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63)
463화제국군이 등장했을 때부터 조금 이상했다.
의념이 읽히지 않는, 아니 정확히는 한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군기는 이미 예상하였음에도 불쾌할 정도였다.
튀는 영혼이라곤 소수의 초인과 기사들의 것뿐.
‘기사들까지 세뇌해 버리면 오히려 전투력에 문제가 생기겠지. 그래, 이 정도야 뭐.’
여기까지도 예상했던 바다. 문제는, 그 안에서 황제나 마탑주의 기척이 전혀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마도사의 영혼이라면 그 빛이 훤히 읽혀야 할 텐데,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참전하지 않았나? 아니야, 그건 말도 안 돼.’
이 전쟁이 끝이다. 오늘이 바로 제국과 맥라인, 그리고 카셀 마탑의 운명을 결정짓는 분기점인 것이다.
그런데 가장 핵심 전력이 참전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숨은 건가?’
대체 왜?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황제와 마탑주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최악의 형태로 풀리게 되었다.
– 무도한 침략자들. 신전까지 속인 가증스러운 맥라인을 제국의 이름으로 처단하겠다!
루스펠하임 내부까지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
그 소리에 담긴 힘과 그 발원지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존재감.
황제는 숨은 것이 아니었다.
로건이 ‘격’의 차이로 인해 그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9클래스, 신인의 경지.
“말도 안 돼…….”
로건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짧은 기간 내에 오러마스터의 경지에서 한 단계 성장한 자신만 해도 말이 되지 않는 성취였다.
그런데 오러유저도 아닌 마법사가, 그것도 몇 단계를 뛰어넘어 초고대에도 희귀했던 신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에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군 병사들의 머리 위 하늘에, 루스펠하임을 모조리 뒤덮을 듯 거대한 불덩어리가 나타났다.
얼핏 느껴지는 힘만 해도 카일 성에서 겪었던 마법을 한참 상회하는 수준의 불덩어리가.
“젠장!”
깊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로건은 본능적으로 특성을 발동했다.
우우웅.
9개의 포스 코어 사이에서 또 하나의 코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로건의 영혼이 벽을 뛰어넘어 미지의 영역에 다다랐다.
최초의 오러마스터, 검신조차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잠시나마 들어선 로건은 한순간에 먼 거리를 격하고 황제를 ‘보았다’.
비록 특성의 힘을 빌리긴 했으나, 잠시나마 온전한 신인의 격을 손에 넣게 된 로건이었다.
상상치 못한 거대한 힘을 다루게 됨과 동시에 한없이 가속화된 사고는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고, 확장된 인지력은 먼 거리를 격하고도 적의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역시나,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로군.’
냉엄한 표정으로 자기 키만 한 지팡이를 든 채 압도적인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황제.
겉모습만큼은 지브릭 카셀의 기억에서 보았던 신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영혼이…….’
영혼의 상태가 이상했다.
한정된 영혼을 억지로 부풀려서, 본래대로라면 결코 닿지 못했을 경지의 문턱 너머까지 닿게 만든 듯했다.
마치 난쟁이의 몸을 억지로 늘려서 3m의 거인으로 만든 것처럼.
즉, 당장 죽거나 영혼이 소멸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억지로 격을 높인 영혼을 지탱하는 것은…….
‘저 지팡이. 그리고 무슨 마법이 섞여서 버티는 것 같은데.’
그러나 말 그대로 버티는 것뿐이다.
저 지팡이와 마법의 힘이 다하기 전에 자신이 손에 넣은 힘을 온전히 다룰 만한 성취를 얻지 못한다면.
‘……황제는 죽게 될 거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로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찌 저런 짓이 가능한지는 막연하게나마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 내 친우이자 동료였던 타론은 엄청난 마법적 재능이 있었다. 널을 뛰는 예지 능력조차도 그 재능의 파편이 발현된 것일 뿐. 어쩌면 먼 훗날 그는 이제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인의 경지에 오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검신의 유록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검신의 동료였던 대마도사 타론 아레스가 결국 신인의 경지에 도달했다면.
그래서 저런 유산을 남겼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도 같았다.
물론,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 저렇게까지 극단적인 짓을 했을까.’
어차피 맥라인은 제국 전역을 정복할 만한 역량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전투력의 문제보다도 지배하는 측의 숫자, 여력의 문제였다.
