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53)
453화
“비켜라! 나는 가야 한다!”
연신 소리를 질러 대는 하먼.
그를 막는 이들은 어찌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로건의 눈에는 그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황에서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쓰는 것이 보였다.
‘저 상황에서도…….’
새삼 그의 인품에 감탄이 나왔다.
물론, 그렇게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성물을!] [부숴라!] [로건 왕!]신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와는 다른 내용을 담은 영파. 사방에 뿌려지는 그 영혼의 외침이 로건의 뇌리에 절절하게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눈에는 격을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영혼들이 하먼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는 광경 또한 생생하게 보였다.
목에 걸린 리첸티아에서 하나, 그리고 왼손에 들려 방패처럼 쓰이고 있는 주먹만 한 금화에서 하나.
‘9대신.’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하먼에게 처음 영혼 잠식에 대해 들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하먼이 처한 상황이 고스란히 파악되며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사람의 영혼을 탐식하는 괴물들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역겨웠다.
그러다 하먼이 저항하지 못하고 먹히는 순간…….
– 당신을 죽이라고 신이 명했소이다. 지브릭 카셀의 화신이 될 것이라고.
그가 말했던 것처럼 다시 사도가 강림할 것이다. 무려 오러마스터의 벽을 눈앞에 두었던 최강의 성기사의 몸으로.
‘일리아의 몸을 강탈한 신이 대마도사에 준하는 힘을 뿌렸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하먼의 몸을 잠식한 사도는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 것인가.
굳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행히 거기까지 생각이 뻗치는 순간, 성기사들이 물러서기 시작했다.
“길을 열어라!”
“추격조……”
그간 하먼이 어떻게 쫓기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광경.
이성을 거의 잃은 채로 일직선으로 도주하는 적에게 추격조를, 그것도 최상급기사 수준으로 보이는 이들을 붙인다.
그만큼 신전에서 이 일을 중요시한다는 것이겠지만…….
‘여기서 끊어 주지.’
콰아아아앙!
두두두두.
전면을 가로막는 나무를 모조리 박살 내면서 숲속으로 전진하는 하먼.
“쫓아!”
그 뒤를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쫓는 기사들의 머리 위로 사신이 떨어져 내렸다.
스각.
붉은빛이 번뜩이는 순간, 하먼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던 두 사람의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우당탕탕.
달리던 속도 그대로 나뒹구는 성기사의 시신들.
“아아악!”
비명은 그 바로 뒤, 재빨리 몸을 틀어 즉사를 면한 이에게서 터져 나왔다. 간신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오른쪽 어깻죽지에서 명치까지가 깊게 갈라진 것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치명상이었지만, 습격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찼다.
‘역시 억지로 격을 낮추니.’
실수를 했다.
“습격자!”
“오, 오러!”
한 사람이 비명을 시작으로 연이어 소리를 지르는 기사들을 보며 로건의 몸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초인……!”
쩌어억.
앞을 가로막는 기사는 방패와 갑옷째로 갈라 버리고.
“초인이다!”
스각.
뒤로 물러나는 기사는 압도적인 속도로 따라붙어 그대로 목을 날려 버렸다.
추격조라 불리던 성기사들 다섯이 그렇게 순식간에 죽어 넘어지자, 그 즉시 스테판 로이어가 로건에게로 돌진해 왔다.
3명의 부단장 중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자.
“신전의 행사다! 이것을 방해하는 자, 대륙의 공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무기를 잘 아는 자.
하지만.
“정체를 밝히고……!”
꽈아아아앙!
“컥!”
로건의 검에서 벼락처럼 튀어나온 붉은 오러엔 자비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숨통을 끊어 놓고 싶지만.’
성전기사단의 부단장, 그것도 명망 높은 성령의 기사를 죽였다가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의 신전 병력이 따라붙을 위험이 있다.
그랬기에 로건은 그를 숲 밖으로 튕겨 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뒤늦게 그 뒤로 따라붙은 성기사들을 보며, 특색 없는 철검을 들어 재앙 같은 붉은 광휘를 뿌렸다.
꽈아아아아아앙!
“우와아악!”
“피, 피해!”
성기사들이 돌진해 오는 경로를 통째로 갈아엎어 버리는 붉은 오러의 파도.
우르르르르.
자욱하게 솟아오른 흙먼지가 성기사들의 시야를 가렸다.
온통 부옇던 세상이 다시 선명해졌을 때쯤, 그들의 앞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뿌드득.
“정비하고 쫓아가! 어차피 목표는 일직선으로 움직인다!”
피를 한 움큼 토해 낸 스테판이 털썩 주저앉으면서도 소리를 지르자, 성기사들은 다시금 빠르게 진영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놈이?’
일그러진 스테판의 얼굴.
그는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으며 기억 속에서 습격자와 비슷한 이의 정체를 찾기 시작했다. 붉은색 포스는 그야말로 평범한 것이었지만, 세상에 알려진 오러유저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물론, 붉은 오러를 기준으로 한 추론이 정답을 찾아낼 확률은 0에 수렴한다는 것을 그가 알 리는 없었다.
* * *
“나는…….”
“……가야 한다.”
쿠르르르릉.
전투 때보다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힘차게 뿌려지는 신성 오러.
그 오러가 질주하는 하먼의 앞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로, 로건이 조용히 따라붙었다.
하먼의 감각에 걸리지 않을 거리에서 그를 쫓아가기를 수 시간.
그 시간 동안 로건은 내내 하먼을, 정확히는 그의 영혼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면서 보았던 이정표, 아니 다른 성기사단의 주둔지까지는 자신의 최대 속도로도 족히 반나절은 걸린다.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질주하고 있는 하먼이라면 적어도 하루는 더 걸릴 터.
