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59)
459화짐작만 하고 있던 것과 실제로 확인하는 것은 그 무게감부터가 다르다.
게다가 그것이 끝도 아니었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경전에서 신들이 추구하는 길을 배우고 기도문을 암송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영혼이 닿기를 바라는 의식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흠.”
“그것은 목장 주인이 소에게 도장을 찍는 것과 비슷한 과정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거대한 신격의 영혼이 남긴 작은 흔적만으로도 특별한 힘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신성력…….”
“예. 그 신성력은 또다시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가 되어 다른 이들을 끌어들입니다. 그것 자체가 영혼에 흠을 낸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죠.”
“흠이요?”
“예.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만, 저는 영혼이 잠식되지 않았더라도 오러마스터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제 영혼은 이미 아리아의 파장에 맞게 변질되어, 그 힘의 일부를 쓰고 있으니까요.”
하먼의 말은 로건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리 안타까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러마스터만은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영혼의 힘을 쓸 수 있으니까요. 컨디션만 돌아온다면 웬만한 오러유저는 쉽게 이길 수 있겠지요. 비록 한쪽 팔이 없어도 말입니다.”
“그것은 정말 유감……”
“괜찮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요. 이 팔을 대가로 신의 영혼을 쫓아냈고, 그 힘도 일부나마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충분히 남는 장사지요. 뭐…… 배신한 주인집 창고에서 곡식을 무단 반출하는 머슴 같은 모양새긴 합니다만.”
그 창고에 티도 안 나고요.
그렇게 말을 잇는 하먼의 얼굴은 씁쓸해 보이기만 했다.
“애초에 항상 대륙 최강자 중 하나로 꼽혔던 역대 성전기사단장들 중에서 오러마스터가 나오지 않았던 게 이제야 확실히 이해가 갑니다.”
오러마스터. 하나의 영혼이 승격하여 또 다른 영혼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경지.
그 경지를 일부나마 맛본 이가 어찌 그 미련을 버릴 수가 있을까.
로건은 하먼이 남은 삶을 살아가는 내내 겪게 될 그 갈증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안타까움과 별개로, 한 가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럼 대체 어떻게 영혼을 소생시키는 게 가능한 겁니까?”
물론 로건 역시 영안으로 확인하기는 했다. 신성력이 서로 호응하며 증폭되고, 사그라들었던 영혼의 불씨를 원래의 크기로 회복시키는 과정을.
하지만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음에도 신성력이 없는 그로서는 완벽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로건의 의문을 이해한 하먼은 빠르게 그 기대에 부응했다.
“말씀드렸듯이 신들은 인간의 영혼을 취해 그들 자신을 살찌웁니다. 일종의 ‘영혼 포식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신성력은 그런 신들의 힘을 일부 빌려 오는 것입니다.”
“흠.”
“다른 영혼을 잡아먹어서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는 이의 힘. 그렇다면 그 역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무언가 깨달은 듯한 로건의 표정을 보며 하먼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설명이 과연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다만 문제라면, 저는 오러마스터처럼 제 영혼을 보거나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영혼에 난 상처와 통로가 가늠되지 않으니, 비슷한 거울이 필요했습니다.”
“아…… 그래서…….”
“예. 그래서 성녀님을 만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신의 영혼 잠식에서 자신의 의지로 살아남은 다른 이를요.”
“……으음.”
“성녀님과 저는 서로의 영혼을 보며 신들에게 당한 방식을 역으로 추산해 그들의 힘을 끌어당긴 겁니다. 영혼을 빼앗긴 통로를 그대로 이용한 것이지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신에게 잠식당할 뻔한 이들이 오히려 그 신의 힘으로 살아나다니?
무엇보다 영혼 소생이 그런 방식이라면, 자신이 흉내 내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그럼 클레이튼 공은…….’
반쪽의 성공일 뿐이라 가슴 한편이 답답해졌다.
‘리아에게 할 말이 없군.’
지금쯤 성녀의 소생 소식이 그 아이에게도 들어갔을 터.
