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39)
439화설마설마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제국에게 있어 맥라인의 침공이 딱 그런 일이었다.
특히나 현 제국 동부 2군단장, 전후엔 1군단장이 될 것이 확실한 지펜 트레이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카일 성과 남북의 요새에 있던 놈들의 주력들이 우리 군단 주둔지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각기 2군단과 3군단, 1군단과 6군단 방향입니다.”
“이, 이 미친놈들이!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분노한 지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스스로 둥지에서 나왔다면 박살을 내 줘야지. 군대를 모아라! 마법진과 천재지변으로 이룬 승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가르쳐 줄 것이다! 루스펠하임에도 파병을 요청해!”
“그, 그게 적의 진군 속도가 이상할 정도로 빠릅니다. 루스펠하임의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놈들의 공세가 시작될 확률이 높습니다!”
“뭐!?”
맥라인 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해 동부 군단들의 전력은 이미 반 토막이 난 지 오래다. 모든 병력을 다 모으고 주인 잃은 동익왕부의 병력까지 합쳐야 5개 군단급이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놈들 병력은!?”
“1군단과 6군단으로 향하는 요새 병력이 거의 5~6만 수준에 이곳 루펜으로 오는 맥라인 병력이 3만, 다른 소국의 병력 5만 정도가 3군단 주둔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
머리가 지끈거렸다.
1, 3, 6군단은 현재 군단장도 없는 패잔병들에 불과하다.
그 규모를 복구하기 위해 각 주둔지에 신병을 모집하라는 명령을 내려놓기는 했지만, 그 기간이 너무 짧았다.
새로 뽑힌 신병들은 전투에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일 터. 사실상 2만의 병력으로 2, 3배의 군세를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이쪽으로 오는 놈들이 고작 3만?”
굉장히 이상한 숫자였다.
상대적으로 건재한 자신이 있는 곳에 오히려 가장 적은 병력이라니?
버리는 패, 혹은 확률 낮은 베팅일 것이다.
차라리 소국 연합군을 무시하고, 3군단과 함께 이곳으로 향하는 병력을 요격한 뒤 다른 곳에 합류한다면…….
“그게, 오러마스터라 추정되는 적들의 왕이 이쪽으로 오는 군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빌어먹을.
지펜은 머릿속에 떠올렸던 반격 계획을 곧장 백지화했다.
“……우리를 포함한 모든 동부 병력, 주둔지에 있는 군단들 전부를 루스펠하임으로 후퇴시킨다. 동익왕부의 병력도 그곳으로 집합시켜!”
“각하, 그건 월권…….”
“책임은 내가 진다. 닥치고 내 말대로 해!”
“예! 알겠습니다.”
“루스펠하임, 그곳에서 병력의 우위로 승부를 보겠다.”
놈들의 가장 큰 무기인 붉은 돌은 없지만, 연사 석궁이라면 제국에도 있다.
그리고 석궁은, 그 특성상 저지대에서 고지대의 적을 요격하기에는 활용도가 떨어진다. 범람하는 기사의 시대에서 거의 무용지물처럼 여겨지던 성벽을 놈들이 지독하게도 잘 써먹었듯이, 이번에는 이쪽이 그것을 이용할 차례였다.
‘버텨 내기만 하면 된다. 황제 폐하께서 서쪽을 정벌하고 돌아오실 때까지.’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버럭 소리를 지르던 모습에 비하면 굉장히 소극적인 작전.
하지만 뭐가 됐든 죽는 것보다야 낫다.
평생 창만 휘둘러 온 지펜이지만 그는 제국의 군단장이었다. 자존심을 세울지언정 멍청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주일 뒤, 루스펠하임까지 3일 거리의 들판에서 자신 휘하의 모든 병력과 거의 동시에 합류했을 때까지만 해도.
“확실히 우리 제국군은 제대로 훈련되어 있어.”
들판을 가득 메운 아군들. 저물어 가는 해를 중심으로 도열한 군대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지펜 트레이의 말에 부관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국의 군기는 여전히 엄정합니다.”
각기 다른 거리에 있던 1, 2, 3, 6군단의 병력이 루스펠하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이렇게 짠 듯이 모이게 될 줄은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미소는 채 몇 시간도 이어지지 못했다.
“적들이 고작 반나절 거리에…….”
“놈들이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습니다!”
야숙을 위해 들판에 만들어진 병영, 그 가장 큰 막사 안에서 임시로 군단 통제를 맡은 최상급기사들이 어두운 얼굴로 그리 말하는 순간 지펜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레리. 로건 맥라인의 현 위치는?”
그 살벌한 어투에 부관 레리 역시 무엇을 떠올렸는지 일순간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희 본대에서 바, 반나절 거리로 추산됩니다.”