– 이번 전쟁만 이긴다면 분쇄된 제국군은 우리를 막지 못할 테니, 어떻게든 정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 그리되면 군단을 집결시켜 중앙 권력을 유지한 채, 소수의 대리인을 정복지에 세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 문제는, 그중 초인급 반란자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한순간에 왕국이 몰락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도 과거의 한 제국이 그렇게 대륙의 절반을 차지했다가 채 백 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죠.
데미안이 제시한 방안.
고작 백 년의 패자(?者)로 사라지느니, 소화할 수 있는 지역만 삼키고 천 년을 이어 갈 반석을 만들자.
그것이 맥라인의 기본 정책이었다.
그리고 군단의 움직임을 읽었다면, 아니 최소한 첩자라도 있다면 황제 역시 그 뜻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패배를 인정하고 몸을 사리느니,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겠다?’
로건으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얌전히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놈이 온전한 신인(神人)이 아니라면…….’
이 단발적인 특성으로도 극복할 수 있다.
결심을 다지듯 이를 악문 로건이 검을 치켜들었다.
쩌어어어억.
허공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루스펠하임 전체를 불태울 듯한 기세로 타오르던 거대한 불덩어리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
구심점을 잃은 마법이 흩어지며 상공에 뜨거운 폭풍을 일으켰다.
동시에 표정이 일그러진 황제가 피를 토하는 것을 보며, 로건은 바로 특성을 거두었다.
최대한 기력을 보전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윽…….”
이미 상당한 양의 기력이 소모된 탓에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폐, 폐하!?”
“괘, 괜찮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전투 준비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금 맥라인 병력의 영혼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무도한 침략자들을 토벌하라!
피를 토하는 것을 봤지만 그리 엄청난 타격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리 반쪽짜리라 해도, 신인의 위력이란 결코 얕볼 수 없는 것이었다.
‘두 번은 못 막아. 그럼 바로 그걸 써야……. 아니, 아니야. 그 전에 마탑주의 위치부터 확인해야 해.’
로건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이 자리에 없는 또 하나의 대마도사를 찾기 시작할 때.
제국군이 진군을 시작했다.
“전군 진격!”
“진격하라!”
“침략자들을 박살 내라!”
두두두두두두.
선두에 나선 것은 역시 제국의 기사들.
만 명이 훌쩍 넘는 기사들이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돌진했고, 그 뒤를 침묵에 휩싸인 제국의 병사들이 따랐다.
그 기이한 광경은 긴장감 넘치는 전시에도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야?”
“윽, 소름 끼쳐.”
“저 목소리도 그렇고…….”
“지, 진짜 악마일까?”
황제의 목소리가 심은 공포심이 제국군의 이상한 진군을 보는 순간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그때, 정신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의 대군이 밀려오는 정면, 서쪽 성벽의 가운데서 황금빛 검을 치켜든 군주가 추락하던 사기를 다시금 끌어 올렸다.
“기사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사격한다!”
“평기사들은 리베라티오 투척을 준비하라!”
“성벽에 올라서는 순간 틈이 생긴다! 그때를 노려라!”
수위기사들이 연신 병사들을 독려하며 반격을 준비할 때.
로건은 적진의 뒤쪽에서 거대한 마력이 다시 유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젠장!”
황제의 마법 발동이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더 이상 카셀 마탑주의 흔적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리아!”
“예, 폐하!!”
조금 전 허공을 뒤덮었던 마법의 여파를 보며 파랗게 질려 있던 어린 마도사가 로건의 호통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더니 품 안에서 스크롤 한 뭉치를 꺼내 뿌렸다.
루스펠하임 공략전 당시 황제가 남긴, 카셀 마탑의 물건으로 추정되는 스크롤들.
전투에서 희생된 영혼들의 생명력을 한껏 빨아들인 마물들이 빅토리아의 손짓에 따라 그녀의 주변에 배치되었다.
잠시 후, 미리 준비해 둔 마법진과 갈색 마력의 인도를 따라 발동된 스크롤들이 그 힘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빅토리아가 선 곳을 중심으로 회색빛 마력의 파도가 솟구치고, 이내 그녀의 인도에 따라 전면으로 쏘아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뭐, 뭐야!”
“이게 무슨!”
“이건 또……!?”
아군의 뒤쪽에서 쏟아진 회색빛 파도에, 최전선에서 충돌을 대비하던 맥라인의 병력조차 움찔했다.
하지만 그 회색 파도는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맥라인군을 지나쳤고, 이내 그대로 나아가 달려오는 제국 기사단을 덮쳤다.
