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30)
430화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아니, 감정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한 선택에 가까웠다.
애초에 자신의 영혼으로 다른 영혼을 채우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헛짓거리였다. 원래대로라면 영력만 낭비한 채 자신의 영혼에도 깊은 상흔을 남길 자폭이 되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 억지로 동원한 영력이 기묘한 현상을 만들어 냈다.
우웅.
‘하?’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과 스승의 영혼만이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그리도 고대하던 목소리가 들렸다.
– ……로……건?
오랜만에 듣는 반말이 왜 이렇게 반가울까.
– 예, 예! 접니다, 스승님!
– 전쟁…… 전쟁은?
스승의 물음에 로건은 그대로 눈물을 쏟을 뻔했다.
이 상황에서도 그것부터 물으시는가.
– 우리가 이겼습니다. 스승님 덕분에 북방도 지켰습니다!
– 그런가……. 다행이구나…….
– 그러니 이제 일어나세요. 깨어나서 승리를 즐기시기만 하면 됩니다.
– ……그렇구나. 그럼 됐다.
그 말에 다시 로건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 됐다니요? 뭐가 됐다는 겁니까. 제 힘을 받아들여서 얼른 일어나십시오.
– 아니다. 이대로 끝인가 했는데, 뜻이라도 전할 수 있었으니 되었다.
– 스승님!
– 제자의 목숨을 받아 삶을 연장하기에는, 내 낯짝이 그리 두껍지 않구나.
우웅.
깨어난 스승의 영혼이 그의 황금빛 영력을 그대로 밀어 내는 것이 느껴졌다.
– 스승님!
– 왕국의 중심이 되어야 할 사람은 너다. 너를 깎아 나를 채우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 아닙니다. 제자가 오러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저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도 검공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담담한 표정으로 가까워지는 로건의 영혼을 재차 밀어 냈다.
– 나는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이제 쉬게 해 다오, 로건.
그 의외의 말에는 로건도 멈칫했지만, 이내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아닙니다. 이대로 쓰러지시면 제가 사모님과 스텔라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제발!!
그 말이 담담하던 검공의 표정을 크게 흔들었다.
– 스텔라……. 내 딸…….
로건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영혼의 파동.
그에 로건은 정신을 더욱 집중하여 그의 영혼을 흔들었다.
– 예, 스승님! 사랑스러운 딸, 스텔라도 만나셔야죠!
하지만 그것조차 잠깐일 뿐이었다.
흔들리던 스승의 영혼이 이내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내 딸을, 스텔라를 잘 부탁한다, 로건.
– 스승님!
–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지 않느냐.
– 끝났습니다. 저희가 이겼습니다! 그러니…….
– 제국을 정벌할 생각 아니더냐?
– ……스승님?
– 이 실, 이 연결이 너의 최근 기억을 말해 주는구나. 지금은 내게 무엇도 숨길 수 없다, 로건.
– 하, 하지만……!
– 왕국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또다시 전쟁을 벌여야만 한다. 슬픈 말이지만, 또한 틀리지 않구나.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너는 쓰러져서는 안 된다. 무리하지 말거라.
– 쓰러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오러마스터라고요! 이 정도 영력의 손실로 쓰러지는 일은 없습니다!
– 그래. 그러나 다시 격하되겠지. 그리고 다시는 그 경지를 밟지 못하게 되겠지.
– 스승님…….
– 너 역시 이미 느끼고 있지 않느냐. 영혼이 손상된 자는 그 기적의 경지에 닿을 수 없음을.
자신의 영혼에 새겨진 경험을 그대로 읽으며 답하는 스승의 말을, 로건은 차마 부인할 수 없었다.
– 나는 네가 나를 위해 희생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은 결국 내가 지키고자 하는 왕국에 해가 되는 일이다.
스승의 태도는 단호했다.
하지만 로건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 그것이 스승님의 진심임을 압니다. 하지만 스텔라를 보고 싶은 마음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지 않으십니까! 저도 지금은 스승님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 그래,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은 선택이야.
– 옳지 않으면 어때서요!? 한 번쯤은 그냥 눈을 딱 감고 자신을 위해서 사십시오!!!
연결된 영혼의 끈이 떨릴 정도로, 로건은 스승의 선택에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검공은 완강했다.
