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5)
45화
“봤지? 이게 훨씬 빠른 방법이야. 자연스럽게 호구조사도 될 테고.”
“……그렇겠군요.”
“왜 그런 눈으로 봐?”
“놀라워서 그렇습니다. 요즘 공자님은 매번 저를 놀라게 만들고 계시니까요. 이제는 좀 덜 놀라도 되는데. 허허.”
“실없는 소리는. 아, 그리고 다치거나 해서 부역을 못 나오는 영지민들도 있을 것 아냐. 그중에서 힘든 사람들에게도 식량은 나눠 줘야 하는 거 알지? 올해부터는 우리 영지에 굶어 죽는 사람이 나와선 안 돼.”
“지금 저 치들만해도 충분……. 예, 알겠습니다. 저는 그냥 영지민들이 게으른 돼지가 될까 봐……. 예, 예. 알겠다니까요.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쯧.”
로건이 눈을 가늘게 뜨며 혀를 찼다.
“아무튼, 조금만 더 기다리면 확실히 공사를 제대로 실행할 수 있겠군. 재무행정관이 이렇게 믿고 따라 주니까.”
“그 공사는 말고요!”
“어, 그래 봤자 할 거야.”
“좀 다시 생각해 주시죠? 예? 산에 구멍 뚫는 데에 한 달에 200만 골드를 왜 씁니까?”
“안 돼. 할 거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끄으응. 공자님…….”
드웨인은 이 말도 안 되는 공사, 돈 낭비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드웨인의 반항을 가볍게 침몰시킨 로건은 다시 서쪽을 바라보았다.
‘스크롤은 아직이어도 클레이튼이 있으니까.’
필립을 시켜 주문한 다른 자재들은 이미 다 도착해 있었다.
슬슬 산을 뚫을 계획을 시작할 때였다.
* * *
“자. 하나, 둘, 셋!”
으라차차!
고함들과 함께 일제히 쑤우욱 올라오는 천막들.
하마르와 로건이 선택한 공사 예정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황무지에 수많은 천막이 우후죽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들이 택한 장소는 테스론 성에서 하루 반, 맥라인 성에서 하루가 걸리는 황무지의 중간지점이었기에 인부들을 위한 임시숙소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법사들의 숙소 또한 마련해야 했다.
“정말 인부들과 동일한 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소, 공자. 어차피 마법사들 사이에서 노가다꾼으로 불리는 게 우리 대지의 마탑이고, 그중에서 우리 학파가 가장 일을 많이 한 곳이오. 탑주가 지랄하는 거 봤잖소.”
“저야 신경 쓸 게 줄어서 좋습니다만, 하하.”
“맡겨 주시오. 최대한 빨리, 완벽하게 끝내 버릴 테니.”
클레이튼의 살벌한 얼굴에서 쏘아지는 눈빛이 더없이 믿음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두 성에서 차출된, 무려 8천에 가까운 사람들의 시선이 야산의 한구석을 향해 모여들었다.
“직선으로 굴을 뚫으려면 여기가 딱이야. 범위를 계산해서 여기를 중심으로 이 정도 범위만 무너트리면…….”
“드워프 양반. 내 마법이면 그 이상의 범위도 가능한데?”
“아니. 그럼 너무 심하게 무너진다니까, 이 마법사 양반아. 굴은 그렇게 크게 뚫을 필요가 없다고! 목표는 직경 30m 정도 반원이고 여기 이 정도면…….”
“아 글쎄. 날 믿고 좀 크게, 시원시원하게 가 보자니까.”
“하, 이거 참.”
공사를 위해 의견을 조율하는 드워프와 마법사.
그런 둘을 한 발짝 뒤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는 로건.
그리고 그 옆에는 멍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덩치 큰 행정관이 있었다.
“정말 강행을 하시는군요. 가주님이 나오셨을 때 어쩌시려고…….”
“괜찮아, 괜찮아. 잘 될 거라니까.”
“……이제 전 모르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쇼.”
드웨인의 넋두리를 뒤로 한 채,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 * *
“저게 뭐 하는 거야?”
“나도 몰러.”
“높으신 양반들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
마법에 대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영지민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이 클레이튼을 향했다.
“마법사 양반! 준비됐으면 바로 시작하시오!”
하마르의 신호와 함께, 클레이튼의 몸에서 샛노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왁! 이게 뭔 일이래?!”
“와, 저게 마법…….”
“뭐 큰일 나는 거 아니지?”
“저기 대공자님도 있잖아. 괜찮을 거야.”
신기함과 불안감이 뒤섞인 인부들의 시선이 클레이튼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때, 로건은 클레이튼의 힘이 만들어 낸 변화를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흐음. 마나의 흐름이…….’
자연기(自然氣), 마나(Mana).
포스와 더불어 대륙을 지배하는 인간이 다루는 2대 이능으로 불리는 권능이었다.
전생에는 어렴풋이만 느껴지던 기세의 흐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클레이튼의 심장에 새겨진 다섯 개의 마나 고리.
그곳에서 비롯된 마나의 힘이 세상에 흩뿌려진 동질의 힘을 자극하는 것이 또렷이 보였다.
