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41)
441화
“으아아아, 드디어!”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전장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환호성만이 가득했다.
병사 수만 해도 2배 가까이 차이 나고, 초인 전력 역시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백미는 가장 선두에 서서 적장을 격파한 것도 모자라 군대를 진두지휘한 그들의 군주였다.
본디 그란디아 시절부터 전쟁 영웅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들의 군주지만, 전술보다는 그 무력과 운(?)으로 더 유명했던 것이 사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가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전장을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충돌 시작, 난전까지 3, 2, 1 리베라티오 투척 중지!] [좌익 화력이 부족하다. 3군단 1~5중대 좌측으로!] [중앙! 기사단과 병사들의 사이가 너무 벌어졌다. 기사들 속도 늦추고, 병사들 따라붙어!] [그만! 도망가는 적을 쫓지 마라. 우리의 목표는 패잔병이 아니다!]전투 내내 맥라인 병력의 머릿속에 울리던 목소리.
영혼을 보는 눈으로 군기(軍氣)를 통째로 읽어 낸 오러마스터는 깃발 신호도, 파발 신호도 없이 병력들의 뇌리에 직접 지시를 내리며 말 그대로 전장을 ‘통치’했다.
전설로만 내려오던 오러마스터의 힘, 그 한 갈래를 직접 경험한 병사들로선 그야말로 사기가 충천했다.
– 폐하께서 우리 곁에 함께하신다!
전투가 끝난 지금까지도 그 마무리를 지휘하는 그들의 군주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다수였다.
– 저분이야말로 진정 신이 내린 영웅이시다.
이 순간 루스펠하임 평야 전투에 참전한 병사들 모두가 그 사실을 가슴 깊숙이 실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사자 역시 자신이 새롭게 얻은 힘을 실감하며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까지도 가능한 거구나.’
자신을 상대할 강적이 없기에 여유가 있어서 전장을 살펴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적들을 쉴 새 없이 베어 넘기는 와중에도 전장 전체의 흐름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적들의 의식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나타나는 군기(軍氣)를 보는 것만으로 전황이 파악되어 즉시 지시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영혼의 목소리, 영파(靈波)의 전달 대상을 선별하는 것도 자신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들에게 뭉뚱그려 지시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럼으로써 왕국 연합의 군대까지 총 20만 규모의 대군을 마치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왕국 병력의 전투력이 3할 이상 올라간 느낌이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병사들의 신뢰 어린 마음이 그 자신의 영혼까지 고양시키는 것도 확인했다.
오러마스터로서 벽을 넘기 위해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새삼 확신할 수 있었던 전투였다 ‘이거라면 충분히 가능해.’
단순히 제국의 빈틈을 노려 일격을 먹이는 수준이 아니라, 루스펠하임을 넘어 제국 동부의 중심인 펜나까지 장악하는 것도 마냥 헛된 꿈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로건은 그 뿌듯함을 담아 전투의 끝을 선언했다.
“전장을 정리하라! 이 자리에 사흘간 쉰다!”
“우와아아!”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고함에 수많은 함성이 응답했다. 이제는 영파로도 뜻을 전달할 수 있었지만, 기세를 올리기에는 역시 육성이 더 나았다.
이내 스승을 비롯한 초인들과 기사들이 병사들을 향해 일제히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시체는 모아서 불태워라!”
“다친 자는 치유사를 찾아가! 저기 원형 천막이다!”
“손이 남는 자들은 막사부터 세워라!”
다시금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전장.
그 틈을 타 로건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는 세 사람이 있었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폐하.”
“엄청난 전투였습니다. 오러마스터의 전설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군요.”
화사한 미소를 짓는 금발의 잘생긴 중년 사내가 승전을 축하하고, 그와 닮은 듯하면서도 분위기가 묘하게 다른 흑발의 미녀가 로건의 무위에 감탄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슬쩍 고개를 숙이는 젊은 기사까지.
고국의 군대가 박살이 나는 광경 속에서도 태연히 미소 짓는 그들의 모습에, 로건은 전에 들었던 그들의 사연이 얼마나 한 맺힌 것이었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지시로 카셀 마탑의 마법을 쓰지 않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작은 상처까지 입은 루이사를 보고는 더더욱.
