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49)
449화
“루스펠하임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마법사들의 도움으로…….”
“전장의 정리도 끝났습니다. 피해는…….”
연신 이어지는 보고에 로건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로는 보고를 듣고 있는데, 왜인지 마음이 심란했다.
‘뭐지?’
예전 같으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다시 한번 경지를 넘어서 보며 느낀 바가 있는 지금으로선 그럴 수 없었다.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 영혼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이유 없는 불안감이라도 그 연유를 파악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참을 고민해 보아도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짐작 가는 것이라고는.
‘황제를 놓쳐서 그런 것인가.’
그 하나뿐.
“쯧.”
막막한 상황에 연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보니 결국 생각은 한 방향으로 이어졌다.
“……서부로 진격은 언제부터 가능하겠나?”
그 물음에 보고를 하던 이들의 대표, 데미안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뭔가 망설이는 듯하던 데미안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표정을 가다듬으며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제가 일전에 폐하께 말씀드렸던 게 있습니다. 적어도 동익왕부가 있던 펜나(Penna)까지는 먹어야 제국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요. 기억하십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우리는 그 계획대로 우선 루스펠하임을 점령했다. 이제는 펜나로 진격해야 할 차례가 아니더냐.”
“……계획대로가 아니라 계획보다 훨씬 잘 됐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음? 무슨 소리지?”
로건이 슬쩍 인상을 찌푸리자, 데미안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큰,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 맞습니다. 아군의 병력 손실도 예상치보다 훨씬 적었고, 제국군의 초인도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수를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말끝을 흐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데미안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로건의 시선을 느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이 너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대로 아세리안으로 진격한다면 과연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그 말에 대전에 있던 모든 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실, 그 비슷한 소리는 이미 루스펠하임 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 이대로 우리가 제국 점령하는 거 아냐?
– 제국 초인도 거의 다 죽었잖아.
– 황제도 우리 폐하께서 격퇴했고…….
– 제국 병력도 얼마 안 남았을 텐데?
압도적인 승리에 취해 사기충천한 맥라인 병력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
하지만 일개 병사들의 수군거림과 책사의 결론은 그 무게가 다른 법이다.
떠도는 풍문이 눈앞에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믿지 못할 발언이 모두의 귓가에 때려 박혔다.
“이참에 아예 아세리안까지 정벌합시다! 아레스 대신 우리가 제국 하시지요, 폐하!”
루터 카일의 커다란 목소리가 모인 이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러나 그 순간.
데미안이 그런 들뜬 마음들에 찬물을 끼얹었다.
“……침공은 할 수 있지만, 점령은 하지 못합니다. 저희에겐 아세리안의 영역까지 감당할 만한 병력이 없습니다. 책사로서 그게 참 아쉬울 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그 넓은 영토를 점령하고 난 뒤, 제국민들의 반발을 찍어 누를 병력을 상시 주둔시킬 여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거야 일단 점령하고 봐서…….”
“자부심 높은 제국민들은 온갖 사건 사고를 일으킬 확률이 높습니다. 정확히는 반란을 말입니다.”
반란.
그 말에 소란스럽던 대전의 내부가 다시 조용해졌다.
“전쟁 직후에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예. 바로 그 점이 안타깝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정복지의 역사가 깊을수록, 문화가 번성했을수록 반란의 정도가 심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국은…….”
최소한 3백 년 전부터 대륙 최강국이라 불리던 나라.
그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기에 모두의 안색이 굳어졌다.
“완벽한 점령을 위해 병력을 크게 분산시키면, 남은 제국군에 야금야금 갉아 먹히다가 국력만 소모된 채 다시 왕국으로 후퇴하게 될 겁니다. 아무리 폐하가 있으시다 해도 말입니다.”
“자경단을 주둔시키면…….”
“이제 봄인데 농사는 누가 짓고?”
“에이, 에이. 그렇게 째려보지 마십시오, 검공 각하. 그냥 해 본 소립니다. 저도 그렇게 무식한 놈은 아닙니다.”
“알면 닥쳐, 덩어리.”
“너는 또 왜…… 크흠흠. 닥치겠습니다.”
