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22)
422화같은 날 벌어진 전쟁. 카일 성에는 승전보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다만 잇따른 변수 덕분에 압도적인 대승을 거둔 카일 성과는 달리, 남북의 요새에선 피해가 상당했다.
* 군단 – 5~8군단의 기존 병력과 중앙군 2개 군단, 추정치 23만 제국군 중 사망 및 중상자 15만 이상 추정.
– 맥라인군 사상자 5만 추정. 테로난 원군 사상자 3만 추정.
* 초인 전력 – 로니안 맥라인 백작에게 7군단장 그레임 터너 외 초인 1명 사망, 1명 중상.
– 검은 기사 열 명 사망.
– 빅토르 중상(회복 중)
“희생이 크군.”
“그래도 승리했습니다.”
“그렇지.”
아머에 파견된 아군 군단의 하나가 사실상 증발했지만, 상대에 비하면 약소한 피해였다. 결국엔 이겼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 그 과정이…….’
로건이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싸쥐자 보고를 하던 데미안이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빅토르 경께서 신수를 구한 뒤에 분노한 신수……님이 본모습을 드러낸 결과, 제국군의 일반 병력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고 합니다. 아군 피해도 상당하지만 덕분에 승리를…….”
“다른 말은?”
“예?”
“신수에 대한 다른 소문은 없었냐는 말이다.”
“예, 딱히 없었습니다. 뭐, 별다른 말이라고 해 봤자 그냥 폐하를 칭송하는 말뿐입니다. 신수가 돕는다고…….”
마기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가.
‘아니, 분명히 퍼질 텐데. 성국은…… 아니, 아니야. 일리아가 우리 편인데 괜찮겠지.’
로건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젓자, 바로 다음 보고가 이어졌다.
* 군단 – 1~4군단의 생존자들과 중앙군 2개 군단, 제국군 총 25만 병력 중 8만 이상 사상 추정.
– 맥라인군 사상자 3만 추정. 리버티 원군 사상자 2만 추정* 초인 전력 – 검공에 의해 황실 친위대 밀레스 말핀 사망. 루터 카일에 의해 제국 동부 3군단장 블레이크 이븐도어 사망.
– 검은 기사 다섯 사망.
– 원군 군터 리버티 사망.
쉴드 역시 피해가 컸지만 승리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치명적인 피해도 있었다.
“……검공 각하께서 검은 기사들에게 중상을 입으신 채 제국의 초인들을 상대하셨답니다. 그래서 전투 직후에 의식을 잃으시고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계신답니다.”
데미안이 눈을 질끈 감고 보고를 마친 순간.
“뭐!?”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승님이!?”
“검공께서요?”
옆자리에 앉은 아내, 에일렌 역시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이내 주변의 시선을 느낀 그들은 심중의 충격을 추스르며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개인적인 충격을 드러내기에는 그들의 위치가, 지금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왕과 왕비, 그리고 그들의 군대는 또다시 승리한 상황.
지금도 내성 바깥에서는 환호성이 그치질 않고 있었다.
– 하하하하!
– 또 이겼어!
– 맥라인 만세!
잔뜩 흥분한 민중의 목소리는 내성 깊숙한 이곳 대전까지 들릴 정도였고, 자연히 대전 안에 모여든 지휘관들 역시 하나같이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로건은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지금 즉시 치유사 길드,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을 북쪽으로 보내라. 반드시 스승님을 살려야 한다!”
“예!”
치유사 길드로 가장한 사제들, 즉 최고위 사제들을 보내라는 말을 데미안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빠르게 조치를 취한 데미안은 바로 마지막 보고를 시작했다. 이 승전보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이곳 카일의 전투 결과를.
“……40만에 가까운 적 병력 중 사상자 절반 수준으로 추정. 죽은 적들만 1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들판에 까마귀들의 잔칫상이 열렸습니다!”
데미안은 공적인 보고엔 어울리지 않는 극적인 묘사까지 써 가며 전투의 결과를 알렸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사소한 잘못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와아아아아!”
“우리가 이겼습니다!”
“국왕 폐하 만세!”
“신이 내린 영웅 로건 맥라인 만세!!”
일순간 대전이 환호성에 잠식되었다.
그 환호성의 대상이 된 로건은 손을 들어 답례하려다 순간 기침 소리와 함께 피를 토했다.
“여보!”
창백한 얼굴의 에일렌이 재빨리 남편을 부축했다. 그녀도 심각한 내상에 조각난 왼쪽 팔뼈를 치료 중인 마당이었지만, 남편의 상처가 훨씬 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괜찮, 괜찮아요.”