그 대답이 나오는 순간 막사 안에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쾅!
“X발!! 몰이……? 몰이라고? 수만 명 단위의 군대를? 우리 대 아레스 제국군을!?”
지펜의 노기 어린 고함에 대한 대답은 막사 바깥에서 들려왔다.
– 가, 각하!
다급한 음성과 함께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기사.
“합류한 적들이 갑자기 진군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보고에 막사 안 모두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곧 해가 지는데?”
“이 시간에!?”
“모두 막사 정리해! 밤을 새워서라도 후퇴한다! 드렉슬러와 베링에게도 전해서 당장 루스펠하임에서 튀어나오라고 해!”
지펜의 이어진 고함에 제국군의 움직임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 * *
“잘했다, 데미안. 뒤는 내게 맡겨라.”
“네, 폐하. 하하.”
웃으며 답하는 데미안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포스나 마나도 없는 일반인이 무려 일주일이 넘게 쪽잠으로 버티며 수십만 군대의 움직임을 통솔했다. 그것도 세작을 통해 적의 세세한 반응을 분석한 뒤 세부적 움직임까지 지시를 내리면서.
로건은 지칠 대로 지친 데미안에게 호위기사를 붙여 돌려보낸 뒤,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르륵.
정확히는 일부러 때를 맞춘 듯 일제히 다가오는 몇 기의 기마들을.
“폐하, 다행히 건강해 보이십니다.”
“네. 걱정해 주신 덕분입니다.”
오른쪽에서는 어느새 제 혈색을 완전히 되찾은 스승이 웃으며 말을 건넸고.
“이거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폐하.”
“……자주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버지.”
“아니, 아버지. 형님, 아니 폐하도 많이 다치셨었다니까요.”
“그러니까 더 괘씸……. 흠흠, 폐하께서 공사가 다망하시니 차라리 앞으로는 제가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아버지!”
왼쪽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와 동생이 만담을 선보이고 있었다.
“여군들은 전부 점검을 끝냈어요. 낙오자 비율은 본대보다 더 낮습니다.”
“마법 병단 역시 아직 건재합니다. 바로 진군하셔도 됩니다.”
그 뒤로 각각 여군과 마법 병단을 점검하고 온 아내와 빅토리아가 보고를 해 왔고, 그 옆에선 티르가 빅토리아의 로브를 툭 치며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컹!”
마치 자신을 믿으라는 듯, 혹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머리를 한껏 치켜드는 티르의 모습에 긴장으로 굳어져 있던 빅토리아의 얼굴에도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오만하게 콧대를 세운 티르는 총총거리며 에일렌 앞으로 가 꼬리를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리며 폴짝폴짝 뛰었다.
에일렌이 머리를 쓰다듬고 배를 간지럽혀 줄 때까지.
‘저러고 있으면 정말 그냥 강아진데…….’
로건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는데, 그 뒤로 더욱 황당한 모습이 펼쳐졌다.
“오랜만이다, 말라깽이. 그새 더 마른 거 같은데 아침에 거기는 제대로 서냐?”
“덩어리 자식, 군단장이 돼서도 말본새가 그따위냐? 그것도 폐하 앞에서!”
오랜만에 만난 구 그란디아의 라이벌들은 로건에게 인사를 하다 말고 서로 멱살을 잡았다.
그 모습을 혀를 차며 바라보던 부르델과 빅토르가 자신의 시선을 느끼고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뒤를 이어.
“처음 뵙겠습니다. 테로난의 라틴 로렌스, 맥라인의 태양께 인사드립니다.”
중년의 얼굴을 한 노년의 오러유저가 말에서 내려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극상의 예를 보였고.
“카로…… 커험. 테로난의 구스타프 클레멘, 동부 대륙의 패자께 인사드립니다.”
에일렌을 째려보던 구 카론 왕국, 현 테로난의 마도사가 로건의 시선을 받고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철벽이라 불리는 오러유저와 똑같이 한껏 예를 갖춘 모습.
다만 로건으로선, 그 격식 있는 모습보다는 그가 말한 단어 하나가 가슴속에 묵직하게 들어차는 듯했다.
‘동부의 패자라.’
지금 이곳에 있는 전력이야말로 동부 대륙의 최정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두를 끌어모은 건 바로 자신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니지만.
“……진짜 그 소리를 들으려면 제국부터 정리해야지.”
로건은 각오를 다지듯 일부러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1차 목표는 루스펠하임. 그리고 그 전에…….’
분산된 동부 군단의 절반, 놈들을 잡는다.
챙.
결의에 찬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든 로건이 검 끝으로 저물어 가는 석양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고정되는 순간.
“하루 안에 도망치는 침략자들을 따라잡는다. 그리고 놈들에게 맥라인을 침범한 죄를 묻겠다!!”
