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38)
438화검은 기운이 공간을 가득 메우기가 무섭게 그 사이로 황금빛 빛살이 퍼져 나갔다.
검은빛과 잠시간 대치하는 것 같던 황금빛은 이내 검은 공간을 깡그리 지워 내며 주변을 장악했다.
콰콰콰콰콰.
꽈아아앙!
“이런……!?”
여유가 사라진 카랑카랑한 음성.
순간적으로 공간을 접듯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카셀 마탑주는 반경 수십 미터를 장악하는 황금빛의 공세를 쉽게도 피해 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것이 고작이었다.
그가 뻗어 내는 검은 마력은 로건의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사그라든 반면, 황금빛 오러는 검은 마력의 방어를 손쉽게도 으스러트렸다.
각자의 예상을 벗어난 전개에 두 사람 다 당혹스러운 상황.
다행히도, 그 이유를 먼저 깨달은 것은 로건이었다.
‘상극……. 그래, 그러고 보니…….’
단순히 자신만의 특성이라 생각하고 넘겼던 일들이 한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과거 왕국 연합에서 카셀 마탑의 마법사들을 맞닥뜨렸을 때, 그들은 자신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루이사의 세뇌 마법 역시 자신의 포스에는 별다른 저항도 없이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자신의 힘이 그들에겐 상극이라는 걸 스스로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한데 그게 단순히 하수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탑주 역시 마찬가지라고?’
왜?
새삼 이유가 궁금해졌지만, 그보다 먼저 살심이 일었다.
‘기회!’
한 발 모자란 줄 알았던 무력이 오히려 적을 압도하고 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창백해진 적의 얼굴을 보니 그 각오가 한층 굳건해졌다.
“같은, 같은 거였어……. 이런, 흐흐…….”
탑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중얼거림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상성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탑주를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스각.
가볍게 휘둘러진 검에 황금빛 오러블레이드가 수십 미터를 쏘아져 나갔다. 드넓은 공간을 가로질러 그대로 연무장의 벽을 격파할 것만 같았던 황금빛 오러는 벽에 닿는 순간 스며들듯 사라졌다.
공간 전체를 장악하는 공격 범위로도 모자라 환상적인 오러 컨트롤을 선보이는 로건.
하지만 황금빛 오러에 녹아든 것처럼 스르륵 사라져 버린 탑주의 몸은 거의 동시에 뒤쪽 수십 미터는 떨어진 공간에 나타났다. 그것을 인식하자마자 다시 뻗어 나간 황금빛 검격이 그 자리를 휩쓸었지만, 베어 낸 것은 탑주의 잔영뿐이었다.
오러마스터인 로건의 공격, 초인이라도 인식하기 어려운 그 짧은 간극을 읽고서 회피하는 움직임은 실로 절묘했다.
거기다 공간참과 영혼참의 권능이 자연스레 배어 있는 참격들도 그보다 더한 권능의 행사를 막지 못했다.
물론 한 번 사라졌다 나타날 때마다 탑주의 표정이 조금씩 안 좋아지기는 했지만, 사방 수십 미터를 전권에 넣고 오러를 뿌리고 있는 로건의 표정 역시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공간 이동을 이렇게 쉽게…….’
가장 맛있는 수프가 눈앞에 있는데 식기구가 포크밖에 없는 느낌.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자 아예 반격을 포기한 채 쏟아지는 오러블레이드의 비를 피하는 데에만 주력하는 탑주는 포크의 벌어진 틈으로 빠져나가는 수프보다 더 처리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아예 들고 마셔 버리면 되지!’
까드득 이를 갈아붙인 로건이 최근에야 완전히 회복된 포스코어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특성까지 발휘하려는 찰나.
“정말 끝을 보실 생각이시면 이 노구는 그냥 사라지겠습니다, 폐하.”
조금은 다급하게 느껴지는 카셀 마탑주의 음성이 그 시도를 막았다.
우우웅.
애검 룩스에 집중시킨 오러가 아쉬움에 진동했지만, 이쯤 되면 로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잡을 수 없어.’