로건은 손을 들어 그런 아내를 다독였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스승님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은 바람에 잠시 포스를 조절하지 못한 것뿐이다.
9개의 포스코어에 균열이 일어났다는 것은 생명력 자체에 균열이 났다는 것과 같은 의미. 하지만 이 정도면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은 막은 것이다.
물론, 그래도 꼼짝없이 몇 달은 정양해야 할 상처였다.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로건은 일단 웃었다. 미래야 어찌되었든, 당장 그는 승리자였다. 자신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안심시켜 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보며, 보고를 하던 데미안은 걱정스레 물었다.
“쉬시겠습니까, 폐하? 가장 중요한 보고는 다 드린 듯한데.”
“괜찮다.”
“그래도 머리도 그렇고…….”
승전의 기쁨에 취해 있던 이들 중 일부는 그제야 자신들의 군주가 반쯤 백발이 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헙!?”
“……폐하!?”
“사제! 사제를 불러라!”
그 어처구니없는 뒷북에 로건은 오히려 이마를 감싸 쥐었다.
“되었다. 이미 부상은 수습되고 있으니.”
초인, 그것도 생명의 힘을 다루는 오러유저가 한 말에 대전의 분위기는 다시 차분함을 되찾았다.
걱정스러운 기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로건의 말을 의심하는 이는 전혀 없었다. 가뜩이나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가졌던 그들의 왕은 이번 전쟁 이후 거의 신격화되고 있었으니까.
폐하께선 전설의 오러마스터다.
제국에 신벌까지 내리게 한 영웅.
정말로 신들께서 보호하시는 게 분명해!
적국의 황제가 대마도사였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은 그 ‘신화’ 앞에 조용히 묻혀 버렸다.
좌중의 초롱초롱한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로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참모인 데미안까지 비슷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으니까.
“……우리 쪽 피해는?”
“……자경단에서 3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기사들 300여 명 사상, 군단 병력 3천 명 전투 불능입니다. 대승입니다, 폐하!”
아군의 희생을 말하면서도 기쁨을 표하는 얼굴.
그 이질적인 괴리감에 로건은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대승이라도 전쟁은 전쟁, 희생은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실로 뼈아픈 희생도 있었다.
스승님의 일도 그렇지만…….
“……클레이튼 공은 여전히 그대로인가?”
“예.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로건은 차마 그 말을 대놓고 하지는 못했다.
마법을 구사하던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빅토리아를 통해 들었다. 게다가 클레이튼의 영혼에 새겨진 끔찍한 상흔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난 뒤였으니, 새삼 착잡할 뿐이었다.
‘아마도 평생…….’
차마 할 수 없는 말은 이번에도 목구멍 안쪽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스승님의 일은 아직 불안일 뿐이지만, 이쪽은 불행이 확정이다.
입술을 질끈 깨문 로건은 또 다른 공신의 행방을 물었다.
“……빅토리아는?”
“여전히 클레이튼 공 옆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
무어라 말해야 할까.
그 둘이 해낸 일은 몇 번을 고개 숙여 감사해도 모자랐다. 애초에 소멸의 마법이 그가 있는 쪽으로 꺾이지 않았다면, 손을 써 볼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런 공신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자신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오는 말은.
“……곧 좋아지겠지.”
스스로도 믿지 않을, 기대 섞인 말뿐이었다.
그리고 그 비겁한 생각이 들통날까 두려워 로건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승리에 너무 들뜨지 않도록. 제국이 어찌 나올지 모른다. 아직 뒤를 살펴야 할 때다.”
위엄 어린 목소리가 대전의 분위기를 압도할 때.
세상에는 그 결과에 대한 소식이 퍼져 나가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 맥라인이 제국을 상대로 또다시 승리했다.
– 믿기지 않는 대승.
– 황제가 직접 나서고도 패배했다.
황제가 대마도사니, 맥라인 국왕이 오러마스터니 하는 소리도 전해졌지만, 외부인 중 그 말을 진실로 믿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거 진짜야?”
“진짜라니까! 온통 그 얘기뿐이야!”
“정말 제국이 이름뿐이었나?”
“아니지. 맥라인이 강한 거지.”
이렇듯 타국에서는 흥미 넘치는 소재일 뿐이지만, 당사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와하하하하! 또 우리가 이겼다!”
“국왕 폐하 만세!!!”
“로건 맥라인 만세!!”
