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23)
423화그랑에서 개선식을 하자, 전승 기념일을 만들자 등 수많은 이야기가 로건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단 한마디로 그 모든 제안을 일축했다.
“아직 모르는 일이니 모든 군단은 현 상태로 대기한다. 추후 정세 변화에 따라 적극 응대할 수 있도록.”
상황 변화에 따른 제국의 2차 침략, 그리고 맥라인의 제국 정벌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당연히 반발하는 이가 나올 수도 있다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런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전시를 유지하는 군단 배치, 자경단의 배치에는 당연히 무수한 돈이 들어가는데도 그 드웨인 필스너조차 반발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럼 각 위치에서 승전 파티라도 하시지요!]로건이 귀를 몇 번이나 파고 다시 물었는데도 드웨인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인간이 웬일로?’
결국, 제국군이 3일 거리 이상 멀어져 간 것을 확인한 뒤, 카일 성에서부터 승전 파티가 벌어졌다.
챙!
“꺼지지 않는 불꽃에 영광을!”
“맥라인 만세!”
“만세!”
시끌시끌한 분위기.
참석자들의 얼굴에는 한없이 들뜬 감정만이 가득했다.
로건조차도 웃으며 인사를 받아 주는 가운데, 그런 그의 앞으로 유일하게 표정이 밝지 않은 이가 다가왔다.
“오, 헤이먼 경. 지난 전투에서는 정말 신세를…….”
“폐하, 간곡히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습니다.”
헤이먼, 아니 신검 하먼 킬러브루가 한없이 무거운 어조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 * *
“……신이 나를 죽이라 했다? 내가 지브릭 카셀의 화신?”
어처구니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신화 속 이야기에 로건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에 하먼이 입술을 물었다. 애써 독대 자리를 만들었는데, 헛소리나 하는 걸로 보여서는 곤란했다.
“믿기 힘든 일인 줄 압니다. 하지만…….”
“아니, 아닙니다. 잠시만…….”
하먼의 말을 끊은 로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헛소리로 치부하고 싶지만, 그 말을 한 당사자가 신검이다. 심지어 자신은 실제로 선조, 지브릭 카셀의 영혼에 몸을 빼앗길 뻔한 적이 있었다.
화자의 신분과 자신의 경험으로 보아,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빌어먹을!’
빅토르의 착각이라 생각했던 게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로건은 갑자기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가며 다시 한번 물었다.
“……제가 지브릭 카셀의 화신으로 운명지어졌다, 그리 말했다고 했습니까?”
누가 봐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법한 이야기를 믿어 주는 것 같았다. 하먼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예. 하지만 성녀님 역시 신의 영혼에 지배당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마도 이 빌어먹을 성물들이 매개체가 되겠지요.”
우우웅.
하먼이 여전히 목에서 떼어 내지 못한 리첸티아를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서, 평생을 신실한 신자로 살아온 하먼의 마음이 완전히 반대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영혼을 먹힐 뻔한 경험이 그에게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그 반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 그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자신은 더 이상 자신이 아닐 거라고, 적이라 생각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빅토르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것 또한.
로건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마음에 걸리는 점을 물었다.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지브릭 카셀의 영혼이 사라졌다든가 하는.”
“……당신을 통해 부활할 것이라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아, 대악마, 마도성자가 부활하면 이 땅에 신앙을 모조리 없애 버릴 거라는 말과 함께요.”
“……그렇군요.”
“혹시 제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까?”
로건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낀 하먼이 되물었지만, 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신앙을 없앤다라…….’
염원의 힘을, 그리고 그 가치를 대강이나마 알고 있는 로건은 신들이 왜 이런 무리수를 두려는지 알 것 같았다.
‘9대신은 신앙의 힘을 필요로 하는 상위 차원의 존재들일 뿐, 진짜 신이 아니라는 거군.’
지브릭 카셀의 영혼이 보여 준 기억이 새삼 가슴에 와닿으며,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던 마음속 신앙의 잔재가 산산이 부서졌다. 동시에 성검 바니타스와 함께 사라졌던 지브릭의 영혼, 그가 남긴 단말마가 떠올랐다.
