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47)
447화 [루스펠하임에서 맥라인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통신구 속 검은 머리 미녀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이어졌다. 다만, 그 내용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허…….”
그 예상치 못한 보고에 노인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노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황제는? 내가 보낸 스크롤들을 쓰는 것을 확인했느냐?”
황제에게 보낸 스크롤들은 탑이 제국의 동부와 서부 전선에 몰래 깔아 놓은 수작의 개량판이라 할 수 있었다.
탑의 재력을 탈탈 털어 넣은 비전들. 짧은 시간 안에 효과를 봐야 하니 가장 확실한 물건들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조차 별 소득이 없었던 듯했다.
[……발동한 것까지는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보다 규모적 측면에서 상당히 부족했습니다. 아마도 준비가 사전에 발각당한 것 같습니다.]“……그랬겠지.”
노인은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럼에도 이상한 점은 있었다.
“예상치보다 부족했다 해도 전황을 뒤엎을 만한 수준은 됐을 텐데, 설마 발동되다 말았느냐?”
설마 그 황제가 마법진을 제대로 발동조차 못 시켰다고?
전승의 힘으로 만들어진 반편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대마도사인데?
[대략 절반 미만 정도로 보였습니다.]“절반……? 아니, 그런데도 제국군이 졌다고?”
[황제가 로건 맥라인에게 순식간에 패퇴한 것이 너무 컸습니다.]“뭐!?”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럴 리가!?
전승의 힘을 가진 황제는 자신도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다. 로건 맥라인이 자신에게 극상성을 보일지언정 황제에게는 그럴 수 없다는 것 또한 확신하고 있었다.
‘검신 일맥과 아레스 일맥은 서로 보완하며 발전해 온 관계다. 상성을 탈 리가 없을 텐데?’
이전의 대련을 통해 운명을 바꾸는 자가 검신 일맥과 같은 힘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조의 사후에 나타났던 검신 일맥의 힘조차 예언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오히려 마탑의 길에 한층 확신을 가진 참이었다.
그래서 계획의 노선까지 바꾼 것인데 일이 왜 이렇게……?
“설마 로건 맥라인이 그새 또 성장했다고? 그럴 리가?!”
노인이 자신도 모르게 뱉어 낸 불신의 소리는 당연히 통신구 너머 루이사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어쨌건 황제가 패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후에 흑기사들이 폭주하며 오히려 제국군과 황제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으로 전황이 완전히 기울었습니다.]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폭주한 흑기사들이 제국군만 노렸다고? 그럴 리가?!”
[저와 아버지가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흑기사들이 폭주하면 이성이 사라져야 정상이야!”
[하지만 실제로 나타난 결과가 그렇습니다.]잔뜩 흥분한 탑주의 고함에도 루이사의 대답은 담담하기만 했다.
“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는 상황이 자꾸만 이어졌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끄으응.
“……그건 정상이 아니다. 절대 정상이 아니야! 그 후 전쟁 진행 상황을 자세하게 보고해! 특히나 로건 맥라인과 흑기사들을 중심으로!”
[그게…….]바로바로 대답을 이어 가던 루이사가 그 순간 멈칫했다.
“……뭐냐?”
[황제의 패퇴를 보고 그 뒤를 쫓느라 그만……. 죄송합니다.]고개를 숙이는 제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뜻밖의 사태로 한껏 예민해진 탑주의 인내심이 툭 끊어졌다.
“하?”
이유는 너무도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황제에게 한이 맺힌 제라드 부녀의 사정을 이용한 것이 자신이니까.
하지만 대업을 앞두고 신경이 잔뜩 곤두선 탑주에겐 그런 ‘사소한’ 사정 따위를 이해해 줄 도량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 한심한 것들이 결국 병신 같은 짓거리를 저질렀구나!! 네놈들이 황제를 어찌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쾅.
분노한 탑주가 쏟아 내는 폭언에 내내 담담하던 루이사의 표정이 결국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것 역시 탑주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에게 이제 제라드 부녀는 사방왕도 아닌 한낱 마도사와 마도사도 되지 못한 일반 마법사 나부랭이일 뿐이었으니까.
