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26)
426화작전의 시작은 처음부터 어긋날 ‘뻔’했다.
“성하께서 말씀하신 건가요? 뭐, 아니더라도 하먼 단장께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드려야지요. 여기 있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노사제 자일은 너무도 기꺼이 묵주 형태의 성물 테라(Terra)를 건넸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하먼 단장이 원한다면 내 당연히……. 으, 으윽!”
오스틴에게서 홀 모양의 성물 플람마(Flamma)를 넘겨받으려던 순간,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그의 눈동자가 붉게 빛나는가 싶더니, 신성력이 폭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헛!?”
하먼은 그것을 느끼자마자 검을 뽑아 들었다.
스각.
– 드디…… 읍!? 이노오오오오옴!
붉은빛이 나는 홀을 쥐고 있던 손목이 잘려 떨어지는 순간, 오스틴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 기괴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에 빅토르는 불쾌감을 느끼며 인상을 찡그릴 뿐이었지만.
“커흑!”
하먼은 무언가 다른 충격을 받았는지 왈칵 피를 토해 냈다.
“하먼 경!”
“괘, 괜찮으니 해야 할 일을 하게나!”
한순간에 창백해진 그의 안색은 빈말로도 괜찮지 않아 보였지만, 이미 그것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 단장님!?
문밖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벌컥 열리며 성기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싸늘하기 그지없는 표정의 하먼과 그의 동행인뿐이었다.
“아무 일 없다. 일 봐라.”
다행히 그 단말마를 끝으로 회까닥 눈을 뒤집은 오스틴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 쓰러져 있었으니, 덩치 큰 하먼과 빅토르가 자그마한 노사제를 가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예, 예. 알겠습니다.”
끼이익.
성기사들이 뒷걸음질을 치며 문을 닫고 물러선 뒤에야 하먼과 빅토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타이밍이 절묘했군. 다행히 직전에 연결을 끊었어.”
그 말에 빅토르는 다시금 쓰러진 노사제를 바라보았다.
교황의 자리에 올랐으나 카셀 마탑에 세뇌되어 이용당한 뒤 은퇴. 그리고 이번에는 신에게 영혼 잠식이라…….
잘린 손목에서 흘러나오는 흥건한 핏물이 이 늙은 사제를 더욱 안쓰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빅토르보다 더욱 오랜 시간 오스틴을 알고 지냈을 하먼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성물을 챙기게. 오스틴 님은 침상으로 옮겨 드리고.”
우우웅.
하먼이 신성력으로 오스틴의 손목을 지혈하고 오러로 바닥에 핏물을 지우는 동안 빅토르는 왜소한 노인을 안아 침상으로 날랐다.
그리고 얌전히 이불을 덮어 버리자, 창백한 안색의 노인은 그저 잠든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이분은 이제 못 깨어나는 겁니까?”
“아닐세.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길어야 며칠일 걸세. 손목은 어쩔 수 없었지만…….”
“꼭 그렇게…….”
“해야 했네. 나를 보게, 떨어질 생각조차 없는 이 빌어먹을 목걸이를. 만약 손이었다면 나 역시 스스로 잘라 냈을 걸세. 이분에게도 이게 차라리 나아.”
우우웅.
하먼의 목에서 그 존재감을 발산하는 성물을 본 빅토르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하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도 없이 했던 말을 또 한 번 꺼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혼이 잠식된 사람은 구할 수 없네. 자네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먼의 말을 끊고 나오는 대답은 빨랐다.
하지만 이제 그분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자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손으로…… 그분을…….’
수없이 결심했다 생각했거늘,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걸까.
번민에 휩싸인 그를 하먼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빅토르의 어깨를 두드렸다.
“칼을 휘두르지 못할 거면, 차라리 이쯤에서 돌아가게. 나 혼자 어떻게든 해 볼 테니.”
“어떻게 말입니까?”
“어떻게든!”
그 단호한 목소리에 빅토르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빠르게 제자리를 되찾았다.
지금 성녀를 죽이는 것이 진짜 구원이다. 하먼의 확고한 생각이 그의 말에서 다시금 전해진 것이다.
