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20)
420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먼은 속으로 자문했다.
답은 싱거울 정도로 금방 나왔다. 저 파멸의 빛을 휘게 할 정도로 강력한 검격이라니, 자신의 머리로는 그 원리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저런 자를 죽이라 했으니…….’
과연 신은 자신의 안위를 조금이라도 생각했을까.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애초에 자신의 혼을 집어삼키려 했던 괴물이 아닌가.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웃어!?”
콰콰콰콰콰콰.
그 웃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가 몰아붙이던 상대, 삭풍의 마도사가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또다시 푸르고 흰 바람을 쏟아 냈다.
삭풍의 군세라고 했던가.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마법이, 이제는 하찮게 보였다.
스각.
콰콰콰콰.
가벼운 칼질 한 번에 좌우로 흩어지는 마법.
영혼의 힘을 깨달은 그에게, 마력의 흐름을 끊는 일은 너무도 쉬웠다.
삭풍의 군세가 아니라 그저 하위의 바람 마법을 쳐 내는 것처럼.
“대체 어떻게!!!?”
자부심이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
자신의 마법이 또다시 무산되는 그 참담한 광경에 갈렌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곤란하군.’
하먼은 단번에 적을 끝장낼 수가 없었다.
스각.
쩌어억.
휘둘러진 검, 뻗어 나간 오러가 다시금 허무하게 허공을 베고 지나갔다. 그가 움직이는 속도 이상으로 적이 빠르게 자리를 피한 것이다.
마도사가 오러유저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그 이상한 광경은 벌써 몇 합째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변장했다지만 그 본질은 무려 신검 하먼 킬러브루, 상대가 아무리 이름 높은 삭풍의 마도사라 한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 마물.’
우우웅.
이제는 하먼의 목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성물 리첸티아. 그 안에서 어떻게든 그의 영혼을 장악하기 위해 발악하는 신의 힘을 억누르는 데 자그마치 6할의 힘이 묶여 있었다.
더군다나 숭앙하던 신에게 혼을 잠식당할 뻔한 충격적인 경험을 한 탓에 그의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성오러’를 쓰는 데에도 거리낌이 생긴 상황이었다.
그런 꼴이다 보니, 하먼은 현재 본래 자기 전력의 2할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한층 높아진 깨달음으로 부족한 능력을 보완하여 삭풍의 마도사를 압박하는 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콰아아아앙!
“죽어!”
바로 옆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여기사, 아니 왕비가 나머지 마도사 셋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
본래 그들을 상대하던, 누군지 모를 젊은 오러유저가 중상을 입고 패퇴한 순간 구원자처럼 끼어든 그녀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의 마도사들이 연신 뿜어내는 냉기와 지진, 폭포수 마법의 연계는 그녀의 주변에 불꽃처럼 일렁이는 오러의 방어막에 닿는 순간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고, 왕비가 저 세 마도사를 패퇴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일 듯했다.
‘그러니 힘내 주시오, 로건 왕. 하고 싶은 말이 많소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척살 목표였던 이를 응원하는 하먼의 시선이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인 뒤쪽 공간을 향했다.
그 시선에 응답이라도 하듯, 푸른 공간에서 황금빛 서기가 한 줄기, 두 줄기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파멸의 빛을 살짝이나마 비틀어 버린 신검 비전의 9식, 빛 가르기는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염원의 힘에 대한 소모나 이미 바닥을 친 기력도 문제지만, 업(Up)으로 격상되지 않은 영혼은 이제 막 마스터의 벽을 넘은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인과를 비트는 힘은 전설 속 오러마스터의 경지라 해도 다루기가 버거운 격상의 힘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오러마스터였다.
‘할 수 있어.’
그 수준에 따라 7서클의 마도사를 넘어 고대의 대마도사, 즉 8서클의 마도사와도 견줄 수 있다는 오러마스터.
거기다 염원의 힘으로 그조차 뛰어넘은 격상의 힘을 한순간이나마 다뤄 본 로건의 영혼은 단순히 벽을 간신히 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랬기에 황제는 그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또 그랬기에 그는 황제를 앞에 두고서도 태연할 수 있었다.
‘내 격이 조금이지만 더 높다.’
물론 완전히 탈진 상태인 로건에 비해 황제의 상태는 완벽.
그러니 방심을 노려야 했다.
그리고 지금 황제는, 너무도 훌륭하게 방심해 주고 있었다.
‘좋게 표현하면 절대 영역이지만…….’
사실상 자신의 마력을 주변에 투사하여 공간 자체를 물들인 것뿐이다.
물론 그 안에서의 마법 발현 및 투사가 한결 쉬워지겠지만, 눈앞의 상대가 자신과 동격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하지 못할 힘 낭비였다.
덕분에 로건은 상대적으로 적은 힘으로도 손쉽게 그 틈을 벌렸다.
쩌저적.
온통 푸른 마력으로 물든 절대 영역 속에서 황금빛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조차도 푸른 마력에 갇힌 황금빛 오러의 발악처럼 보이게 연출한 것이었지만.
“감히!”
분노한 황제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로건의 검은 소리 없이 움직였다.
‘한 수에 끝장을 본다.’
번쩍.
황금빛 균열 사이에서 튀어 나간 번개가 30여 미터의 공간을 격하고 황제를 통째로 양단했다.
“흡!?”
그 예상치 못한 공격에도 황제는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한층 진해진 푸른 마력으로 참격이 뻗어 나오는 공간을 선점함과 동시에, 공격 범위 밖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공간과 영혼을 가르는 힘이 담긴 참격은 황제의 반격을 그대로 뚫어 낸 것도 모자라 움직이는 그의 몸을 휩쓸었다.
