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35)
435화- 자경단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각 영지에 남겨진 기본 병력과 더불어 왕국의 치안을 맡는다.
– 희생된 병사와 자경단원의 유가족들에게는 왕국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하겠다.
구체적인 액수가 적혀 있지 않은 포고문임에도 그것을 본 국민들 대다수는 크게 안심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구나.”
“이제야 실감이 나.”
“어흐흐흐.”
무사히 살아남은 사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바빴다.
그리고 그 탓에, 이어진 포고는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 왕국 군단을 재편한다.
그 내용은 남북의 두 요새에 빠르게 전달되었다.
명목상 왕국 동북부를 지키던 루터의 4군단을 검공의 2군단에, 동남부를 지키던 위켄의 5군단을 로니안의 3군단에 편입시켜 왕국을 3군단 체제로 바꾼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미 같은 요새에 주둔해 있는 군단인데다, 왕의 스승인 검공과 왕의 동생 밑으로 편입되는 일이었다. 루터와 위켄의 빠른 동의 끝에 재편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또한…….
– 재편된 군단의 적응 훈련을 위해 한동안 주둔 상태를 유지한다.
이어진 명령은 전쟁이 끝났다는 분위기 속에서도 전후 정리라는 명목하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즈음, 카일 성에 있는 국왕과 그 책사는 외부의 소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치워야 할 것은 동부 8군단의 패잔병들입니다.”
데미안이 눈을 빛내며 그리 말하자, 로건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어렸다.
“지금쯤 동부 국경에 흩어져 있을 제국군을 굳이 찾아가 부숴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우리가 루스펠하임이나 펜나를 점령했을 때 제국군이 그곳으로 몰려와 주는 게 최상이겠지만,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최악의 상황?”
“동부 군단들이 저희와 교전을 택하지 않고, 왕국의 본토로 진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우리도 제국의 아세리안으로 향하면 될 일 아닌가? 설마 제국의 심장을 지키는 일보다 변방의 역공을 우선시할까.”
로건이 옛 경험을 되새기며 그리 말하는데,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챈 책사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맥라인에 오기 전, 그 무모했던 전투의 결과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까.
“그 비프로스 때와는 조금 다릅니다, 폐하. 동부 군단은 제국의 총전력이 아니니까요.”
“……황제의 중앙군이 우리를 막을 것이라 믿고, 역공을 취할 것이다?”
“예.”
데미안의 단언에 로건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서부 10국의 공세가 좀처럼 그칠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황제군이 몸을 뺄 수 있을까? 바로 반응할 수는 없을 텐데.”
“동부 군단의 반응을 말하는 겁니다. 저들에게는 황제가 신앙입니다. 저희가 폐하를 믿는 것처럼요.”
조금은 민망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데미안.
그에 로건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돌렸다.
“실제로야 어찌 되었건, 황제를 믿고 우리 본토로 진격할지도 모른다는 거군.”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쯧.
“……동부 군단을 부수는 동시에 점령전도 해야 한다. 그것도 황제군이 서방 왕국들을 박살 내고 돌아오기 전에. 이거, 시간이 촉박할 것 같은데.”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이야 제국의 전력도 8군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줄어든 상황이니까요. 7군단 같은 경우엔 사실상 해체 상태고, 나머지 군단들도 2만 명 남짓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테로난과 리버티의 군대를 정벌군에 합류시킨다는 가정하에 말이지?”
흩어져 있는 제국군이라 해도 그 군세를 다 합치면 무려 20만, 4개 군단급 규모였다.
3군단으로 재편된 맥라인 왕국군만으로는 수적으로 열세.
물론 초인 전력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만큼 안 될 것은 없겠지만, 기사 비율의 차이를 생각하면 희생이 상당할 터였다.
그렇다면, 그 희생을 나눠 질 동지가 필요했다.
로건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받은 데미안이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미 작업은 끝났습니다.”
* * *
“제국 정벌?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맥라인의 책사라는 놈의 태연한 대답에 리버티 왕국의 새 국왕, 티몬 리버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끄으응.
‘극비라고 하더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숙부이자 왕국 유일의 초인 군터 리버티가 이미 타국의 전쟁에서 전사했다. 그런데 그런 희생을 강요한 자들이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걸 듣고 있자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애초에 자신이 그랑에 있을 때 볼모로 잡고 반 강제로 동원시킨 군대가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지금까지 우리가 치른 희생만 얼만데! 그리 무모한 짓은 맥라인 단독으로 하시오!”
여전히 맥라인에 볼모로 남아 있는 동생들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분노가 치민 탓에 순간 이성을 잃고 말았다.
티몬이 속으로 아차 하는 순간.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엉뚱한 대답이 들려왔다.
“……뭐?”
