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28)
428화
“거 재미있는 소문이구나. 그 신검이…… 흠, 대체 성국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중얼거리는 노인의 말에 통신구 속 상대가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일전의 사건으로 트레이시 님의 손발이 이미 다 잘려 나갔기 때문에…….]“최대한 빨리 알아보거라. 어쩐지 재밌는 예감이 든단 말이지.”
노인의 표정은 미묘했다.
대마도사의 경지에 올라 백수십 년을 살다 보니, 가끔 묘한 예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직관이나 지식의 범위를 넘어, 본래라면 알 수가 없는 일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 것이다.
그 예감은 대부분 자신의 안위에 관한 것으로, 일종의 생존 본능이라 볼 수 있었다.
‘전승의 힘으로 단기간에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황제 놈은 절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최근 수십 년간 없었던 그 불길한 예감이 최근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방위, 특히 황제 주변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소문이 터졌다.
그리고 이상한 건, 이 소문을 듣기 직전에 그 불길한 예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든 이유도, 그게 다시 사라진 이유도 전혀 모른다는 것이 그를 찜찜하게 했다.
‘신검이 날 위해 뭔가 했다? 그건 너무 웃기는 일인데.’
노인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통신구 속 목소리가 이어졌다.
[성국에서는 소문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틴 전 교황이 임시로 복귀하여 추적자들, 속칭 뱀잡이들의 규모를 훨씬 늘리고 있습니다.]피식.
“……신검을 세뇌할 수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였을 리가. 하찮은 놈들 따위야 신경 쓸 것 없다. 이유를 확실히 알아보고 보고하라.”
말을 뱉어 놓고 보니, 어렴풋이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신검에 관한 소문에 덧붙여진 이야기가 어떤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성물과 연관된, 자신의 신변을 위협할 만한 일이라면…….
“설마 사도?”
[예?]“……아니, 아니야.”
사실, 그래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성전기사단장이 사도를 막을 이유가 있을까?
‘두 팔 벌려 환영한다면 모를까.’
신들도 사도를 내려보낼 때마다 신성이 깎일 터. 의식이 구체화되는 낌새를 느꼈다면 모를까, 서둘러 무리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자신이 애써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 조금 불안감이 들기도 했지만, 쓸데없는 고민은 이만 관두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것이 다 가정일 뿐이지. 정보를 기다려 봐야겠군.’
지금은 이미 생겨나 버린 엄청난 변수를 관리하는 게 더 시급했으니까.
“로건 맥라인 그놈은?”
노인의 음성에는 깊은 짜증이 배어 있었다.
아무리 운명을 바꾸는 자라고는 하지만 무려 그 제국을 패퇴시켜 버릴 줄이야.
말도 안 되는 무기에 갑자기 튀어나온 초인들로도 모자라, 검혼을 죽이고 황제를 막아선 그 개인의 무력까지. 실로 어마어마한 변수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오며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그리고 그 덕분에, 동부에서 모여야 할 에너지가 목표의 삼 분의 일도 모이지 않았다. 심지어 제물로 써야 할 그놈이 죽었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으니, 노인으로서는 여러모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루이사 장로님이나 제라드 님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상태랍니다. 최소 중태라는 소문이 신빙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설마 운명을 바꾸는 자가 그리 쉽게 쓰러질까.”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노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진 채였다.
놈이 진짜 죽어 버렸다면 훨씬 많은 제물이 필요해진다.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놈이 황제와 싸웠다는 소문의 실체는?”
[제라드 님이 직접 보셨다고 합니다. 다만 일방적으로 몰리다가 누군가가 끼어들어 간신히 살아남은 것이라고 합니다.]“일방적으로 밀렸다라…….”
그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마 그 황제가 봐주지는 않았을 테니, 버틸 수 있었단 것만으로도 실력이 상당하다는 증거였으니까.
‘오러유저 최상급 중에서도 최강…… 아니, 검혼을 이겼다고 했지. 정말 소문처럼 오러마스터까지 염두에 둬야 하나? 설마, 아무리 운명을 바꾸는 자라도 그건 아니겠지. 그 나이에…….’
