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56)
456화- 이 전쟁으로 진짜 세상의 패자(?者)가 가려질 것이다.
세상이 주목하고 있는 전쟁.
맥라인 대 제국의 전쟁은 이미 루스펠하임이라는 전장으로 좁혀지고 있는 듯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전쟁은 결국 어느 쪽의 초인이 먼저 전멸하느냐가 가장 큰 분수령이었다.
그중에서도 전쟁을 통해 세상에 경지가 밝혀진 자신과 황제.
초인 중의 초인인 두 사람 중 누군가가 살아남는다면, 설령 패전국의 주인일지라도 승리한 국가의 심복지환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만큼, 사실 이 시기에 잠행을 결정한 건 참 무모한 짓이었다.
– 그걸 알면서도 왜! 왜 나가신다는 겁니까!?
데미안의 고함이 여전히 귓가에 선했지만, 차마 이유를 밝힐 수는 없었다. 신이 내린 영웅이라고 추앙받고 있지만, 사실은 신들이 자신을 적대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 상황을 해결할 단서가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결국 그 이유조차 말해 주지 않는 고집에 데미안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다만, 만일의 경우를 위한 대책은 확실히 일러 두었다.
– 폐하께서 지금 얼마나 중요한 시기에 잠행을 나서겠다고 하신 건지 확실히 알아 두시고, 최대한 빨리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최소한 이건 확실히 외우고 가셔야 합니다. 지금 적들의 위치는…….
왕을 겁박하다시피 하며 억지로 주입한 정보.
그 정보에 따르면, 지금쯤 북각왕부와 남조왕부의 전력이 루스펠하임 근방에 와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내가 엉뚱한 곳에 나타난다면 두 왕부만으로 전쟁을 시작할지도 모르니.’
즉, 맥라인의 영토인 카일 성 내부에도 몰래 잠입해야 할 판이다.
물론 지금 루스펠하임에 모여 있는 맥라인의 병력은 두 왕부만으로 이겨 낼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카일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두 왕부의 전력이 루스펠하임을 우회해서 이쪽으로 올 가능성이 컸다.
바로 그 상황이 문제였다.
‘괜히 전장을 몇 군데로 분산시키면, 총 병력 규모가 작은 우리만 곤란해진다.’
피할 수도 없다.
사실 냉정히 생각하면, 설령 그런 상황이 되더라도 카일을 버리고 루스펠하임으로 향하면 그만이다. 군대가 자신보다 빠를 수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왕부의 병력이 카일로 향하는 만큼, 적의 주력은 상대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터였다. 아마 카일이나 본토가 불타는 것 이상으로 제국에 피해를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간 왕국 내에서 쌓아 올린 내 신망이 박살 난다.’
단순히 여론을 의식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완전하게 감이 잡힌 신인의 경지, 혹은 그 이상의 힘.
그것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데 어찌 저버릴 수가 있을까. 도의적 책임감은 둘째 치더라도.
그러니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현명한 군주라면 말이다.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다고.’
단순히 쓰러진 하먼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감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혹시나.
만약 하먼이 쓰러진 성녀를 만나 무슨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기대하는 형태라면.
다시 한번 전황을 뒤엎을 만한 변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
그 기대가 지금 그를 카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해 본다.’
일이 벌어진 숲에서 사흘에 걸쳐 남쪽으로 빙 돌아 우회한 로건은 야심한 밤을 틈타 다시 동북쪽으로 내달렸다.
멀리서 보는 사람이 있다면, 마치 황금빛 유성이 들판을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착각할 만한 속도였다. 심지어 갑옷을 입은 한 사람을 업고 있었음에도 그 움직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웬만한 기마보다 몇 배는 빠른 그 속도도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등에 업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포스까지 주입하고 있으면서도.
파아아아앙.
콰콰콰콰콰.
– 컹!?
외진 들판에 갑자기 일어난 돌풍에 짐승들이 놀라 달아나는 것이 보였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다행히 인적 없는 길이라 오늘따라 유난히 요란한 듯한 이 황금빛이 누군가의 눈에 띌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끄응.
‘그럼 좀 더 빠르게.’
이를 악문 로건의 몸이 한층 속도를 높였다.
이 돌아가는 길에서만 삼 일을 낭비했다.
만약 카일 성 깊숙한 곳에 모셔 둔 성녀에게 하먼을 데려갔는데 아무 일도 없다면, 아니 아무 일이 있어도 곧장 루스펠하임으로 되돌아가야 할 판이다. 도중에 그 누구에게도 정체를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덤이다.
그리고 하먼은, 그 마지막 말을 끝으로 어떤 메시지에도 응답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감이 줄어들고, 불안감이 커졌다.