섣불리 건드렸다간 성기사단 주변에서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니, 하먼의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한 후에 행동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로건의 얼굴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성물을!] [부숴라!] [로건 왕!]오직 자신의 영혼에만 전달되고 있는 그 외침은 여전히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당장이라도 두 신의 영혼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던 하먼의 영혼이 미미하게나마 반동하는 것이 보였다.
즉, 저 외침은 자신을 찾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그 스스로의 영혼을 지키는 방편인 듯했다.
‘한 가지 목적에 의식을 집중함으로써 자신을 지킨다. 그래 충분히 가능하긴 해. 하지만…….’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질 않았다.
왜 신들은 고작 인간에 불과한 하먼의 영혼을 장악하지 못하는가?
언뜻 느껴지는 격만 해도 지금의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괴물들인데.
‘그러고 보면, 하먼 경이 최초로 영혼 잠식을 느꼈을 때도 그것을 뿌리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어. 만약 자신이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애초에 잠식되지 않았을 거라고도 했지.’
지금의 자신조차 소울블레이드의 힘으로 사람의 영혼을 베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먼의 영혼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일까?
‘아니, 그럴 리가.’
영혼을 본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 격을 본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먼의 영혼은 충분히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할 만한 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들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막대한 차이가 있었다.
눈으로 보며 확인을 거듭할수록 막막하게까지 느껴지는 차이가.
그런데 왜?
영혼의 힘을 다루는 것과 영혼이 잠식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라서?
그에 대한 의문은 결국 지금의 하먼과 과거 일리아의 상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졌다.
‘신들이 굳이 타인의 영혼을 잠식할 필요가 있나?’
그냥 영혼을 죽여 버리고 육체를 강탈하면 되지 않을까?
다소 과격한 방법이지만, 신들로선 그게 훨씬 효율적일 텐데?
대체 왜?
당초 의도와는 달리 로건이 하먼을 주시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져만 갔다.
신들의 영혼과 하먼의 영혼.
잠식하고자 하는 영혼과 잠식당하는 영혼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근간에 하먼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나는, 가야, 한다.”
쿠우우웅.
멍한 눈빛으로, 마치 귀신처럼 하먼의 뒤를 따르던 로건의 붉은 눈이 한순간 번뜩였다.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허?!’
신들의 영혼이, 정확히는 그 영혼이 가진 힘의 아주 미약한 일부가 하먼의 포스를 사용해 그 몸에 힘을 더하고 있었다.
몇 시간째 관측하고 있지 않았다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을 만큼 미미한 에너지 전환.
하지만 그것은 실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단순히 포스로 신체에 힘을 보태 주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대체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이었으니까.
‘저게 가능하다고?’
포스는커녕 오러마스터가 되며 온전히 손에 넣은 영혼의 힘일지라도, 그것만으로 육체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포스건 영혼의 힘이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가진 가능성의 증폭이지, 생명이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 효율을 극도로 높이는 것은 당연히 가능했다.
지금 로건의 수준이라면, 신체의 영양분을 소모하는 대신 포스만으로 근육과 신경, 피의 흐름을 통제하여 움직이는 게 가능하긴 했다.
만약 작정하고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한다면 족히 한 달은 그렇게 움직일 수 있을 터였다. 전투나 수련 등 극심한 포스 소모가 일어날 만한 상황이 없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물론 그 역시 대체해서 소모되는 것뿐이지, 근본적인 에너지를 생성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포스는 생명의 힘에 근거한 2차 에너지. 근본적인 생명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상식이, 지금 눈앞에서 깨어져 나가고 있었다.
‘하긴, 하먼 경이 저 상태로 음식이나 물을 챙겨 먹었을 것 같진 않아. 그리고 적어도 한 달은 계속 쫓기고 있었을 거야.’
그것도 앞서 본 것처럼 수없이 전투를 지속하며, 또 지금처럼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 가면서 말이다.
‘무려 한 달을 격렬하게 쫓기고 있는데 먹지도, 쉬지도 않은 채 계속 상태를 유지한다?’
실제로 하먼의 힘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지만, 그가 해 온 일을 생각하면 그조차 기적적인 일이었다.
로건은 영혼의 힘을 더욱 끌어 올려 그 놀라운 변환의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애썼다.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인간의, 생물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었으니까.
‘포스로 섭식을 대신할 수 있다……?’
생명의 힘에서 비롯된 포스가, 그 생명의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주객전도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모순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그 증거가 보이고 있었다.
‘가능하다는 거야.’
로건의 눈빛이 점차 강렬해졌다. 그 과정을 파악하는 게 신인이나 신의 경지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그 비밀의 일부를 ‘이해’하는 순간.
“……말도 안 돼!”
로건의 입 밖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타오르는 불꽃 같은 황금빛 포스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신들의 영혼이 보여 준 에너지의 모순이 벽을 넘을 단서를,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한 단서를 준 것이다.
하지만.
그 무심결에 터져 나온 목소리가 하먼의 질주를 멈춰 세웠다.
“나는, 가야, 아……?”
멍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는 하먼.
그 푸른 눈동자가 로건의 붉은 눈을 똑바로 직시하는 순간.
하먼의 검이 갑자기 그를 가리켰다.
[로건 왕!] [지브릭의 화신?] [우리의 눈앞에……!]그와 동시에 세 가지 영파가 어지럽게 얽히기 시작하며 끝없이 고양되려던 로건의 영혼을 제자리로 끌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