마나가 그리는 복잡하지만 일정한 패턴이 짧은 순간에 무수히 반복되며 힘을 끌어모으는 과정. 그 세세한 흐름까지.
포스코어가 가져다준 초감각은 로건의 짐작을 넘어설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묘한 감흥을 느끼는 사이.
클레이튼이 손을 치켜올린 방향으로 황토빛 빛이 암벽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 빛이 암벽에 닿는 순간,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빛은 곧 암벽 전체로 퍼져 나갔다.
꽈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릉.
이내 엄청난 폭음과 함께 세상이 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장내를 강타했다.
“으아아악!”
“어, 엎드려!”
“내가 이럴 줄…….”
날아오르는 흙먼지에 인부들이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질렀고, 그 사이로 하마르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렸다.
“적당히 하라니까! 너무 세잖아! 왜 여기서 힘자랑을 하고 난리냐고!”
하마르가 그렇게 노발대발하는 순간.
로건은 더 강력한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였다.
‘다른 마법?’
솟아오른 흙먼지 속에서 좀 전보다 훨씬 강한 마나의 힘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그그극.
어느새 무너진 암벽의 돌과 흙이 거대한 거인이 되어 일어서고 있었다.
‘허?!’
날리는 흙먼지 사이로 솟구치는, 20m는 될 듯한 거대한 그림자.
쿵. 쿵.
쿵. 쿵. 쿵. 쿵.
땅을 울리던 거대한 거인은 점점 빠르게 암벽으로 향했고, 이내 굉음과 함께 폭음의 진원지 안을 파고들었다.
콰앙!
우르릉.
암벽 내부에서 연달아 들리는 굉음.
“뭐,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인부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퍼지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시야를 가리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트인 시야로 소음의 근원지를 확인한 대부분은 입을 크게 벌릴 수밖에 없었다.
“괴, 괴물!!”
“괴물이다!”
“으아아아!”
“산의 정령님이 노하신 거야!”
“사, 살려 주세요. 정령님!”
어느새 수십 미터 범위의 굴이 파인 암벽의 안쪽.
그곳에 보이는 흙과 돌이 뒤섞여 만들어진 거대한 거인의 모습은 인부로 참여한 영지민들을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르르릉.
그것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암벽의 윗부분을 받치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너희들도 멍청히 서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당장 달려가서 지반을 고정시켜!”
하지만 클레이튼의 호통과 함께 달려나간 제자들의 손에서 샛노란 빛이 뿜어져 나와 동굴의 천장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하자, 이내 인부들도 하나둘 그것이 마법임을 인식하고 주저앉거나 바닥에 엎드렸던 몸을 일으켰다.
“저, 저게 마법이야?”
“흐아아…….”
“무, 무섭다…….”
“마법사가 저렇게 대단한 거였어?”
그들의 공포 섞인 감탄 속에서.
“지, 진짜 저질러 버렸어. 아이고 가주님. 으허허허…….”
유일하게 독특한 반응, 실성한 듯 웃음 짓는 행정관의 목소리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로건을 일깨웠다.
“허……?”
머릿속에 새겨진 마나의 패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붕괴 마법도, 저 거인을 만들어 낸 마법도 자신이 가진 힘, 포스코어가 더 성장한다면 비슷하게나마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망상이 들었다.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은 마나 적성자들이 십수 년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마법을?’
냉철한 이성은 그 착각을 바로 지워 버렸다.
‘신검의 비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건 무리야.’
그 망상을 떨쳐 내자 클레이튼이 만들어 낸 마법의 결과가 다시금 눈에 확 들어왔다.
“저런 골렘이라니…….”
저 거대한 골렘은 로건이 보기에도 확실히 대단했다.
영지민들과는 달리 전생에 수많은 마법을 보았던 로건이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5서클 마법사가 저런 게 가능하다고?’
그의 상식에서 골렘이라고 함은 아티팩트의 한 종류로, 마정석을 비롯한 각종 마법 물품을 중심으로 돌이나 흙을 모아 만든 마법 인형에 가까웠다.
그런데 클레이튼이 마법으로 만들어 낸 저 거인은 그런 골렘과는 비교를 불허했다.
전생에 전장에서 보았던 수많은 마법, 심지어 초인이라 불리는 6서클 마법사가 화염의 폭풍을 불러일으켜 전장을 초토화하는 것도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놀랍지는 않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산을 떠받치고 있는 거인.
저 거인이 전쟁에 참여했을 때 보일 위력은 고작 화염 폭풍 정도가 아닐 것 같았으니까.
‘단발성도 아닐 것 같은데…….’
포스코어의 영향으로 마나를 볼 수 있게 된 덕분에 로건은 클레이튼의 마법이 발현되는 과정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심장 어림의 서클에서 시작된 복잡한 마나의 변환 과정을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거대한 골렘의 중심부에서 느껴지는 핵이 클레이튼의 서클과 끊임없이 공명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짐작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는 듯, 골렘은 머리 위의 지반이 굳어지자마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또 움직인다!”
“우와악!”
