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40)
440화금룡의 갑옷을 입고 날아오른 한 사람.
푸르스름한 마력이 반경 수십 미터를 물들이는 광경은 처절한 전장 한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쏴, 쏴라!”
“죽여!”
“황제다!”
이내 그 마력의 근원지를 향해 무수한 공격이 퍼부어졌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뻘건 불꽃과 푸른 바람, 하얗게 부서진 얼음과 샛노란 번개 등을 휘감은 화살 공세였다.
대륙 서부 왕국 중 2강에 꼽히는 나라, 린든 왕국의 자랑이자 무력의 상징인 마법 궁병단이 쏘아 낸 공격.
천 개에 가까운 마법 화살이 허공을 수놓자 일대가 지옥으로 변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으아악!”
“피해!”
불꽃과 번개, 바람과 얼음이 뒤엉키며 생긴 지독한 폭발.
그 폭발의 여파만으로도 성벽 위에서 교전 중이던 병사들이 일제히 나뒹굴었다.
다만, 제국군은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이때다! 돌격하라!”
제국 중앙군 기사들이 적의 주력 공세가 황제에게 집중된 틈을 타 빠르게 성벽을 타고 올랐다.
“막아! 막으라고!”
“기사가 너, 너무 많습니다!”
“어떻게든 막아!”
“아아악!”
순식간에 기울어지는 전세. 린든의 자랑이자 마법 궁병단의 단장인 쌍둥이 마도사, 클락, 클로드 형제가 이를 악물며 고함을 질렀다.
“황제만 죽이면 돼!”
“마나를 쥐어짜라!”
단순히 부하들에게만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 역시 전신의 마력을 쥐어짜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린든의 국보, 마수의 뿔과 힘줄로 만들어진 5클래스의 아티팩트 활들. ‘태초의 번개’와 ‘창세의 불꽃’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아티팩트들에 번개의 마도사와 화염의 마도사의 전력이 실렸다.
꽈아아아아아앙!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음과 함께 쏘아진 노랗고 붉은 화살은 마법 궁병단원들의 폭격 사이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목표를 직격했다.
번쩍.
꽈아아아아아앙!!!!
한순간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이는 환한 빛이 터지고, 한 박자 늦게 전장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폭발의 진원지로 향하는 순간.
[이번 건 제법이었다. 쌍둥이 마도사라고 했던가?]조금 지친 듯한, 하지만 별다른 부상 없이 멀쩡히 모습을 드러낸 황제의 목소리가 전장의 판도를 결정지었다.
“황제 폐하께서 승리하셨다!”
“우와아아아!”
“제국 만세!”
사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은 제국군과 달리.
“저, 저럴 수가.”
“무슨 저런 괴물이…….”
“도, 도망가야…….”
일순간에 무너져 내린 린든 병사들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이내 황제의 무심한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감히 제국을 넘본 죄, 그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라. 메키도(Mekido).]순간 거대한 푸른 불꽃이 성벽의 일각을 뒤덮었다.
– 아아아악!
– 끄아악!
그 속에서 경악한 표정으로 허무하게 녹아내린 쌍둥이 마도사들의 모습은 제국의 승리를 확정 짓기에 충분했다.
“으아아악!”
“다, 다들 도망가!”
“살려 줘!”
쾅!
파바바박.
꽈아아아앙.
린든 왕국은 제국 서부의 대도시 그리트하임을 점령한 지 불과 2주 만에 무너져 내렸다.
* * *
“수고 많으셨습니다, 폐하.”
“황제 폐하께 경의를!”
“제국에 영광을!”
전후 정리 중인 그리트하임의 내성, 그 대전 안에서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상석에 앉은 황제가 남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그 들뜬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당연히 해야 할 일,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덤덤한 표정의 황제를 보며 가장 앞서 인사를 한 자, 새로운 황실 특수감찰부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야 여유를 되찾으셨다.’