‘한창 기대하고 있을 텐데…….’
스승, 검공을 소생시킬 때의 방식을 또 쓸 수는 없었다. 경지가 깊어진 지금은 그 방법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또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확연히 느끼고 있었으니까.
‘신들의 영혼 잠식, 그리고 신성력에 대해서 더 파헤쳐 볼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돌아가는 내내 하먼을 쥐어짜야겠단 생각에 로건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굳어졌다.
그 모습을, 하먼은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믿기 힘드신 줄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도박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신들은 그 힘의 역류를 전혀 막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음? 막지 않았……다고요?”
“예.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저항이 없었지요. 뭐, 그들에게는 티끌만 한 힘에 불과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금까지 겪어 본 바로는 결코 그럴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꿀꺽 마른침을 삼킨 하먼이 심각한 얼굴로 솔깃한 말을 꺼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도를 만들 때 무언가 대가라든가 페널티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아문다와 아리아, 두 신이 지금 저희에게 간섭하지 못하는 상태인 게 아닌가 싶은……. 뭐, 개인적인 추측일 뿐입니다만.”
“흠……. 아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군요.”
충분하다 못해 확실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로건은 영혼 소생에 대한 아쉬움을 잠시 접어 두고, 새로운 정보를 뇌리에 새겼다.
‘사도화에 실패하면 무언가 페널티를 받는다. 그럼 사도를 죽이는 것 또한 신에게 타격이 될 것도 같은데…….’
물론 신들이 아예 현세에 개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아직은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그런 로건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하먼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신들이 폐하를 적대하니, 폐하께서는 맥라인 교구의 성물과 옛 카론 왕국의 성물을 없애거나 봉인하는 걸 고려해 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리첸티아와 아우룸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의 성물은 제가 따로 숨겨 놨으니까요.”
“대놓고 신전과 척을 지라는 뜻입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요. 이미 교황 성하께서 폐하의 편에 서지 않으셨습니까. 절차가 복잡하기는 하겠지만, 그분도 이제 성물의 봉인이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하실 겁니다.”
“……그렇긴 하겠군요.”
물론, 당장 그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제국과 카셀 마탑을 상대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으니까.
더구나 하먼이나 성녀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쉬이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신들이 자신의 뒤통수를 노린다고 생각하면 너무 찜찜했다.
그렇다고 상위 차원에 존재하는 신들을 직접 어찌할 수도 없으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돌아가는 대로 성녀께 성물의 봉인이 의미하는 바를 전해 드려야겠군요.”
이렇게 소극적인 대처뿐이었다.
로건은 새삼 신들의 행태에 울화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은 뭔가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목숨을 위협받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때.
“……혹시 신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으시다면, 제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음?”
아마도 현시대에서 가장 신들을 증오하고 있을 두 사람 중 하나가 흥미로운 말을 꺼냈다.
* * * 카일 성에서 성녀의 부활 사건이 있고 난 뒤.
로건이 루스펠하임에 도착하기까지는 고작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하먼과 신성력의 활용과 근원에 대해 토의하며 식견을 한층 높인 것은 그저 덤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그의 공백이 주변에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짧았다는 점이었다. 데미안에게 잠행을 알리고 사라진 시점부터 계산하더라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제국군의 진군 속도는 데미안의 처음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한 달 동안 수명이 10년은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혈색이 참 좋으시네요, 하하하.”
초췌한 안색의 데미안이 부러 과장된 웃음소리를 내며 이죽거렸다.
치도곤을 놓아 마땅한 무례였지만, 양심에 찔리는 바가 적지 않은 로건으로선 어색하게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성국의 전폭적인 협력을 이끌어 냈잖아. 충분히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성과 아니야?”
“그게, 그……. 끄응. 예, 잘하셨습니다.”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분명한 성과가 있는데 어쩌겠는가.
억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데미안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책사치고는 과하게 솔직해.’
누군가에겐 허점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데미안의 이런 모습 또한 자신이 미래를 바꾸고 있다는 증거인지라 로건은 새삼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런 신하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싶었다.
