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61)
461화
“제국군이 동부에 접어들면서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동부 군단의 패잔병들을 빠르게 수습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소문의 영향인지, 예상보다는 확실히 적습니다. 탈영병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문도 여전합니다.”
데미안의 보고에 로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소문의 효과가 확실하군. 이거, 전쟁이 생각보다 더 쉬워지겠어.”
로건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데미안이 담담한 얼굴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제국군 병력은 30만이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대치는 35만까지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로건의 미소는 그대로였다.
“40만도 더 될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그 정도면 충분해.”
단순히 병력의 규모로만 따져 본다면 로건의 자신감은 과한 면이 있었다.
현재 루스펠하임에 주둔 중인 맥라인의 군대는 15만이 채 되지 않았다. 전쟁에서 계속해서 승리하긴 했지만, 거듭된 전투로 인한 병력 손실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나 방어전에서의 손실이 컸기에, 5개 군단급 전력은 어느새 3개 군단급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조차 왕국 연합의 남은 병력 2만을 포함한 수치라는 것을 감안하면, 순수 맥라인의 전력은 적 병력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그 자신감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방어전 때보다는 병력 차가 훨씬 적군요. 정말 쉬운 싸움이 되겠습니다, 으하하하.”
루터의 너스레처럼, 여태까지 해 온 제국과의 전쟁 중에서는 가장 나은 상황이었으니까.
로건의 곁에 앉아 있던 에일렌도 그 자신감에 호응했다.
“남아 있는 제국 초인의 수는 황제까지 쳐도 여덟, 숨긴 패가 더 있다 해도 기껏해야 한둘이 더해지는 게 고작이겠네요.”
무릎 위에서 잠든 티르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손길과 기분이 좋은 듯 갸르릉 소리를 내는 티르의 모습에선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그에 검공 또한 웃으며 말을 받았다.
“황제야 폐하께서 맡으실 테고, 전 삭풍의 마도사를 처리하면 되겠군요. 뭐, 나머지 군단장들이야 우리 중 가장 약한 사람도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오히려 사람이 남아도는군요.”
그 말에 괜히 혼자 찔린 누군가가 움찔햇다.
“각하, 그 약한 사람이 혹시 저는…….”
“누가 봐도 너 아니겠냐, 덩어리.”
“뭐? 너겠지, 이 비실아!”
“하……. 오랜만에 제대로 한판 붙어 볼까?”
“얼마든지!”
루터와 위켄이 언제나처럼 만담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지경인 그 소란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감이 가득한 분위기.
물론, 모두가 그렇게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럼 문제는 카셀 마탑 정도겠군요. 이렇게까지 구석에 몰려 버린 이상, 오히려 대놓고 참전할 수도 있습니다.”
데미안이 조심스레 걱정스러운 부분을 지적하자 로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놈들의 특성상 간접적으로 참전하든 직접 참전하든, 큰 차이는 없을 거다. 다만 문제 될 게 있다면…….”
“대마도사라는 탑주와 휘하의 마도사들이 아예 전면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래.”
그 말은 곧 초인 전력의 우위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건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황제와 마탑주는 내가 상대한다.”
대마도사로 알려진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겠다는 말.
얼핏 광오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루스펠하임을 점령할 때부터 로건이 보여 온 이적은 그만큼 엄청난 것이었으니까.
더구나 최근 며칠간은 병력의 완벽한 통솔을 넘어 그를 신격화하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었다. 뇌리에 직접 꽂혀 드는 왕의 메시지를 듣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회복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 조금씩 퍼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그러하니 데미안을 비롯한 모두는 그들의 주군이 그 짧은 기간에 더욱 강해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이 통솔하는 군대가 ‘고작’ 두세 배 많은 병력에 패배할 거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톡톡히 효과를 본 대마법진과 리베라티오, 연사 석궁들도 건재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이라곤.
“지금 카셀 마탑에 남아 있는 마도사도 다섯을 넘지 않는다고 들었으니 우리 전력이라면 어려울 게 없다. 그렇지, 로니안?”
그 갑작스러운 물음에 구석에서 홀로 고민에 잠겨 있던 로니안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아, 예! 예, 형님. 정확히는 넷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녀’는 참전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 말에 데미안의 안색이 한결 밝아졌다.
“그러면 테로난의 라틴 경과 구스타프 경을 포함했을 시 숫자로도 이쪽의 우위군요.”