골렘은 이번엔 붕괴의 여파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바위와 흙더미들을 한 방향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대략 20m에 이르는 신장이지만 어깨너비가 그 반이나 되기에 다소 땅딸해 보이는 흙의 거인은 그 거대한 덩치에서 비롯된 힘으로 순식간에 암벽의 잔해를 밀어냈다.
‘저런 마법이, 저런 마법사가 전생엔 왜 알려지지 않았지?’
로건은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6서클 마법보다 훨씬 범용적이고 위력도 모자랄 것이 없는 5서클 마법이라니.
‘도대체 왜……?’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야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탐난다. 탐나는 인재야.’
저런 마법이라면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런 최고급 노동자를 지금은 무보수로 부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로건은 클레이튼을 보며 진심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장로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세상에 이런 마법을 보게 될 줄이야. 덕분에 제가 개안을 하는군요.”
“크흠. 뭐, 이 정도야 우리 골렘 학파의 장으로서는 기본이외다, 공자. 내가 장담하지 않았소.”
“하하. 그렇지요.”
“탑주 같은 편협한 이들이 단점만 봐서 그렇지, 우리 학파가 이루어 온 역사는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부끄럽지 않소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당당히 치켜든 턱.
이마의 흉터에서부터 줄줄 흘러내리는 땀만 아니었다면 고고한 마법사로 확실히 어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쓰러운 표정을 감춘 채, 로건은 양손에 엄지를 들어 보였다.
“하하하. 장로님의 말을 의심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생각보다 더 뛰어나서 놀란 것이죠.”
그 말에 클레이튼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잘 티도 나지 않을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
하지만 로건은 지난 몇 주간의 경험과 제자들의 설명을 통해, 저 표정이 클레이튼이 진심으로 만족할 때나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든든합니다. 혹시 제자분들도 같은 마법을 쓸 수 있습니까?”
그러니 그때를 틈타 어쩌면 실례, 혹은 비밀일지도 모를 질문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무너지는 지반을 고정하는 마법만을 사용하는 클레이튼의 제자들.
그 제자들이 약하게나마 이 골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가 계획했던 공사는 생각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만, 크흠.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예?”
“골렘의 코어를 마나로 만드는 술식이 5서클에나 가능해서 제자들은 마정석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훨씬 작고 약할 것이구요.”
클레이튼의 대답은 로건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마정석이라니…….’
마정석(魔精石, Mana Crystal).
신의 금속이라는 오리할콘(Orichalcum)이나 미스릴(Mithril)만큼 희귀한 광물로, 자연의 에너지인 마나가 광물에 깃들어 있는 희귀한 광석이었다.
인공적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데다가, 마법사들이 마법을 보조하는 용도나 아티팩트를 제조하는 용도로 끝없이 소모되는 광석이기에 그 희귀도에 비해서도 가격이 비쌌다.
깃든 마나의 농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기는 했지만, 그중 최하 등급의 마정석도 같은 부피의 금보다 훨씬 비쌀 정도였다.
‘쓰읍. 가성비가 안 좋아…….’
하지만 전쟁을 어디 가성비로 하던가.
‘효과만 좋으면 끝이지. 돈을 투자해서 위력을 높일 수 있다면…….’
로건은 순간 클레이튼과 제자들이 그저 고용인이라는 사실도 잠깐 잊었다.
“혹시 장로님의 마법도?”
“물론입니다. 저 같은 경지에 이르렀더라도 걸맞은 마정석을 사용한다면 골렘의 위력을 몇 배나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힘과 속도, 그리고 지속력도요.”
“우와아아. 정말 대단하시군요.”
로건은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한편으로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골렘이 지금보다 몇 배의 속도만 낼 수 있어도…….
‘웬만한 기사는 찜 쪄 먹을 수 있어. 대단해!’
그 정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돈이 좀 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
“다만 말씀드렸다시피 그에 걸맞은 마정석이 필요합니다.”
“걸맞은 마정석이라 하시면?”
“크흐흠. 5서클인 만큼 최상급이 필요합니다.”
……조금은 문제가 될 것 같다.
주먹만 한 크기의 최상급 마정석은 추정되는 가격만 50만에서 100만 골드 사이였다.
골렘 학파가 왜 항상 쪼들리는지 확실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로건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혹시 제자분들도 그런……?”
“설마요! 2서클 골렘 마법은 하급 마정석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루 정도 유지 가능할 테고, 성인 남자 평균의 몇 배에 달하는 힘을 낼 수 있지요.”
하급 마정석이라면 주먹만 한 크기를 가정했을 때, 황금 한 덩이 정도였다.
골드로 따지자면 거의 천 골드에 이르는 가격.
그 돈을 써서 고작 성인 남자의 몇 배?
그것도 하루의 시간제한이 있는?
역시나 가성비가 떨어졌다.
‘그래도…… 단기간의 전장이라면 충분히 그 이상의 전과를 올릴 수 있어.’
그 모든 단점을 고려한다 해도, 골렘 마법이 전장에 사용되는 장면을 떠올리는 순간.
‘그게 아군이라면?’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 마탑 소속이었지. 씁.’
이내 현실을 깨달은 로건은 입맛만 다시며 뒤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