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50)
450화- 서부 연합군이 대패했다.
그 소식은 이내 루스펠하임에 있던 맥라인군에도 전해졌다.
하지만 누구 하나 크게 동요하는 이가 없었다.
“제국이 이겼다는데?”
“누가 쉽게 안 끝날 거라고 하지 않았어?”
“에이, 그래 봤자 제국이지.”
“그럼. 우리가 몇 번이나 이겼는데, 뭐.”
그래 봤자 제국.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을 정도로, 맥라인군의 사기는 하늘 끝까지 솟아올라 있었다.
물론 지휘부는 그 소식이 전해진 즉시 회의를 소집했다.
“카셀 마탑이 연합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대로 빠져나갔습니다. 무언가 야합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데미안이 굳은 얼굴로 그리 보고하자 로건 역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굳은 표정에는 무언가 상기된 느낌이 섞여 있었다.
“결국 그 말이 진실이었군.”
“예.”
두 사람과 에일렌, 로니안만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회의를 위해 모인 다른 초인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대변하여 검공이 나섰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 저는 펜나로 진군 속도를 높이자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만…….”
빠르게 펜나를 점령하고, 계획대로 아세리안까지 치고 들어가자는 말.
서부 전선의 붕괴 소식이 들려온 지금 시점에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로건의 시선이 검공을 떠나 그 옆의 데미안에게로 향했다.
“제국군이 전장을 정리하고 다시 동부로 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적어도 두 달은 걸릴 것입니다.”
“우리가 이대로 펜나를 점령하고 아세리안으로 향한다면?”
“아세리안에 도착하기도 전에 펜나나 그 근방에서 제국의 군단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으음.”
로건이 탄식하는 것과 달리 주변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다면 더욱 속도를 올려 펜나를 빠르게 점령하고 제국군을 기다리시지요, 폐하.”
“맞습니다.”
“애초에 목표가 펜나 아니었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곳은 이제 기본 병력 외에는 저항할 병력도 없습니다.”
사기충천한 맥라인군의 모습은 초인들에게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의 군주는 생각이 좀 다른 듯했다.
“이곳, 루스펠하임에서 제국과 카셀 마탑의 공격을 방어한다.”
“예?”
“전선에서 피가 많이 흐를수록 이득을 보는 자가 있다.”
“그게 무슨?”
“카셀 마탑. 그들이 제국군과 함께 우리를 공격해 올 것이다. 펜나를 점령하고 바로 놈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방비를 굳히는 것이 옳다.”
“예!?”
그 뜻밖의 말에 초인들 대다수가 황당한 목소리를 토해 냈다.
“제국의 공적이 제국과 함께할 거란 말씀이십니까?”
다른 이들을 대표한 검공의 질문에 로건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무시할 수 없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공표하지 않았지만, 일단 서부 전선의 붕괴까진 그 말이 들어맞았습니다. 카셀 마탑은 이미 연합국에서 빠져나가 제국에 합류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 말에 검공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 허허. 정말 신용 따위는 조금도 없는 자들이군요.”
로건과 검공의 대화에 이번에는 얌전히 듣기만 하겠다 결심했던 루터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황제는 또 그런 자들을 믿고 함께한다는 겁니까?”
어이없다는 느낌이 여실히 전해지는데, 모처럼 위켄이 라이벌의 말에 딴지를 걸지 않고 대꾸해 주었다.
“황제로선 어떤 줄이라도 잡고 싶었겠지. 우리에게 그토록 일방적으로 깨졌으니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자들이군요.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대체 목적인 뭔지…….”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그게…….”
루터의 한탄을 시작으로 일순간에 대전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빅토르나 부르델처럼 회의 시에는 보통 침묵을 지키던 이들까지 한마디씩 보태며 의견을 교환했다.
그 모습을 보며, 로건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 마탑주가 노리는 것은 로건 폐하, 당신입니다.
– 왜?
– 당신이 운명을 바꾸는 자이기 때문이죠.