“……그대들도 수고 많으셨소. 굳이 참여할 필요 없는 전투에까지 나서 주었군.”
“아닙니다, 폐하. 제국을, 황실을 무너트리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건 마다하지 않고 할 자신이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저 말 또한 진실이다. 말에는 거짓을 담아도, 영혼의 빛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니까.
그랬기에 로건은 그저 미소로 응답했다.
“그렇군요. 든든합니다.”
실제로 제라드는 사방왕 출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전투 마법을 사용하는 5서클의 화염 마법사였고, 제이 펄슨은 그 자체로 귀중한 자원인 오러유저다. 루이사 역시 카셀 마탑의 마법을 쓰지 않더라도 5서클 수준의 전투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귀한 전투원이었다.
다만, 그것이 이들의 사정을 봐줘야 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카셀 마탑을 쳐 낼 때는 이들부터 정리해야지.’
그저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닐 뿐.
로건이 속내를 감추며 미소 띤 얼굴을 유지하는데, 잠정적 적이 바라 마지않던 소식을 전해 왔다.
“탑주께서 탑의 정예들과 함께 서부 연합군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기별하셨습니다. 연합군 역시 사전에 얘기한 대로 성명을 발표했답니다. 하루 이틀 사이면 황제의 귀에도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호오?”
아버지를 대신해서 한 발 앞으로 나선 루이사의 말에 로건은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탑주가 정말 약속을 지켰군.”
이로써 황제는 서쪽에서 발목이 잡힐 것이다. 적군의 대마도사라는 변수를 그냥 둘 수는 없을 테니까.
만약 황제가 위험을 감수하고 이곳으로 온다 해도, 제국 서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테니 그 역시 차선은 된다.
“……탑주께서는 폐하시라면 ‘언약’의 무게를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설마 탑주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언약의 무게?
당연히 알 거라는 그 말에 오히려 로건의 눈이 번뜩였다.
염원의 힘이 가진 극상성 때문에 탑주에게서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던 본질.
‘스스로 진실을 말하고 행하면…… 영혼에 미미하게 빛이 더해지는 것 같긴 했는데.’
그것이 대마도사가 추구하는 영혼의 힘일까?
어렴풋이 짐작은 간다.
스스로 안으로 수렴해 들어가며 영혼의 질적 상승을 노리는 방향.
밖으로 발산하며 휘하의 믿음을 끌어모으는 오러마스터의 방법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지만, 9대신의 힘이 주는 느낌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쪽이 더 옳은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 방향까지 포용한다.’
다행히 진실을 말하지 않은 적은 많아도, 거짓을 말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으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순간 왕국의 동남부에서 열심히 전쟁 물품을 생산하고 있을 어떤 드워프가 떠올랐지만, 기분 탓일 터였다.
‘암. 험하게 굴린 적은 있지만, 거짓말은 안 했지.’
로건이 허리쯤에나 간신히 오는 이종족의 가신이 들으면 눈을 부라릴 만한 생각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데.
“폐하?”
그것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루이사와 제라드의 눈매가 좁혀졌다.
“아……. 잠깐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믿고 있었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탑주의 약속을 믿는다기보다는 추론에 의한 믿음이다.
카셀 마탑이 정말 지브릭 카셀의 부활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면, 전생의 그때처럼 시체의 산을 쌓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전생보다 더 많이.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멸망한 왕국의 유민을 제물로 바치는 것보다는…….
‘제국이 멸망하는 쪽이 제물 수급에는 훨씬 수월하겠지.’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데, 다행히 그 대답이 전 동익왕 부녀의 마음에는 든 것 같았다.
“그럼 저희 역시 앞으로도 쭉 함께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소.”
든든하다, 믿겠다 등의 말을 꺼내려던 로건은 순간 ‘언약의 무게’라는 걸 떠올리고는 말을 바꿨다.
예의상 하는 거짓말도 그 영혼의 빛과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조심해 봐야지.’
새삼 스스로의 영혼을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물론 지금 신경 쓸 사항은 아니지만 말이다.
‘당장은 루스펠하임 정복부터.’
로건은 돌아서는 제라드 부녀를 바라보며 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흘간의 휴식은 무리한 행군과 연이은 전투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병력들을 위한 최소한의 회복 기간이었다.
