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32)
432화
“반 조니?!”
“예. 그런 이름을 가진 초인이 발톤 크라센을 죽이고 서부 전선의 균형을 무너트렸습니다. 벌써 재앙을 뿌리는 난쟁이니, 사악한 검(Evil Sword)이니 하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허, 그놈이……?”
새롭게 등장한 초인에 대해 로건이 무언가 아는 눈치이자 데미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아니, 아니야.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서.”
소문을 들었다니?
갑자기 튀어나온 초인에 제국도 경악하고 있는 마당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제 군주의 정보력에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 터라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이내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을 이어 나갔다.
“덕분에 황제군이 무리해서 서쪽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아세리안의 보급 문제도 해결하지 않은 채로요.”
“제국의 피해가 크겠군.”
“예. 저희에게는 호재입니다.”
“……그렇지.”
데미안의 말에도 로건은 복잡한 표정으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이블 소드 반 조니. 전생의 그란디아 전쟁에선 제국군으로 활동했던 무소속 초인. 그런데 이번엔 제국을 공격하는 쪽이라고?’
전생에선 놈이 유명해진 지 한참 뒤에나 그가 암흑가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졌었다. 그랬기에 출세를 바라던 뒷골목 인생이 그 방편으로 제국에 충성을 바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제국이 질 것 같아서인가?’
순간 떠오른 생각은 얼핏 타당한 듯했지만 로건은 이내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서방 10국이야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객관적인 전력은 여전히 제국이 우위다.
맥라인에서 패퇴한 황실 중앙군이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고는 해도, 그들과 서부 군단을 합치면 서방 10국의 총병력을 가뿐히 넘어선다. 거기다 초인의 수나 장비의 질, 병사 훈련도와 보급 등 여러 여건을 고려하면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그런데 범죄자 출신인 놈이 불리한 쪽에 붙어서 영웅이 되어 보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럴 리가…….”
“예?”
“아니, 아니다.”
전생에 놈이 저지른 악행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강자 앞에선 설설 기고, 약자 앞에선 한없이 잔인해지는 전형적인 소인배.
심지어 전장 한가운데서 시체를 유린하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는 놈이었다.
그 최악의 성벽과 범죄 전력 때문에 제국의 승리에 공헌하고도 공식적인 작위를 받지 못하고, 왕국의 암흑가를 장악하는 데 만족해야 했던 놈.
그런 악명 높은 범죄자가 이쪽에서 날뛴다면 그 자리에서 잡아 죽이겠지만, 제국의 적이라면…….
‘내 눈에 띄기 전까진 살려 두마, 반 조니.’
당분간은 놈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게 나을 듯했다.
“……우리의 출전 시기는 언제로 잡는 게 좋을까.”
“그거야 황제군이 서방 10국과 충돌하는 순간이 가장 좋겠죠.”
그 말을 하는 데미안의 눈은 더없이 반짝였다.
중앙군이 사라진 제국의 동부, 왕국의 서부 국경.
기존의 제국 동부 8군단은 그 전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그중 대다수가 초인인 군단장을 잃은 상태였다.
즉, 맥라인에겐 더없는 호기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데미안이 노리는 건 하나 더 있었다.
“제국은 설마 우리가 먼저 나서서 자신들을 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겠지.”
그도 그럴 것이, 피해는 제국만 본 것이 아니다.
제국의 패퇴가 확실해지자 소왕국 연합의 원군은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맥라인의 5군단 역시 거의 3개 군단으로 재편해야 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자경단의 피해 역시 카일 성에서만 거의 그 정도 규모였으니, 가족을 잃은 국민들은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저 환호하는 분위기 속에 묻힌 것뿐이지.’
더구나 그 승리 역시 장비와 대마법진의 효과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뒤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성 밖으로 나와 제국을 공격하리라는 것은 맥라인의 국민들조차 예상치 못할 터.
“자경단은 동원해 봤자 희생만 더 커질 거야.”
“맞습니다. 그러니 군단의 정예 병력만으로 빠르게 요지를 점령하여, 루스펠하임과 펜나까지 함락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 동부 군단들도 박살 내면서요.”
데미안의 말은 얼핏 듣기엔 무리한 주문 같았다. 더 큰 병력을 보다 작은 병력으로 제압하여, 영토 확장 전쟁을 벌이자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말을 하는 데미안이나 듣는 로건 모두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나와 스승님이 몸을 완전히 추스른 다음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예. 왕국 연합의 철수도 다른 구실을 붙여 막아 두겠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현 상황에서 황실 중앙군이 서부 전장에 참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늦어도 한 달 이내일 거란 점인데…….”