루이사가 했던 그 말까지 좌중에 알릴 필요는 없을 듯했다.
다만.
‘운명을 바꾸는 자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루이사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마탑주 역시 이전에 만났을 때의 태도를 생각하면 마찬가지인 듯했다. 자신이 회귀자라 생각한다면 결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 루스펠하임에서 황제가 썼던 스크롤을 보셨겠지요. 그보다 하위 버전이긴 하지만 같은 효과를 가진 스크롤이 전장이 될 만한 곳에 뿌려져 있었습니다.
– 전장에 흐른 피와 살은 이미 영혼의 힘이 되어 탑주만이 아는 모처에 집중되고 있죠. 카셀 마탑의 시조, 마도성자의 부활을 위해.
– 그리고 그 의식의 정점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운명을 바꾸는 자의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부터 로건은 루이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자신과 지브릭 카셀의 관계에 대해 아는 게 아닌 이상 그렇게 소름 끼치도록 맞아떨어지는 말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랬기에 진군을 미룬 것이기도 했다.
결국 서부 전선의 소식은 다른 이들에게 바뀐 계획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었을 뿐이었다.
나아가, 이미 루스펠하임에서는 빅토리아를 중심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한 대마법진이 건설되고 있었다.
로건은 회의가 소집된 뒤에도 대전 한구석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빅토리아를 일견하고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대마법진에 대한 기본 구성은 끝냈다고 들었으니, 아마도 저번에 자신이 낸 숙제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차피 전장의 중심은 이곳이 될 것이다.’
정확히는 자신이 있는 곳이.
확신할 수 있었다.
황제와 마탑주의 계약이 정확히 무엇인지까지는 루이사도 몰랐지만, 유추는 가능했다.
‘날 공격하겠지.’
그리고 마탑주건, 황제건 단신으로 자신을 상대할 수는 없다.
그러니 마탑주의 목적이 자신이라면, 그들은 반드시 함께 올 것이다. 황제 역시 자신에 대한 원한은 이미 차고도 넘칠 터이니 협공을 거부할 리 없다.
카셀 마탑주야 상성상 염려될 것이 없지만, 만약 그 황제와 협력한다면…….
‘곤란한데.’
얼핏 상상이 간다. 카셀 마탑주가 황제를 보조하며 자신에게 덤벼드는 광경이.
특성을 써서 한순간에 압살하지 못한다면 분명 위태로워질 것이다.
심지어 황제는 그 비장의 한 수를 이미 본 뒤였다.
‘스승님이라면…… 아니, 스승님도 위험해. 그들은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
카셀 마탑주가 자신한테나 약하지, 다른 이들에게는 황제보다 더 위험했다.
루이사 공주가 말하길, 카셀 마탑의 주력은 영혼과 차원 속성의 힘이라 했다.
영혼은 그렇다 치고, 차원이라는 속성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다만,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직접 맞붙어 본 카셀 마탑주는 영혼의 힘을 황제보다 훨씬 능숙하게 다루고, 공간 이동까지 손쉽게 사용했다.
그날 보여 주지 않은 다른 마법까지 고려한다면, 다른 사람과 협공하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이는 행위밖에 되지 않을 터였다.
오러마스터나 대마도사.
그 초인 중의 초인을 다른 이들이 해할 방법은 그저 무수한 희생을 바탕으로 한 소모전뿐일 테니까.
“으음…….”
톡. 톡.
로건이 팔걸이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 사이, 주변은 점차 조용해졌다. 그의 굳은 표정이 만들어 낸 일시적인 침묵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을 때, 로건이 입을 열었다.
“리아.”
“예, 옛! 폐하!”
여전히 홀로 딴 세상에 있던 빅토리아가 갑작스러운 부름에 화들짝 놀랐다.
“‘그것들’에 대한 연구는 끝났느냐?”
“아, 아직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달 이내에 성과를 보여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 대답하는 빅토리아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그 표정에서도 상당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지.’