이곳에서 루스펠하임까지 가는 데 걸릴 사흘에 더해 곧 서부로 향할 황제군의 전투 기간까지, 적어도 그 7~10일 내에는 제국 중앙군의 원군이 올 수 없다는 계산을 마친 데미안의 제안이었다.
제국과 왕국의 교역 중심지이자 몇 년 전 황제를 만나기 위해 지나쳤던 대도시, 루스펠하임.
‘앞으로 6일.’
본격적인 제국 정벌의 시작은 그곳에서부터일 것이다.
석양을 받아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 * *
“전군 회군! 회군하라!”
베링은 연신 소리를 지르며 병력의 진군 방향을 돌렸다. 명목상 상급자인 드렉슬러가 좀처럼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접하고서 넋이 나가 버린 것에 비하면 실로 신속한 조치였다.
그에 따라 루스펠하임의 동문을 박차고 나와 반나절 가까이 기세등등하게 진군하던 15만 대군은 허둥지둥 들판을 선회했다.
물론 사흘 거리에 있다는 맥라인군을 당장 마주할 일은 없겠지만, 공성전을 준비하자면 최대한 빨리 진군해서 전열을 다시 짜는 것이 옳았다.
다만, 병사들은 그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당황하는 놈.
“나도 몰라. 돌아서 빨리!”
일단 움직이는 놈.
“악! 내 발, 인마!”
그 가운데서 머뭇대다 발이 엉키는 놈들까지.
4, 5, 7, 8군단의 남은 병력에 지펜의 마지막 지시로 합류한 동익왕부의 병력이 모두 섞인 군대는 그 다양한 구성 탓인지 시종 제국군답지 않은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루스펠하임으로 돌아가 농성한다! 성안이 더 안전해! 다들 정신 차려!”
그 소란을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드렉슬러가 입가의 흉터를 씰룩이며 병사들을 향해 연신 고함을 질러 댔다.
그러다 이내, 그가 작은 목소리로 베링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요?”
당황하는 마음이 그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베링이라고 뭐 아는 게 있을 리 만무했다.
– 지펜 트레이 전사. 기사단 9할 전멸. 1, 2, 3, 6군단 전멸. 살아남은 병사 2~3만 추정.
삼분의 일 가까운 병사들이 살아남았다지만, 그것은 추격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군단장인 초인이 죽고 기사들도 사실상 전멸한 상황에서, 남은 병력이 제때 루스펠하임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 게 나을 듯했다.
“같이 들었잖습니까. 뭐긴 뭡니까? 지펜 그 양반이 바보짓을 한 거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뒤늦게 후퇴를 결정했다가 치명타를 당한 것일 터였다. 아니, 그랬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내 지펜이 동익왕부를 움직인 시간과 그들이 도착한 시간 등을 계산해 본 베링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선전 포고를 듣자마자 조치를 하고 튄 모양인데…….’
자신에게 했던 멍청한 말과 달리 지펜의 조치는 적절했다.
‘그런데도 따라잡혀서 전멸했다고?’
대체 어떻게?
“그 양반이 자기 자존심만 좀 죽였어도…….”
드렉슬러는 아직 거기까지 계산이 서지 않았는지, 이를 갈며 죽은 지펜을 욕하기 바빴다.
그래. 차라리 저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는 좋을 것이다.
맥라인군과의 거리는 대략 3일.
압도적인 대승이라고 했으니, 병력 소모도 크지 않을 것이다.
실로 막막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도 군단 하나는 많을 거야. 적어도 5만, 그 차이를 어떻게……. 그 로건 맥라인은 또 어떻게…….’
얼핏 떠오르는 문제들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제 와서 어쩔 수 있겠습니까. 버팁시다, 드렉슬러 공. 황제 폐하께서 원군을 보내 주실 테니.”
“……그래야겠지요. 이 악물고 버팁시다.”
두 초인이 그렇게 결사의 각오를 다진 지 5일 후.
맥라인의 군대가 하루 거리에 들어왔다는 보고가 들어온 순간, 드렉슬러와 베링은 예상치 못한 손님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니……!?”
부릅뜬 두 쌍의 눈에 담긴 감정은 분명한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