왼팔을 잃은 뒤로 내내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던 황제는 이제 없었다. 맥라인 전투 이후 체증처럼 쌓여 있던 가슴속 답답함이 일거에 날아가 버린 듯한 통쾌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슬쩍 미소를 짓고 있는 황제의 심정 역시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 확신했다.
“다른 곳 소식은?”
“루겐하임에서 삭풍의 마도사가 승전보를 전해 왔습니다.”
“그 역시 당연한 일이고, 다른 곳은?”
“다른 전장에서도 전반적으로 밀어붙이는 중입니다. 다만, 남은 국가들이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쯧. 역시 그런가.”
확실한 승전보는 두 곳뿐이었지만, 황제나 보고를 하는 이들이나 표정이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인들 대다수가 삭풍의 마도사가 있는 루겐하임이나 황제가 직접 나선 이 그리트하임의 전장에 있었다. 서부 왕국 중 2강이라 할 수 있는 가이아와 린든을 먼저 무너트리기 위함이었다.
“폐하의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하였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흠.”
대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함에 황제는 담담하면서도 살짝 상기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5개 군단급이라는 연합군의 병력은 이로써 삼분의 일가량이 날아갔다. 남은 8국이 이제라도 모인다 한들, 서부 군단만으로도 박살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남은 병력만 해도 50만에 달하니 결코 무시하지 못할 숫자였지만, 그 질에 있어서는 결코 제국을 이겨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황제의 관심사는 자연히 다른 곳으로 이어졌다.
“신검의 행방은?”
“……그게, 죄송합니다.”
황실 특수감찰부장, 통칭 귀신부장이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아직도 종적을 찾지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야. 상대가 신검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황제의 마음에는 확실히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그랬기에 부하의 임무 실패에도 관대하게 말할 수 있었다.
어차피 성국에서도 신검을 수배한 마당에, 놈을 빌미로 성국을 압박하기엔 무리가 있기도 했다.
다만, 근원적인 의문은 사라지질 않았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걸까?’
신검의 행보는 어이가 없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맥라인의 전쟁에 끼어들어 제국을 적대한 것으로도 모자라, 본국으로 돌아가서는 그 수장이라 할 수 있는 교황을 사실상 시해했다.
촌구석의 무지렁이조차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 행보가 황제의 가슴 한편에 찜찜함을 남겼다.
‘무언가 있다. 내가 모르는 이면의 움직임이…….’
세간의 소문처럼 신검이 미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직접 만난 신검은 분명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반쯤 발을 담근 초인 중의 초인.
그런 강한 영혼을 가진 자가 갑자기 미칠 가능성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했다.
하지만 짐작이 가는 것이 전혀 없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최근 성국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샅샅이 조사해라. 다시 처음부터.”
“예.”
귀신의 수장이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조아릴 때.
– 폐하! 급보입니다!
대전 밖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내 뛰어 들어온 기사가 소식을 전하자 대전에 있던 모든 이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 맥라인이 제국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이런 미친……!”
“소국 놈들이 한 번 승리했다고 간덩이가 부었구나!”
“폐하, 당장 회군하시지요!”
승전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대전, 군신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며 기세를 끌어 올렸다.
그 기세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금 솟구친 패배의 기억 때문일까.
황제 역시 대번에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보호막을 박차고 나왔다? 하, 로건 맥라인 그놈이 진정 미친 게로구나!”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마법진을 박차고 나왔다면, 동부 군단만으로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다 해도 버티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 그전에 잔챙이들을 정리한 뒤, 맥라인 놈들에게 징벌을 내리리라.
“다시 출전을 준비하라! 서부 연합군을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주제를 모르고 설치는 맥라인 놈들에게 제국의 힘을 보여 주자!”
“예!”
서부 10국, 아니 8국이 제국의 군세에 밀려 뒤늦게 연합을 시도하고 있는 지금.
황제는 놈들을 한데 모아 단숨에 정리하리라 결심했다. 그것이 전쟁을 더욱 빠르게 끝내는 길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서부 8국이 전력을 한군데로 모으고, 제국의 서부 군단들과 황실 중앙군이 그런 그들을 향해 진군 속도를 높여 나갈 무렵.