– 그리하면 내가 살아온 인생이 무의미해진다. 나 스스로 내 인생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로건.
그야말로 철벽과도 같았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설득을 안 하면 그만이다.
– ……제가 언제 스승님 말을 그대로 따른 적이 있었습니까?
– 로……건?
– 다행히도 지금은 제가 스승님보다 강합니다. 그러니 강제로 시행하겠습니다.
– 안 된다!
우우우웅.
로건의 영력이 검공의 거부를 밀어 내며 오히려 그의 혼으로 쏟아졌다.
– 됩니다!
– 로건!
– 속죄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살아온 인생입니다. 다른 목표를 위해 내 사람을 버린다? 저는 그런 거 모릅니다!!!
로건의 강력한 의지와 함께 황금빛 영력이 그들이 있는 공간 전체를 물들였다.
우우우웅.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묘한 일이 일어났다.
사실, 처음 로건의 생각대로 영혼을 영혼으로 채운다는 발상은 불가능한 일이어야 했다.
영혼이 섞일 리도 없지만, 섞인다면 그것대로 그 사람의 정체성 자체를 오염시키는 일. 두 영혼 모두가 변질되고 말 자폭이나 다름없다.
로건 역시 그것을 알면서도 영혼이 연결된 이 기묘한 현상에 취해 다시 한번 무리수를 둔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그리고 한껏 고집을 부려 밀어붙인 순간에야, 로건은 현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 순간.
우우웅.
‘어!?’
막무가내로 영력을 쥐어짜서 움직인 로건의 영혼이 특이한 반응을 일으켰다.
‘이건…… 된다!’
쏟아부은 영력이 스승의 영혼을 강제로 고양시켰다. 로건의 혼이 섞여 드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혼 근간을 강화하여 영력을 보충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힘을 활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 오러마스터의 경지로도 불가능하다 여겼던 영력의 배양과 영혼의 수리, 그 기적의 힘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이 또한 자신의 영혼에 담긴 염원의 힘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한 기적일 뿐일까.
로건은 번뜩이는 영감 속에서 그 힘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더 영혼에 새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 짧았다.
번쩍.
시야가 환하게 물드는 느낌과 함께, 로건의 정신은 곧장 현실로 튕겨 나왔다.
“읏!?”
순간적인 탄성과 함께 비틀거리는 로건의 몸을 에일렌이 황급히 받쳐 들었다.
“여보!”
“나, 난 괜찮…… 스승님은?”
그 말에 따라 모두의 시선이 침대 위로 향했다.
그러자 꿈틀거리는 손이 보이고…….
“으음…….”
이내 옅은 신음과 함께 검공이 눈을 떴다.
“가, 각하!”
“검공 각하!”
“이럴 수가!”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
“로……건?”
검공의 입술이 열리며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예, 예! 접니다, 로건! 일어나십시오, 스승님!”
반색한 로건이 환호하며 응답하는데.
“미, 미친…… 새끼.”
신음처럼 튀어나온 욕설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멍한 얼굴로 굳어졌다.
* * * 검공이 깨어난 날, 성국의 사건이 퍼지며 세상이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맥라인 왕국만큼은 또 다른 소문으로 분위기가 들썩이고 있었다. 죽은 게 아니냐는 소문이 있던 로건 맥라인 국왕이 북쪽 요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스승과 함께 상처를 치료하겠다는 명목으로 나타난 국왕.
그에 혹시나 하며 불안해하던 맥라인 국민들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렇게 불안한 분위기가 사라진 건 북쪽 요새 역시 마찬가지였다.
“푸하하하! 20년 동안 각하를 모시면서 쌍욕을 하시는 건 처음 봤습니다. 그것도 폐하한테요!”
“기념할 만한 일 아닙니까. 저도 아마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루이스와 루터 카일이 잔을 맞부딪치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벌써 몇 번째 반복되는 말인데도 웃음이 잦아들기는커녕 더 신나 하는 것 같았다.
그 옆에 있던 부르델과 다른 기사들도 하나같이 환한 얼굴로 잔을 들어 올렸다.
“자, 다 같이 건배!”
“맥라인을 위해!”
“꺼지지 않는 불꽃에 영광을!”
“검공 각하 만세!”
“로건 폐하 만세!”