들판을 떨어 울리는 웅장한 고함이 십 수만 대군의 귀에 틀어박혔다.
“나를 따르라!”
“우와아아아아아!”
쏟아지는 함성과 함께 맥라인의 대군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미 열흘 가까이 적의 꽁무니를 쫓아 행군했기에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상황이었지만, 그들 대다수가 지난 전쟁에서 수많은 동료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다.
침략자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은 그 어떤 휴식보다 훌륭한 연료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좌측 군대 조금 늦어진다. 속도를 맞춰라.]조금이나마 피로하다 느낄 때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군주의 음성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마치 왕이 바로 앞에서 소리치는 듯한 느낌.
그 살벌한 느낌 앞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병사는 없었다.
– 폐하께서 나를 지켜보신다!
그 긴장감은 그 어떤 약물보다 강력한 각성제로 작용했다. 실제로 그 영파(靈波) 안에는 미미하게나마 포스를 자극하는 기세가 실려 있었기에, 일부 병사들은 정말로 피로가 회복되는 듯한 착각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 상황에서 ‘치유사 길드의 의사’들이 지친 병사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신성력을 뿌려 주기까지 했다.
“신들께서 축복하시길…….”
실종된 성녀가 내린 마지막 공식 명령이, 맥라인의 병사들이 계속 진격할 수 있는 힘을 보태 준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밤새 이어진 행군은 병사들의 피로를 극대화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대가는 달고 달았다.
동이 터 올 무렵, 한눈에도 그들보다 훨씬 더 지쳐 보이는 적 병력을 발견하는 순간.
“놈들이다!”
“제국군이다!”
밤을 새워 이어진 고난은 타오르는 분노가 되어 후들후들 떨리던 다리에 다시금 힘을 더해 주었다.
“전군 진격!”
그리고 그들의 군주, 대륙 최강의 초인이 황금빛 오러를 뿜어내며 가장 선두에서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 우와아아아아아!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고함과 함께 맥라인의 대군이 도망치는 제국군을 향해 일제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반격, 반격하라! 전부 뒤 돌아!”
창백한 안색의 지펜 트레이가 기마를 돌리며 랜스를 들었다.
평생을 단련해 온 창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무기가 이 거창이라는 것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아무리 오러마스터라도…….’
터무니없는 기대임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세뇌하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무너질 상황.
“기사들은 반전하라! 우리가 적의 예봉을 꺾는다!”
지펜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직속 수하들과 함께 선두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꽈아아아앙!
“아아악!”
“사, 살려!”
수많은 폭발과 함께 터져 나가는 아군의 몸뚱어리와.
파바바바박!
쏟아지는 검은 쿼렐의 향연뿐이었다.
“젠장! 우리도 쏴! 쏘라고!”
“끄아아악!”
“아아악!”
“도, 도망……!”
똑같은 무기를 제대로 활용조차 못 해 보고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지는 병력들의 모습이 지펜의 눈앞에 펼쳐졌다.
밤샘 행군으로 도망치는 상황이었던 만큼, 엄정한 제국군의 군기는 적과 조우하는 순간 이미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찾았다.]나직한 목소리가 전장의 소란을 뚫고 그의 귀에 틀어박히듯 울려 퍼졌다.
당황한 그의 눈에 미친 듯한 속도로 거리를 압축하고 있는 황금빛 기마가 보였다.
“빌어먹을!”
피하긴 늦었다.
지펜은 가슴속에 가득 들어차기 시작한 공포를 욕설과 함께 억지로 뱉어 냈다.
‘내가 바로 거창의 달인 지펜 트레이다.’
오러마스터도 기마 돌격에서는 나한테 안 돼.
스스로도 믿지 않을 거짓말로 용기를 북돋운 그는 빠르게 가까워지는 황금빛을 향해 마주 가속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그의 붉은 오러를 전해 받은 애마가 지면을 폭발시킬 듯 박차며 전면으로 돌진했다.
두두두두.
“내가 바로 지펜……!”
한 줄기 붉은 유성이 된 지펜이 그보다 몇 배는 빠르게 다가오는 황금빛 유성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 꽈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는, 그대로 피 보라가 되어 전장에 흩뿌려졌다.
“적장을 쓰러트렸다!”
전장을 떨어 울리는 로건의 고함이 가뜩이나 기울어 가는 전세를 더욱 가속화했다.
“군단장님이……!”
“다들 튀어!”
“으아아악!”
그가 평생을 바쳐 온 군단이, 제국군이 형편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지펜에게 다행일까 불행일까.
다시 시작된 맥라인-제국의 전쟁은 제국 동부 1, 2, 3, 6군단의 전멸과 함께 세상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