제국에 끔찍한 소식이 전해졌다.
– 동부 군단의 절반이 루스펠하임 평야에서 맥라인군에 전멸했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패전, 그것도 맥라인이 침공을 시작한 지 채 십여 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 벌어진 일이라 제국 수뇌부의 충격은 더욱 극심했다.
“어, 어떻게!?”
“마법진 없이도 그만한 전력이 된다고?”
“대체 지펜 군단장은 뭘 한 거야!?”
수뇌부들은 좀처럼 평정심을 되찾지 못했다. 아니, 갈수록 혼란이 커져 가자 결국 황제는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
“남은 흑기사들을 전부 루스펠하임으로 보내라! 나 역시 루스펠하임으로 간다. 중앙군의 기사 절반을 차출하여 내 뒤를 따르게 하라!”
그야말로 파격적인 명령에 듣고 있던 수하들이 눈을 부릅떴다.
“폐, 폐하!”
“그럼 지금의 전장은……!?”
“남은 서부 8국에 대한 토벌은 갈렌에게 맡기겠다.”
누구의 말이라고 감히 거역할까.
“명을 받들겠습니다.”
갈렌 디카이드를 비롯한, 제국의 마도사 5인방과(일곱 마탑주 중 두 명이 맥라인에서 사망).
“황제 폐하의 뜻대로.”
이반 로드리게스를 비롯한 서부 군단장 다섯 명.(5군단장 발톤 크라센, 6군단장 로드리고 블랑크 서부 왕국 침입 당시 사망).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제롬 디카이드와 맷 디커슨을 비롯한 황실 친위대의 남은 초인 다섯 명까지, 서부의 이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국의 모든 초인이 그대로 부복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바로 그 직후.
“폐, 폐하. 큰일 났습니다!”
그 모든 결정을 뒤집어엎을 만한 소식들이 줄줄이 전해졌다.
– 서방 8국 연합군에 대마도사 출현!
– 카셀 마탑주 추정!
– 그를 뒤따르는 마도사 최소 넷 이상으로 추정. 그 이하 마법사들 300여 명 추정.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서방 10국의 카셀 마탑에 대한 옹호 성명 발표였다.
– 카셀 마탑은 제국의 부당한 탄압으로 대륙의 공적이 된 것뿐 그럴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성국의 일 또한 오해해서 비롯된 것이니, 새 교황과의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어 가겠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내용이었지만, 당장 제국으로선 치명적인 기습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 성국은 카셀 마탑을 옹호하는 이들의 변명을 들을 생각이 없다. 성국을 농락하고, 우리의 칼 하먼 킬러브루까지 세뇌한 악마의 종자들을 모조리 토벌하겠다.
성국이 오히려 제국의 편을 들어 서부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당장 제국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는 모자랐다.
“성국의 병력이 서부 전선에 참가하기까지는 최소로 잡아도 두 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사료됩니다.”
“성국에서 동부의 전쟁에는 힘을 보태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은 소식의 연속에 황제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런 상황에서, 황제의 앞으로 비밀리에 통신이 들어왔다.
[아레스 제국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이렇게 뵙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만, 흘흘. 다름이 아니라 요즘 조금 곤란하신 듯한데, 제게 우리의 이 불편한 관계를 개선할 만한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황실 전용 비밀 통신구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제국의 공적, 카셀 마탑주의 전언에 황제는 기어코 폭발하고야 말았다.
“이 빌어먹을 늙은 뱀이 감히……!!!”
가슴속의 울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올라 당장이라도 통신구를 부수고 싶었지만, 제국의 주인은 감정만으로 움직여선 안 되는 이였다.
[흘흘흘. 일단 들어나 보시지요, 황제 폐하. 손해는 아닐 것입니다.]느물거리며 웃는 노인과 분노한 황제의 대화는 그로부터 오랜 시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