루터 카일이 그렇게 눈총을 받고 침몰하자 로건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야. 한데 그럼 어쩌자는 얘기지, 데미안?”
그란디아의 독립군으로 활동해 본 그로서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이야기.
‘제국은 우리보다 인구가 수십 배는 많아.’
그란디아 해방 전선 같은 단체가 열 배 이상의 수로 내부에서 날뛴다면 나라가 망하는 것도 한순간이다. 그들 입장에서나 독립군이지, 지배자 눈엔 한낱 테러 단체일 테니까.
그 물음에 데미안은 무거운 안색으로 답했다.
“제국 전역을 감당할 수 있는 병력은 제국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국에 원한이 있는 국가는 우리 맥라인을 비롯해 주변에 넘쳐나지요.”
서방 국가 연합에 카셀 마탑이 가세했다.
놈들이 제국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는 황제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또한 카셀 마탑에게는 기회일 것이다.
‘마탑주는 그 자신은 참전하지 않고 부하들을 시켜서 제국을 멸망으로 치닫게 하겠지.’
언약의 무게를 회피하는 꼼수. 정말 그런 짓이 가능하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되면 제국은 남은 병력과 황제의 역량을 고려한다 한들 ‘최소’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이상이 되어…….
“이대로 제국이 망한다면…….”
“……최악의 경우엔 지난 수백 년 동안 번성해 온 제국민들, 족히 몇억은 될 인구의 절반 이상이 유민 신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정복자들의 착취를 얌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요.”
몇억의 유민.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두의 안색이 핼쑥하게 질렸다. 그것이 수십억 마리 메뚜기 떼보다 더한 피해를 줄 것임을 너무나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서방의 나라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야. 그들과 우리가 제국을 나눠 먹으면 되지 않겠나?”
로건이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데미안은 고개를 저었다.
“서방의 국가들과 저희가 땅따먹기를 하는 사이에 제국의 힘 있는 귀족들이 뭉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반란군에 대한 염려도 있고요. 실로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지금 저희에겐 펜나 이상의 제국 영토를 감당할 여력이 없습니다.”
“……이겼는데도 상황이 안 좋아진 거야?”
데미안의 단언에 루터 카일이 멍청한 한마디를 뱉어 냈다.
“나빠진 건 아닙니다. 그저 쓰러트리려 했던 적이 아예 죽어 버리면 뒤처리가 조금 많이 곤란해진다는 거지요.”
“그게 그 말…… 아, 알았어! 난 이제 말 안 할게!”
데미안은 또다시 눈총을 맞고 침몰하는 루터를 못 본 척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일단 상황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여 서부 전쟁의 결과에 따라 노선을 달리할 것을 제안합니다.”
“어떻게?”
“애초 계획대로 펜나까지는 정복하되, 제국의 피해 정도에 따라 거기서 더 나아갈지 말지를 결정하자는 겁니다.”
“……정비가 끝나는 대로 일단 펜나를 향해 진격해야겠군.”
“예.”
“좋아. 그럼 우리에게 최상의 상황은?”
“당연히 제국과 서방 10국의 공멸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선택의 여지가 많아지겠지만, 아마 어렵겠지?”
“예.”
“흐음,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서방 국가가 제국에 패퇴하고, 제국의 서부 군단 또한 상당한 피해를 보는 겁니다.”
“우리는 그 기세를 타고 더 나아가고?”
“예. 그때는 아세리안까지 점령해 제국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경우에는 약탈만 하고 다시 펜나와 루스펠하임으로 돌아와야겠지요.”
“침략에 이어 점령까지 가능한 경계점이 펜나라는 건가.”
“지금이라면 좀 더 가능하겠지만, 어쨌거나 다음 상황도 대비해야 하니까요.”
“다음 상황?”
“아세리안까지 무너지면, 황실과 황제의 지배력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제국 내부에 퍼져 나갈 겁니다. 설령 수도를 다시 수복하더라도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여론은 수습하기 어려울 테죠. 만약 공작급 귀족들이 뭉치거나 사방왕 중 하나라도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면…….”