“뭐, 덤으로 오러유저도 하나 데려왔으니까 나중에 인사해.”
“……예?”
“오러유저 전력이 한 명 늘었다고.”
“저, 정말입니까?!”
“그래.”
“아자! 흐흐흐. 뭐, 충분히 다녀오실 만했네요. 잘하셨습니다, 하하하.”
아까와는 달리 진심이 묻어나는 웃음소리.
그에 로건은 흡족한 얼굴로 데미안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직은 비밀로 할까 했던 이야기까지 귓속말로 알려 주었다.
“그리고 황제와 카셀 마탑주가 동시에 덤벼도 상대할 자신이 생겼다.”
자신감의 근거는 확실했다.
오러마스터의 한계는 넘지 못했지만, 분명한 격의 상승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예?!”
“이 정도면, 충분히 갔다 올 만했지?”
로건은 의도치 않은 경지의 상승을 마치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처럼 뻔뻔하게 철판을 깔았지만, 데미안이 그것을 알 리는 만무했다.
“정말, 정말이십니까!?”
“그래.”
로건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데미안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저, 정말이죠!?”
“정말이라니까.”
“그게 되는 거였, 흐, 흐흐흐. 흐하하하하! 잘하셨습니다! 예. 정말 잘하셨습니다! 그런 거라면야 제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 따위야 괜찮습니다! 푸하하하.”
진심으로 환호하는 와중에도 뼈가 있는 말에 로건이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그의 얼굴에도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게다가 책사를 위한 선물은 또 있었다.
“카일 성으로 통신 연결해. 성녀와 직접 대화하겠다. 보안은 절대 기밀로.”
“……예?”
그 갑작스러운 말에 웃고 있던 데미안이 얼떨떨해하는 것도 잠시.
“빨리. 빠르면 빠를수록 전쟁이 더 유리해질 거야.”
이어진 주군의 말에 그는 대답하는 것조차 잊고 빠르게 발을 놀려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한참이나 이어졌던 로건과 성녀의 통신은 바로 다음 날 세상에 놀라운 파장을 일으켰다.
– 맥라인의 태양, 대륙제일검 로건 맥라인은 9대신께서 점지하신 난세를 평정할 영웅.
– 신전과 성녀의 이름으로 신이 내린 영웅께 지지를 표하며, 명예 성자의 지위와 축복을 전합니다.
카일에 모여든 고위 사제들과 성기사들 앞에서 성녀가 꺼낸 선포.
그것이 대륙 전역에 퍼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정말, 정말로 신전이 인정했어.”
“내가 진즉 말했잖아! 20대에 오러마스터가 되는 게 말이나 되냐고! 신이 점지한 영웅이니까 가능한 거지.”
“맞아. 우리 폐하야말로 신들의 사도라고 봐도 무방하지.”
“이 사람아, 사도라니? 영웅이지! 신들이 내린 영웅이니, 성웅(聖雄)이라고 해야겠네.”
“어쨌건 우리 폐하 만세다!”
가장 먼저 들끓기 시작한 맥라인 왕국의 분위기에 전쟁을 앞둔 맥라인 군대의 사기 또한 하늘 끝까지 솟구친 것은 당연했다.
반면, 사기가 그야말로 바닥을 치는 곳도 있었다.
“……적국의 왕이 신이 내린 영웅이라는데?”
“에이, 설마.”
“진짜야. 신전이 인정했다는데?”
“……헛소문이겠지.”
“일전에도 있었잖아. 제국이 신의 적이라고 하는 소문…….”
“에이씨,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해!”
루스펠하임을 향해 속도를 높이던 제국군의 분위기는 크게 술렁이고 있었고, 심지어는 연일 탈영병이 생긴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대륙의 미래를 결정할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분위기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시작이 좋네.”
“대체,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폐하?”
주변의 감탄 어린 의문에도 로건은 빙긋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것이 사실은 전 성전기사단장의 아이디어고, 신들에게 엿을 먹이고 싶어 하는 교황이 그에 열렬히 호응한 결과라는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