그것이 다시금 약해지려던 빅토르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후우우.
길게 숨을 뱉어 낸 후, 빅토르는 단호하게 말했다.
“가시죠.”
“정말…….”
“제가 그분께 안식을 드리겠습니다. 반드시.”
“……그러세.”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한 두 사람은 불과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 교황의 관저에 도착했다.
웬만한 소국의 궁전보다 더욱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황의 거처는 밤중에도 보호 결계의 영향을 받아 화려하게 빛났다.
역대 교황 중 일부가 너무 사치스럽단 이유로 관저에서 사는 것을 거부했을 정도로 호화로운 궁궐.
하지만 지금 그 궁궐의 앞을 지키는 이는 고작 성기사 둘뿐이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그들 중 한 명, 부관인 라인 하퍼가 경직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단장님.”
“다른 이들은?”
“명에 따라 외부 순찰 중입니다.”
궁궐에 남은 성기사는 이들 둘이 전부라는 뜻이었다.
“……자네는 묻지 않는가? 내가 왜 이런 일을 시켰는지?”
“알아야 할 일이면 가르쳐 주셨겠지요.”
답을 하는 라인 하퍼의 얼굴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고, 그 동료 제일 역시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 확신 어린 모습에 더욱 미안해진 하먼이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데.
“단장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든, 저희는 단장님을 믿습니다. 부디 몸 보중하십시오.”
“보중하십시오.”
하먼이 이 일을 끝으로 성국을 떠날 것까지 예감했는지, 그들의 인사는 정중함을 넘어 비장하게까지 느껴졌다.
“……무슨 일이 생기든 모두 내가 시켰다고 말하게. 그게 사실이니까.”
“그럴 생각입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가십시오, 단장님.”
억지 미소까지 보이는 부관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하먼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문 채 그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돌아섰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가지.”
단호하게 빛나는 그의 눈을 보며, 빅토르는 그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타다다닥.
두 사람의 가벼운 발소리가 유일한 소음처럼 느껴질 정도로 궁궐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카산드라와 에블린이 일을 잘해 준 모양이야.’
빅토르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다잡으며 딴생각을 할 때쯤, 교황의 침소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일상 용품을 가득 담은 도구함을 들고, 초조한 표정으로 대기 중인 두 시녀도.
– 안에 있습니다.
– 내부는 다 비웠습니다.
입 모양으로 전하는 보고에 빅토르와 하먼 역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앞치마에 핏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쉽게 내보낸 것은 아닌 듯했지만, 그런 일을 염려했기에 이들을 발탁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성공했으면 됐다.
빅토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하먼의 목소리가 두 여기사의 귓가에 울렸다.
[먼저 빠져나가서 곧장 맥라인으로 가게. 빅토르 경과 나는 알아서 돌아갈 테니. 그리고 돌아가는 경로는 처음에 왔던 길을 거쳐서는 안 될 것이야. 한 군데도.]입을 떼지 않고서도 뜻을 전달하는 묘기.
일전에 빅토르가 방법을 물었지만, 영혼의 힘을 다루게 되면 할 수 있다는 막연한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제는 자네 주군이 나보다 더 쉽게 하겠지.’라고 부언하는 하먼의 표정이 너무 씁쓸해 보여 더 캐물을 수도 없었다.
당연히 그런 재주를 접한 적 없는 카산드라와 에블린의 눈이 한순간 커졌지만, 둘 중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내 빅토르의 수신호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궁궐의 밖을 향해 바람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그런 그녀들의 뒷모습이 복도를 돌아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하먼은 교황의 침실 문을 열었다.
그그그긍.
육중한 문이 열리고 나자, 개인의 침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방 안이 드러났다.
그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커다란 침대에 걸터앉아 창가로 비쳐 드는 달빛을 만끽하고 있는 성녀가 보였다.
9개의 원이 그려진 새하얀 법복을 차려입고, 법관 센텐티아까지 쓴 모습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놀란 하먼의 눈썹이 꿈틀거릴 때, 성녀의 입이 열렸다
“이거, 아니마의 경고가 조금만 늦었다면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뒤통수를 맞을 뻔했어.”