데미안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로건의 하얗게 센 머리와 창백한 얼굴로 향했다. 그때까지 이쪽의 주장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할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걱정할 것 없어. 그때까지는 회복되겠지. 아니, 무조건 회복될 거야.”
로건은 서서히 붉은 빛을 되찾아 가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과장이 아니었다.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포스코어에 생겼던 균열도 스승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아물었기에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지고 있었다. 아마 스승을 치료하기 위해 모험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 너머의 경지를 조금이나마 엿본 것 같았다.
‘그때의 감각을 다시 느껴 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황제도 두렵지 않을 무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영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은 클레이튼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아직은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이야기였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저 지금 당장은 그런 모험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일 뿐.
‘언젠가는…….’
로건이 깨어나지 않는 가신을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변수는 카셀 마탑과 성국뿐인가?”
“예. 소문으로 미루어 보아 하먼 경과 빅토르 경이 일을 제대로 처리한 모양입니다.”
어디 제대로 처리한 정도일까.
성녀의 실종으로도 모자라 그 배후가 검은 뱀이라는 소문이 번져 나갔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그 덕분에 두 변수가 서로 얽혀서 전쟁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검은 뱀을 쫓는 성국. 그리고 대륙에 수배된 상태에서 성국의 추격대까지 피해야 하는 카셀 마탑.
맥라인으로서는 기꺼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 일이 그렇게 튈 줄 알았으면 차라리 제국에 덮어씌우라고 할 걸 그랬어.”
“……그건 무리수지요. 아무도 안 믿었을 겁니다.”
“농담일세, 농담. 그랬으면 일이 더 쉽게 풀리지 않았을까 해서 하는 말이야.”
로건의 너스레에 데미안 역시 피식 웃었다.
애초에 임무를 무사히 수행한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데 거기에 검은 뱀이 얽혔다는 소문까지 얹어진 것이다.
그 이상의 기적을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거라 할 수 있었다.
“아직 별다른 연락은 없었지만, 하먼 경은 몰라도 빅토르 경은 돌아오는 길일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불사의 기사’ 아닙니까.”
“학살자라고도 하던데. 뭐, 잘 죽이고 절대 안 죽는 기사라니 나쁠 것 없지. 빅토르 녀석, 별명이 참 탐나.”
데미안의 농담에 로건 역시 웃으며 호응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 불사의 기사가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상태로 한 여자를 업은 채 카일 성에 나타났다.
* * *
– 빅토르 경! 이러시면 곤란……!
– 마, 막아!
– 어떻게 막아요!
집무실 밖의 소란에 로건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라의 군주이자 전쟁 영웅을 넘어, 이제는 거의 신격화된 자신이 있는 곳이기에 저런 소란이 들려온 게 실로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다만, 너무 과해진 숭배가 부담스럽다 못해 버거울 지경이었던 터라 한편으론 그 소란이 반갑기도 했다.
더구나 그 안에 들리는 이름은 분명…….
‘빅토르?’
임무를 마치고 남부 요새로 돌아갔어야 할 녀석이 여긴 왜?
로건이 의아해하는데, 쾅 소리와 함께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이내 해골처럼 깡마른 괴인이 누군가를 업은 채 연신 비틀대며 안으로 들어섰다.
“폐, 폐하. 이, 이분을 살려 주십시오! 제발!”
쓰러지듯 주저앉으면서도 업은 여인을 떨어트리지 않는 괴인.
로건은 그 간절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 괴인의 정체를 깨달았다.
“하!? 빅토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황급히 따라 들어온 기사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데, 뼈만 남은 몰골의 빅토르는 정신이 없는지 계속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폐하. 제발 이분을…….”
자연히 로건의 시선은 빅토르에게 업혀 있는 갈색 머리 여인에게로 향했고, 이내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시체? 아니, 아니군. 아직 혼이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어. 하지만 이건…….’
농가의 복장을 한 여인.
미색은 꽤 뛰어났지만, 갈색의 머리 때문인지 그렇게 튀는 외모는 아니었다.
그리고 로건은, 저 여인의 감긴 눈 역시 갈색일 거라고 확신했다. 익숙한 마법의 향기가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빅토르가 데려올 만한 여인.
그리고 변장이 필요한 여인이라면?
‘설마…….’
로건은 갑자기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빅토르의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됐다. 이대로 두고 모두 나가 보도록.”
“예, 옛!?”
“아, 알겠습니다.”
기사들이 눈치를 보면서도 절도 있게 인사하며 돌아 나서고, 커다란 문이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함께 다시 닫히는 순간.
우우웅.
로건의 손짓에 따라 여인의 품 안에서 신분패 모양의 아티팩트가 빠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여인의 이목구비가 변하고, 갈색 머리 역시 찬란한 은빛으로 탈바꿈했다.