“‘헤이먼’ 경도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데미안. 그분도 카셀 마탑의 마도사들을 상대하는 데엔 최고의 패가 될 테니까.”
“아, 그분……. 물론입니다.”
하먼은 신의 사도라는 거창한 소문이 퍼지고 있음에도 더 이상 신전과 연관되는 것을 꺼렸다.
그래서 외모가 변한 김에 아예 신분을 세탁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는데, 로건은 그 의사를 존중하여 이전에 사용했던 가짜 신분을 진짜로 꾸며 주고는 임시 객장으로 삼아 버렸다.
오직 카셀 마탑의 마도사들을 상대하기 위한 비수로.
‘오러유저가 어디서 툭 튀어나올 리는 없겠지만.’
지금 데미안의 입장에서야 그 본래 신분 따위는 전혀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호재일 뿐이었다.
“좋아. 우리 준비 상황은?”
“병사 훈련은 점차 줄이고 전쟁을 대비해 휴식 중입니다. 폐하 덕분에 사기는 최상입니다.”
“리베라티오와 탄창의 보급도 문제없고, 식량 역시 충분합니다.”
“대마법진도 이상 없이 가동 시작했습니다.”
검공과 데미안, 그리고 빅토리아의 보고는 장내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마음에 자신감을 더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자신감을 더욱 키워 준 건 이어진 보고였다.
“루스펠하임 내부의 소란을 우려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기존 시민들 사이에서도 폐하는 신격화되고 있습니다. 정복지의 주민들이 이토록 통제에 잘 따르는 일은 역사서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전후 이상 증세를 보이는 병사의 수도 현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군율을 어기는 사고 또한 최근에는 전혀 없습니다.”
병사들의 준비가 만전을 넘어서 듣도 보도 못한 수준의 완벽함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
그 모든 게 눈앞에 있는 군주가 이뤄 낸 성과이니, 로건을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병력의 열세 따위는 더 이상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 분위기를 당사자가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로건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좋아. 제국군이 언제쯤 도착할 것 같은가?”
“글쎄요. 리갈에서 3일째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군단을 정비하는 모양입니다. 자세한 상황은 조사 중이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그들의 예상과 많이 틀어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곳에서 출발한 이후에는?”
“대군이 움직인다 쳐도 일주일이면 도착할 겁니다.”
“그래.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 마지막까지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 이곳 루스펠하임에서 황제와 제국을 쳐부수고, 맥라인 천년 평화의 기반을 다지겠다!”
“예!”
“맥라인에 영광을!”
“꺼지지 않는 불꽃에 경의를!”
로건의 선언 뒤로 이어지는 목소리들이 집무실을 뜨겁게 달구었다.
* * *
“폐하.”
“형님.”
집무실을 나서는 순간, 따라 나온 익숙한 목소리들이 로건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고개를 돌리니 당황하며 서로를 보는 빅토리아와 로니안의 모습이 보였다.
회의 내내 안절부절못하던 리아와 고민이 많아 보이던 동생.
안 그래도 수련 후에 따로 불러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두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 온 것이다.
“로니안 님 먼저…….”
“아니, 리아 네가 먼저…….”
주군의 동생과 친구의 동생. 입장 차이가 뚜렷한 두 사람은 호칭부터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로니안, 너부터 말해 봐.”
“저, 그게…….”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수줍은 아이처럼 머뭇대는 꼴은 우습다기보단 왠지 불안했다.
“왜? 전쟁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더냐?”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시점에 형님께 말씀드리는 게 맞는 건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뭔데?”
“……그녀가 전한 마지막 정보입니다.”
“그녀……? 아, 루이사 공주?”
“예.”
“그게 왜…… 음? 너 설마, 루이사 공주랑 계속 연락하고 있었던 거냐? 그 일 외에도?”
황당한 마음에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인데 동생이 시선을 피했다.
“……그게 처음에는 왕국에 도움이 될 듯해서 그랬던 것인데 어쩌다 보니까…….”
로니안은 말끝을 흐리며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얼씨구?’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할 말이 정말 많았지만, 지금은 그 문제로 동생을 단속할 때가 아니었다.
“설마 지금 네 개인 문제를 꺼내려는…….”
“아니, 아닙니다. 일단 저희는 그런 사이도 아니고……. 아, 아니 그러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녀가 마지막에 남긴 말이 심상치 않았다는 겁니다.”