의식불명이었던 수장이 깨어나고, 국왕까지 방문하여 한바탕 치하를 늘어놓은 만큼 북쪽의 요새 쉴드에선 뒤늦게 승전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4군단장인 루터 카일과 검공의 부관 루이스가 대놓고 술을 퍼마시고 있으니, 쉴드의 병력 대다수도 오늘 하루는 축제를 즐기기로 마음먹고 날뛰었다.
그 가장 중심부에 있는 세 사람을 제외하고.
“스승님께서 욕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거참, 그만하시지요. 아직 몸도 완전히 낫지 않은 노인한테…….”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요. 기껏 목숨을 걸어 가며 살려 드렸더니 욕이 돌아왔으니까.”
그 말에 검공이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리자, 로건은 피식 웃으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순간, 도끼눈을 뜬 에일렌의 시선이 그에게 꽂혀 들었다.
“잠깐만, 당신…… 뭘 걸어요?”
로건은 그제야 아차 하는 얼굴로 아내의 시선을 피했다.
“아, 하, 하하. 목숨 걸 만큼 열심히 했다는 거지요. 하하. 진짜 건 것은 아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절묘한 회피였지만,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킨 스승이 피식 웃으며 퇴로를 막아 버렸다.
“그럼요. 폐하는 그냥 영혼만 건 겁니다. 까딱 잘못했다간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죽을 정도의 위험은 아니었지요.”
“당신!!!?”
“서, 성공했잖아요! 언제나처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푸하하하하!”
제자 부부의 부부싸움, 그 불씨를 댕겨 놓은 노인은 웃으며 그 모습을 감상했다.
티격태격하던 부부도 즐거워하는 검공을 보며 이내 소란을 멈추었다.
“아무튼 다행입니다, 폐하. 모든 것이 다 잘 풀려서.”
한껏 웃어 젖힌 검공이 빙그레 미소를 짓자 로건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또 새삼 존대를 하시는 겁니까? 저는 반말을 하시는 스승님이 편한데. 뭐 욕설을 하셔도 좋고요.”
“……그건 잊어 주십시오, 폐하. 노인이 죽을 때가 되면 뭔 말인들 못 하겠습니까.”
“또……. 그런 말씀은 마시고요.”
“하하, 알겠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따뜻한 눈빛이 오가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에일렌은 문득 화제를 돌렸다.
“언제쯤 완전히 회복되실 것 같습니까? 이이의 부상은 한두 달이면 될 것 같은데.”
“저도 그쯤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슬슬 준비를 해야겠지요?”
“예, 그렇군요. 일단 서부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봐야겠지만.”
검공의 반문을 로건이 받고, 조금은 불안한 표정의 에일렌이 다시금 되물었다.
“하지만 꼭 우리가 쳐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폐하의 말대로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그저 막아 내기만 해서는 언제고 이 평화도 깨질 겁니다. 제국은 팽창 정책을 멈추지 않을 테니까요.”
로건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해가 지고 있는 서쪽 창가를 바라보았다.
“서쪽의 전쟁은 어찌 될 것이라 예상하십니까?”
“제국이 피해를 보긴 하겠지만, 이기지 않겠습니까? 황제의 중앙군 역시 그쪽으로 향했는데.”
“제국의 초인은 우리와의 전쟁에서 상당수가 죽었습니다. 이제 서부 군단장들을 제외하면 열 명이나 남았을까요?”
에일렌이 회의적인 의견을 꺼내 들었지만, 검공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폐하께서 말씀하신 황제의 무력이 사실이라면, 서방에서는 그를 막아 낼 자가 없을 겁니다. 그 검은 기사들도 그렇고.”
“아…….”
그렇게나 깎아 냈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는 제국의 무력.
그것을 떠올린 세 사람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이내 로건이 결의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서방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 출진을 준비하겠습니다. 기간은 스승님과 제 부상이 전부 회복되는 시기에 맞춰서.”
“테로난과 리버티의 원군은 거기까지 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나 리버티는 군터 리버티까지 사망했으니.”
“감수해야지요.”
“승산이 있겠습니까?”
“없으면 있게 만들어야지요. 늘 그래 왔듯이.”
이제 다시 시작이다.
로건의 눈동자가 붉게 물든 석양을 받아 은은히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