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46)
446화
“우리가 또 승리했다!!”
“우리가 이겼다!”
“맥라인 만세!”
“만세!”
루스펠하임 곳곳에서 기쁨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그 모든 음성의 주인은 맥라인의 군사들이었다. 루스펠하임에 거주하는 제국민들은 부서진 성문 사이로 진입하는 맥라인의 군세를 두려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전쟁의 광기에 젖은 일부 병사는,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그 겁먹은 시선들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
쾅!
“다 나와! 제국 놈들은 싸그리 죽…….”
뻐어억.
기세 좋게 어느 민가의 문을 차고 들어가던 병사가 자신의 머리보다 큰 손에 뒤통수를 얻어맞고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런 미친놈이…… 네 놈이 먼저 죽을 테냐?”
일가족을 칼부림에서 구해 낸 거인.
하지만 보통 사람의 덩치를 몇 배는 초월한 거인 기사는 직전의 병사보다 훨씬 큰 공포를 전해 줄 뿐이었다.
“히이이익!”
“맥라인은 민간인을 건드리지 않는다. 통제에만 잘 따르도록.”
부서진 문 안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일가족에게 무심히 한마디를 남긴 루터 카일은 자신이 기절시킨 병사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며 민가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승전의 기쁨에 취한 병사들이 곳곳에서 민가를 부수고 칼을 휘두르거나, 광기 어린 눈빛으로 민간인을 건드리려 들고 있었다.
죽고 죽이는 전장의 광기가 만든 폐해. 좀 전에 자신의 손에 기절한 미친놈도 전쟁이 끝나면 그저 순박한 젊은 청년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이유는 없었다.
– 루스펠하임은 향후 맥라인의 영토로서 제국을 견제하는 교두보가 될 것이다.
더 이상 제국에 최대한 큰 타격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폐하의 명이다! 일반 백성은 건드리지 마라!”
루터 카일의 우렁찬 고함이 울려 퍼지자 무너진 성벽 너머 민가를 약탈하려던 맥라인의 병사들이 멈칫했다. 그리고 그런 경고에도 난폭한 행동을 멈추지 않은 병사들은 기사들이 직접 나서서 제압하기 시작했다.
“약탈은 극형으로 다스린다!”
“이제부터 루스펠하임은 맥라인의 영에 통합된다!”
“민간인을 건드리지 마라!”
전장의 광기를 강제로 억눌러 가는 과정.
그 과정의 정점은…….
[루스펠하임의 병영을 재건하고 병사들을 묵게 하라. 그리고 기사단은 전원 내성으로 집결하라.]대군 하나하나의 뇌리에 직접 때려 박히는 군주의 목소리였다.
“폐하께서 지켜보신다.”
“질서를 지켜라!”
“빨리빨리 움직여!”
혼란을 단숨에 정리하는 군주의 힘.
그가 있는 곳을 향해 경의를 표한 병사들의 움직임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폐하, 그 동익왕 부녀와 오러유저가…….”
“안다. 사라졌겠지.”
“……역시 제국의 첩자였습니까?”
“아니. 다른 쪽.”
“예?”
“되었다. 그쪽은 신경 쓰지 말고 전장이나 정리하도록.”
“……예, 폐하.”
반문을 받지 않은 채 대충 손짓으로 기사를 물리친 로건은 서서히 정리되어 가는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카셀 마탑의 하수인들이 사라졌다. 우려하던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잠정적인 적이라 생각했던 이들이니 그리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단 하나였다.
‘또 이겼다…….’
부르르 떨리는 이 손.
로건은 그 벅차오르는 감정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온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제국의 공격을 막아 냈을 때와는 또 다른 벅찬 감정이 밀려들며, 미래의 우환도 확실히 막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때, 그 벅찬 마음을 가라앉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말씀하신 스크롤들을 모아 왔습니다.”
골렘을 움직이기 위해 땅속에 숨어 있었던 탓에 꾀죄죄한 몰골이 된 빅토리아가 다가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 수고했다. 고생한 것은 아는데, 그것들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 조금만 더 도와줄 수 있을까?”
“예. 물론이에요, 폐하!”
검은 기사들에게 전장 내 희생자들의 힘을 전해 주었던 수백 장의 5서클 스크롤. 그 대다수는 전투 중 자신과 루터, 위켄, 왕국 연합의 손에 파기되었지만, 백여 장 정도는 온전히 남아 있었다.
검은 기사의 자폭은 엄밀히 말해 황제의 마법을 길게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스크롤의 힘이 다해서가 아니었다. 황제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맥라인은 여기서 재기 불능의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영혼과 피를 집어삼킨 스크롤들.
그것들에선 황제의 마력보다는 카셀 마탑의 마나가 진하게 느껴졌다.
이것이라면…….
‘카셀 마탑의 비밀을 일부나마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셀 마탑주가 황제와 맺은 계약이 무엇일지 대략은 짐작이 간다. 또 놈들이 무슨 짓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언약의 무게 운운하더니 뒤통수를 쳤겠다.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 주마, 늙은 뱀.’