– 대체 어떤 놈들이 내 작품에 손을…….
– 난 절대 이대로 포기하지 않…….
‘……그게 정말 끝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로건은 또다시 입술을 짓씹었다.
자신이 지브릭의 영혼을 소멸시켰다는 것을 신들이 모른다는 가정보다는, 놈의 영혼이 남아 있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전생에 보았던 마도성자의 유물은 성검을 제외해도 2개가 더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지브릭의 영혼은 둘이 더 있다는 말일까?
‘영혼을 그렇게 쪼개서 담아 놓고도 자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영혼의 힘을 온전히 다루게 된 그였기에,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먼이 한 말과 지브릭이 남긴 마지막 말을 감안하자니, 아무래도 그 말도 안 되는 추론이 진실 같았다.
‘신인, 신인이라.’
지브릭이 그 삶 속에서 보여 주었던 신인들, 9클래스의 마법을 다루는 전능자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손짓 한 번에 산을 허물고, 또 손짓 한 번에 다시 세우는 이들.
현시대 기준으로 대마도사인 황제가 수많은 마정석과 아티팩트를 사용하여 만들어 낸 파멸의 빛, 소멸(Extinction) 마법 수준의 힘을 숨 쉬듯 사용할 수 있는 존재들.
그 기억 속 영상이 반만 진실이라 하더라도 군대나 병력의 존재 의의가 없어질 만한 괴물들이었다.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그런 괴물이라면 영혼을 쪼개서 몇 개로 나눠 담는다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문제라면, 그런 이들 중에서도 뛰어난 이들 아홉이 승천하여 신이 되었고, 지금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그들만의 기준으로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들이 직접 나서지는 못하는 것이랄까.
지브릭의 기억에 따르면 이미 상위 차원의 존재가 된 그들이 현세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은 신성력 혹은…….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하먼 경은 사도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예?”
그 갑작스러운 물음에 하먼의 안색이 굳어졌다.
하지만 대답은 자연스레 나왔다.
“신들의 은총을 받은 성인이 그분들의 뜻을 대변하여 기적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어려서부터 교육받았던 지식을 그대로 읊던 하먼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을 하다 말고 로건에게 되물었다.
“……설마 이 영혼 잠식 현상의 결과가 사도라는 겁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거냐, 등의 질문이 나올 줄 알았던 로건이 잔뜩 긴장하는데 예상치 못한 말이 이어졌다.
“아니, 그럼. 교단의 역사에 기록된 사도님들이 전부…….”
이미 그의 마음속에 심어 든 불신이 깊게 뿌리를 내린 탓일까.
자신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하먼의 모습을 보니 로건 역시 망설임이 없어졌다.
“당신이 성물을 얻어 사도가 될 뻔했듯, 다른 이들도 그게 가능할까요?”
사제들, 아니 신앙심이 돈독한 대륙인들에게만 해도 불경하다고 쌍욕을 먹을 이야기.
하지만 하먼은 굳은 안색으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성물과 신성력의 상호 작용이라면, 고위 사제 중 수준이 높은 이들은 충분히……. 아무래도 시간은 좀 걸릴 것입니다만.”
“그럼 성녀가 성물을 사용해 사도를 늘이려 할 수 있겠군요. 허…….”
머리가 아파 왔다.
사도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신인의 경지에서 아예 신이 되고자 했던 지브릭 카셀은 아홉 명의 사도에 의해 좌절당했다. 그리고 수백 년에 한 번씩 탄생했다는, 민간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사도들의 이야기가 반만 진실이라도 너무나 막강한 재앙이 된다.
제국의 문제만 해도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닌 상황에서 그들을 감당하기란 실로 버거울 듯했다.
“하…….”
마른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토해 내던 로건은 문득 그럴듯한 해결책을 떠올렸다.
