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43)
443화 [라틴 공, 구스타프 공, 연합군을 이끌고 우회해서 남문을 치시오. 그곳 역시 군세가 얼핏 삼엄해 보이겠지만 위장일 뿐. 초인 역시 없소이다. 대신 마법 스크롤이…….]
“허, 정말이지 적응이 안 되는군…….”
테로난의 철벽, 연합의 초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제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라틴 로렌스는 로건의 영파를 들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맥라인 병력들이야 실시간으로 전황을 파악해 지시를 내리는 주군의 능력이 기꺼울 뿐이겠지만, 타국의 연합군으로서는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살아 있는 한 연합은 맥라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겠어.’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일의 마도사 구스타프 클레멘은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이거, 제국 마탑주와 해일이란 이름을 놓고 싸워 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 농담에 라틴 로렌스는 한순간이나마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이길 자신은 있고?”
“아무리 제국이라 한들 바다도 없는 나라 아닙니까. 그런 곳의 마도사가 해일을 본 적이나 있겠습니까? 흥.”
그 너스레에 라틴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카론에서 귀화한 이 초인은, 바다 위에서 적으로 상대할 때는 실로 끔찍한 적이었다.
끝까지 항전하며 골치를 썩이던 그는 카론의 왕이 잡히는 순간 바로 무릎을 꿇었고, 그 생명을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바로 테로난에 투항했다.
그 이후,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테로난 정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난놈은 난놈인데.’
그 적응 안 되는 친화력이 가끔 당혹스러울 때가 있었다.
“오러마스터의 전설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참전한 보람이 있습니다. 적어도 국내의 반(反)맥라인파를 찍어 누를 수는 있을 테니까요.”
특히 헛소리를 늘어놓다가도 이렇게 속을 읽은 듯한 말을 할 때면 더욱.
“더구나 저희를 맥라인 병력 대신 갈아 넣을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이 정도면 그냥 전후 보상이나 기대해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의외긴 하지. 뭐, 동문에 돌격시켰다면 어영부영 후방으로 빠질 생각이긴 했지만.”
리버티군이라면 모를까, 테로난군을 남의 전쟁에 화살 받이로 내세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물론 병사들이 뇌리에 직접 틀어박히는 대륙제일검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의 명령을 따르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기사 전력은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문득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그걸 알고서?’
오러마스터의 전설 중에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이 뒤늦게 생각났다. 그리고 먼 거리를 격하고 영혼에 메시지를 때려 박는 인간이라면, 그게 불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이거 남문을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겠어.”
“예?”
“전후 보상을 제대로 받으려면 말이야.”
라틴 로렌스의 전신에서 일어난 붉은 오러가 4개의 방패 형상이 되어 그의 주변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수장의 의지가 달라지는 순간, 왕국 연합군의 움직임 역시 이전에 비해 가일층 속도가 붙었다.
[로니안, 빅토르. 너희 둘이서 황실 친위대 다섯을 맡아라. 나를 상대하기 위해 뭉친 놈들 같지만, 할 수 있겠지?]“예, 형님.”
“예, 폐하.”
두두두.
기사들과 함께 말을 달리는 와중에 로니안과 빅토르는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목소리가 닿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자연스레 나오는 복창.
순간 시선을 마주친 두 친구가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놈들의 위치는 성벽 중앙 뒷부분. 그중 넷은 남부 요새에서 얼굴을 본 놈들일 것이다. 하지만 외눈의 기사 한 놈은 조심해라. 놈의 눈은 상대의 의도를 읽어 낸다. 상대할 방법은…….]이어지는 군주의 영파를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 넣으며, 빅토르는 옆의 친우를 보고 씩 웃었다.
“나 쉽게 안 죽으니까 이번에는 설레발치지 마라! 저번엔 낯이 다 뜨겁더라!”
“너야말로 또 질질 짜면서 형님한테 매달리지 말고, 네 할 일이나 잘해!”
“너, 그 말은 어디서……!?”
“먼저 간다!”
“야, 인마!”
심각한 전시 상황에 만담과도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
이내 주황빛 오러를 휘감은 초인이 단숨에 성벽 위로 뛰어올라 한 줄기 빛살처럼 사라지자, 회색의 빛줄기가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곧 하나같이 결의에 찬 얼굴로 그들의 군주, 로건 맥라인을 노려보고 있던 다섯 초인을 시야에 담았다.