모든 계획을 무너트릴 뻔한 배신이니 그 대가를 톡톡히 받아 낼 것이다.
점차 깊어지는 로건의 눈빛이 빠르게 정리되어 가는 전장으로 향했다. 그가 오롯이 즐기지 못한 승리의 기쁨을 맥라인의 병력들이 대신 만끽하고 있었다.
– 맥라인에 영광을!
– 우리가 승리했다!
– 우와아아아!
끝없이, 계속해서 퍼져 나가는 목소리는 깊은 밤중이 되어서야 조금씩 잠잠해졌다.
* * * 휘이이이잉.
한 줄기 푸른 바람이 허공을 가르고 질주하는 것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속도도 속도거니와, 그 푸른 바람의 중심에서는 사람의 인식을 저해하는 마법도 꾸준히 발현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놀라운 이적을 보이는 이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황제, 카이서스 반 아레스는 바닥을 보이는 마력을 쥐어짜 도주하는 와중에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황금빛이 번지는 순간 파도에 휩쓸린 듯 밀려 나간 자신의 마력.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 한순간의 장면이 끝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카셀 마탑의 도움까지 받아 가며 철저하게 준비한 대마법이 도중에 탈취를 당한 것이다.
그것도 마도사도 아닌 오러유저한테.
심지어 그 뒤에 뻗어 나온 단순한 일격은 영혼과 마력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대한 상처를 남겼다.
놈이 전설 속 신인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오러마스터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절대, 절대 그럴 리 없어.’
놈이 몇 년 사이 오러마스터가 된 것만 해도 상리를 벗어난 일이다.
한데 몇 달 사이에 그 한계까지 넘어섰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오러유저는 오러마스터가 한계야.’
아무리 오러마스터가 그 수준에 따라 7~8클래스를 커버할 수 있는 전쟁 병기라 하더라도 그것이 끝이다.
위대한 선조가 남긴 문헌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 동료였던 ‘최초의 오러마스터’ 역시 결국 넘어서지 못한 벽이라고.
말년에 결국 신인의 경지에 도달한 선조와는 달리 말이다.
인류를 구한 선조가 공언한 말이니만큼 정말 신이 내린 영웅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 세상을 구한 건 타론 아레스가 아닌, 검신…….
순간 놈의 헛소리가 떠올랐지만, 그는 곧 머리를 흔들어 털어 내 버렸다.
어쨌건 놈 역시 오러마스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건 마찬가지일 터.
그것을 생각하니 짐작이 가는 게 하나 있었다.
맥라인의 카일 성에서 대마법 ‘소멸(Extinction)’을 꺾어 버렸던 사건.
‘그 빛.’
도무지 믿을 수 없어서 스스로 막사 밖으로 뛰쳐 나가고 말았던 이적.
‘분명해.’
그 후에 자신과 대치했던 놈은 분명 오러마스터의 힘을 보이기는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오러마스터다운 힘을 보인 것은 딱 한 수뿐이었다.
자신의 왼팔을 가져간 그 일격.
그 후에는 형편없이 밀리는 모습만 보였다. 마치 모든 힘을 그 일격에 쥐어짠 것처럼.
‘전장의 신이라는 오러마스터가 그렇게 쉽게 지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그것을 생각하면 결론은 하나였다. 소멸을 꺾어 버렸던 빛 또한 놈이 지금 했던 짓과 비슷한 수를 쓴 것이라는 것.
마도사와는 달리, 오러유저에겐 그것이 가능한 한 수도 있었다.
‘특성…….’
일순간 오러마스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는 것.
아마도 그것이 놈이 가진 특성일 것이다. 그 대가로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탈진 상태에 빠지는 것이 분명했다.
‘빌어먹을 오러유저. 빌어먹을 특성.’
황제는 추론 끝에 진실에 근접한 결론을 내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이 비참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참전하고도 또다시 대패했다. 무려 12명의 초인을 대동하고도 수성전에서 패배한 것이다.
‘과연 몇이나 살아남았을까.’
기사들이나 병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참패의 순간, 이미 일반 병력의 희생자 수는 짐작해 보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커졌을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초인들의 희생이 적기를.
‘퇴각할 때 메시지를 전했다. 최대한 보신을 우선하여 플렌으로 오라고, 대다수는 몸을 피했을 거야.’
황제는 그렇게 불안감을 달랬다.
하지만 이틀간 루스펠하임에서 서북쪽의 소도시, 플렌에 마련된 안가(安家)에 도착한 이는 고작 둘뿐이었다.
* * *
“갈렌, 제롬. 디카이드 공작가의 두 사람……. 정녕 그대들뿐인가?”
희미한 횃불이 간신히 어둠을 밝히고 있는 석실 안.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는 황제를 보며 더욱 처참한 안색의 갈렌과 제롬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면목이 없습니다.”
내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얼굴. 대 아레스 제국의 초인답지 않은 한심한 몰골이었지만, 황제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게 다 누구 때문이겠는가.
“열이나 죽었다고. 흐, 흐흐흐……. 어떻게 이런…….”