루스펠하임 전쟁에서 얻은 특수한 전리품들을 떠올린 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와 카셀 마탑주.
몰랐다면 모를까, 그들의 향후 행보를 알고 있는 지금으로선 그들을 상대할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다.
“이곳 루스펠하임에서 제국과 카셀 마탑을 막아 낸다.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펜나, 그리고 아세리안을 치자는 계획은 이곳에서 놈들을 박살 낸 후에 시행하겠다.”
계획이 비틀어진 것이 아니다.
그저 잠시 미뤄진 것뿐.
로건의 단호한 목소리에선 반드시 제국의 동부를 점령하고 그 너머까지 손을 뻗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에 다시금 안색이 조금 상기된 지휘관들이 일제히 그들의 군주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폐하의 뜻대로.”
“명을 따르겠습니다.”
“맥라인에 영광을!”
“꺼지지 않는 불꽃에 경의를!”
검공의 복명을 시작으로 이어진 복창이 집무실을 넘어 내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 * *
“비켜, 비켜! 성벽 보수 마감재야!”
“길을 터라! 왕국 본토에서 온 전쟁 물자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루스펠하임은 오히려 날이 지날수록 더욱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점령 후 더욱 바빠진 군대의 움직임.
그것은 전후의 긴장감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더욱더 끌어올리고 있었다.
또한, 뜻밖의 상황 하나가 루스펠하임의 소란스러움에 일조했다.
“……배급도 해 준다고?”
“저, 정말로?”
“그런데 제국민이 아니라 맥라인 왕국민으로 등록해야 줄 거래.”
“……당장 먹고 죽을 것도 없는데 뭘 따져.”
“그래도 나중에 황제 폐하께서 수복하시면…….”
“그 폐하가 도망쳐 버렸잖아.”
“그리고, 설령 그런다 한들 우리 같은 시민을 탓하겠어? 일단 살고 보자고.”
약탈 대신 오히려 배급을 선포한 점령군.
본의 아니게 오랜 기간 생업을 놓았던, 전쟁의 공포에 벌벌 떨고만 있던 루스펠하임의 시민들은 그 놀라운 소식에 하나둘 집 밖으로 고개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도시는 다시금 긴장감 어린 활기 속에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사건 사고는 적었다.
“시민들은 통제 구역을 벗어나지 마라!”
“구역 밖의 시민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다!”
“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제국군의 잔당으로 즉결 처형하겠다!”
서슬 퍼런 점령군의 군율은 작은 소란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맥라인군은 군대, 특히나 점령군이 행할 법한 악습을 전혀 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 국왕 폐하께서 우리를 지켜보신다.
전장에서 병력의 영혼을 이끌며 인도했던 군주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믿음 때문이었다.
“엊그제, 밤에 몰래 민가를 약탈하려던 조 일당이 폐하의 목소리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빌었다잖아. 뭘 시도하기도 전에.”
“폐하께서 전부 내려다보신다는 소문이 사실인 거 같아.”
“소문은 무슨 소문. 이미 겪어 봤잖아. 그분이 직접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신 거.”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러마스터의 전장 지배 효과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점점 더 커지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의 장본인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우우웅.
“……전장의 신. 왜 그런 전설이 나왔는지 이렇게 체감하게 되는군.”
충분히 확신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로건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성 구석구석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믿음’의 힘을 느꼈다.
‘힘을 행사하여 믿음을 심어 주고, 그 믿음이 다시 내게 힘으로 돌아온다.’
심지어 병사 하나하나의 마음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가당치 않은 소문이 그 흐름을 가속화했다.
‘언약의 무게. 믿음의 무게. 심지어 헛소문이 만들어 낸 거짓된 믿음마저도 염원의 힘에 반응한다.’
하루가 다르게 고양되는 영혼.
9대신들이 어떻게 신위를 손에 넣었는지 막연하게나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그 시기.
신전에서 이상한 요청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