“아! 제가 지브릭 카셀의 영혼을 물리친 적이 있다는 것을 신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까? 앞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그 기대 섞인 말에 하먼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들의 힘이나 말을 믿었다면, 굳이 제 영혼을 잠식하려 했을 리도 없지요. 당신에 대한 척결도 제 의지에 맡겼을 겁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하먼의 얼굴은 딱딱하기만 했다. 자신의 믿음이 그 근본에게 부정당한 사제에게는 이제 불신만이 가득했다.
“신을 믿지 않는 사제라……. 그럼 대체 제게 무엇을 부탁하려는 것입니까? 그저 당신이 신전을 떠나면 될 일 아닙니까?”
“신이 더 이상 신이 아니더라도, 그들을 믿고 따르며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제 불길한 예감이 맞는다면, 신들은 당신과 카셀 마탑을 처리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서슴지 않을 것입니다. 당사자들의 뜻과는 상관없이요.”
로건의 생각에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방향이 자신과 왕국을 향한다면, 아마도 자신들은 제국과 더불어 성국까지 적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하먼 역시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제가 실패했다는 보고가 들어가면, 그 즉시 성국에서 전쟁을 선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러니 그 전에 성녀, 아니 아문다의 화신을 교단의 중심부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성국의 칼이 그 칼을 거꾸로 들겠다는 선언.
하지만 그의 사정에서는 그게 최선이라는 걸 로건도 이해하고 있었다. 더하여, 그가 하려는 부탁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성녀를 죽이는 데에 힘을 보태 달라는 말입니까?”
“인연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완전히 잠식된 이후에는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의 폐하라면 더욱 잘 알고 계실 텐데요.”
하먼의 투명한 눈이 로건을 직시했다.
그 말에 로건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존재의 본질, 영혼에 새겨진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
그랬기에 지브릭 카셀이 혼을 세 개로 쪼개 놨을 가능성도 선뜻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신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런 일이 가능할까.
로건은 아직 일어나지 못한 클레이튼을 떠올리고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거절로 생각한 것인지, 하먼이 황급히 다시 말을 이었다.
“초인 한 둘이면 됩니다. 아니 한 명, 저를 보조할 초인 하나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느끼고 계시겠지만, 제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해서…….”
“……지금 우리 왕국의 초인들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지요. 일전에 제가 부상을 가장하고 움직인 적은 있습니다만, 지금은 실제로 상태가 좋지 않은지라 어려울 듯하군요.”
오러의 색을 바꾸는 변용은 자신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자신은 오러는커녕 포스를 운용하는 것만도 조심스러운 처지였다.
그런데 하먼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보탰다.
“……부상을 가장할 필요가 있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크게 다쳤다고 알려진 초인이 몇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거야 실제로……, 아!”
먼저 스승을 떠올리고 미간을 찌푸리던 로건은 이내 탄성을 질렀다.
“예. 빅토르 경 그 친구라면 벌써 털고 일어났을 수도 있죠. 그 친구를 보내 주십시오.”
“……충분히 가능한 얘기군요. 하지만 빅토르가 과연 수락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성녀와의 친분이 두터운 녀석이니까요.”
사실, 단순한 친분 정도가 아니었다. 빅토르가 일리아에게 존경 그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로건으로선 하먼의 말이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하먼의 말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성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성녀의 복수를 하는 겁니다. 빅토르 경이라면 이해할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좋습니다. 녀석의 의사를 물어보죠.”
로건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하먼이 조심스레 한 마디를 보탰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만, 다른 부탁도 있습니다.”
“음?”
“일단 성녀, 아니 사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시간을 끌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긴 하겠군요. 그럼 제가 무엇을 도우면 될까요?”
“폐하께서…… 죽어 주셨으면 합니다.”
로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 그날 밤.
카일 성에선 갑작스레 초인 하나가 사라졌고, 동시에 엄청난 소문이 세상을 강타했다.
맥라인의 국왕 로건 맥라인이 암습을 당했다.
생명이 위독한 중상.
습격자는 정체불명의 초인, 헤이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