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45)
445화황제와 검은 기사들이 연결된 두 갈래 선이 일순간 벽을 뛰어넘은 로건의 감각에 잡힐 듯 그려졌다.
하나는 영혼을 잇는 선. 하나는 마력의 선.
지금 나타난 검은 기사들은 처음에 추측했던 대로 급조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세뇌조차 완전하지 않은 것 같았다. 황제가 영혼의 선을 연결하여 직접 조종해야 할 만큼.
그리고 그만큼 약해진 검은 기사들의 영혼, 그 근원에 자리한 ‘증오’ 역시 고스란히 읽혔다.
‘그렇다면 굳이 마력의 선을 끊을 필요는 없지.’
로건이 옅은 미소와 함께 검을 휘두르는 순간.
번쩍.
찬란한 황금빛과 함께 황제와 검은 기사들을 연결하고 있던 영혼의 선이 툭 끊어졌다.
황제의 푸른 마력은 ‘격을 초월한’ 그 일격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무슨……!?”
황제의 경악한 음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 검은 기사들의 기세가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르는 동시에 그들 사이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나, 난…….”
“하고 싶지 않…….”
“괴물이 되긴 싫…….”
“저, 저주할 것이다, 제국……!.”
“증오한다, 황제……!”
검은 투구 사이로 보이는 광기 어린 눈빛은 로건의 노림수가 먹혀들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들의 살기가 향하는 방향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안 돼!”
황제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의 발밑에서 퍼져 나가던 푸른빛의 마나가 빠르게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콰직.
황금빛 검이 황제가 아닌 황제의 발밑을 꿰뚫었다.
동시에 검 끝에서 퍼져 나간 황금빛 힘이 황제의 마력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어 놓은 마법 구성을 억지로 유지하며, 검은 기사들에게 스크롤들의 힘을 다시 전달한 것이다.
마도사는커녕 마법사도 아닌 로건이 대마도사의 마법 구성을 그대로 빼앗아 활용하는 믿지 못할 광경.
“말도 안……!!”
그에 충격을 받은 황제가 고함을 지르는 순간.
황금빛 거대한 주먹이 그의 전면에 나타났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커!?”
비명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황제가 그대로 성벽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추락하는 황제를 보는 로건의 붉은 눈에 짙은 아쉬움이 어렸다.
‘아깝다…….’
단번에 끝장을 냈어야 했는데.
중상을 입은 것 같기는 했지만, 놈을 쫓아 자리를 뜰 수는 없었다.
우우웅.
“제국을 증오……!”
“충성을 배신한 황제……!”
쿵.
몸부림을 치며 사방으로 검붉은 오러를 발산하는 일회용 초인들.
지금 당장은 저 검은 기사들의 폭주를 막는 것이 더 중요했다. 멋대로 폭주한 놈들이 전장에 혼란을 일으키면 곤란할 테니까.
물론,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가 저쪽에 있다.]검은 기사들에게 전해진 영파.
“황제……!”
“황제가!!”
“황제를 죽여!!!”
동시에 검은 기사들이 눈을 섬뜩하게 희번덕거리며 동쪽 성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황제를!”
“제국을!”
“죽여라!”
스각.
콰지지직!
검붉은 오러가 성벽의 중심에서부터 사방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무, 뭐야 이 괴물들은!”
“사, 살려 줘!”
‘금룡의 문장’을 가진 병력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광경.
하지만 그 참사는 검은 기사들 중 일부, 고작 10여 명이 벌인 일이었다.
나머지 40여 명의 검은 기사들은 로건이 머릿속에 때려 박아 준 황제의 위치를 쫓아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전장 바깥까지 튕겨 나가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있는 황제가 있었다.
– 황제!!!
소름 끼치는 고함을 내지르며 내달리는 검은 기사들.
– 하찮은 실험체들이!
꽈아아아아앙!
주전장에서 다소 동떨진 곳,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황제와 검은 기사들이 맞붙는 순간.
제국군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를 구해라!”
“폐하를 구하자!”
당황한 제국 기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황제에게로 향하던 그때, 로건은 특성 업(UP)의 유지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너희들을 유지할 힘이 다 되어 간다. 이만 끝장을 내.]검은 기사들에게 공급되는 힘의 원천은 스크롤에서 비롯된 전장 내 희생자들의 힘이었지만, 그 힘을 전달하는 것은 황제가 만든 마법이다.