덤덤한 어조로 흘러나온 말과 함께 그녀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 오스틴의 팔목을 베어 버린 것이 그 즉시 아문다의 귀로 들어간 듯했다. 그것이 이 사달을 만든 것이다.
‘신 주제에 입이 너무 싸군.’
까득.
자신이 파악한 아리아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아니마의 행태에, 하먼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 물러날 수는 없었다.
“멋대로 인간의 몸을 뺏는 거짓된 신들. 그 신들이 일으키는 전쟁을 막으려면 이 수밖에 없으니까.”
도발도 할 겸, 등 뒤의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 경각심도 줄 겸 꺼낸 말.
그 말에 이어 바로 꺼내 든 검을 까딱이는 하먼의 얼굴에선, 더 이상 망설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도발의 대상은 그 말을 산뜻하게 무시했다.
“설마 아리아의 잠식을 거부했을 줄은 몰랐다, 하먼 단장.”
침착한 목소리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 감히 인간 주제에!
이내 기괴하게 변한 목소리와 함께 푸른 기운이 해일처럼 쏟아지며 그들의 전방을 뒤덮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꽈아아아앙!
애써 사람을 비운 보람도 없이 요란한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가는 방. 3백 년 넘게 무탈했던 교황의 거처가 단번에 초토화된 것이다.
와장창창.
우르르르릉.
성법 결계로 보호되는 건물은 다행히 대번에 무너지진 않았고, 그 사이에서 푸른 기운을 갈라 낸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중에서도 앞에 선 자는 당연히 하먼이었다.
‘빌어먹을…….’
하먼은 이를 악물며 검을 다잡았다.
영혼이 절반 이상 잠식된 상태에서 신성력까지 쓰지 않으면 전력이 2할 이하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날 이후 신중히 테스트를 거친 결과, 이미 자신의 몸 안에 자리 잡은 신성력은 신의 뜻보다 자신의 의지를 우선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 영혼의 힘을 다루게 된 덕에 얻은 결실인 듯했다.
그리고 그 덕에 하먼은, 현재 본래 전력의 거의 4할을 발휘할 수 있었다. 비록 맥라인에 파병되기 전의 전력이었지만, 그렇다 한들 그 ‘신검’의 4할이면 오러유저 최상급의 경지에 발을 걸친 수준이라 봐도 무방했다.
다만, 그럼에도 지금은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사도의 첫 번째 공격부터 예상을 꽤 빗나갔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러 댄 힘이 이미 웬만한 마도사들의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 사도의 전투력이 대마도사급일 수도 있다는 가정이 그의 눈앞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옆에 따라붙은 빅토르는 엉뚱한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일리아 님! 제가 왔습니다!”
직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의 청년. 넘치는 성력의 공세로 푸르고 붉은 오드아이와 푸른 머리칼이 드러난 청년의 목소리에는 짙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 절절한 외침에 하먼은 탄식을 터트렸다.
‘이런…….’
정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인가.
‘제대로 된 조력이 필요한데.’
적의 무력은 무려 대마도사급. 계획대로 사도를 베려면 빅토르의, 초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겨우 중급의 경지로는 사도에게 해를 입히기 어렵겠지만, 공격을 분산시키며 버티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동급에 비해 월등한 포스와 재생력을 가졌으니까.
그런데 저따위 마음가짐이라면, 오히려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하먼의 푸른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혹시나 거사를 방해한다면, 이 젊은 인재까지 베어 버릴 생각으로.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눈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들어왔다.
– 썩 꺼져라!
“일리아 님! ‘약속’대로 제가 왔습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간절한 고함에 재차 솟구치던 푸른 신성력의 일부가 흩어졌다.
한참 약한 것이 분명한 회색의 오러가, 푸른 신성력을 그대로 가르고 사도의 몸을 꿰뚫는 광경도 보였다.
부릅뜬 사도의 눈.
검을 휘두르는 청년의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그 이질적이고도 애달픈 장면이 하먼의 눈에 고스란히 박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