‘삽질일 확률이 높아.’
지금도 이 무지막지한 돌진이 점점 힘에 부치고, 시간도 촉박하게만 느껴졌다.
혹시나 아무런 소득도 없이 정체가 발각된다면 전황만 더욱 꼬일 뿐이다.
‘그런데 난 왜!’
뿌드득.
사실 그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로건은 오히려 땅을 박차는 발에 더욱 힘을 가하기만 했다.
하먼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전황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이유도 사실 두 번째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그것 하나였다.
하먼이 작은 변화만 보여 준다 해도, 스승님을 살렸던 것처럼 그들을 깨울 가능성을 찾을지도 몰랐다.
스승님 때의 그 무모했던 시도가 아닌, 명확한 확신을 가지고 영혼을 치료할 가능성을.
물론 누군가는 이 선택을 두고 어리석다고 말할 것이다. 그 희박한 가능성을 위해, 어쩌면 모든 것을 말아먹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 거냐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건으로선 이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러기 위해 돌아온 거니까.”
다짐하듯 내뱉는 말.
처음에는 가족뿐이었던 그 울타리의 범위가 이제는 많이 넓어졌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수백, 수천만의 사람을 품을 왕의 그릇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그는 결국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카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실, 남은 몰라도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이유는 충분했다.
‘내 행적을 들키지 않고 두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게 최상이니까.’
다행히 변장과 자신의 실력, 그리고 카일의 경계 병력 수준을 생각하면 들킬 확률은 낮다. 물론 두 사람을 살릴 확률은 그보다 더 낮을 테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그 무엇보다 큰 이득이다.
데미안이 알았다면, 그래도 무모한 짓 하지 말라며 뜯어말렸겠지만.
‘확률이 낮아도, 성공만 하면 대박인데 안 할 이유가 없잖아?’
더 낮은 확률로 일이 꼬일 경우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무모했고, 또 언제나 성과를 거둬 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아, 그러니까!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고요!! 그것도 군주라면 더더욱! 아으으으! 환장하겠네.
순간 데미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모자란 점은 너희들이 보태 주면 되지.’
언뜻 떠오르는 얼굴들.
데미안, 드웨인, 릭, 하마르.
전장에 없는 가신들까지 하나하나 떠올린 로건은 다시금 결심을 확고히 했다. 그들이 일리아나 클레이튼과 같은 처지였더라도 자신은 지금처럼 움직였을 테니까.
‘가자!’
마음속 미약한 갈등마저 털어 낸 로건.
그의 의지가 뚜렷해짐에 따라, 황금빛 유성이 점차 속도를 올리며 더욱 빠르게 동북쪽으로 향했다.
* * *
“으~함.”
깊은 밤중, 카일 성의 성벽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병사, 아론은 자신도 모르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자신도 모르게 깜빡 졸아 버린 모양이었다.
스스로 뺨을 찰싹 때리며 두 눈을 부릅뜨는데, 갑자기 그 시야에 사신의 모습이 보였다.
“……졸았어?”
“헙!”
빙글빙글 웃는 동그란 얼굴.
선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그 본질은 악마보다 더한 새끼. 소대장, 판이었다.
“허업?”
“아, 아닙니다!”
“뭐가? 뭐가 아닌데?”
능글맞게 웃는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보기 싫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조, 졸지 않았습니다!”
“아, 그래?”
“예! 그렇습니다!”
아론은 고요한 한밤중에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다시피 대답하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판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한층 살벌해질 뿐이었다.
“아……. 그럼 내 눈이 삐었다는 거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 그것도 아닙니다!”
“호오? 그럼 뭔데?”
“자, 잠시 착각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난 착각이나 하는 멍청이다?”
“아, 아닙니다!”
“뭘 자꾸 아니래? 또 뭐?”
한밤중의 소란.
그 시끄러운 틈을 타 검은 그림자 하나가 순식간에 그들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내가 내 성에 들어가는 건데, 지금 이게 무슨 짓인지.’
시간만 넉넉했으면 통신이라도 연결해서 사람을 하나 보낼 거라며 언질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 소실로 인해 숨이 간당간당한 하먼까지 업고 있는 상황에 그럴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잠행을 위해 입은 옷이 검은 야행복이라는 것.
숲의 그늘이나 밤길로 움직일 것을 생각해 준비한 것이 잠입에도 도움이 되었다.
물론, 등에 업힌 하먼의 반짝이는 은빛 갑옷 또한 들판의 어딘가에 파묻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 상황에서 일전에 카일 성에서 출군할 때와는 또 다른 경지에 올라선 로건이었으니, 현재 카일 성 내에 작정하고 숨어든 그를 발견할 만한 인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내성의 깊숙한 곳, 자신이 직접 철통 방비를 명한 석실 앞에 다다랐을 때는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빠박.