손사래를 치며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영 미덥지 못했지만.
“저 그게…….”
그 와중에도 흘깃 주변을 살피는 태도는 확실히 심각해 보였다.
“흠…….”
쿵.
우우웅.
로건이 가볍게 발을 구르자 세 사람을 모두 감싸는 황금빛 막이 만들어졌다.
“이제 말해 보거라. 이 안에서 한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저, 그게…….”
“설마 리아를 못 믿는 거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로건이 그리 묻자, 가만히 있던 빅토리아가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본 로니안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아닙니다! 그저 저 스스로 확신이 없어서……. 일단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니안은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카셀 마탑주가 모처에서 대규모 마법적 시설이 필요한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탑의 예비 전력을 전부 끌어모아 그쪽으로 보냈다는데, 그녀 역시 포함되었답니다.”
“호오?”
“그녀는 그것이 지브릭 카셀의 강림 의식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의 위치를 남겼습니다.”
그 말에 로건의 눈이 커졌다.
지브릭 카셀의 강림 의식이라니?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정보였다.
“다만 지금 시기가 너무 적절하지 않은 듯해 말씀을 드릴지 말지 망설였던 것입니다. 또…….”
“그녀를 믿어도 될지도 모르겠고?”
“……예.”
로니안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루이사를 믿을 수 있었다.
다만, 이런 중대사에 근거라곤 전혀 없는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우고 싶진 않았다.
애초에 다른 장로들, 그러니까 카셀 마탑의 다른 마도사들은 제국군 쪽으로 향했는데, 그녀만 그쪽으로 보내진 것이 이상하다든가 하는 개인적인 걱정 또한 접어 두었다.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야.’
그저 그 믿음으로 당장 왕국과 형님에게 필요한 객관적인 이야기만 전달할 뿐.
그에 잠시간 생각에 잠겼던 로건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지막 정보?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는 말이냐?”
“예.”
“네가 구하러 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고?”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에 로니안이 순간 몸을 움찔했다. 당황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본능적인 반응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로건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뺄 수 없다. 그건 전쟁 이후에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야.”
“……알고 있습니다.”
조금 늦게 나온 대답.
그리고 그 순간, 로니안은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깨달았다.
이런 답이 나올 줄 이미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구하러 가고 싶었구나.’
검은 머리와 새하얀 피부, 그 흑백의 대조 위에서 한층 선명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
다소 차가운 인상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일 만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
그 여인이 제 마음속에 생각보다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너, 이 녀석. 설마……!”
그리고 놀라는 형의 표정을 보며, 그는 또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영혼을 읽는다고…….’
그 부끄럽고 황당한 마음을 형님에게 들켰다는 것을.
그럼에도 로니안은 그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닙니다. 형님.”
“뭐가 아니란…….”
“저 또한 기사입니다. 그게 뭐든, 절대 아닙니다. 저는 가족이, 우리 가문이, 왕국이 먼저입니다, 형님.”
스스로 가슴에 새기려는 듯 결연한 어조로 뱉어진 말.
하지만 어쩐지 슬프게 들리는 그 말에는 로건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내 붉은 눈동자들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이내 로건이 한숨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무엇이 우선인지 모르지 않으리라 믿는다, 로니.”
성인이 된 이후, 실로 오랜만에 듣는 듯한 애칭.
어깨를 두드리는 형의 손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로니안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형님. 아니, 폐하.”
로건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 꼭 우리가 갈 필요는 없겠지. 성녀에게 연락해서 그 위치를 전해라. 지브릭 카셀의 강림 의식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 사람들이니까.”
“혀, 형님!?”
“제보자가 루이사 폰 아세리안이라는 것도 확실히 전해 둬. 만에 하나 루이사 공주가 곤경에 처했다면, 신전에서 그녀를 구해 줄 수도 있겠지. 뭐, 어디까지나 제보가 사실일 경우의 얘기겠지만.”
“아……!”
형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해결책이 나오는 순간.
로니안은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일단 지금은 제국을 박살 내는 것만 생각하는 게 좋겠다. 그 후에는 어떻게든 수를 써 볼 수 있을 테니.”
“예, 형님!”
한껏 투지가 솟아오른 로니안과 그런 동생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로건은 서로 꼭 닮은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저기 폐하, 제 이야기는요……?”
홀로 남겨진 최연소 마도사가 울상을 짓는 것은 알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