그리고 그 전에, 무리의 가장 앞에 서 있던 외눈의 기사가 먼저 그들을 시야에 담았다.
“적이다!”
외눈의 기사, 제롬 디카이드의 외침에 따라 황실 친위대 소속 초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저놈은!?”
네 초인의 눈에 맥라인 남부 요새에서 그들을 패퇴시켰던 붉은 머리 기사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로니안과 빅토르 역시 적들의 견적을 뽑아냈다.
상급 셋에 중급 둘.
신검 비전의 포스코어로 한층 고양된 감각은 적들의 경지를 한눈에 읽어 냈다.
– 이거 좀 빡세겠는데?
– 너나 그렇겠지.
– 난 네 걱정 한 건데?
눈빛으로 이루어진 대화 끝에, 두 사람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비록 오해였지만 친우의 죽음과 사모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 오러유저 상급의 경지에 도달한 두 천재.
친구이자 라이벌인 두 사람의 뜻이 그 순간 일치했다.
“일단!”
“한 방 먹이고!”
뛰어오른 자세 그대로, 착지도 하기 전에 그들 사이로 주황색 오러와 회색 오러가 얽혀 들었다.
얼핏 보면 아군끼리 공격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그것을 본 외눈의 기사는 하나 남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피해!!!”
“뭣!?”
제롬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황실 친위대 중 가장 서열이 높은 맷 디커슨의 반응은 조금 늦었다.
전도유망한 후배였다가 어느 순간 몰락한 녀석의 경고. 그 자신조차 있는지 몰랐던 자존심 한 자락이 그의 움직임을 일순 막아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49개의 주황빛 오러소드가, 회색빛 오러의 구슬과 얽히고 반발하며 일순간 2천 개가 넘는 작은 단검으로 화해 그들이 있던 자리를 초토화시켰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릉.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산산이 조각난 맷 디커슨, 거의 동시에 무너져 내린 성벽의 일각.
경악한 황실 친위대 초인들 사이로, 가경할 만한 합동 기술을 펼쳐 보인 천재들이 뛰어들었다.
목표는 외눈의 기사.
– 놈을 상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알고도 막을 수 없게 압살하는 것이지.
군주이자 형, 또 스승이자 은인의 당부를 떠올린 둘의 검이 마치 하나처럼 외눈의 기사에게로 쇄도했다.
그런 두 사람의 사이를, 제롬 디카이드이 은빛 오러가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어림없다!”
이내 다른 황실 친위대 초인 셋의 붉은 오러도 뒤늦게나마 전장에 참여했다.
꽈아아아아앙!
우르르릉.
그 싸움의 여파만으로도 보호나 복구 마법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루스펠하임의 동쪽 성벽이 그 중심부부터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스승님, 지금입니다.]“알겠습니다, 폐하.”
검공은 군주의 영파가 도착하는 순간 가속하며 기사들 사이에서 튀어 나갔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약속된 일. 그가 향하는 곳에는 삭풍의 마도사가 있었다.
부르델의 화살을 막아 내는 중에도 성벽을 오르는 맥라인 기사를 학살하던 초인의 앞으로 붉은 벼락이 들이쳤다.
꽈아아앙!
“큭!?”
기습에 가까운 공격에도 완벽한 방어를 한 갈렌 디카이드. 삭풍의 군세라는 그의 성명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가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다만, 지지대도 없는 허공에서 버틸 만한 충격은 아니었기에 그의 몸은 성벽 쪽으로 빠르게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습격한 것이 오러유저라는 것을 본 순간, 갈렌은 받은 충격을 잊고서 싸늘한 비웃음을 흘렸다.
“어딜!”
허공에서 나에게 덤비다니,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허공에 떠오르며 일격을 날린 후 자연스레 추락하고 있는 적을 푸른 바람의 칼날이 순식간에 에워쌌다.
‘됐어!’
갈렌이 속으로 환호하던 것도 잠시.
스르륵.
삭풍의 군세에 휩싸인 것 같았던 적의 몸이 환영처럼 흔들리더니, 이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동시에 갈렌은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붉은 오러를 인식할 수 있었다.
콰아아아앙!
“윽!”
졸지에 성벽 안쪽으로 나가떨어진 그가 지면에 처박히기 직전.
출렁.
