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33)
433화
“성녀님을 무사히 살려 내면 성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노비엔스도 공격을 당한 적이 있으니, 어쩌면 직접적인 병력 지원도…….”
초췌한 안색의 빅토리아. 그녀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본인도 알고 있는 것이리라.
“성국은 그 태생상 신앙 외적인 이유로 정벌전을 시행할 수 없어. 공격을 당해 방어를 하는 것과 먼저 침공하는 건 성격이 전혀 다르지.”
“제국에 원한도 남아 있을 텐데…… 아니, 죄송합니다. 무리한 얘기였습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빅토리아가 억지로 말을 이어 가려다 이내 포기했다. 하지만 빅토르를 위한 변호는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오빠 생각은 달랐을 겁니다. 정벌전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성녀님만 살려 낸다면 성국의 지원으로 전후 수습이 훨씬 편해질 거라 생각했을 수 있어요.”
그래. 그랬을 수도 있지.
다만 그게 성국의 공적이 될 위험을 감수할 만한 정도인지를 따진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하는 게 기사의 도리기는 하지요.”
에일렌은 그리 말하며 한숨을 쉬었고, 이내 시선이 마주친 부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어두운 안색으로 바라보던 빅토리아는 조심스레 마력을 움직였다.
그그긍.
성인의 허리쯤 오는 키, 그에 비해 어깨는 지나치게 넓은 골렘 여덟 기가 순식간에 생겨났다.
집무실의 구조를 최대한 해치지 않은 선에서 조형된 골렘들은 우락부락한 겉모습과는 달리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성녀와 빅토르를 받쳐 들었다.
빅토리아의 골렘 마법이 이전과는 또 다른 수준에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광경에 로건이 눈을 빛냈다.
‘호오?’
그러나 그 표정을 못 본 것인지 빅토리아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일단 성녀님은 이 모습 그대로 ‘생명 유지대’를 만들어 모시겠습니다.”
생명 유지대란 빅토리아가 쓰러진 스승을 위해 그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만든 아티팩트를 말함이었다.
물론 그런 것을 연달아 만들게 될 거라고는 로건도, 빅토리아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이 가장 알맞은 조치였다.
“그래. 그 ‘관’…… 아니, 크흠. 말실수다, 리아.”
자신이 무심코 뱉은 말에 더욱 어두워지는 빅토리아의 안색.
로건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을 바꿨다.
“아무튼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보거라. 내게 수가 생길 것도 같으니.”
“……예?”
그 말에 빅토리아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젠 그녀도 스승이 쓰러진 이유를 파악하고 있었다. 6서클의 마스터까지 경지를 끌어올리게 된 것도 그 과정에서 영혼의 힘을 조금이나마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격의 상승에 따른 법열은, 그 덕분에 알게 된 절망적인 사실로 인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영혼의 소실, 그 치명적인 상처는 절대 회복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왕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검공께서 쾌차하신 것은 알고 있겠지? 그분이 쓰러지셨던 이유도 클레이튼 공이나 지금의 성녀와 같았다.”
물론 위중함의 정도는 차원이 다르지만…….
“예!?”
이어지려던 로건의 말은 빅토리아의 반색에 그대로 묻혔다.
“정말, 정말 스승님의 소생이 가능한 겁니까!?”
“……당장은 어렵다. 확실히 된다고 보장도 못 해.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면 헛소리라고 분노했을 말이지만, 그 말을 한 것이 로건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내 어둡던 빅토리아의 얼굴에 다시금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 반응이 너무나도 즉각적이라 로건으로선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기운 차리라고 한 말이기는 한데…….’
“감사합니다, 폐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또르르 흘러내리는 눈물.
이미 스승의 회복을 기정사실화한 듯한 빅토리아의 모습에 로건은 난감함을 느꼈다.
이 상황에서 확률이 낮다는 말을 어찌 꺼낼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볼 테니 너무 심려치 말거라.”