상성상 압도할 수는 있지만, 도망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아직은 한끝이 모자란 경지의 차이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아예 상성을 몰랐던 처음부터 특성을 써서 단숨에 몰아붙였어야 했다. 물론 그때는 자신도 예상을 못 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젠장.’
안타까움이 가슴에 사무쳤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로건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탑주.”
“저 역시 그렇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폐하.”
로건으로선 그냥 의례상 한 말이었는데, 빙긋 웃는 탑주의 얼굴이 약간 상기된 것을 보니 어쩐지 기분이 찜찜했다. 잠정적인 적에게 자신도 모르게 힌트를 준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이다.
그럼에도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더욱 불쾌했다.
“……제가 손속이 과했습니다.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흥을 다스리지 못했군요. 사과드리지요, 탑주.”
“아니, 아닙니다.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폐하. 흘흘.”
그 웃음에 로건의 인상이 슬쩍 찌푸려졌다.
좀전의 공격에 살기가 담겼던 것을 탑주라고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저자세로 나온다는 것은 카셀 마탑이 적어도 당장은 자신을, 맥라인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는 뜻일 터였다.
그것이 그 본질적인 목적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방금 얻은 무언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감사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마주 웃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 역시 얻은 것이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몇 번의 공세를 교환하며, 마탑주의 마력이 왜 그리 쉽게 박살 나는지 추론할 수 있었다.
깊은 이해라기보다는 직관에 가까웠다. 보다 깊어진 영혼의 힘이 찰나의 순간 그 차이를 알아낸 것이다.
‘마탑주의 마력, 아니 카셀 마탑의 마력 자체가 신성력과 비슷해. 신들이 뿌린 의지의 힘, 그 파편의 열화 버전 같은 느낌이야.’
아마도 지브릭 카셀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 그들의 마력이 가진 근본일 것이다.
하지만 신성력처럼 그 근본의 힘을 주는 강대한 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마법으로, 편법으로 의지의 힘을 사용하니 염원의 힘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본질적인 차이가 만들어 낸 극상성이었다.
‘아마 신성력에도 약할 텐데 전 교황을 세뇌한 것 자체가 신기하군. 역시 지브릭 카셀의 성물 때문인가…….’
신이 아닌 자, 신성이 없는 자에 대한 믿음이 실질적인 힘으로 화할 수 있다는 것은 꽤 놀라운 발견이었다.
덕분에 ‘가장 본질적인 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벽’을 넘을 단서도 하나 더 얻었다.
‘아마도 신성을 얻기 위해서는 드높은 격을 가진 영혼이 가진 의지의 힘에 더해서…….’
특성을 몇 번씩 사용해 봐도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오러마스터 너머의 경지가 조금이나마 보이는 듯한 느낌.
거기다 카셀 마탑의 힘이 염원의 힘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로건 역시 진심으로 미소를 보일 수 있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이야기를 마무리해 볼까요? 저 무도한 제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물론이지요.”
“일단 전장에 직접 참여하는 건 거절하겠습니다. 아직은 성국의…….”
“흘흘, 물론이지요. 말씀드렸듯 서부 국경에서 저희가…….”
그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머리를 맞대고 협력에 관한 방안을 논의했다.
서로가 결국 적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마주 보는 미소를 유지한 채로.
* * * 세상은 근 수백 년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이했다.
제국의 선전 포고에 따른 맥라인 전쟁과 그 충격적인 결과, 그리고 서방 10국의 제국 침공까지.
동서를 가릴 것 없는 전란이 대륙을 휩쓸며 엄청난 양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맥라인에서 패퇴한 황제군이 서부 전선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 맥라인 하나에 패퇴한 제국 중앙군 따위, 콧바람으로 날려 주마!
스스로 서방 10국의 대표라 주장하는 가이아 왕국의 사령관, 엑스마스터 클레이 멀론은 대놓고 제국을 비웃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황제 폐하 만세!”
“제국을 위하여!”
“우와아아아!”
끔찍할 정도로 퍼부어지는 제국군의 공세 속에서 그는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빌어먹을! 막아! 막으라고!”
그의 애병 길로틴에서 흩뿌려진 붉은 오러가 겁도 없이 달려드는 제국 병력 십수 명을 일거에 양단했다.
하지만.
“아아아악!”
“도, 도망가!”
