 버린 황금빛. 그 넘쳐나는 에너지의 흐름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하먼과 제이가 그제야 강제로 휩쓸렸던 영혼의 고양 상태에서 깨어난 것이다.
“이 전투가 끝나면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로건 폐하.”
이내 하먼, 아니 헤이먼이 이전에 비해 한결 정중해진 어조로 운을 떼었다.
갑자기 달라진 태도에 로건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지만, 지금은 담소나 나누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 역시.”
로건의 말에 대답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그만큼, 갈렌의 표정은 사납게 일그러졌다.
스르릉.
쿵쾅거리는 소음과 온갖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
칼을 뽑는 소리까지 귀에 똑똑히 들리는 것은 단지 그가 바람 속성을 근본으로 하는 마도사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물러설 수는 없었다.
‘여기에서 물러서면 더 이상 뒤가 없다.’
황제가 직접 나선 전쟁에서의 패배.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가정이었다.
그러니.
‘폐하, 이제는 직접 나서셔야 합니다!’
그의 뒤편, 본진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갈렌의 표정은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본신 실력을 아는 단 두 사람, 아니 이제 한 사람의 바람이 통했을까.
멀리 본영에서, 푸른빛에 감싸인 황금빛 인영이 허공을 가르며 질주해 오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폐하!’
화색이 떠오르는 갈렌의 얼굴.
하지만 그 얼굴은 이내 바로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은빛의 오러를 뿜어내는 정체 모를 오러유저 때문에.
“빌어먹을!”
콰아아아앙!
하먼과 제이, 그리고 갈렌을 비롯한 마도사 4인방이 어지럽게 얽혀 싸우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진 전장의 소음들.
파바바박.
“아아악!”
쾅!
“끄아악!”
“죽어!”
챙!
쩌어억.
그야말로 온갖 소음이 범람하는 와중에도 로건의 주변에 접근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미 사기가 떨어진 제국군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이때 결정타를 먹여야 하는데.’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전장의 소란에 일조할 수 없었다. 갈렌의 추측대로 힘이 완전히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단순히 포스가 고갈된 탈진도 아니었다.
‘염원의 힘이 줄어들었다. 일시적인 걸까, 아니면…….’
남아 있는 포스를 슬쩍 끌어 올려 봐도, 기분 탓인지 빛나던 황금빛이 조금 흐려진 것 같았다.
대마법의 인과를 조작하여 적진에 떨어트릴 때의 고양감, 그 전능감도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오러마스터의 끝에서 그 너머를 넘보던 영혼 또한 오히려 전보다 못하게 수그러든 듯했다.
그 모든 게 염원의 힘이 줄어든 반동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로건은 갈렌보다 한참이나 늦게 이곳을 향해 날아오는 황금빛 갑옷의 인영을 인지했다.
‘황제!’
순간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영혼의 격.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로건은 그가 마도사의 수준을 확실히 뛰어넘은 7서클의 대마도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물론 몇 년 전에 황궁에서 보았을 때도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긴 했었다.
말 한두 마디로 제국의 최고위층을 하인처럼 부리는 자.
그 기품이, 그 기세가 만들어 낸 카리스마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심적 부담을 주었다.
그런데…….
‘대마도사라고?’
어이가 없어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대륙 최강국의 황제가 인간의 무력으로서도 최강이라니?
하지만 좀 전의 그 재앙 같은 마법은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며 다가오는 얼굴이 한껏 일그러져 있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될 뿐이었다.
‘위안?’
피식.
그런 생각을 떠올린 자신이 우스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찌 보면 절체절명의 상황.
그런데 왜 긴장감이 들지 않는 걸까.
스스로도 의아해하던 순간, 등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로건!”
멀리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 에일렌이 이내 질풍처럼 빠르게 다가왔다. 그 짧은 순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내의 경지가 한층 올라간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다가오는 아내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다급함만이 가득했다.
“황제가 대마도사라고……!”
늦어도 한참 늦은 말을 외치며 달려오던 그녀는 이내 다가오는 황제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굳은 얼굴로 멈춰 섰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부탁했던 중대사를 떠올린 로건의 안색 역시 돌처럼 굳어졌다.
황제가 대마도사라면, 자신은 아군의 최중요 전력 두 사람에게 사실상 자폭을 명한 셈이었다.
“리아랑 클레이튼은!?”
“리아는 좀 지쳤을 뿐 무사해요. 그런데…….”
로건은 아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급히 말했다.
“저들을 도와 마도사를 정리해요. 황제는 내가 맡겠습니다.”
“그래도……!”
“빨리!”
그 고함에 순간 멈칫한 에일렌은 다가오는 황제를 잠시 바라보다 곧바로 마도사들과 초인들의 격전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불과 수 초 후.
“네 이놈!!!!!!!”
몇 년 전의 고고한 모습은 흔적도 없는 일그러진 얼굴의 황제가 로건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우웅.
