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21)
421화갑자기 끼어든 은발의 용병.
방해자는 그게 누구든 그대로 불태워 버릴 작정이었지만, 이번에는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앞의 사내를 자세히 살폈다. 로건처럼 영혼을 보는 눈이 상대의 격을 알아본 것이다.
이내 그의 눈이 믿을 수가 없다는 듯 크게 뜨였다.
“오러……마스터? 또!?”
하먼은 세차게 흔들리는 황제의 눈동자를 보며 침착함을 연기했다.
‘알아보겠지.’
영혼의 격을 읽을 수 있는 황제라면 분명 자신의 본 실력을 알아볼 것이다. 비록 성물, 아니 저주받아 마땅할 마물 리첸티아와 대치 중이긴 했지만, 겉으로는 멀쩡히 기세를 뿜어내는 것 같을 테니까.
그리고 그 노림수는 정확히 먹혀든 것 같았다.
황제의 시선이 그가 왔던 곳으로 향했다.
하먼은 점차 초조해지는 속내를 애써 억눌렀다. 황제는 자신이 갈렌과 전투를 벌이던 초인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곳에선, 갈렌 디카이드를 비롯한 제국 마도사들과 맥라인의 왕비가 일 대 사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을 닮은 오러의 갑옷을 두른 왕비는 그런 상황에서도 오히려 상황을 주도했다.
넘실거리는 붉은 오러의 갑옷이 적중하는 모든 마법을 분쇄기처럼 갈아 버리니.
– 죄다 괴물들뿐이냐! 어떻게 그새 또 성장을……!
갈렌의 고함처럼 마도사들은 낭패한 표정으로 끌려다니기 바빴다.
그 광경에 황제는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 은발의 기사는 저 왕비에게 삭풍의 마도사까지 떠넘기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가 삭풍의 마도사를 처리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렇게 침착함을 되찾은 황제는 이내 그의 부족한 부분을 눈치챘다.
미세하지만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영혼.
“……아직은 아니군. 완전하지 않아. 하지만…… 흐흐, 이 역시 터무니없어.”
하먼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검은 눈동자는 이내 정답을 토해 냈다.
“신성력……. 그 나이에 그 실력, 그리고 그 정도 신성력이라면 신검인가?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른 얼굴이군. 어찌 성국의 칼이 여기에 있는가?”
그의 말에 어린 분명한 비난에 하먼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사정상 변장을 좀 했소이다. 그리고 우리와 제국이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를 막아서겠다?”
“로건 왕은 여기서 죽으면 안 될 사람인지라.”
그 단호한 대답에 황제의 검은 눈이 신검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솟구치는 푸른 마력에 변장한 은빛 머리칼과 은빛 눈동자가 자연히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는데도, 그가 황제를 향해 겨눈 검 끝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짧은 대치를 깬 것은 바로 근처에서 들려온 비명이었다.
– 아아악!
전장의 한가운데, 아무리 대결에 집중한다 해도 이 비명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지진의 마탑주 셀린 바우어의 죽음을 의미하는 소리였으니까.
그리고 그 죽음을 만들어 낸 이.
부러진 듯 너덜거리는 왼쪽 팔을 한 에일렌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 로건!!
그제야 반려의 위험을 알아본 그녀가 무리해서 마도사 하나를 격살한 것이다.
부상이 꽤 심각한 와중에도 에일렌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그 푸른 눈에서도 불꽃을 쏘아 낼 것처럼.
– 기다려요!!
치열하던 일 대 사 격전의 승세가 순식간에 일에게 기울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황제의 입에선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푸흐, 흐흐흐, 이런 엿 같은 일이…….”
저 여기사의 영혼의 격은 오러유저 상급 정도.
불꽃이 넘실대는 것처럼 진동하며 접근하는 마법들을 모조리 갈아 버리는 오러는 아마도 방어에 특화된 특성일 것이다. 그리고 저따위 특성을 각성했다면 육체 능력이 오러유저 평균보다 떨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어쨌거나 오러유저인 만큼 마도사보다는 빠르고 강하다. 마도사의 완벽한 천적 같은 오러유저가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그 정체는 적국의 왕비라니?
“흐흐흐흐흐.”