비통한 목소리를 토해 낸 황제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에 차마 황제의 초라한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갈렌과 제롬이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모두가 내 부덕 때문이다.”
목이 쉬어 버린 듯, 갈라진 황제의 목소리가 어두운 방 안을 울렸다.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두 사람의 얼굴에 참담한 표정이 떠올랐지만 갈렌도, 제롬도 더 부언하지는 못했다.
이내 황제가 침통한 어조로 물었다.
“놈들이 어디까지 진격하리라 보는가?”
“서부 군단이 건재하다는 전제하에 통합적인 병력의 수는 아직 저희 제국이 우세하옵니다. 맥라인은 감히 아세리안을 침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안심하시옵소서, 폐하.”
“아세리안이 침범당하지 않는 것으로 안심하라는 건가? 흐, 흐흐. 어쩌다가 내 꼴이…….”
갈렌과 제롬이 연이어 말을 뱉어 냈지만, 안면을 쓸어내리는 황제의 음성은 비통하기만 했다.
“게다가 놈들에게는 로건 맥라인이, 오러마스터가 있다. 남은 사방왕부 중 셋과 서부 군단을 총동원한다면 이길 수 있다 확신하는가, 갈렌?”
“……이 목숨을 걸고 반드시 막아 내겠습니다.”
“막아 내겠다……. 흐흐, 제국의 가장 날카로운 칼인 그대가 목숨을 걸어서 겨우 막아 내겠다고 말하는가.”
삭풍의 마도사의 결의도 황제의 암담함을 걷어 내진 못했다.
“빌어먹을.”
제국의 황제, 아니 일국의 왕의 입에서 나왔다 해도 저렴한 욕설이 방 안을 울렸다.
황제가 하나 남은 손으로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는데, 순간 그의 검은 눈썹이 움찔 떨렸다 그리고 이내,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 저는 ‘직접’ 참전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흑기사의 대량 생산을 위한 방법 또한 알려 드리지요.
– 대신 로건 맥라인을 사로잡아 주시지요, 폐하. 저희가 원하는 것은 딱 그자 하나뿐입니다.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건네던, 결코 거절할 수 없었던 제안.
달콤하기 짝이 없었던 제안은 그저 미끼였던 것일까.
아니면…….
“아니, 놈도 몰랐던 거야…….”
의미를 알 수 없는 중얼거림에 갈렌과 제롬이 움찔했지만, 황제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채로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러다 불쑥 나직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대들은 먼저 서부 전선으로 향하라. 서쪽의 전황을 최대한 빨리 종식시키는 데에 모든 힘을 다하라.”
“……예? 예, 폐하.”
“……명을 따르겠습니다.”
당혹스러웠지만 디카이드 가문의 두 사람은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차분히 손짓하는 황제를 두고 조용히 어두운 석실을 벗어났다.
쿠궁.
이내 거대한 석문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닫히고, 홀로 남은 황제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고민했다.
서부를 정리하고 그 병력을 몰아 회군하면 분명히 가능성은 있다. 이제 로건 맥라인 그놈의 특성도 알게 되었으니, 그 허점을 노릴 자신도 있다.
맥라인 놈들의 진격은 그들이 아세리안에 다다르기도 전에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막아 낼 수…….
“이 내가, 대 아레스 제국의 황제가 생각한다는 게 고작……!!!”
고함과 함께 푸른 마력이 터져 나왔다.
쾅.
쩌저저저저적.
쿠우우우우우우우웅.
분노와 함께 내디딘 발밑을 시작으로, 석실의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석실이 천장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그.
갈라진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흙먼지가 황제의 머리 위에 새하얗게 내려앉았다.
잠깐의 마력 운용만으로도 먼지를 털어 내고 무너지는 석실을 탈출할 수 있었지만, 황제는 먼지가 온 얼굴을 뒤덮을 때까지도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만큼 그의 마음속에는 심각한 갈등이 일고 있었다.
– 명심하@라. 후손@$.
– 이것은 인류의 위기, 혹은 대악마 지$%@의 부활이 임박했을 때만 써야 할 것이다.
– 그렇지 않으면 전승되는 힘은 그 순간 끊길 것이며…….
대대로 황제에게만 전해지는 황실의 금기.
고대의 대마도사 타론 아레스가 후손(인류)을 위해 남겨 둔 마지막 안배.
그것을 사용하는 순간 제국의 황제에게 대대로 전승되어 온 대마도사의 힘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후유증까지 떠안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제국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이 바로 인류의 위기다. 선조의 유훈을 어기는 것은 아니야. 그래.”
뿌드득.
“역사에 패배자로 새겨지느니 차라리…….”
결의를 다진 황제는 금기를 깨트리기로 결심했다.
우우우웅.
일순 황제의 몸에서 일어난 푸른 마력이 쏟아지던 먼지를 튕겨 내고 무너져 내리는 석실을 떠받쳤다.
쿠우우우우웅.
“나는, 제국은 승리한다. 기다려라, 로건 맥라인! 사지를 찢어 죽여 주마!”
우우우우웅.
– 콰아아아아아아앙!
솟구치는 푸른 마력과 함께 안가가 통째로 폭발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