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60)
460화루스펠하임을 향해 진군하는 제국군 지휘부에도 암울한 분위기가 번져 있었다.
카셀 마탑의 합류에 따른 성국의 성전 선포로도 모자라 적국의 왕에게 내려진 명예 성자, 성웅(聖雄)의 지위까지.
상황이 그야말로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젠 전쟁에서 카셀 마탑을 배제한다 한들 이후에 성국과 싸워야 함은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초인들이 모인 막사 안. 삭풍의 마도사, 갈렌 디카이드의 말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현 제국의 초인 모두가 모인 자리임에도, 막사 가운데에 놓인 원탁은 채워진 자리보다 빈자리가 더 많았다.
동부의 군단장들은 모두 전멸했고, 아세리안의 7대 마탑주 중에선 삭풍만이 살아남았다. 황실 친위대의 초인 중엔 축출당했던 외눈의 젊은 초인, 제롬 디카이드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현재 제국군의 중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서부 7군단의 군단장들조차 둘이나 사망했으니, 한때는 30여 명을 헤아리던 제국의 초인들은 이제 고작 7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사망자 중 대다수는 지금 그들이 향하고 있는 전장, 맥라인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만큼 위험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군단의 분위기가 최악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니, 회의를 위해 모인 것이 무색하게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폐하께서는 아직 연락이 없으신 겁니까?”
가장 어린 제롬이 어렵사리 말을 꺼내자, 바로 칼날 같은 시선이 날아들었다.
“감히 네가 폐하를 입에 올리는 것이냐! 네 녀석이 배덕을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이미 성국을 평정했을 것이다! 우리 제국이 이렇게 몰릴 일이…….”
“그렉!”
“……죄송합니다.”
갈렌의 호통에 회색 머리의 장년 사내, 서부 1군단장 그렉 패더슨이 이를 갈며 억지로 화를 삭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한마디를 보탰다.
“조카 손자라고 편을…….”
나직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였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갈렌을 포함해서.
“지금 내분을 일으키고 싶은 건가? 원한다면 한판 붙어 줄 수는 있다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마음이 무거운 탓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흥, 됐네.”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지만 지금은 아군끼리 다툴 때가 아닌지라, 갈렌은 그렉의 하극상을 마음속에 새겨 둔 채 다시금 화제를 돌렸다.
“폐하께서는 전쟁 전에 도착하실 거다. 아무튼 작금의 상황을 만회할 아이디어가 있는 이는 없는가?”
갈렌의 시선이 나머지 여섯 사람을 차례로 훑는데, 가장 가장자리에 앉은 날카로운 인상의 비쩍 마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참모부에서는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은 겁니까?”
서부 2군단장, 테리 가드윈의 말에 갈렌은 고개를 저으며 이를 갈았다.
“신전이 성전을 선포했다는 말만으로 아무 생각도 못 하고 얼어붙은 놈들이 대다수다. 쓸모없는 것들.”
현세의 목숨이 황제에게 달려 있다면, 죽은 후의 영생은 신들에게 달려 있다.
대륙 최강국, 제국의 고위층에는 그러한 이유로 황제에게 충성하는 독실한 신앙인들이 많았다. 그들 대다수가 현생과 사후, 양쪽 모두에서 복락을 누리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들이었으니까.
특히나 문관들은 그러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고, 그것이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을 부른 것이었다.
“그래도 생각이 있는 놈이 하나라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래. 그런 놈들은 전략적인 기동이 의미 없을 거라 말하더군. 병력만 분산시킬 뿐이라고.”
“예?”
“결국 이 싸움은 어느 쪽의 초인이 먼저 전멸하느냐, 특히 황제 폐하와 맥라인의 왕 중 누가 승리하느냐가 핵심이라면서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더군. 가장 중요한 걸 보지 못하고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거지. 참모부는 이미 글렀다.”
그 말과 함께 원탁에는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모인 이들 중 가장 덩치가 큰 갈색 머리의 남자, 3군단장 다코타 알렌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군의 병력이 두 배 이상 많지 않습니까. 북각왕부와 남조왕부에서 동부 군단의 패잔병들도 수습하고 있을 테니 실제 숫자는 그보다 더…….”
“그 일반 병사들의 사기가 내려가고 있다는 게 문제일세. 지금 이렇게 모인 것도 그에 대한 방안을 묻기 위함이고. 말했듯, 참모부는 신전의 이 시비에 관해 어떤 대응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초인 전력의 열세는 일반 병력의 우위로 밀어 버릴 수 있다.