“이 비루한 것들이 주제를 모르고 일을 그따위로 처리해!? 내 명령까지 무시하고!?”
[탑주님, 말이 너무 심하신…….]“심하긴 뭐가 심해!!!!”
까득.
몇 개 남지 않은 치아가 서로 맞물리며 듣기 싫은 소음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황제를 잡았느냐!? 치명상을 입히기라도 했어!?”
[…….]“그럴 리가 없겠지. 네까짓 것들이 감히 대마도사를 어떻게!! 그렇게 일의 경중을 모르고 주제 파악도 못 하니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도록 황제한테 빌고만 있었겠지!”
[아무리 탑주님이시라도 그런…….]통신구 속 루이사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탑주의 눈엔 그조차 한심하게만 보였다.
“뭐!? 내가 못 할 말을 했느냐!? 네놈들의 그 한심한 짓거리로 인해 대업에 지장이라도 생긴다면 어쩔 것이냐?”
[…….]“대업이 실패하면 너희의 희망도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걸 왜 몰라!!”
[……죄송합니다, 스승님.]후.
한바탕 쏟아붓고 난 후에야 탑주의 이성도 돌아왔다.
하찮은 것들이지만 아직은 필요한 손발들이다.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다소 과하게 풀었다는 것을 자각했으니, 조금은 다독여 줄 필요가 있었다.
“……너희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왕부까지 잃어 가며 대업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내가 어찌 모를까. 대업이 이뤄진다면 그분께 청을 드려 너희의 염원을 가장 먼저 이뤄 줄 것이다.”
[……감사합니다.]“그러니 다음부터는 실수하지 말도록.”
[……예.]팟.
한층 낮아진 루이사의 목소리가 그리 미덥지 못했지만, 탑주는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을 종료했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차라리 내가 직접 갔어야 했나?’
서부 왕국들을 제어하느라 움직일 수 없었다는 현실을 알면서도 자꾸 그런 아쉬움이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로건 맥라인의 무력.’
일전에 만났을 때 가늠되던 경지로는 황제를 일방적으로 패퇴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뜩이나 검신 일맥의 힘은 카셀 마탑의 힘에 극상성. 예언에 따라 운명을 바꾸는 자를 제물로 쓰려면 일단 놈을 제압해야만 한다.
카셀 마탑의 힘만으로는 그것이 어렵기에 황제와 딜을 한 것인데, 상황이 이렇게 꼬일 줄은 예상도 못 했다.
‘그 사이에 오러마스터의 한계를 넘었을 리는 없다. 유사 이래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이야.’
아무리 이십 대에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천재라 한들, 그 이상에 다다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면 순간적으로 한 단계 위의 힘을 발휘하게 해 주는 특성을 각성한 것인가? 폭주 같은?’
물론 오러마스터급 경지에서 이성을 잃는 폭주 같은 특성은 오히려 독이다.
다만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경지를 뛰어넘는 특성이 그것뿐이었다. 그렇기에 탑주는 진실에 가까운 추론을 해 놓고도 황제와는 조금 다른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성장이다. 검신의 경우를 생각하면, 오러마스터도 극의에 이른다면 8클래스 마스터 수준의 대마도사와도 견줄 만할 거야.’
짧은 기간에 8클래스급으로 성장했다는 가정.
그 역시 말이 안 되지만, 오러마스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성보다는 가능성이 큰 듯했다.
덕분에 더욱 막막해졌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잘 됐어.”
그는 충격적인 변수를 애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제물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분께서 온전히 강림하실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로건 맥라인이 그렇게 강하다면, 제국의 서부 군단이 서방 연합군을 큰 피해 없이 물리친다고 해도 이후 맥라인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국이 멸망할 수도 있다.’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전제였으니까.
타국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초인의 수.
강대한 병력과 자원.
더구나 그 빌어먹을 신인(神人), 타론 아레스로부터 전승되는 힘은 제국의 황제에게 대대로 대마도사의 권능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전승의 힘이 무서운 이유는 황제가 대마도사의 무력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 아니었다.