“크흑…….”
주변에서 무너지는 병력의 7할 이상은 아군이었다.
큰 희생을 치러 가며, 그것도 몰래 대륙 공적의 도움까지 받아 가며 루겐하임의 성벽을 함락했건만 지금 그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빌어먹을, 기사가 왜 이렇게 많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제국 기사들의 공세였다.
지금 루겐하임에서 가이아 왕국군을 막아 내는 제국군은 잘해야 7~8만 명 정도.
패퇴한 서부 5군단의 패잔병들과 황실 중앙군의 일부가 합해진 것으로, 맥라인과의 전쟁에서 많은 병력이 소모된 것을 증명하듯 그리 대단하지 않은 규모였다.
하지만 고작 1.5개 군단급의 병력에, 기사가 거의 5천 명은 되는 것 같았다.
‘5군단에도 기사가 너무 많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가이아 왕국 10만 군사 중 기사의 수는 채 2천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병력의 수세를 감추기 위해 일반 병사에게도 기사 갑옷을 입혀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돈이 넘쳐흐르는 제국이라면 그런 작전을 쓸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마, 막아!”
“끄아악!”
“안 돼!!”
사방이 죽어 가는 아군들 천지였다.
병사들에게 기사와 초인은 어차피 감당할 수 없는 적. 공격을 아예 보지도 못하고 죽어 넘어지느냐, 아니면 몇 번 버티다 죽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저 멀리 대륙 동부에서 풍문처럼 들려오던, 그리고 클레이로선 헛소문이라 생각했던 병사가 기사를 죽일 수 있다는 무기.
그런 무기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3천 명에 가까운 기사 수의 차이는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우우웅.
클레이는 애병의 손잡이를 부러트릴 듯 움켜쥐며 전신의 모든 포스를 짜냈다.
신체 전반에 무리가 가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무리해야 할 순간이었다.
‘기세를 다시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었다.
“전부 죽여 주마!!”
콰아앙!
불꽃처럼 솟구치는 오러가 그에게 덤벼들던 기사들을 튕겨 내며 치켜든 도끼, 길로틴에 모여들었다.
이내 그의 애병이 거인처럼 거대한 붉은 오러의 도끼로 변하는 순간.
– 네 놈이나 죽어라.
사방을 떨어 울리는 차가운 음성이 살을 에는 듯한 푸른 바람이 되어 그에게로 폭풍처럼 몰아닥쳤다.
‘삭풍의 군세!’
그것을 보며 클레이는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1차 목적은 달성했다. 자신을 상대하지 않고 허공을 날아 아군 기사들을 박살 내던 적 수장이 자신에게 기력을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놈만 박살 내면.’
뿌드득.
“으와아아압!”
비명 같은 기합과 함께 평생을 닦아 온 필살기, 거신의 일격이 휘몰아치는 푸른 바람을 절반으로 쪼갰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흡?!’
그의 손아귀에 전해지는 감각은 끈적끈적하게 늘어지며 충격을 상쇄하는 마력의 느낌이 아닌, 성벽을 이루고 있는 육중한 돌의 촉감뿐이었다.
우르르르르르릉.
휘이이이이잉.
이내 성벽의 일각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쪼개진 푸른 바람이 그의 코앞에서 다시 모여들었다.
“고작 이런 놈에게…….”
날카로운 목소리에 이어 날아든 그보다 날카로운 바람 한 줄기.
스각.
생의 끝을 알리는 소리는 그가 펼쳐 낸 일격에 비하면 너무도 작디작은 파열음뿐이었다.
‘이럴 수가…….’
목에서 화끈한 통증이 전해지는 가운데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
‘이런 놈들을 동쪽의 소국 하나가 단독으로 막았다고?’
……거짓말.
그것이 가이아의 엑스마스터, 클레이 멀론의 최후였다.
그렇게 제국이 초전의 승리에 힘입어 서부 10국을 몰아치기 시작할 때.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할 목소리가 대륙 동부에서 터져 나왔다.
– 세상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무도한 제국을 엄벌하겠다!
맥라인의 태양, 신 대륙제일검 로건 맥라인의 선포와 동시에 맥라인의 군단이 제국의 동부 국경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