로건으로서는 그 마법에 개입하여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특성을 통해 높아진 격으로 일시간 구성을 유지한다 한들, 그는 마법사가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검은 기사들에겐 그 뜻을 알아들을 만큼의 이성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 안 돼!
검은 기사들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동시에 로건은 그들의 각오, 아니 원한 역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원한은 이내 세상에 다시 없을 거대한 폭발로 현실에 발현되었다.
번쩍!
검은 기사들의 대다수가 몰려간 곳에서 전장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는 빛의 폭발이 터졌다. 곧이어 버섯 모양의 흙먼지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고,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충격파가 한 박자 늦게 전장을 강타했다.
–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병사들의 몸이 나가떨어지고, 기사들조차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심지어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살이 익을 것만 같은 뜨거운 폭풍이 전장을 휩쓸며 수많은 비명을 양산했다.
“아아악!”
“뭐, 뭐야!? 으악!!”
“끄아아악!”
우르르르르르릉.
폭음과 충격의 진원지, 분명 멀쩡했던 들판 위에는 어느새 산만 한 거인이 도끼로 내리찍은 듯한 상처가 생기면서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진동이 전해졌다.
루스펠하임의 모든 전투가 일시에 멈춰 버릴 수밖에 없는 파란.
모두의 시선이 쩍 갈라진 들판을 향하는데, 그중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한 이의 붉은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튀어 버렸군.’
약속된 시간이 지나 고양된 영혼이 다시 격하되는 와중에도 로건의 감각은 황제의 영혼이 전장에서 멀어지는 것을 포착했다.
공간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면 단순한 물리력만으로 해하는 게 불가능하긴 하지만, 그래도 꽤 심각한 중상을 입혔는데…….
‘그 상황에서도 마력이 남아 있었다는 거겠지. 독한 놈.’
그렇게 로건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데, 모두를 얼어붙게 만든 대폭발 속에서 다시 움직임이 나타났다.
바로 성벽에 남아 있던 검은 기사들이었다.
“황제!”
“제국!”
“죽여!”
꽈아앙!
콰아아아아앙!
우르르르릉.
제국의 병력이 몰린 곳을 향해 줄줄이 몸을 던지는 검은 기사들의 모습이 넋이 나간 듯 폭발을 바라보고만 있던 양군을 다시 일깨웠다.
그와 동시에, 몇 차례나 이어진 폭발이 동쪽 성벽을 중앙에서부터 무너트렸다.
우르르르르릉.
“무너진다!”
“피해!”
콰아아아앙!
그 혼란의 와중에, 아직 무너지지 않은 성벽의 일각에서 황금빛 빛의 기둥이 치솟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성벽이 무너지는 폭음을 뚫고 쩌렁쩌렁한 고함이 울려 퍼졌다.
“황제가 도망쳤다! 우리가! 맥라인이! 승리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 전쟁터에서 그 외침만큼은 어찌 이리 선명하게 들리는 걸까.
충분히 의아할 만한 일이었지만, 제국군 대다수는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여력이 없었다.
그저.
– 우리가 졌다.
당면한 현실에 절망할 뿐.
“말도 안 돼…….”
“도, 도망쳐야 해!”
“나도 데려가!”
얼마 남지 않은 온전한 성벽 위에서 미친 듯이 뛰어내리는 병사.
붕괴의 여파에 휩쓸리고도 용케 생명을 부지한 채 소리를 지르는 병사.
잘린 팔다리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면서도 살고자 움직이는 이들까지.
로건의 승리 선포로 제국군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다만, 그중에는 용케 끝까지 사기를 잃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웃기지 마라!”
“제국은 무너지지 않는다!”
기사 중에서도 극소수, 황제와 제국을 광신하는 이들은 무너져 가는 병력을 추스르며 어떻게든 전투를 이어 가려 애썼다. 정확히는, 흩어진 병력을 최대한 보존한 채 후퇴하려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리 분투하는 이들 중에는 로건의 아주 가까이에 있는 기사도 있었다.
“끄으응.”
제국군 기사, 긱스는 얼마 남지 않은 포스를 동원해 치명상을 입은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눈앞에 있는 적의 왕.
황제 폐하와 부딪친 여파조차 감당하지 못한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아니었다. 상대는커녕 그가 조금 전 허공에 뿌린 빛살에 담긴 힘 일부만으로도 자신의 생명은 쉽게 끊길 터였다.