“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푸른 공간이 유리처럼 깨어져 나갔다.
‘이런 빌어먹을.’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이미 탈진한 상태에서 그야말로 영혼의 힘을 쥐어짜 펼쳐 낸 일격이었건만, 적을 완전히 끝장내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내 팔! 내 팔이……!!”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붙들고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는 황제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의 왼쪽 어깨엔 더 이상 팔이 붙어 있지 않았다. 더구나 영혼참의 권능이 포함된 일격이기에, 저 상처는 어떠한 신성력으로도 복구할 수 없을 터였다.
물론 그럼에도 마력의 7할은 건사한 황제였으니, 당장 불리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네놈!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감히!!”
일그러진 얼굴의 황제가 검은 눈을 희번덕이며 노성을 토해 냈다.
‘감히는 무슨’
뭐, 전투 중에 경지가 상승했다는 것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겠지.
아무튼 적이 이성을 잃었다면 이쪽에는 좋은 일이다.
‘끝까지 해본다.’
로건은 이를 악물며 각오를 다졌다.
우우웅.
이젠 온전히 9개가 된 포스코어를 최대한 빠르게 공전시키며, 어떻게든 바닥이 난 포스를 다시금 채우려고 시도했다.
떨리는 다리를 들키지 않으려 걸음도 내딛지 않았다.
떨리는 손을 들키지 않으려 손가락 마디 마디가 하얘지도록 검을 쥐었다.
애초에 모든 것이 쉽게 풀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러마스터라. 흐흐흐, 어찌 그 나이에……. 설마 네 놈도 ‘전승’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광기로 번들거리던 황제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는가 싶더니, 차분해진 음성이 헛소리를 뱉어 냈다.
“전승?”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로건을 가만히 응시하던 황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니군. 하긴 그럴 리가 없지. 그런데 어찌 그 나이에……. 하, 하하하…….”
귓전에 와 부서지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그대로 흘리며 로건은 풀리려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적이 무슨 착각을 하건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으니까.
우우우웅.
최초의 코어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8개의 포스코어가 연신 진동하며 바닥난 포스를 회복하기 시작하자 팔다리에도 조금씩 힘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기회의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놈을 내 사람으로 만들었어야 했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백하듯 흘러나오는 목소리와 더불어 실핏줄까지 튀어나와 있던 황제의 얼굴이 차츰 냉정을 되찾았다.
자신의 잘린 어깨를 힐끗 바라보는 눈빛에는 더 이상 분노가 어려 있지 않았고, 로건을 바라보는 표정 역시 좀 전과는 달리 차분하기만 했다.
몇 년 전 그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던 황제의 모습, 그 일면이 지금 다시 보이고 있었다.
“……그 실수를 오늘 바로잡겠다.”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지 않소?”
로건이 다시 한번 황제의 격동을 유도했지만, 더는 통하지 않았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그나마 빠른 법이지.”
‘지’라는 마지막 음절이 끝나기도 전에 황제의 몸에서 푸른 벼락이 번쩍였다.
꽝!
“컥!”
어느새 뒤에 나타난 황제의 손짓과 함께 로건의 몸이 앞으로 쏘아지듯 튕겨 나갔다.
‘끄으으!’
척추가 박살 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실제로 본능적으로 구사한 휩블레이드의 방어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승패가 결정 났을 것이다.
아무리 대마도사라고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른 듯했다.
쿵.
황제가 크게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로건의 바로 앞에서 솟아난 거대한 흙 창이 그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쿨럭!”
충격에 피를 토해 내면서도 간신히 흙 창을 분쇄한 로건.
하지만 그 순간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날아든 투명한 칼날 수천 개가 그가 있던 공간을 그대로 갈아 버렸다.
콰콰콰콰콰콰콰!
“흐으압!”
쩌어어억.
남은 힘을 모조리 쏟아부어 시전한 공간참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지만.
“꿰뚫어라!”
황제의 한마디와 함께 전장에서 솟구친 핏물이 무수한 비수가 되어 그에게로 쏟아졌다.
콰콰콰콰쾅!
“끄으응.”
간신히 급소는 보호했지만,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로건이 비틀거렸다.
‘젠장! 힘을 조금만 더 회복했어도…….’
하지만 어느새 그의 앞쪽에 나타난 황제는 무심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영혼까지 태워 주마. 메키도(Mekido)!”
그 손에서 일어난 푸른 불꽃이 로건의 전신을 뒤덮어 왔다.
그 불꽃이 조금이라도 몸에 닿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것임을 직감한 로건이 이를 악물었다.
“타아!”
쩌저적.
심장에서 이미 한계를 초과해 힘을 쥐어짜고 있던 포스코어들에 일제히 금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로건의 붉은 머리가 절반 가까이 하얗게 물들고, 번개처럼 휘둘러진 룩스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냈다.
번쩍.
콰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릉.
빛의 폭발에 이어 퍼져 나간 충격파가 지면을 덮치자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쩍쩍 갈라졌다. 두 절대자의 대결이 만들어 낸 그 참상이 다시금 전장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쿨럭. 쿠에에엑!”
어느새 반백의 머리가 된 로건이 붉은 핏덩이를 울컥 토했다.
땅에 박아 넣은 룩스가 그의 몸을 간신히 지탱해 주고 있었지만, 바들바들 떨리는 몸은 한 걸음을 내딛기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흐, 이런……. 그래도 내 승리다.”
황제 역시 옆구리에 생긴 주먹만 한 구멍과 입가에서 끊임없이 시커먼 피를 쏟아 내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는 몸을 가눌 힘 정도는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물러서시오, 황제.”
은발의 용병이 끼어드는 순간, 상황이 급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