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57)
457화
“폐, 폐하, 큰일 났어요!”
그 한마디에 데미안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 불길한 예감은 꼭 맞아떨어지는 것인가.
게다가 그리 소리를 지르며 집무실에 들어온 것이 역사상 최연소 마도사라 불리는 빅토리아였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뭐, 뭡니까?!”
데미안이 로건의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히려 놀란 빅토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폐하는요!? 지, 진짜 큰일인데…….”
“무슨 일이든 지금은 폐하를 뵐 수 없습니다. 제게, 제게 말씀하세요!”
어설픈 대역이나마 구하지 못했기에 내건 호구지책.
전쟁을 앞두고 국왕의 폐관 수련이라는 명목을 들이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새삼 서글펐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태도는 강경했다.
“안 돼요! 데미안 님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폐하께 직접 말씀드려야 해요!”
물론, 데미안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
“그, 그게 곤란합니다. 폐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 전까지는 자신을 찾지 말라 하셨습니다!”
한껏 강조한 말. 그 속뜻을 알아듣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어째 빅토리아의 표정이 묘했다.
“어떤 상황에서도……요?”
“예, 그렇습니다. 절대! 절대 찾지 말라고 하셨죠.”
“절대라……. 그렇군요. 설마 거기에……”
자신이 생각해도 억지라고밖에 할 수 없는 말에도 쉽게 수긍하는 모습.
‘내가 뭘 잘못했나?’
이미 내려앉은 심장이 한층 더 내려앉는 느낌이 드는데, 어느새 표정이 차분해진 빅토리아가 말을 더했다.
“그럼 폐하께 말씀을 전달해 주십시오. 제가 ‘카일 성’에 걸어 놓았던 마법이 깨졌다고요.”
“……마법이요? 예……, 알겠습니다.”
무슨 뜻일까.
‘제발 큰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데미안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무는 순간 빅토리아가 기습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언제부터 수련에 들어가신 건가요?”
“하, 한 일주일 정도 되셨습니다.”
“외부에 공표도 없이요?”
“예. 저한테만 말씀하셨습니다.”
침착하게 질답을 이어 가지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빅토리아의 모습에, 데미안은 비밀을 들켰다는 것을 눈치챘다.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빅토리아는 개의치 않고 짐짓 냉정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바쁘시다니, 저는 저대로 방법을 궁구해 보겠습니다. 스승님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선언과도 같은 말에 데미안은 차마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젠장, 대체 무슨 상황이야. 무슨 마법? 그것부터 설명해 줘야…….’.
그저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데, 집무실 밖에서 또다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폐, 폐하! 큰일 났습니다!
허가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기사가 고함처럼 소리를 질렀다.
“카일 성에서 실종된 전대 교황이 나타났습니다!”
“뭐!?”
데미안은 말 그대로 펄쩍 뛰어올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최악의 상황.
앞에서 쏟아질 공격만 대비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칼이 날아든 느낌이었다.
옆에 있던 빅토리아가 과하게 놀라는 것 같았지만, 그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자신의 충격이 너무 컸다.
“그, 그게 무, 무슨 말이냐? 전대 교황? 성녀가 왜 거기서 나와?!”
순간 머리가 핑 돌며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냥 기절해 버리고 싶은 심경이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분명히 그 양반이야. 또 그 양반이 뭔 짓을 한 거야!’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군주라는 양반이 매번 무언가 꿍꿍이를 꾸미면서도 도통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한 번씩 사라질 때마다 엄청난 사고를 친다.
아마 이번에는 그게 성녀인 모양이었다.
논리의 비약을 넘어 범인을 특정하고 끼워 맞춘 수준의 추리였지만, 그 근거 없는 확신은 이미 그의 이성을 사로잡고 있었다.
“대체 또 왜……!”
말 그대로 환장할 노릇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양반의 그 대책 없는 짓들이 여태 맥라인을 발전시켜 왔으니까.
‘이미 벌어진 상황. 어쩔 수 없다.’
후우우.
데미안은 제발 더 이상 놀라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애써 마음을 다스리려 했다.
다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잠깐만요. 성녀가 나타났다고요? 상태는요?”
기사를 향해 질문을 퍼붓는 빅토리아.
당황하던 기사가 그녀와 자신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고함처럼 말을 토해 냈다.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동부 대륙에 몰려 있던 신전의 정예들이 모조리 카일 성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당장 전쟁을 벌일 기세랍니다! 빠, 빨리 폐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아으…….”
이 시국에 성국까지…….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한순간에 극한까지 치솟은 스트레스에 데미안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퍼렇게 질렸다.
심지어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쾅!
“폐, 폐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또 기사 하나가 뛰어들었다.
“또!? 또! 뭐!?”
“폐, 폐하는요!?”
“나한테 말하라고! 당장!”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못해 이제는 욱신거렸다. 당장 마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이어진 기사의 말이 이상했다.
“깨, 깨어난 성녀가 맥라인을 은인의 국가라고 선언했습니다. 카셀 마탑의 흉계로 위험에 빠진 자신을 구해 준 것이라고……?”
“뭐?”
그건 또 뭔 개소리야?
터무니없는 소리를 연달아 듣다 보니 한순간 뇌의 기능이 마비된 듯했다.
멍하니 굳어진 그의 정신을 일깨운 건 빅토리아였다.
“깨어났다고요!?”
기사보다 더한 고함을 지르며 펄쩍 뛰는 그녀.
그 상기된 얼굴에 보이는 것은 놀람이라기보다는 완연한 기쁨이었다.
‘이게 기분 좋을 일이야? 어? 아니, 잠깐만. 좋은 일이……지?’
좀처럼 상황 파악이 안 되니 판단도 느려진다.