눈으로 보고도 쉬이 믿기 어려운 상황에 황제는 연신 헛웃음을 흘렸다. 로건 맥라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외모는 치미는 울화를 더욱 부추길 뿐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중상을 입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자는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반쯤 발을 걸친 성국의 칼이고, 주변에는 온통 죽어 나가는 제국군들투성이다.
– 아아악!
– 커헉!
– 도망…….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든 결정적인 일격은 자신이 황실의 보물을 모두 동원해 만들어 낸 대마법이었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을까.’
허탈함에 나오던 실소는 이내 분노에 찬 광소로 이어졌다.
“흐하하하하하하하!”
미친 것처럼 웃어 젖히는 그를, 하먼은 냉랭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 차가운 시선을 받은 황제는 이를 부드득 갈며 허공에 몸을 띄웠다.
제국의 황제란 섣불리 목숨을 거는 도박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갈렌! 후퇴한다!”
– 헙!
헛숨을 삼키는 갈렌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세 명의 마도사는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쫓아야 할 여기사는 질풍 같은 속도로 황제를 향해, 아니 그 너머의 남편을 향해 쇄도했다.
그 모든 광경을 시린 눈으로 내려다보던 황제는 이내 오른손을 들어 푸른 불꽃을 피워 올렸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신검.”
화르르르륵!
휘둘러지는 손짓과 함께 넘실대는 푸른 불꽃의 파도가 신검과 로건을 향해 쏘아졌다.
동시에 황제는 번개처럼 빠르게 허공을 날아 본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공격으로 놈들을 어찌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퇴각을 위해 시간을 벌고자 했을 뿐.
하지만.
“흐아아압!”
“안 돼!!”
꽈아아아아아앙!
그 견제용 공격에 신검이 중상을 입고, 붉은 오러를 갑옷처럼 두른 여기사마저 피를 토했다는 것을 황제는 미처 알지 못했다.
– 퇴각하라!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제국군은 일제히 본진을 향해 내달렸다. 그때만큼은 사기가 무너진 군대 같지 않게 모두가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은 당연하게도 상대의 환호성을 불러왔다.
“제국군이 퇴각한다!”
“우리가 승리했다!”
“우리가 또 이겼다!”
“우와아아아!”
카일 성 전체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폐허가 된 전장에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 * * 카일 성에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그 시각 남쪽의 요새 아머.
–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
전장을 압도하는 늑대의 울음소리와 함께 제국군의 바로 앞에 체고만 20m가 넘을 듯한, 머리가 셋 달린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통 이곳저곳에 찢긴 상처가 가득한 괴수의 머리에서 12개의 붉은 눈동자가 빛나는 순간.
그 입에서 쏘아진 검붉은 광선이 제국군의 후방을 직격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바람의 장벽을 시전하고 있던 천여 명의 마법사들에게 떨어진 재앙과도 같은 공격.
그 충격으로 대마법이 완파되고, 100여 명의 마법사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 크와아아앙!
전장에 있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티르의 포효에는 지극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아마 로건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 음성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 ‘친구’가 나 때문에 다쳤다.
자신이 망설이는 사이 검은 놈들의 폭발을 온몸으로 막아 준 친구가 쓰러지고 말았다.
–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본체를 드러내지 마라.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로건과의 약속은 어느새 잊어버린 티르는 몰려드는 제국군을 향해 압도적인 힘을 휘둘렀다. 소수의 강자면 몰라도, 약한 다수를 상대하기에는 본체의 덩치 역시 확실한 무기가 될 테니까.
전쟁을 빨리 끝내야 했다.
– 그리고 친구를 치료해야 한다.
콰아아앙!
“아아악!”
“괴, 괴물이다!”
한 번 내디딘 앞발 하나에 십수 명이 피떡이 되고 그 열 배수가 허공을 날았다.
쿵. 콰아앙!
뻐어어억.
거대 괴수의 발작 같은 몸부림은 일개 병사들에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그 괴수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사들은.
“막아!”
“우리가 간다!”
지이이이이이이잉.
콰콰콰콰콰콰.
세 개의 머리에서 간헐적으로 쏘아지는 검붉은 광선에 직격당한 순간 물에 탄 소금처럼 녹아 버렸다.
그리고 그 초토화된 진형 사이로 다시금 쿼렐의 비와 붉은 폭탄이 떨어지며 대량의 사상자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아아악!”