쿵.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쓰러진 기사들을 내려다보는 로건의 눈빛에 미안한 기색이 어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각.
일렁이는 황금빛 오러가 조심스레 석문을 파고들더니,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던 푸른 마법을 쉽게도 부숴 버렸다.
빅토리아가 알았다면 화를 내겠지만, 지금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그그극.
한 손으로 두꺼운 석문을 열고 들어간 로건은 석실 한가운데, 투명한 직육면체 모양의 아티팩트 두 개가 놓인 곳으로 다가갔다.
마치 관처럼 보이는 그것의 정체는 생명 유지대.
‘일리아, 클레이튼.’
살리지 못해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제 사람들.
복잡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로건은 이내 일리아 쪽으로 걸어가 내내 업고 있던 하먼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하먼의 영혼을 자극하는 메시지.
하나의 영혼이 횃불이라면, 이제는 불씨 정도나 남은 미약한 영혼이었기에 별 기대는 없었다. 오는 내내 영파를 보내 봤지만 답이 돌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찔러 본 것인데…….
그 순간, 변화가 시작되었다.
스아아아아.
“허!?”
갑자기 하먼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고요한 얼굴로 누워 있는 일리아에게로 쏟아졌다.
그것만으로도 깜짝 놀랄 노릇인데, 어느새 일리아를 감싸고 있던 푸른 마법의 장막이 깨어지며 그녀의 본래 모습이 드러났다.
이내 그녀의 전신에서 하먼의 흰빛에 호응하는 듯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찌 이럴…….”
감정의 기대와는 별개로 이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던 확률.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로건의 붉은 눈동자에 황금빛이 번뜩였다.
‘분명히 신성력인데…….’
바다와 변화의 신, 아문다의 성녀 일리아. 그리고 하늘과 자유의 신, 아리아의 성기사 하먼.
여태까지 로건이 파악한 신성력은 드높은 격을 가진 신들의 의지가 자신을 섬기는 인간의 몸에 남긴 흔적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두 신성력이 조금씩 다른 색, 다른 기질을 보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신의 흔적이, 이미 그 신에게 버림받은 이들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서로 호응하고 있다니?
이것은 그가 아는 상식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대체 하먼 경이 무슨 짓을 한 거지?’
게다가 그 이해 못 할 상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우우웅.
파지직.
생명 유지대에 깃들어 있는 빅토리아의 마력이 두 사람의 신성력에 잠시 반항하는가 싶더니, 이내 힘없이 자리를 내어 주었다.
어느새 생명 유지대의 뚜껑이 열리고, 점점 증폭되는 신성력은 마침내 두 사람의 몸을 허공에 띄웠다.
이제는 두 사람의 몸을 중심으로 뚜렷한 구의 형태를 갖춰 가는 신성력들.
그 사이에서, 불씨만 남은 수준으로 미약하던 두 사람의 혼이 조금씩 회복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라마지 않던 상황.
그런데 그때.
“침입자다!”
석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벌써!?
훈련이 너무 철저했나.
“폐하께서 목숨을 바쳐 지키라 하신 곳에……!”
그런 말까지는 안 했……!
황당한 마음을 뒤로하고, 로건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그그그극.
한 손으로 석실의 문을 닫고.
우우웅.
문을 등지고 선 채 ‘붉은빛’ 오러를 흘려 넣어 석문을 강화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다시금 두 사람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얼마 안 걸릴 거야.’
그런 예감에 따른 임기응변.
다행히 그 예감은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쿵.
쿵.
쿵.
석실 밖에서 울리는 진동이 점차 강해지는 가운데, 석실 가운데서 퍼지는 희고 푸른 빛 역시 더욱 강렬해졌다.
번쩍.
그러다 마침내 두 빛의 호응이 끝나는 순간.
로건은 번개같이 움직여 하먼의 몸뚱어리를 집어 들고는 천장으로 뛰어올랐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석실의 문이 부서졌다.
“치, 침입자를 찾아!”
오러의 반동인 듯 몇몇 기사가 피를 토하며 외쳐 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주범은 어느새 파괴된 문 사이로 그림자가 되어 사라진 뒤였다.
결국 기사들이 본 것은…….
쌔근쌔근.
관처럼 보이는 투명한 무언가, 그리고 그 옆에서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은빛 머리의 여인뿐이었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그 미모가 짐작이 가는 여인의 몸에선 후광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의 여인을, 이곳 맥라인에서 몰라볼 수는 없었다. 맥라인 출신의 주교로서 성국의 장까지 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였으니까.
“서, 성녀!”
“교황 성하이시다!”
카일 성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