이쪽과 맥라인의 병력 차는 2배를 넘어 족히 3배는 될 것이다. 거듭된 전란 탓에 뭉텅이로 깎여 나간 서부 군단의 전력만 해도 25만에 가깝고, 거기에 사방왕 중 세 왕부가 더해질 예정이다.
‘동부 군단의 패잔병까지 수습한다면 아마도 40만은 거뜬할 터, 반면 적은 잘해야 10만이나 넘을까.’
막말로 30만이 넘는 병력의 우위라면 오러마스터가 아니라 오러마스터 할아버지가 있다 해도 압살할 수 있다. 제대로 훈련된, 사기충천한 병사들이라면 말이다.
다만 문제는, 그 기본 병력의 사기가 최저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네들도 아무 생각이 없나? 역사에도 기록된 적이 없는 성웅(聖雄)을 적대하다간 신벌을 받을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단 말이다! 아니, 카일 성에서의 이변이 이미 신벌이 내린 것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어!”
갈렌이 쩌렁쩌렁한 호통을 토해 냈지만, 막사 안엔 침묵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점차 어두워지는 분위기 속에서, 서부 4군단장이자 유일한 여성 오러유저인 필레스 델피오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오시면 자연히…….”
쾅!
가능한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하던 갈렌이 결국 참지 못하고 원탁을 거세게 내리쳤다.
“폐하께서 오시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 놔야 할 거 아냐!!”
막사 안을 울리는 매서운 고함.
하지만 차갑고 오만하다 알려진 삭풍의 마도사가 체면을 잃고 얼굴을 구기는 모습은 오히려 현 상황의 심각함을 말해 주는 것 같아 분위기는 더욱 암울해졌다.
“하, 이런 것들이 제국의 군단장이라고…….”
그 중얼거림에 제롬을 제외한 다섯 군단장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이 순간 그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거의 똑같았다.
‘우리는 승전군, 당신은 패잔병이야. 그런데 뭐?’
막사 안에 살벌한 기세가 번져 나가는 순간.
“흘흘흘, 이거 고민이 많으신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음성과 함께 검은 로브를 입은 노인이 불쑥 나타났다. 마치 허공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갑작스러운 출현이었다.
“이런……!”
“웬 놈이냐!”
“여기가 어디라고!”
챙!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군단장들의 기세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게로 향하는데, 차가운 바람 한 줄기가 노인과 군단장들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군이다. 모두 진정하도록.”
“흘흘.”
아군이라 말하면서도 못마땅한 듯 혀를 차는 갈렌과 몇 남지 않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묘한 미소를 짓는 노인.
그 대조되는 모습에 더해 최근에 겪은 경험과 소문을 떠올려 보면, 노인의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카셀 마탑…….”
“검은 뱀?”
“……그 마법사들인가.”
“흘흘, 그렇소이다. 제국의 장군들이여, 지금은 아군이니 칼은 잠시 거두어 줬으면 좋겠는데…….”
여유로운 웃음과 목소리.
그것이 조금 전에 면박을 당한 한 사람의 속을 뒤집었다.
“웃기지 마라! 당신들 때문에 지금 상황이……!”
“필레스!”
혈화(血花), 피의 꽃이라는 별명을 가진 제국 유일의 여자 군단장.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난 붉은 오러의 꽃이 순식간에 노인을 향해 뻗어 가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하지만 그 순간.
콰아아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장내 모든 이의 시야를 어지럽히던 붉은 꽃의 환영이 사라지고, 필레스 델피오네의 몸은 튕겨 나가듯 막사 구석으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 모든 게 노인의 손짓 한 번으로 시작되었음을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큭! 감히…….”
“상황을 반전시킬 묘수를 들고 온 아군한테 공격이라. 그냥 죽여도 황제 폐하께서 분노하실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오, 흘흘.”
발작하듯 몸을 일으켜 재차 노인을 공격하려던 필레스는 그 한마디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인상을 잔뜩 찌푸린 갈렌이 나섰다.
“손속이 과하오, 마탑주.”
“방어한 것뿐이네.”
“필레스의 공격 중 급소를 향한 것은 없었소이다.”
“흘흘, 그런가? 늙으니 눈이 침침해져서.”
개도 안 믿을 소리와 함께 태연히 빈자리에 착석하는 마탑주.
그에 갈렌은 찡그려진 인상을 펴지 못한 채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고, 다른 군단장들 역시 어색한 표정으로 하나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방법이어야 할 거야, 늙은이.”