“군단장, 군단장님들은!”
그렇게 제국군의 최전선이 속수무책으로 붕괴되고 있을 때.
그런 그들을 지휘하고 괴수를 잡아야 할 초인들은 붉은 머리 청년의 미친 듯한 공세 속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 이런 황당한…….”
“이런 미친…….”
“다 죽어 가던 놈이…….”
황실 친위대의 초인 루너스와 파비안, 그리고 7군단장 그레임은 질린 안색으로 수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놈이 갑자기 경지가 상승하더니, 오히려 자신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말이 돼!?”
사방에서 몰아치는 7개의 오러소드.
챙! 챙!
스각.
콰아앙!
셋이서 두 개씩 막아 내고도 남은 하나의 검세가 비좁은 틈을 파고들며 그들을 연신 몰아붙였다.
그 폭격에 가까운 공세도 공세였지만, 정신이 반쯤 나간 듯 끊임없이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붉은 눈을 희번덕거리는 모습이 그들을 더욱 두렵게 했다.
“나 때문이다. 내가 가라고 했어. 죽지 마라, 빅토르. 절대 죽지 마라…….”
당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
그 말이 놈의 뒤쪽에 쓰러져 있는, 이미 넝마와 같은 시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는 세 사람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
“미친놈이……!”
이대로 밀릴 수만은 없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 온 루너스와 파비안이 눈빛만으로 의사를 전하며 반격의 틈을 살폈다.
“그레임!”
“잠깐만 막아라!”
“뭐, 뭐!?”
7군단장 그레임 터너가 경악하든 말든, 일순간 뒤로 빠진 그들은 포스를 한껏 끌어모아 각자의 비기를 준비했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악!”
갑자기 고기 방패가 된 그레임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주황색 오러의 파도가 그를 말 그대로 갈아 버린 것이다.
치명적인 계산 실수.
이내 당황에 빠진 그들을 비웃듯, 광기에 휩싸인 오러유저가 미친 듯이 질주해 왔다.
그 염원이 닿은 듯,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시체가 긴 숨을 토해 내며 작게 들썩거렸다.
“나 안…… 죽었어, 미친……놈아. 흐…….”
넝마 같은 몸을 조금씩 재생하고 있는 시체(?)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을 때쯤.
남부 요새에서도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 아우우우우우우!
* * * 비슷한 시각 북쪽 요새 쉴드.
“이, 이 지독한 늙은이!!”
“괴물……!”
황실 친위대의 초인 채퍼빌과 4군단장 드렉슬러는 진저리를 치며 연신 뒤로 물러섰다.
챙!
챙!
스각.
“으으윽!”
“진짜 빌어먹을!”
그들을 몰아붙이는 것은 온몸에 갑옷의 파편 같은 쇳조각이 무수히 박힌 괴인이었다.
괴인이 붉은 오러를 번뜩일 때마다 그의 전신에 틀어박힌 쇳조각을 따라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마부터 발끝까지, 상처가 없는 곳을 찾기가 더 힘든 괴인은 그야말로 피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런 몸으로도 그들을 몰아붙이는 저력이, 그 의지가 두려울 뿐이었다.
“왕국을…… 위해…….”
끊임없이 저 말만을 반복하고 있는 괴인, 검공의 눈동자에는 이미 빛이 없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인지, 어떻게 싸우는 것인지가 의문일 지경이었지만, 이것은 분명 현실이었다.
그리고 군단의 수장이 보이는 그런 끝 모를 투지는 요새에 주둔한 맥라인군의 사기를 끝도 없이 끌어 올렸다.
반면에 검은 기사들의 자폭과 함께 지휘관 밀레스 말핀을 잃은 제국군은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최고 지휘관이 자폭해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채퍼빌은 치미는 황당함과 분노에 이를 악물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밀레스 말핀의 동료애가 낳은 복수심, 그리고 그것을 간과한 무력 위주의 인선이 만들어 낸 최악의 결과가 이곳 쉴드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꽈아아아앙!
“푸하하하하. 잘 가라, 얍삽이!”
성벽의 다른 쪽에선 거대한 덩치의 괴인이 3군단장 블레이크 이븐도어와의 악연을 끊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을 계기로 전장의 흐름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