다만 그럼에도.
‘제국 기사의 기개를 보여 줘야 한다.’
긱스는 죽음을 각오했다.
아니, 이미 흘린 피만 해도 치사량이었다. 그저 포스를 긁어모아 간신히 명을 이어 가고 있을 뿐.
즉,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자신의 희생으로 후퇴하는 아군이 조금의 용기라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생명을 바치리라.
‘제국을 위해!’
그가 한낱 병사일 때부터 가슴에 새겨 온 사상이, 굳은 결심이 이미 한계를 넘어선 몸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긱스는 그 결심을 입 밖으로 토해 내며 생의 마지막 의지를 불태웠다.
“제국을 위해!!”
그의 모든 기력을 실은 검이 붉은 포스를 일렁이며 적의 왕을 향해 휘둘러졌다.
스각.
그리고 튀어 오르는 핏물.
긱스는 자신의 검이 ‘괴물’의 볼을 얕게 베어 낸 것을 보았다.
그리고 상대의 붉은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는 모습도.
‘……어?!’
습격을 한 이도, 당한 이도 예상치 못한 상황.
‘이게 무슨……?’
순간 긱스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휘둘렀던 자신의 검에 무언가 초인적인 힘이 깃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현실을 깨달았다.
‘그게 아니야. 놈이…… 약해진 거다.’
이유는 모른다.
황제 폐하를 패퇴시키고, 하늘을 꿰뚫는 빛을 뿜어내는 적이 어쩌다 자신의 검에 상처를 입은 건기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한다는 생각이 일순간 그의 영혼을 지배했다.
“적이……!”
탈진했다.
그렇게 외치려는 순간, 서늘한 감각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탈.”
쩌어어억.
긱스는 하고픈 말을 고작 한 음절 뱉어 내고는 선 채로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뒤에서, 자신의 반려를 구해 낸 여기사가 지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철의 마도사는 처리했어요.”
“……수고했어요.”
순간 창백해졌던 로건의 얼굴이 엷은 미소와 함께 혈색을 되찾았다.
특성의 후유증이 몸을 감싼 순간, 포스가 완전히 바닥난 그 순간 빈틈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던 일검.
하마터면 다 이긴 전쟁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할 뻔했다.
안도감에 비틀거릴 뻔한 그의 몸을 에일렌이 티 나지 않게 살짝 받쳤다.
“빨리 회복해요. 병사들이 봐요.”
“고마워요.”
로건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텅 비어 버린 포스를 조금이라도 채우기 위해 포스코어를 움직였다.
겉으로는 그 누구보다 굳건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곁으로 아군의 초인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삭풍의 마도사를 놓쳤습니다. 그림자의 마도사가 자신을 갈아 넣어서 막아서는 바람에…….”
“황실 친위대 초인 넷을 처리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셋, 빅토르가 하나입니다.”
“로니안 백작이 둘, 제가 하나로 정정하겠습니다. 한 명은 함께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로니안 백작의 단독 행동으로 제롬 디카이드는 놓쳤습니다.”
“야, 인마……!”
컹!!
– 잡았다. 두 마리.
노기사와 젊은 천재들, 그리고 신수가 서로의 공을 자랑하고 있는 가운데.
쿵. 쿵.
그그극.
– 해일, 빙결. 처리 완…….
한쪽 구석에선 골렘 셋이 성벽을 긁어 내 글을 쓰고 있었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부르델은?”
로건조차 그저 이 자리에 없는 다른 공신을 찾고 있는데, 그 목소리에 대한 답이 뒤에서 들려왔다.
“후퇴하는 제국군들을 쫓아갔습니다. 기사 수만 줄이고 오겠다더군요.”
은빛 바람을 휘감고 나타난 위켄 칼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루터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남은 병력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남문의 왕국 연합은 내부로 진입 중입니다. 철벽과 해일의 마도사 역시 함께하고 있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위켄 공.”
“늦어서 죄송할 뿐입니다, 폐하.”
로건의 치하에도 위켄은 아쉬운 표정으로 무릎을 꿇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시선은 중심부부터 내려앉은 동쪽 성벽과 지진이 난 듯 갈라진 들판을 향해 있었다. 최대의 격전지에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 진심으로 아쉬운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아쉬움 뒤, 숨기지 못한 기쁨은 그들이 승리했음을 확연하게 증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