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65)
465화
“적왕이다!”
“죽여!”
성벽에 올라선 기사들이 일제히 로건에게로 돌진했다.
오러마스터에 성웅이라고까지 불리는 사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일반 기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돌진하는 기사들 대부분은 그 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듯했다.
다만 로건의 눈엔, 그들의 야망이 고스란히 보였다.
– 적의 수장을 베면, 최고의 전공이 내 것이다.
정작 당사자들도 알지 못한 명확한 이유가 말이다.
기사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용기에 전장의 광기가 더해진 결과.
‘재밌군.’
급박한 상황에도 적군의 세세한 마음가짐이 한순간에 읽힌다. 분명 이전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전투로 또다시 성장하고 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문제는, 지금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인 건, 제 곁에 그 상황을 감당해 줄 사람이 있다는 점이었다.
[내 쪽엔 신경 쓰지 말고 다른 곳을 공략하라.]아군 병사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했을 정도로 든든한 사람이.
그그그그극.
로건의 전면과 양옆의 바닥이 움푹 꺼지더니, 그 자리에서 돌로 된 골렘 세 기가 생겨났다.
골렘들은 이내 삼면에서 돌진해 오는 제국의 기사들을 제각기 막아섰다.
콰아아아앙!
“아아아악!”
6서클 마스터, 이제는 클레이튼 대신 골렘마스터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빅토리아의 마법.
같은 급의 오러유저를 능가하는 힘과 스피드를 자랑하는 골렘들은 그녀와 로건을 보호하며 철통같은 방벽을 형성했다.
“폐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황제가 어찌 나올지 모른다. 이대로 빨리 회복하길 기다리는 게 최선이야.”
“예. 확실히 지키겠…….”
“골렘 공주다!”
까드득.
빅토리아는 로건에게 대답하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몇 번을 들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아니 익숙해지기도 싫은 최악의 별명.
– 저놈부터 조져.
분노가 서린 빅토리아의 명령을 골렘은 충실히 이행했다.
콰아아아아앙!
우우웅.
‘으음.’
빅토리아가 만들어 낸 갈색 보호막 속.
로건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한 포스를 느끼면서 전황을 살폈다.
적들의 세뇌를 역이용하자는 책략은 너무나도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한층 성장한 자신의 힘에, 빅토리아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더해졌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거기에 이미 생명의 힘을 잔뜩 머금은 카셀 마탑의 스크롤들이 있었고, 혹시나 스펠 카운터를 치진 않을까 우려하던 마탑주나 다른 마도사들이 보이지 않는 덕분이기도 했다.
어째서 그들이 전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덕분에 아주 제대로 먹혀들었어.’
그 효과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 상상하지도 못했던 적의 패, 9클래스 마도사의 존재가 일순간 무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불안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신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자신의 수는 이미 써 버렸다. 반면 적은 반쪽짜리 신인이라지만 벌써 두 번의 대마법을 시전했다.
심지어 세 번째가 없으리란 것도 장담할 순 없었다. 그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슷한 마법을 세 번씩이나 쓰진 못할 거야. 그랬으면 군대를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결국 로건은 스승과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첫 번째 마법을 박살 내며, 황제에게 내상을 입혔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조금 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이 순조롭다.
‘……너무.’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적진의 뒤쪽에서 푸른 마력을 휘감은 누군가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대기를 일그러트리며 공중에 떠오름과 동시에 전장 내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감.
넘실거리는 푸른 마력 가운데서 빛나는 황금색 갑옷.
– 황제!
본진을 향해 진군하던 제국 병사들의 시선이 일순간에 허공으로 돌아갔다.
허공에 푸른 마력의 잔영을 남기며 루스펠하임의 성벽으로 날아가는 황제.
역세뇌에 제대로 걸려든, 그리고 황제의 대마법에서 살아남은 수만의 대군이 황제를 쫓아 다시금 진군 방향을 돌렸다.