“……제국이 멸망하지 않고 쪼개지겠군.”
“그것이 가장 확률 높은 수, 아니 저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상의 수입니다. 아, 물론 전쟁에서 황제를 죽일 수만 있다면 거의 백 퍼센트의 확률로 그렇게 될 겁니다.”
그 말을 하며 로건을 보는 데미안의 시선은 기대에 가득 차 있었고, 로건 역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지.”
그로부터 며칠 후.
진격을 위한 준비로 정신없던 로건의 앞으로 통신구 하나가 전달되었다.
세상에 알려진 기술보다 더욱 작고 정밀해 보이는 구슬.
그것을 가지고 온 사람조차 상당히 의외의 인물이었다.
“로니안? 뭐지?”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그녀에게 딱 한 번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알지만, 부디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물론,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당연히 거절하셔도 됩니다.”
“그녀?”
로건의 반문에도 로니안은 민망한 듯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그 모습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던 로건이 구슬을 받아 들자, 이내 구슬이 익숙한 얼굴을 토해 냈다.
[강녕하셨습니까, 폐하.]검은 머리에 푸른 눈,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피부의 미인.
그 모습을 본 로건의 얼굴은 절로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루이사 공주?”
[염치없지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편법으로나마 인사를 드립니다.]“그랬겠지. 내 눈앞에 나타났다면 그대로 멱을 따 버렸을 테니까.”
[……그에 대해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저희는 탑주의 명을 따랐고, 폐하를 배신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꼭 들으셔야 합니다.]“내가 왜?”
[……탑주가 꾸미는 음모를 아셔야 할 테니까요.]“하?”
배신자의 말을 들어 달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동생을 바라보는데, 이 사단을 벌인 동생은 그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것을 보았는지 루이사가 다시금 간절한 목소리를 뱉어 냈다.
[배신자다운 짓이라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저희는 양쪽 모두에 발을 걸쳐 놓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후에 무시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말만 들어 주십시오.]그 말을 하는 루이사의 표정은 정말 절실해 보였다.
[……믿지 않으실 걸 압니다. 그래서 저희 부녀의 깊은 사정부터 말씀드리려 합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폐하?]이내 그녀의 입에서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본의 아니게 로건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루스펠하임에서 서부 진격을 준비하던 맥라인군에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 * *
“모조리 쓸어 버려!”
쾅!
“쏴라!”
파바바박.
“크아악!”
“끄윽…….”
“죽어라!!”
칼과 창이 부딪치고, 화살이 쏟아지고, 마법에 의한 폭발이 이어지는 전장.
한때는 제국의 이름난 대도시 중 하나였던 켈러하임은 그야말로 곳곳에 시체의 산이 쌓이고, 피의 강이 흐르는 지옥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도시를 점령하고 있던 연합군 쪽에게.
“우, 우리 마법사들은!?”
“젠장! 다 어디 간 거야!?”
서방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캘러하임의 성벽을 지키던 기사들이 연신 뒤를 돌아보며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10국의 수뇌부들이 무리수를 던지면서까지 끌어들였던 그 기괴한 마법사들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대마도사라며!? 그 인간은!?”
토레 왕국의 초인 블레스 그리드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연합군에 남은 초인은 겨우 다섯.
하지만 몰려오는 제국군 병력에는 군단장 다섯에 웬 외눈의 초인 하나로도 모자라 삭풍의 마도사까지 있었다.
대마도사라는 황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초인 전력에서 열세인 상황.
심지어 병력도, 장비의 수준도 하나같이 열세였다.
믿을 것이라고는 그나마 그 원군들뿐이었는데, 그 어디에서도 그들이 찾는 원군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린든 왕국의 초인 파비아 역시 반대쪽에서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연합군의 바람과는 반대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그것도 최악의 방향으로.
“서, 성문이 열렸다!”
“누가!?”
“모, 몰라! 모든 성문이 열렸다!”
“빌어먹을!”
사방에서 쏟아지는 고함.
맥라인과 세상의 예측을 비웃듯, 서부 전장의 판도는 제국의 일방적인 우세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