빈말이 아니다. 어차피 자신의 경지를 높이는 게 그녀의 소망을 이뤄 줄 지름길이 될 테니까.
‘어떻게든 해낸다.’
로건은 울고 있는 어린 마도사를 보며 새삼 각오를 다졌다.
* * * 빅토르가 깨어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그리고 그가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성녀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 원리로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채우게 만든 거야. 마정석만 주기적으로 갈아 주면 반영구적으로 기능해.”
보안이 엄중히 유지되는 카일 성의 심처, 사방이 꽉 막힌 석실.
푸른 기운이 맴도는 투명한 관(?)속에 누워 있는 스승과 성녀의 모습을 일견한 빅토리아가 차분히 설명을 마치며 빅토르를 돌아보았다.
“다행, 다행이다. 정말…….”
그러나 그는 설명을 이해한 것인지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맥없이 대답하며 오직 한 곳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빅토리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있는 동안은 상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을 거야. 그리고 폐하께서도 어떻게든 소생시켜 주신다고 했어.”
“그래, 다행이다…….”
“아 진짜!!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돌아선 빅토르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가, 갑자기 왜 이래!?
“고맙다, 리아. 정말 고마워.”
“자꾸 뭐가 그렇게 고맙다고……. 대체 왜 그러는데?”
“그냥…… 고마워서.”
“아니, 그게 아니라!! 쫌!!”
우애 넘치는 광경은 잠깐일 뿐이었다.
신경질적으로 오빠를 밀쳐 낸 빅토리아는 또다시 한숨을 푹 내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성녀님을 여기로 데려온 거, 정말 위험한 짓이었다는 거 알아?”
“……알지.”
“그런데 왜 데려온 거야?”
“그냥…… 다른 선택지가 생각나지 않았어.”
그 멍청하게까지 느껴지는 대답에 순간 멍해졌던 빅토리아가 이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오빠한테 분명 다른 생각이 있을 거라고, 내가 폐하 앞에서 얼마나 열심히 변명했는지 알아?! 근데 뭐? 그냥?!”
“……살려야 했으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니면 나도 죽을 것 같았으니까.”
“……뭐?”
나직하게 울린 오빠의 목소리에 빅토리아의 표정이 다시금 멍하게 변했다.
그에 쓴웃음을 지은 빅토르가 우울한 얼굴로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그냥…… 어떻게든 살려야만 했어. 폐하라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 생각밖에 안 났어.”
“오빠, 설마 지금…….”
무언가를 눈치챈 빅토리아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는데, 빅토르는 동생이 말을 꺼낼 틈도 주지 않고 빠르게 돌아섰다.
“아무튼 고맙다. 난 폐하를 뵙고 올게.”
“야……!!”
쿵.
닫히는 석실 문 사이로 사라지는 동생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빅토르는 크게 심호흡하며 발을 내디뎠다.
잠시 후.
“개인적인 욕심으로 왕국을 위험에 빠트릴 뻔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벌하여 주십시오.”
쿵.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빅토르를 보며, 로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계산을 하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이냐? 네 녀석이?”
“……죄송합니다, 폐하.”
별다른 변명도 하지 않는 빅토르.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로건은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일단 성국의 일이 어찌 진행됐는지부터 보고하거라.”
“……예.”
묻어 주시려는 것일까, 아니면 잠시 뒤로 미루신 것뿐일까.
어느 쪽이건 간에 빅토르로서는 그저 죄송할 뿐이었다.
그는 한층 무거워진 마음으로, 중앙 신전에서 있었던 일을 천천히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먼 경은 사도가 성전을 일으키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버림받은 자들에 관한 것이라고 하면 폐하께서도 이해하실 거라고…….”
길게 이어진 이야기는 하먼의 당부로 끝이 났다.
그에 또 한숨을 지은 로건이 마른세수를 했다.
“……그렇군. 그렇게까지 한다라.”