[희생만 치른 채로 회군하셔도 정말 괜찮으시냐는 말씀입니다. 안타깝지 않으십니까? 군터 대공과 병력들의 희생이?]그걸 말이라고…….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맥라인이 무너지면 다음은 왕국 연합 차례다.
그래. 그 사실을 몰랐던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제국을 물리친 모든 영광을 맥라인이 가져간 뒤, 리버티가 맞이한 현실은 유일한 초인의 죽음과 병력의 감소뿐이었다. 같은 연합 소속인 테로난의 두 초인이 모두 건재한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연합에서의 입지도 점차 줄어들 게 분명했다.
“후우우.”
티몬은 끓어오르는 심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크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이성을 유지하려 애쓰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제국은 이미 패퇴시켰습니다. 더 이상 명분 없는 전쟁에 리버티는 참전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이게 최선이다.
‘무슨 소리를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맥라인 책사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칼같이 끊어 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의외였다.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이렇게 순순히 물러선다고?
너무 예상외라 순간 멈칫하는데, 더 이상한 말이 이어졌다.
[테로난의 국왕께서는 적극적인 참전 의사를 표명하셨으니, 아무래도 향후 양국의 차이가 좀 벌어지겠군요.]“그게 무슨……?”
테로난의 국왕이?
왜?
미쳤나?
머릿속에 온갖 의문이 회오리쳤다. 하지만 상대는 그 의문을 풀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간 협조해 주신 전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자, 잠깐……!”
낚시다. 분명히 낚시다.
그러나 티몬은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미끼를 물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테로난과의 국력 차이가 심해질 게 뻔한데 여기서 더 벌어진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전쟁에 협조하는 대가가 무엇이오?”
결국 그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고, 수정구 속 상대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 * *
“그렇게 리버티의 참전 소식을 전하자 테로난의 국왕 역시 즉각 참전을 약속했습니다.”
“……테로난으로 리버티를 낚은 게 아니었어?”
“에이, 선후가 뭐가 중요합니까.”
그 너스레에 로건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둘이 대화라도 나누면, 다 탄로 나는 거 아닌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라이벌 사이에.”
“라이벌?”
“테로난은 리버티에, 리버티는 테로난에 경쟁심을 품고 있으니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연합이 둘로 갈라지고 나서는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왕들끼리 속내를 터놓겠습니까? 더구나 둘 다 즉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데미안의 말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상대가 한다면, 점령지 분할 같은 막연한 약속이라도 믿을 수밖에 없다?”
“막연한 약속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리해 주시려던 거 아니었나요?”
빙글빙글 묘한 미소를 머금은 데미안의 말에 로건 역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제국의 팽창 정책을 억누르고 침묵시키려면 무슨 대가든 제시하지 못할까.”
그래. 뭐든 말이야.
제라드가 제시한 수뇌부 세뇌 따위의 대책이 왜 필요할까.
이렇게 듬직한 책사가 있는데.
“수고했다, 데미안.”
로건이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자 데미안이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과찬이십니다. 상황이 급해서 꼼수를 썼을 뿐, 보상만 확실하다면 결국 두 나라 역시 참전했을 것입니다.”
“대신 시기를 맞추지는 못했겠지. 혹시나 둘 중 어디라도 회군해 버렸더라면 확실히 늦어졌을 테고.”
“흠, 흠. 뭐, 군량과 연사 석궁의 탄창, 리베라티오는 여전히 전시에 준하는 물량을 쌓아 놓고 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회복하실 일만 남았습니다. 검공께서는 이미 훈련에 들어가셨답니다.”
거듭된 칭찬이 부끄러운 것인지 데미안이 황급히 말을 돌리자, 로건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나 역시 얼마 걸리지 않을 걸세.”
“군단장님들께는 출진에 관해 미리 전달해 놓겠습니다. 당분간 군단 재편을 핑계로 훈련을 철저히 시행하라는 말과 함께요.”
“그래. 그렇게 하고, 제국에도 적당히 보여 주도록.”
그 의미를 단번에 이해한 데미안이 씩 웃었다.
“자경단은 해산했지만 군단은 여전히 주둔하고 있고, 훈련까지 강도를 높이기 시작하면 꽤 헷갈리겠지요.”
“그래. 그 반신반의하고 있을 상황이 우리에게는 더욱 유리해. 동부 8군단이 전부 주둔지로 돌아가 버리면 그들을 박살 내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테니까.”
“맞습니다. ‘적당히’ 눈치채고, ‘적당히’ 대비해 주는 게 저희에게는 최선이죠.”
장단이 잘 맞는 군신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 며칠 사이, 제국 동부군은 그들의 기대대로 모호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 * *
“맥라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서부의 소란을 틈타 공세를 취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베링의 말에 2개의 수정구 속 얼굴들이 구겨졌다.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베링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이들을 실로 오랜만에 보았지만, 평소처럼 호통을 칠 수는 없었다. 그가 아무리 맥라인 남부 요새의 격전에서 살아남은 동부 8군단장이라 한들 듣고 있는 이들의 신분 역시 그 못지않았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서열상 상관들에 가까웠다.