“역시 신이 내린 영웅!”
“신들이 돌보시는 맥라인에 패배 따윈 없다!”
맥라인에서는 한없이 들뜬 분위기가 대도시를 넘어 시골 구석구석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반면 제국에서는 암울한 분위가 여론을 지배하고 있었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어쩌다 우리 제국이…….”
“아니야. 아직 끝난 게 아냐! 우리가 어떤 나라인데!”
“그래도 계속 지고 있는데…….”
퍼지는 소문과 함께 불안감이 만연하기 시작할 때.
그 불안감을 가시화하는 소식이 또다시 대륙을 강타했다.
– 서부 왕국들이 제국의 서부 국경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서부 10왕국 연합군의 대대적인 제국 침공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었다.
– 15개 군단 규모.
– 서부 군단만으로는 막아 낼 수 없다.
– 제국이 멸망할 때가 왔다.
그 충격적인 소식은 맥라인 전선에도 극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황제군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북쪽 요새에서도 제국군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남쪽 요새에서도…….”
맥라인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황제가 서부 왕국들의 침략 소식에 이를 갈며 회군을 결정한 것이다.
최근에 거둔 대승리로 유리한 입장의 종전 협상, 혹은 제국군의 회군에 대한 예상이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터.
대륙 서부의 변화가 그 결론을 빠르게 앞당겨 준 것이다.
결국.
– 맥라인이 제국을 상대로 승리했다!
10년 전에는 로건조차 믿지 못했을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역시 신이 내린 영웅!”
“로건 폐하께서 계시는 한, 우리 왕국은 신들의 가호를 받는다!”
“어찌 이렇게 절묘한 시기에……!”
“국왕 폐하 만세!”
한번 콩깍지가 씐 맥라인의 백성들은 이미 예상되었던 전쟁의 움직임조차 로건을 위한 신들의 가호라고 받아들였다.
맥라인 전역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해냈다…….”
해냈어! 해냈다고!!
멀리 멀어지는 제국군을 보며 로건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회귀한 후 10년, 아니 9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를 기어이 이뤄 내고 만 것이다. 흥분하지 않으면 도리어 이상할 일이었다.
우웅.
덕분에 금이 간 포스코어들이 진동하며 다시금 옅은 오러를 흘려 낼 정도였다.
옆에서 남편을 지켜보던 에일렌이 격정에 휩싸여 그 사실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그를 진정시켰다.
“아, 후…… 괜찮아요. 자, 이제 승리를 선언합시다.”
끝없이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로건은 손을 들어 올려 모든 이의 시선을 모았다.
“우리가 승리했다!”
“우와아아아!”
“모두가 제군들의 덕이다. 오늘 하루, 마음껏 먹고 마셔라!”
그 말 몇 마디에 성벽 위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우리가 승리했다!”
“우리가 제국을 이겼다!”
“썩 꺼져라! 제국 놈들!”
“다시는 오지 마라!”
“으하하하하!”
왕을 따라 미친 듯이 환호하며 소리를 지르는 병사들.
개중 일부는 바지를 까 내리며 엉덩이를 두드리거나, 성벽 밖으로 오줌을 갈기는 등 과한 퍼포먼스까지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떤 지휘관도 그런 병사들을 탓하지 않았다.
로건 역시 흥분한 마음으로 멀어지는 제국군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해냈다.’
내가 해냈다. 결국 해냈어!
‘바꿨다, 바꿨어. 전부 바꿨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마음속 이야기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이 환희를 만끽하고 싶었다.
격정을 참아 내기 위해 부르르 떨리는 몸. 악문 입술 위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누가 볼세라 빠르게 훔치려 하는데, 먼저 눈가로 다가오는 손이 있었다.
스윽.
“수고 많았어요.”
창백한 안색의 에일렌이 눈물을 닦아 주며 미소를 지었다.
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인 로건은 이내 시선을 먼 하늘로 돌렸다.
괜히 더 눈물을 보이긴 싫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상기된 얼굴의 데미안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폐하, 전에 하신 말씀을 잊지 않으셨지요?”
끝 간 데 없이 벅차오르던 가슴이 일순 가라앉았다.
전에 했던 말.
영구히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국을 정벌해야 한다.’
뿌듯함으로 가득 찼던 가슴에 시린 바람이 불어닥친 느낌이었다.
로건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헤이먼 경이 드디어 의식을 차렸답니다!”
전투의 마지막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쓰러졌던 용병이 드디어 눈을 떴다는 소식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