새삼 탑에 내려오는 운명을 바꾸는 자에 대한 정보가 소실된 것이 안타까웠다.
지금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세상의 흐름, 운명을 바꾸는 원인.’이라는 기록과 황금빛 포스뿐. 심지어 고대에 그들과 적대했었다는 숙적들의 정보와도 겹쳐서 둘을 분류해 내는 데만 한세월이 걸렸었다.
“황실과의 싸움에서 소실된 정보들이 너무도 아깝구나.”
대표적으로는 마도성자의 핏줄에 대한 기록이 사라졌다. 시조의 핏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의식의 준비 역시 훨씬 수월해졌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시조의 3대 성물이 직계 핏줄에 반응한다는 정보가 남아 있으면 뭐 하는가. 정작 그 직계 핏줄에 대한 기록이 사라졌는데.
[그래도 탑주께서 수많은 지식을 복원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저희는 의식을 실행할 준비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그래. 그거야 그렇지.”
실제로 노인은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부심만큼 믿고 있었다.
영광의 그 날이 오면, 그분의 제1사도가 되어 승천한 그분을 대신해 지상의 모든 권세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은 일단 변수부터 모두 확인해야 할 때였다.
“변수가 생겼다면, 그것에 맞춰서 계획을 변경하면 된다.”
[그렇습니다.]“황제를 막아섰다는 제삼자는 또 누구지?”
[헤이먼이라는 용병이라고 합니다. 그 대가로 중상을 입고 혼절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자가 깨어나서는 로건 맥라인을 암습했다고 합니다.]“뭐? 푸흐흐…… 어처구니가 없군.”
황제를 막아설 만한 또 다른 강자의 참전.
그래 놓고서는 다시 로건 맥라인을 암습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 헤이먼이라는 놈이 로건 왕을 구했다는 게 소문이 나 있나?”
[그런 말은 전혀 없습니다. 사실 제라드 님의 보고가 아니었다면 저희도 몰랐을 겁니다. 막판에 전투가 너무 난잡해져서……]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행이었다.
“짜고 치는 도박이군. 놈은 멀쩡하겠어.”
[그래도 로건 맥라인의 머리가 반쯤 희게 변한 것을 본 사람이 많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피를 토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결코 멀쩡한 상태는 아닐 겁니다.]“뭐, 그럼 더 좋지. 우리는 놈이 살아 있기만 하면 되니까.”
다만 문제라면 그를 암습했다는 초인이 황제를 막아설 정도의 실력자라는 것인데, 그런 실력자가 맥라인에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변수였다.
‘그런 실력자가 흔할 리 없지. 그런데 로건 맥라인이 당장 죽음을 연기해야 할 이유가 뭘까?’
황제를 막아설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자가 맥라인의 국왕을 암습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라졌다.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로건 맥라인이 그 헤이먼이란 자를 토사구팽했다는 것이었다.
필요가 없어진 사냥개를 삶아 버린 것.
하지만 그간 놈의 행적을 봐서는 그리 어울리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목표를 암습했다 하고 제국에 전향해서 황제를? 아니, 아니야. 너무 허술해. 무엇보다 그만한 실력자를 그런 식으로 쓰는 건 낭비지.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그렇게 고민을 이어 가다 보니, 문득 그 헤이먼이란 자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가만, 그런 실력자가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올 수가 있나?’
황제를 막아섰다면 그 역시 최소 오러유저 최상급으로 보아야 한다.
“헤이먼, 헤이먼이라……. 음? 설마 하먼?”
뱉어 놓고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애들이 변장 놀이 하는 것도 아니고 설마 가명을 그따위로 지었으려고.
하지만…….
‘오러유저 최상급이 신검 말고 또 누가 있던가?’
대륙제일검의 이름을 다툴 만한 오러유저 최상급의 강자가 여태 무명으로 있다가 맥라인에서 갑자기 튀어나왔을 확률.