그의 그림자가 쑤욱 커지더니 추락하는 주인을 받아 냈다.
그림자의 마도사 플랫 리로드의 마법.
하지만 이내 그 자리에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한 붉은 벼락이 떨어졌다.
꽈아아아앙!
연속된 충격에 미처 방어할 여력이 없던 상황.
갈렌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지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제 주인을 멀리 내던지곤 대신 붉은 벼락을 받았다.
“이런……!?”
쿨럭.
한쪽 구석의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플랫이 피를 토해 냈다.
그 광경을 본 갈렌은 이를 악물며 마력을 일으켰다.
우우웅.
그런데 그 순간, 미미한 진동과 함께 그물처럼 퍼져 나가는 기세가 그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마력의 유동까지 간섭하기 시작했다.
평소 숨 쉬듯 일으키던 삭풍의 군세가 좀처럼 펼쳐지질 않았다. 억지로 마력을 끌어 올린 끝에 간신히 형태만 갖췄을 뿐이었다.
“이, 이게 무슨!?”
놀라는 그의 앞으로, 늙은 기사가 가볍게 착지했다.
“중압이라고 하네. 폐하께 처음 가르쳐 드린 기술인데, 최근에 깨달음이 있어 조금 발전시켜 봤지.”
그 담담하고 여유로운 목소리에 갈렌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사이.
“합!”
다시 그의 뒤를 노리던 플랫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펼쳐진 그물망에 그대로 찢겨 나갔다.
그리고 적은, 자신이 만들어 낸 참상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발판도 없는 허공에서 삭풍의 마도사를 농락하듯 밀어붙이고, 주변의 공간을 통째로 장악해 은밀한 그림자 마법까지 박살 내는 자.
이 정도 무력을 가진 적의 초인, 그것도 저리 늙은 모습이라면.
“……검공?!”
“대륙에 이름 높은 삭풍의 마도사를 상대하게 되어 영광이네.”
담담히 웃는 그 모습에서 갈렌은 이미 죽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때는 대륙제일검으로 불렸던 사람.
그리고 저자처럼 오러유저이면서도 늙은 외양으로 정점의 기량을 유지하던 괴물.
‘이명만 비슷한 하수인 줄 알았거늘.’
맥라인 북부 요새의 전과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라는 것을 갈렌은 그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기묘한 기술을 유지하며 저벅저벅 다가오는 걸음걸이가 점점 더 무겁게 그를 압박했다.
플랫은 이미 거미줄 안에 갇힌 먹이처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대로 온몸이 짓눌리다 못해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공포가 그들을 덮치는 순간.
“웃기지 마라!”
투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갈렌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것을 대가로, 그는 적의 마력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바로 삭풍의 마도사! 제국 최강의 마도사다!”
푸르고 흰 바람이 그 자신에게, 그리고 다가오는 적에게로 다시금 휘몰아쳤다.
콰아아아아앙!
초인들의 대결이 난잡하게 얽혀 가는 전장.
그 한쪽에선 송아지만 하게 몸을 부풀린 티르가 두 마리의 먹이(?)를 교묘하게 코너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크와아아앙!”
“이런 개새끼가!”
“막아!”
제국의 초인 중에서도 루스펠하임의 병력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던 두 초인. 동부의 군단장 드렉슬러와 베링.
성의 병력을 지휘해야 할 그들은 초인을 위협하는 늑대를 맞이하여 자신들의 몸을 지키는 것에 급급했다.
“마, 막아!”
“버티게!”
– 다른 데 신경 쓸 틈 없게 정신없이 몰아붙여.
– 킁.
굳이 영파를 전달하지 않아도 뜻만으로 연결되는 존재.
티르가 자신의 명을 충실히 시행하는 것까지 확인한 로건이 미소를 지었다.
‘충분해.’
그가 보낸 영파는 그 방향은 물론 내용도 제각각이었지만, 정작 그 당사자에겐 순차적으로 이어진 짧은 사고에 불과했다. 에일렌이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순간부터 티르가 두 군단장을 몰아붙이기까지, 불과 10여 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제국이 준비한 많은 노림수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저 그의 눈에 전장의 흐름이, 적들의 생각이 읽힌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것이면 가능해. 충분히.’
평야의 전투에서 얻었던 확신에 또 다른 확신이 더해졌다.
그리고 지금, 로건은 제국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마지막 한 수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