졸지에 흙투성이가 된 필레스 군단장의 살기 어린 눈빛을 받으며 검은 뱀의 수장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오, 장군.”
그 느물거리는 웃음에 모두가 인상을 찡그릴 때 탑주의 말이 이어졌다.
“방법은 간단하오. 사기가 떨어졌으면 올리면 되지 않겠소? 강제로라도.”
“그게 무슨……?”
“제국군 전체에 우리 카셀 마탑의 마법을 걸어 주겠소이다. 이 대군단 모두가 죽음을 불사하고 덤비는 용사가 된다면, 어찌 전쟁에 패배할 수 있겠소이까.”
그 말에 막사 안에 있던 모든 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병사들을 세뇌하겠다는 건가? 그것도 전부?”
“흘흘, 여러분의 협조가 있다면 못 할 것도 아니지요.”
“웃기는 소리! 지금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몰린 것인지 모르는 것인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당신들의 수법을 쓰면 성국의 시비를 긍정하는 꼴이 된단 말이다!”
“안 쓰면 성국이 그냥 물러날 것 같은가 봅니다? 여러분의 대적에게 성웅이라는 칭호까지 내렸는데?”
“…….”
한순간 침묵에 잠긴 막사, 말을 잃은 초인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본 노인이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장담컨대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맥라인은 물론 성국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제패할 수 있을 것이올시다. 어떤가, 삭풍의 마도사? 황제 폐하께 내 의견을 전달해 주지 않겠나?”
“……폐하께서는 지금 이곳에 계시지 않소.”
“오, 그래? 어쩐지 요즘 내 연락을 통 받지 않으시더라고. 그래서 직접 온 것인데…….”
가늘게 뜬 노인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갈렌은 이내 무언가를 느꼈는지 안색을 굳히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콰직.
이내 희고 푸른 바람이 탁한 회색빛과 함께 섞여 들다 사라졌다.
“어디서 개수작을!”
매서운 일갈을 뱉어 낸 갈렌의 주위로 싸늘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잠시 눈을 빛낸 노인이 이내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모았다.
“아아, 그냥 진실인지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네. 실례가 되었다면 내 정중히 사과하지, 흘흘.”
언제 충돌이 있었냐는 듯 저자세로 나오는 노인.
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갈렌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탑주,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요. 제아무리 대마도사라 한들 우리 일곱을 동시에 당해 낼 수는 없소이다. 다시 한번 개수작을 부리면…….”
“아아, 잘못했다니까 그러네. 내 그럼 특별히 비용을 받지 않고 전폭적으로 협력하지. 그러면 되겠나, 삭풍?”
그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갈렌은 순간 분노조차 잊고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뭘 받을 생각이었나?”
“이 대군을 세뇌하는 작업이, 그것도 하루빨리 처리해야 하는 작업이 한두 푼으로 끝날 줄 알았나?”
“개소리 마시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이만 꺼지시오. 당신의 계획에 대한 답은 폐하께서 돌아오신 뒤에 들을 수 있을 거요.”
그 살벌한 기세에 카셀 마탑주는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흘흘, 그러시게. 아마 더 나은 방법은 없겠지만.”
그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제국을, 황제 폐하를 우습게 보지 마시오.”
좀 전까지 아무런 대책도 나오지 않았음을 노인도 들었다. 상대 역시 그걸 알 터였다.
그럼에도 그리 말하는 갈렌의 표정에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었고, 군단장들 역시 그에 호응하듯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제국의 일반 병사들은 몰라도, 이들은 여전히 황제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은 것이다.
‘성국의 광신도들만이 미친 게 아니야. 이것들도 제정신이 아닌 건 똑같지.’
노인은 속으로 혀를 차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펜나의 남쪽에 자리한 소도시, 리갈에서 준비하고 있겠네. 루스펠하임으로 가는 길목이니, 결정을 마친다면 그리로 오게나. 뭐, 다른 도움을 바란다면 그것 역시 가능하네. 당장은 서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 아니겠나?”
“……말했듯이 그것은 황제…….”
“그래, 그래. 그 잘난 황제 폐하께서 정하시겠지. 제국군이 이렇게 개판이 되고 있는데, 황제께선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신 건지 정말 궁금하군.”
노인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초인들은 이내 무거운 표정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회의를 이어 갔다.
그리고 사흘 뒤, 노인이 말한 리갈을 하루 앞두고 있을 때.
“황제 폐하 납시오!”
제국군의 모든 이가 기다리던 황제가 제국군 본영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