두두두두.
“하……, 망할.”
카일 성 때와 비슷한 광경에 순간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다만, 그때와는 느껴지는 힘의 차원이 달랐다.
똑같은 것이라고는 그때와 비슷하게 탈진한 자신뿐.
“제가 막을게요. 폐하께선 피신을…….”
창백한 안색의 빅토리아가 앞을 가로막았지만, 로건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뒤로 밀어 냈다.
“덕분에 조금은 회복했다. 또, 지금도 내가 너보다는 강하다.”
“하지만 폐하가 안 계시면……!”
“그리고 너에게는 따로 맡길 일이 있다.”
“예?”
당황하는 빅토리아를 향해, 로건은 빠르게 생각을 전했다.
[내성으로 가. 그리고…….]영파로 전해진 확고한 메시지.
그것은 말보다도 빠르게 그녀의 뇌리에 새겨졌다.
“가능하겠지?”
“……예. 충분히요!”
안색이 다소간 상기된 빅토리아가 황급히 성벽의 안쪽으로 달려가더니, 이내 허공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런 그녀의 발밑으로, 성벽을 이루고 있던 돌덩어리들이 순식간에 계단을 형성하며 그녀의 몸을 지상으로 이동시켰다.
그 모습을 확인한 후 로건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마법의 주인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제국 기사들을 처리하는 골렘들.
그 너머로 전신에 푸른 빛줄기를 휘감은 황제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했다.
반드시 황제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은 아니었다.
– 우리가 이긴다.
– 우리에겐 로건 폐하께서 계신다.
– 우리가 최강이다!
전장 지배의 힘이 전해 오는, 성벽 여기저기서 싸우고 있는 아군 병사들의 마음.
사방에서 울리는 폭음과 비명 사이에서도 생생히 전해지는 그 마음들이 역으로 그의 마음을 받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염원의 힘의 일종이겠지.’
이제는 자신을 과거로 돌려보낸 그 힘의 본질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포스의 회복 속도 역시 기대 이상으로 빨라졌다. 빅토리아가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진 탓에 그대로 무너지는 골렘들의 모습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적이 지쳤다!”
“골렘이 사라졌다!”
“죽여!”
스각.
골렘이 사라진 것을 보며 다시금 로건을 향해 달려들던 기사들은 황금빛 빛줄기 하나가 그들을 스치는 순간 짚단처럼 쓰러졌다.
반경 30m에 가까운 공간을 사신이 휩쓸고 간 듯했다.
그 조용한 죽음 공간 앞에서, 엄청난 위력의 골렘들이 날뛸 때조차 용감하게 달려들던 제국 기사들이 단체로 얼어붙었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제, 제국 만세!”
로건을 바라보던 제국 기사 중 한 명이 마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다른 곳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던 로건은 점점 가까워지는 황제를 주시하다가 사라진 빅토리아가 있던 자리로 눈길을 돌렸다.
조금 전의 명령은 빅토리아 역시 충분히 생각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메시지를 듣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방에 폭음과 비명이 난무하고, 긴장감이 전신을 바짝 옥죄는 전장이라는 상황에선 사고가 좁아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믿음을 기반 삼아 전장 전체를 관조할 수 있는 그와는 달리 말이다.
[서둘러라, 리아.]– 예, 폐하.
게다가 이 전투 직전까지만 해도 전장 지배는 일방적인 명령 전달의 통로였는데, 이제는 이미 멀어진 리아의 답변조차 들리고 있었다.
전쟁의 신, 오러마스터.
그 수식어가 가진 의미에 한층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었다. 이제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황제가 생각보다 두렵지 않을 만큼.
[로건 맥라인! 찢어 죽여 주마!]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황제의 영파.
성벽에 가까이 다가온 탓인지 개전 때의 외침과는 그 강도가 차원이 달랐다.