[지나친 확대 해석이 아닌가, 베링. 아무리 우리가 손해를 봤다고는 하나 어딜 감히…….]2군단장 지펜 트레이, 이제는 동부 제국군 내 최고 신분이라 할 수 있는 이가 베링의 말에 바로 반박했다.
[한번 승기를 잡았다고 어찌 소국이 대국을 침범하겠나. 강물이 역류하는 것처럼 말이 안 되는 일이지.]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나.
베링이 속으로 혀를 찼지만, 다행히도 다른 수정구 속 인물은 힘만 센 멍청이는 아닌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간이 부었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번 전투에서 우리 제국이 손해를 본 것은 분명하니, 미친 척 덤빌 수도 있겠지요.]4군단장 드렉슬러가 베링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맥라인과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세 군단장의 의견이 갈린 상황.
당연히 두 사람의 의견이 우세해야겠지만, 연공 서열상의 우위가 그 차이를 짓눌렀다.
[카일 성의 병력도 이미 전역에 흩어졌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병력을 보충하는 데나 힘쓰게. 황제 폐하께서 서부의 소요를 진압하시고 난 뒤에는 설욕의 기회가 올 테니까.]지펜의 말에 베링은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생각을 적들은 못 할 거 같으냐, 이 멍청아!’
호되게 당하고 도망치듯 물러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안일한 사고라니.
베링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미리 대비했으면 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저희에게 동부의 수호를 맡기셨습니다. 서아왕(西牙王), 북각왕(北角王), 남조왕(南爪王)부 전부 서방에 집중하는 지금, 저희는 지원을 받을 곳도 없습니다. 낮은 확률이라도 대비함이 옳다고 봅니다.]다행히도, 드렉슬러가 다시 한번 베링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지펜의 근거 없는 여유는 여전했다.
[허허, 전쟁을 준비하는 놈들이 병력을 해산시키겠는가? 자네들도 참 걱정이 과해.]“해산된 병력은 징집병들뿐입니다. 정규군은 여전히 각 요새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정규군? 세 군데의 병력을 전부 모아 봤자 고작 세 개 군단급 병력이 아닌가.]고작 그 병력에 패퇴한 게 우리다, 이 머저리 같은 놈아!
베링은 지펜이 눈앞에 있다면 싸대기라도 후려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신보다 조금 더 직설적인 아군이 존재했다는 것.
[지펜 공, 그 병력이 우리를 패퇴시켰습니다.] [……그거야 놈들이 운이 좋아 신벌…… 크흠. 아니, 아니지. 이상한 이변 덕에 얻은 승리가 아닌가. 뭐, 그리 걱정된다면 자네들이 대비하면 어떤가. 나머지 병력 수습은 내가 알아서 하겠네.]‘신벌인지 이변인지로 피해를 본 것은 중앙군이고…….’
우리는 그것과 상관없이 패퇴하지 않았나.
베링은 기억까지 멋대로 미화하고 있는 지펜이 사실 관계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사실 그 역시 맥라인의 역공을 100% 장담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 밖으로 나온, 그 대마법진이 없는 맥라인군의 전투력에 대해서는 그 역시 회의적이었으니까.
다만 그는, 황제 폐하께 위임받은 동부의 수호를 위해 만전을 기하는 것뿐이었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면 드렉슬러 공, 좀 더 대화 나누시지요.”
[그러게. 거참, 젊은 사람들이 걱정이 너무 많아.]아무래도 맥라인에 뇌를 두고 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지펜의 통신구가 꺼지자, 베링은 하나 남은 불빛을 보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의견을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렉슬러 공.”
[지펜 공이 동부군의 수장이 된 김에 기강을 잡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공이 정반대의 말을 했어도 일단 반박하고 봤을 겁니다. 마음 쓰지 마시지요.]‘이 지경이 된 마당에 군단장끼리 서열을 잡겠다고?’
베링은 부글거리는 속마음을 토해 놓는 대신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만약 맥라인이 진군해 온다면, 어디부터 공격할 것 같습니까? 뭐, 생각이야 다 비슷할 것 같습니다만…….”
[그거야 당연히 루스펠하임이겠지요.]다행히 드렉슬러의 생각은 그와 똑같았다.
그리고 그날.
제국 동부 4, 5, 7, 8군단의 잔여 병력이 제국 동부의 대도시 루스펠하임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한편 1, 2, 3, 6군단의 잔여 병력은 주둔지로 돌아가 병력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명확하게 나뉜 두 갈래의 움직임.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로건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