황금빛 갑옷을 두른 전신에 솟구치는 푸른 마력.
그 넘실대는 기세는 시끄러운 전장의 가운데서도 단번에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네놈이……!?”
분노와 혼란이 섞인 얼굴.
그 의문 때문에 바로 공격하지 않는 걸까.
‘시간을 끌어 주면 나야 좋지.’
희미하게 회복되기 시작한 포스를 느끼며 로건은 여유 있는 미소를 연기했다.
“오랜만이군요, 황제 폐하.”
“말해라! 8클래스의 마법 중에서도 최고위 마법에 속하는 소멸(Extinction)을 어찌 비튼 것이냐!! 이유를 밝힌다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 주겠다.”
8클래스?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순간 놀랐지만, 이내 그 마법이 만들어 낸 결과를 생각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영혼의 격이나 마력은 분명 7클래스인데. 뭐, 다른 수단을 썼나 보군.’
그 여유로운 모습 탓일까.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거라, 로건 맥라인!!”
황제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를 악문 채로 분노를 삭이는 듯한 그의 모습은 어째서인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황제는, 저 절대자는 온몸으로 미친 듯이 마력을 뿜어내는 지금보다 왕좌에 앉아 말로 사람을 찍어누를 때가 더 무서웠다.
압도적인 카리스마, 끝이 보이지 않는 자신감, 턱짓 한 번에 움직이는 수많은 인재.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는 실로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지금 이곳에는 ‘고작’ 마력을 뿜어내는 대마도사 한 명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평정을 잃은 마법사가.
문득 가슴속에 드리워져 있던 황제의 그림자가 조금씩 걷히는 게 느껴졌다.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 힘이면 당장이라도 전장에 뛰어들어 전세를 뒤집는 게 나을 텐데, 여기서 이렇게 나와 말다툼하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까?”
여유로움을 연기하는 로건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두 사람이 존재하는 공간 너머에선 연신 비명과 폭음이 터져 나왔다.
황제는 그 모든 광경을, 그저 마법구 속 영상을 감상하듯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갔다.
“흥. 무지렁이들이야 아무리 많아도 무지렁이일 뿐이다. 네가 곧 왕국 아니더냐.”
아, 그런 생각이신가.
‘어이가 없군.’
자신이 곧 제국이라고 말하던 황제의 모습은 분명 인상적이었지만, 설마 그것이 진심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오려는데, 다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 말해 보라. 그 답변에 담긴 가능성에 따라 네 마지막 고통의 정도가 정해질 것이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담긴 것은 분노, 그리고 또 다른 욕심뿐이었다.
아마도 마법사로서 가지고 있는 향상심인 듯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주변에서 죽어 나가는 수하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내가 고작 이런 자를 두려워했던가.’
지금껏 만나 본 그 누구보다 강력한 무력을 과시하는 자가 우습게만 보였다.
그러다 그 감정을 자각한 순간, 로건은 흠칫 놀랐다.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건, 7서클의 대마도사건.
어차피 상대하기 벅찬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왜 자신은 지금 눈앞의 황제가 두렵지 않은가.
그리고 그 의문을 떠올림과 동시에 그는 답을 깨달았다.
“아……!”
황제의 영혼이, 그 그릇의 크기가.
‘보인다. 온전히.’
단순히 영혼의 힘을 다룰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영혼을 보고 읽는 것은 자신과 비등하거나 격하의 존재에게만 가능한 일.
그 말인즉.
‘내가 그 못지않다는 뜻.’
바닥난 포스, 줄어든 염원의 힘에서 느껴졌던 박탈감. 영혼의 격이 오히려 퇴보한 듯했던 그 느낌은 착각이었다.
신검 비전 9식을 온전히 펼쳐 내며 보았던 그 너머.
그 오러마스터 너머의 경지가 ‘격이 상승한’ 자신에게도 그 이상의 박탈감을 가져온 탓이었다.
비로소 그것을 자각한 로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 미소에, 황제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웃어? 허…….”
분노한 황제의 몸에서 푸른 마력이 솟구치며, 주변의 모든 공간을 그만의 색으로 물들였다.
“좋다. 정보가 손상되어도 어쩔 수 없지. 영혼을 뽑아서 확인해 보마. 어리석은 것.”
일전에 검혼이 보여 줬던 붉은 공간, 검역(劍域)을 한 단계 높은 격으로 표현한 듯한 절대 영역. 그 영역 안의 모든 것은 황제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검혼은 검으로나마 황제의 이 능력을 흉내 내려 했던 것이 아닐까.
“그대로 으스러져라.”
황금빛 건틀릿을 낀 황제의 손이 쥐어지는 순간.
공간 자체가 압축되며 로건의 육신을 찌부러트렸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 틈 사이로 비치는 황금빛 오러만 아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