‘황제가 되면 그 성정까지 바뀐다는 게 진짜 대단한 거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배자는 본래의 성격이 아무리 개차반이더라도 대마도사의 경지를 유지할 수 있는 ‘정신력과 이성’, ‘제국을 번성시켜야 하는 의무감’을 강제로 부여받는다. 바로 그 덕분에 제국이 아레스 왕국 시절부터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철인. 개인의 욕망에 침식되지 않고 국가의 발전만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지배자 밑에서 발전을 거듭한 결과, 제국은 내부에서부터 무너트리지 않는 이상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이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고대의 대마도사 타론 아레스가 남긴 전승의 진짜 가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카셀 마탑의 조상들이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내부로 들어가는 길을 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실패했고.’
그런데 이제 와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니?
“흐, 흐흐흐흐. 재미있군. 재미있어.”
사실 운명을 바꾸는 자, 신들이 떠난 시대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 그 수를 쓰려 했다.
일단 황실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뒤 다음 대 황제를 지배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에 필요한 준비 또한 착실히 진행하고 있었다. 황실에서 취할 일련의 조치까지 감안해서.
마법의 경지야 어찌 되었건, 마학적인 관점에서는 스스로 역대 진실을 삼킨 뱀 중 최고라 자부하고 있었으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았다. 또한 그것만이 아레스 일파를 피해 대업을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들이 떠난 시대의 조짐이 보이고, 운명을 바꾸는 자가 나타나더니 결국 시대가 이렇게 변해 버렸다.
“흐…… 그렇군. 그런 거였어.”
노인은 순간적으로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명을 바꾸는 자…….”
운명을 바꾸는 자라는 예언이 비로소 마음에 확 와닿았다.
검신 일맥의 힘은 그저 신체의 무력일 뿐, 진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던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힘이다.
이를테면 제국의 멸망 같은.
그것이 로건 맥라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예언하신 것이 그분.”
새삼스레 선조에 대한 믿음이 한층 굳건해진 듯했다.
그래, 대업의 때가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이 변수도 그 과정 중 하나에 불과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으로선 일단 이 변수를 더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선…….
“황제.”
연달아 패배한 황제가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 예측은 어렵지 않았다.
“항복하거나 포기할 리는 없다. 아레스 제국의 황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니까.”
전승의 힘을 얻은 대가.
페널티라고 할 수도 없는 페널티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최악이었다. 황제는 설령 파멸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끝까지 싸우는 길을 택할 테니까.
그리고 제국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면, ‘그곳’에 충분한 에너지가 모이는 시기도 빨라질 것이다.
‘어쩌면 정도 이상의 힘이 모일지도 모르지.’
로건 맥라인이 있는 이상 맥라인의 승리가 거의 확실하지만, 제국 역시 아직은 여력이 있다. 그 둘이 충돌하여 최대한 많은 희생자가 나오는 게 대업을 위해서는 최상이었다.
정확히는 제국만 망해서는 안 되고, 맥라인도 같이 망해야 한다. 로건 맥라인을 잡기 위해서라도.
그렇다면 카셀 마탑이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지.”
일단 이 서방의 전쟁부터 적당한 선에서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히죽.
“그래, 그러면 되겠어.”
무슨 생각을 떠올린 것인지 탑주가 예의 그 음흉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끌끌끌, 재미있겠어. 아주.”
탑주의 웃음과 함께 꺼졌던 통신구에 다시 빛이 들어왔다. 그 빛은 몇 겹의 보안을 넘고 넘어, 자격이 없는 이는 절대 닿을 수 없는 대륙 중앙의 비선에까지 닿았다.
[통신을 청하신 분의 신분을 말씀해 주십시오.]제국 황실의 비선 통신 담당관이 다시금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구면이지 않나, 우리?”
[신분을 말씀해 주십시오.]“흘흘. 참 재미없는 사람들이야. 그래, 황제 폐하께 전해 주게. 검은 뱀이 다시금 제안드릴 게 있다고.”
느물거리며 웃는 탑주의 모습은 처음 제국의 패전 소식을 접할 때와는 무척이나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