그 광경을 보며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역시……. 빌어먹을.”
여인, 일리아에 대한 친분과는 별도로 지금 이 상황은 상당히 심각한 것이었다.
– 실종된 교황이 맥라인에 있다. 그것도 반 시체 상태로.
그런 소문이라도 퍼졌다가는 제국 정벌이고 자시고 모조리 물거품이 됨과 동시에 성국의 공격이 퍼부어질 터였다.
‘아니, 성국만 공격하면 다행이지. 제국은 물론 소왕국 연합도 등을 돌리고 공격할 수도…….’
아찔한 상상에 두통이 점점 심해지는 듯했다.
“인마, 넌 대체 어쩌자고…….”
“폐, 폐하. 살려, 살려 주십시오.”
로건의 타박에도 빅토르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대체 성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충분히 똑똑하고 현실적인 녀석이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온갖 의문이 솟구쳐 올랐지만 울 것 같은 얼굴로, 아니 이미 눈물조차 말라 버린 얼굴로 같은 말만 토해 내는 녀석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폐하, 제발…….”
“하아……. 알았다, 빅토르. 이만 쉬어라.”
“예. 예, 폐하. 감사합니다…….”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쓰러지는 빅토르.
하지만 기절한 상태에서도 그 깡마른 얼굴에 어린 걱정의 빛은 그대로였다.
“원기가 상할 때까지……. 이 녀석아, 대체 왜…….”
로건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뱉어 냈지만, 사실 빅토르의 몸 상태가 왜 이 지경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일리아의 몸에 계속 포스를 흘려 넣고 있었던 거야. 거기다 노비엔스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아마 잠도 자지 않고 쉼 없이 달려왔을 터였다.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 아니, 빅토르가 아닌 다른 어떤 초인이라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한들 이 지경이 된 성녀를 왜 자신에게까지 데려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 믿는다, 빅토르.”
아니라면 깨어나서 반쯤 죽을 줄 알아라.
로건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포스를 끌어 올렸다.
우웅.
일리아의 상태는 아무리 봐도 영혼 소실에 따른 생명력 저하. 외부에서 생명의 힘을 공급받던 게 조금만 더 지체되면 그대로 숨을 멈출 터였다.
다만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자신이 지속해서 힘을 넘겨주기엔 무리가 있으니…….
[당장 집무실로.]영혼의 파동을 조절하여 적합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내와 빅토리아에게 뜻을 전했다.
집무실 500m 반경 안에 있는 그들에게 의념을 전하는 게 이제는 제법 수월하게 느껴졌다. 전설 속의 오러마스터들이 왜 하나같이 전술의 귀재로 소문이 났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런 영파를 힘의 낭비 없이 사방의 아군에게 뿌릴 수 있다면…….
‘깃발 신호나 마법 통신, 구령 같은 과정 없이도 대군을 자신의 손발처럼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지.’
그리고 그건, 적은 병력으로도 제국군을 혁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원 중 하나이기도 했다.
로건은 그렇게 애써 희망적인 상상을 하며 위장용 아티팩트를 다시 일리아의 품속에 넣었다.
우우웅.
이내 그녀의 외모가 처음 이곳에 나타났을 때의 평범한 모습으로 변했다.
성녀이자 교황 일리아 가본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절대 알려져선 안 될 기밀. 변용 마법을 다시 적용시키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바람같이 달려온 에일렌과 빅토리아는 쓰러진 빅토르를 보며 경악했다.
“오빠!!”
“……빅토르 경!?”
“빅토르는 괜찮아. 탈진한 것뿐이니. 문제는 이쪽이지.”
그 말에야 두 사람의 시선이 빅토르의 옆, 낯선 여인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코 새어 나가선 안 될 일이지만, 일리아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 두 사람은 상황을 알 필요가 있었다.
로건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신분패를 꺼내 마법을 해제했다.
“일리아 성녀!!?”
놀라는 그들을 보며, 로건은 빅토르가 맡았던 임무와 직전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신들이, 사도가 자신을 적대한다는 말에도 두 사람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지브릭 카셀과 9대신들의 비화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해 둔 덕분일까. 아니면 그만큼 자신을 믿기 때문일까.
‘……둘 다겠지.’
로건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살짝 뿌듯함을 느끼는 가운데, 성녀에 대한 두 사람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대체 왜……?”
부부는 일심동체라 그런지 에일렌은 로건과 똑같은 의문을 떠올리며 황당해할 뿐이었지만, 빅토리아는 조금 달랐다.
“……오빠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을 거예요. 만약 살려 낼 수만 있다면…….”
이어진 그녀의 설명에 로건은 다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