“대, 대체 어떻게!? 스승님! 스승님은요!?”
“자, 잠깐만요, 빅토리아 님.”
충격으로 뻣뻣해진 목덜미를 주무르며, 데미안은 펄쩍 뛰는 빅토리아를 불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들어온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얘기를 종합해 보자면, 사라진 성녀가 카일 성에서 발견됐는데, 깨어나자마자 우리가 구해 줬다고 말했다고?”
상황을 정리하고자 말을 하는데도,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예!”
하지만 기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하…….”
그 시점에서, 데미안은 이유를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에이, X발.
영문 따위는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추측할 수도 없다.
그냥…….
‘또 그 양반이 뭘 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어쨌거나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으니까.
‘납치범으로 몰린 것도 아니고 우리가 도와줬다는데 뭐!’
그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가장 유리하게 이끌 방법은?
“……신전에 연락을 넣어라. 제국이 카셀 마탑과 손을 잡은 것 같다고. 아, 아니. 내가 직접 해야겠군. 폐하께서 바쁘시니까.”
심장이 발바닥까지 내려앉는 듯했던 충격이 점차 사라지고, 데미안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 * *
그날, 로건은 하먼을 데리고 나와 바로 카일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성녀에게 바로 접근할 수는 없었지만, 하먼과 성녀가 회복하리라는 것을 확신한 그는 성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려 확실한 메시지를 남겼다.
[로건 맥라인입니다. 빅토르가 성녀님을 이리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하먼 경이 그대를 살렸습니다.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면, 잠시만 주변 사람들을 물려 주십시오.]깨어난 성녀가 아직 혼란스러워할 때 억지로 전한 메시지.
영혼을 다친 환자에게 더한 부담을 주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로건으로서는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다행히 성녀의 회복은 생각보다 빨랐다.
“……혼자 있고 싶습니다. 모두 나가 주세요.”
누구의 말이라고 거역할까.
카일의 기사들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문을 나가 철통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건은, 방문이 아닌 창문 쪽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이거 원, 내 성에서 숨어 다니는 꼴이라니.’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방 안에 들어서는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폐하.”
성녀가 그런 로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전처럼 편히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덕분에 다시 빛을 찾았습니다. 하먼 경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창백한 안색으로 미소 짓는 일리아의 얼굴은 기운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로건은 그녀가 상황을 생각보다 자세히 파악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 하먼이 보여 준 기적, 그 안에서 무슨 정보의 교류가 있었던 것이리라.
“하먼 경은 아직 깨어나지 않아 잠시 숨겨 두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저 주교도 아닌 성국의 교황이신데, 말을 편히 할 수는 없지요.”
“아닙니다. 이제 성국이고 신전이고, 회의만 들 뿐입니다. 또 머지않아 신전을 떠날 생각이니, 그저 예전처럼 대해 주시는 게 더 편합니다.”
영혼이 잠식당하는 느낌이 대체 어떻길래 신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는 사제가, 그것도 성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새삼 궁금증이 들었지만, 로건은 당장 해야 할 말을 잊지 않았다.
“……그래도 그럴 수야 없지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교황’ 성하께 드릴 부탁까지 있는 마당에는 더더욱.”
그 어조에서 로건의 결심을 느낀 성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기대했던 일이 정말 벌어졌다. 물론 운 좋게 얻어걸린 성과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제게 빚을 졌다고 느끼신다면,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아……. 하지만 폐하…….”
“그리고 아시겠지만, 저를 돕는 것은 곧 당신을 잠식하려 한 신에게 골탕을 먹이는 일이 될 겁니다.”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저으려던 일리아는 로건이 덧붙인 말에 잠시 멈칫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입술을 질끈 깨문 성녀를 보며 로건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 * *
– 실종된 교황이 맥라인의 땅에서 나타났다.
– 교황의 실종은 카셀 마탑의 음모. 성녀를 구한 것이 맥라인.
– 성녀가 직접 맥라인에 감사를 표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전란으로 시끄러운 세상에 그 어느 때보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그 파장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 맥라인에서 카셀 마탑과 제국의 협력 의문 제기.
– 캘러하임 전투, 서방 10국의 생존자들. 카셀 마탑의 배반으로 제국에 패배 증언. 지지 철회 선언.
제국의 중앙군과 서부 군단이 중부에는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겨 두고 동부로 진격하는 지금, 제국에 실로 치명적인 악재가 터진 것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 신을 농락하고 노비엔스를 침략하려던 제국의 음모가 이날까지 이어졌음을 확신한다.
– 성국은 카셀 마탑과 제국을 신의 적으로 선포하고 성전을 선포한다.
아직은 교단에 복귀하지 못한 성녀를 대신하여, 임시 교황 오스틴의 선포가 이어졌다.
하지만 제국의 대응 역시 기민했다.
– 성녀의 실종은 우리와 무관하다.
– 카셀 마탑은 여전히 제국의 공적. 협력은 없다.
– 맥라인을 정벌한 후, 제국을 모함한 이들을 엄벌할 것이다.
제국은 카셀 마탑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며, 오히려 맥라인을 향한 진군 속도를 한층 높였다.
당연히 성국은 그 말을 무시하고 성전 준비에 박차를 가했지만, 그런 움직임을 지켜보는 대륙의 양식 있는 이들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맥라인의 신무기, 그리고 대마도사와 오러마스터의 등장. 현재의 전쟁은 그 변화의 양상이 너무 빠르다.
– 성국이 참전하더라도 그 전에 승자가 결정 날 것.
– 성국은 홀로 제국과 싸우거나, 사라진 성전의 상대를 찾아 대륙을 헤매야 할 것이다.
성전 선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루스펠하임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소식을 접한 로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