그리고 신검 하먼이 변복을 하고 맥라인을 도왔을 확률.
그 좁은 선택지가 그 어이없는 추측에 무게를 더했다.
헤이먼이 하먼이라면.
‘그렇다면 신검이 맥라인에서 가짜 암습을 꾸민 뒤에 신전으로 가서 그 사달을 냈다는 건데? 정말 미치기라도 한 건가? 로건 맥라인은 왜 거기에 협조한 거고?’
꼬였다.
꼬여도 너무 꼬였다.
“가만, 사라진 교황…… 성녀가 맥라인 출신이라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흠, 설마 그 인연 하나 때문에……?”
다시 한참을 고심하던 노인은 역시나 답이 나오지 않자 쯧 하고 혀를 차며 말을 바꿨다.
“……앞서 한 명령을 취소한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신검을 찾아라. 사라진 그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 같으니.”
아무래도 일단 신검을 찾아야 이 실타래처럼 얽힌 의문이 해결될 것 같았다.
[예, 알겠습니다.]“그리고 다른 일의 진행 상황은?”
[서부 전쟁이 좀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황제가 직접 참전한다면 아무래도 서방 10국이 일방적으로 밀릴 확률이 높습니다.]쯧.
황제라는 단어가 나올 때 노인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지만, 답변은 금방 나왔다.
“상관없다.”
[예?]“우리의 목적은 피와 혼란이 쌓이는 것뿐이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는 중요치 않지. 그저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그만이야.”
[그러기 위해서라도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버려 두면 순식간에 박살 나 버릴 수도 있을 듯합니다.]“서방 10국의 병력만 무려 15개 군단인데, 그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 지휘관들이 전부 바보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뭐?”
[맥라인이 단독으로 제국을 패퇴시키는 것을 보며, 저마다 단독으로 제국 점령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단독으로? 심지어 점령전?”
[예. 이미 제국을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위기가 연합 내부에 팽배해 있습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인지 맥라인의 전과는 그저 소문으로만 취급하면서도, 동시에 제국은 우습게 보는 분위기가 서방 10국 전체에 만연합니다.]“하……. 세상에는 왜 이리 멍청한 놈들이 많을꼬.”
노인은 진심으로 한탄했다.
그래서 다루기 편할 때도 있지만, 가끔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벌일 때면 그야말로 속이 뒤집히는 듯했다.
한껏 머리를 굴려 계책을 꾸려 놨는데, 대상이 똑똑한 것도 아니고 너무 바보라서 통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속 터지는 상황인가.
까드득.
얼마 남지 않은 이빨이 신경질적으로 맞물렸다.
“……일단 반조니에게 전해라.”
[그 땅딸…… 아니 신임 장로에게요?]“그래. 놈에게 전해 아세리안의 암흑가부터 흔들어라. 황제의 친정을 최대한 늦춰지게 만들고, 그 뒤에 마도기사단을 동원해 10국에 용병으로 참전하라고 하라.”
[죄송합니다만, 그것만으로…….]“놈의 사흑검(邪黑劍)은 하수들에게는 대마법에 준하는 재앙. 충분히 희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용도로 써먹으려 가르친 것이니.”
[……알겠습니다]통신구 속 사내는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더 이상 반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루이사와 제라드에게 맥라인에 전심전력으로 협조하라 이르라. 그 날이 올 때까지 신뢰를 쌓아야 하느니. 적어도 그들이 원할 때 한 번은 그자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의식의 장소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맥라인 왕실에서 루이사 장로의 정체를 안다던데, 아무리 신뢰를 쌓는다고 그자가 과연 그것을 따를까요?]“순순히 따르면 좋지만, 안 따르면 안 따르는 대로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지. 일단 신뢰를 쌓으라 이르라. 놈은 인연을 그리 쉽게 버리는 놈이 아닌 것 같으니.”
[예?]“알 것 없다. 그대로 실행하라.”
노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통신을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