신들이 자신을 적대한다는 말까지 들은 마당에, 이제 와 성전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지껄인다 한들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만행을 사전에 저지했다는 것이 기꺼울 뿐.
“……하먼 경은?”
“다른 사도의 강림을 막기 위해, 세상에 흩어진 성물을 모두 모아서 처리하겠다며 떠났습니다.”
“성물을 처리한다고? 그게 가능한가?”
9대신의 성물에 관한 이야기는 로건도 들어 본 바가 있었다.
오러로도 파괴할 수 없다는, 신의 권능을 대표하는 물건.
“봉인을 할 거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봉인이라…….”
9대신의 성물을 마법으로 어찌해 보겠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아마 하먼 자신만이 아는 장소에 물리적인 봉인을 하려는 게 아닐까.
‘하먼 경은 믿을 수 있으니…….’
그 계획을 들은 것만으로도 직면했던 신들의 위협이 일단락된 느낌이었다. 봉인의 자세한 내용까지는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와 남은 흥미라고 한다면…….
“사도가 남겼다는 낙인을 좀 보자꾸나.”
“예, 폐하.”
빅토르가 주저 없이 다가와 왼쪽 손등을 내밀었다.
Haeresis.
그 위에 새겨진 고대어를 보는 순간, 로건은 인상을 찌푸렸다. 선명한 푸른색 글자에서 지독한 악의가 느껴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피부에 새겨진 상처가 아니었다.
“이단이라. 영혼에 흔적을 새겨 놨어. 신이라는 것들이 정말 졸렬하구나.”
이제 와 9대신에 대한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우스울 따름이니, 신을 향한 폭언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빅토르, 앞으로 장갑은 꼭 끼고 다녀야겠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하먼 경은 뭐라더냐?”
“신성력이 반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더 이상 사제의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음?”
그 말에 로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먼의 반응을 물은 이유는 이런 답을 듣기 위함이 아니었다.
평생 신들을 모시며 살아온 성기사가 그들의 본모습을 보고 어찌 반응했는지가 궁금했던 것인데, 어째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신성력이 반대로 작용한다? 그 흔적 하나로?”
자신의 감각엔 그저 영혼, 영체에 새겨진 작은 흔적 같았다. 그 안에 깃든 악의는 분명하게 전해졌지만, 별다른 힘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한데 하먼은 영혼이 잠식되었던 탓에 마스터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했을 텐데 무엇을 근거로 그리 판단한 것일까.
‘신성력을 가진 자에겐 다르게 느껴지는 것인가? 어떻게?’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로건의 눈빛이 한층 진해지며 일순간 영안(靈眼)이 트였다. 대략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동원해 빅토르의 영혼에 생긴 변화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우우웅.
포스를 끌어 올리자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포스코어들이 통증을 호소했지만, 로건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집중을 놓지 않았다. 한순간에 찾아온 영감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고양된 영혼은 이내 그 답을 찾아냈다.
빅토르의 영혼에 새겨진 이단이라는 단어,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힘을.
‘신성력? 아니, 이건…… 염원의 힘?!’
강렬한 ‘의념’이 담긴 그 힘이 빅토르의 영혼을 슬쩍 변질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의념으로 영혼을 변질시킨다? 이게 가능한가? 아니, 아니지. 생각해 보면 내가 지닌 염원의 힘도 결국 영혼의 힘이 모인 결과물…….’
신성력은 신이 내린 성스러운 힘이라는 편견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신앙이라는 가림막을 치워 내는 순간, 그 본질이 눈에 들어왔다.
영혼의 힘이건 신성력이건, 결국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강제하는 염원의 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한때 신인의 경지에 오른 초월자들이었던 9대신, 그들의 힘 또한 염원의 힘에 근거한 것일까?
“저기…… 폐하?”
고요한 집무실.
얼떨결에 한 손이 붙들린 빅토르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미동도 없는 로건의 눈빛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