히이이잉!
민감한 전투마들 일부가 일순간 경로를 이탈했다.
하지만 효과는 고작 그것뿐이었다.
“뭐, 뭐야!”
“허세다! 신경 쓰지 마!”
“계속 돌격하라!”
서부 군단장들이 자신을 스쳐 지나간 회색 파도에 담긴 마력이 미약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연신 소리를 질렀다. 대군 전체를 뒤덮는 방대한 회색 마력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마력의 파도는 이내 그 뒤를 따르던 제국의 병사들에게까지 향했다.
그 순간,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돌진해 오던 제국 병사들의 움직임이 조금 둔해지기 시작했다.
“세뇌 마법 재밍(jamming) 성공! 키워드는 ‘황제’, ‘명령’, ‘복종’입니다!”
다시없을 재능을 가진 어린 마도사가 군주의 제안을 받아들여 번뜩이는 영감으로 만들어 낸 마법.
그러나 수만의 생명력을 잡아먹은 마법 스크롤을 대가로 쓴 것이라기에는 그 위력이 얼핏 미약해 보였다.
게다가 그 순간, 적진의 뒤쪽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로 솟구쳐 올랐다.
쩌어어어어어어엉.
그 압도적인 위세, 누구보다 마력에 민감한 빅토리아의 안색이 한층 더 창백하게 변했다.
마찬가지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로건이 다급하게 외쳤다.
“빨리 제어권을 넘겨!”
“예!”
스크롤을 제물로 빅토리아가 변형시킨 마법진.
그 원본은 루스펠하임 공략전 당시 황제가 쓰려 했던 마법이었다.
그것을 고스란히 탈취한 경험이 있는 로건은 이번에는 아군의 마도사에게서 그 제어권을 넘겨받았다.
우우우웅.
포스코어가 비명을 지르듯 진동하며 남은 힘을 모조리 쥐어짜 냈다.
‘생각보다 모자라. 빌어먹을…….’
황제의 첫 번째 마법을 끊어 내느라 특성을 사용한 대가.
최소한의 시간만으로 발동을 끝냈지만, 그로 인한 포스 소실은 예상치보다 훨씬 막대했다.
결국 로건은 애초에 기대했던 최대의 효과는 포기하기로 했다.
황제가 흑기사들을 만들어 내고 조종하기 위해 썼던 마법.
그 마법이 한 천재 마도사에 의해 정신 조종에만 집중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내 제국군 전체를 세뇌시킨 카셀 마탑의 ‘하위 마법’을 침탈했다.
바로 그 순간, 영혼 통솔을 특기로 하는 오러마스터가 그 힘을 이용했다.
제국 병사들에게 입력된 키워드 중 ‘황제’를 지우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다.
‘됐다!’
로건이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르는 순간.
[황제를 죽여라!]루스펠하임과 그 인근을 모조리 인식 범위 내에 넣은 오러마스터의 의지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두두두두두두.
메시지가 전해진 동시에 무작정 기사들의 뒤를 따르던 제국 병사들의 움직임에 갑자기 엄청난 변화가 일었다.
“황제 폐하를……??”
“왜??”
일부는 혼란스러워하며 돌진을 멈추었고.
“여, 여긴 어디야!?”
“이게 대체!?”
일부는 혼란에서 깨어나 전장에 있는 자신을 보며 경악했다.
그리고 그중 절반 이상은.
“황제를…….”
“죽여라…….”
회색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왔던 길을 거꾸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다들 미친 거야!?”
그 심각한 사태에 성벽의 근처까지 다다른 제국 기사들이 얼어붙고.
“뭐, 뭐야!?”
“뭐긴 뭐야, 폐하께서 뭔가 수를 쓰신 거지!”
“국왕 폐하 만세! 우와아아!”
“이때다! 다 죽여!”
루스펠하임의 성벽 위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붉은 돌과 쿼렐의 비가 당황하는 제국 기사들에게 쏟아졌다.
파바바박.
꽈앙!
쾅쾅!
“으아아악!”
“젠장, 공격해!”
“아니, 폐하가 먼저다! 돌아가!”
제국 기사들이 일제히 혼돈에 빠진 가운데.
그 뒤쪽에서는, 루스펠하임을 향해 쏟아지던 푸른 유성들이 황급히 방향을 틀며 제국 병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릉.
“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전장을 덮친 엄청난 마법의 파괴력이 제국군의 혼란을 극대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