특수한 마법의 영향일까, 아니면 반편이라도 신인의 경지에 이른 대마도사의 특수성일까.
그것은 분전을 이어 가던 모두에게 피아를 가리지 않고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다.
“으헙!”
“그으으.”
“으아아!”
전장의 광기가 한순간 압도당하고, 바삐 움직이던 몸들도 덜컥 굳어 버렸다.
[황제는 내가 맡는다. 남은 제국군을 처리하라!]다만 그것은 로건의 영파에 의해 보호받는 맥라인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기껏 성벽 위에 올라선 제국의 기사들을 위축시켰을 뿐.
결국 황제의 분노 어린 외침은 가뜩이나 불리하던 제국군의 전세를 더욱 꺾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으아아아악!”
“폐, 폐하!”
“이런!”
다가오는 황제를 믿고 최후의 힘을 내려던 기사들이 일순간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푸른 마력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황제는 이미 주변을 볼 심적 여유를 잊어버린 듯, 그 검은 눈동자를 오직 로건에게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인류의 정당한 지배자를 거부한 죄. 영혼까지 불타 사라져라!]그 특유의 압박감을 지닌 영파와 함께 뿜어져 나온 푸른 불꽃이 로건의 시야를 가득 메우며 쏟아져 내렸다.
다행히 생각했던 대로, 이전에 거듭 보여 주었던 9클래스급 대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범위도, 위력도 결코 만만히 볼 수는 없을 듯했다.
‘8클래스급.’
아직 본래 전력의 3할도 채 회복하지 못한 그가 감당하기엔 버거울 정도로.
로건이 입술을 질끈 깨무는 순간.
– 크와아아아앙!
귀청을 찢을 듯한 짐승의 포효와 함께 측면에서 쏘아진 검붉은 광선이 푸른 불꽃을 강타했다.
‘티르.’
물론 푸른 불꽃은 그 범위가 약간 감소했을 뿐 위력도, 속도도 늦춰지지 않았지만.
[짐승 따위가 감히!]심적으로 몰린 황제의 주의를 흐트러뜨리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그 순간, 로건의 전면에 거대한 신성 결계가 펼쳐졌다.
‘하먼!’
리첸티아의 힘을 빌려 본래보다 한층 강해진 성력으로 만들어 낸 결계가 성벽의 일각을 뒤덮은 것이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쏟아져 내리던 푸른 불꽃의 파도가 신성력과 반발하며 터져 나갔다.
“아아아악!”
“사, 살려 줘!”
그 충격파에 휩쓸려 나뒹구는 사람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튀어 나간 불꽃의 파편에 조금이라도 닿은 자는…….
“이게 뭐……?”
화르르륵.
“끄……!”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비명은 오히려 그 옆에 있던 동료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아, 악마!”
“악마의 불꽃이다!”
그 상황에서도 마법의 중심부, 로건에게로 향하는 마력은 아직 굳건했다.
[신전의 버러지가 어딜!!]분노한 황제가 고함을 토해 내는 앞으로, 붉은 머리 인영이 끼어들었다.
“타압!”
너무나도 익숙한 뒷모습과 기운.
‘안 돼!’
로건은 순간 사고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에일렌의 특성으로도 저 불꽃에 담긴 권능은 이겨 낼 수 없다. 지금 그녀의 수준으로 황제와 맞서기에는 그 격차가 너무 크다.
그것이 아무리 부서진 마법의 여력에 불과하더라도.
‘내가 해야 해.’
로건이 본능적으로 검을 드는 순간.
– 지쳤죠? 힘을 낭비하지 말아요. 이건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볼게요.
잠시 남편을 돌아본 에일렌의 푸른 눈에서 뚜렷한 의지가 전해졌다.
순간 멈칫한 로건은 짧은 고민 끝에 결국 아내를 믿어 보기로 했다.
그의 검 끝에 영롱한 황금빛이 맺히기 시작하고, 불꽃처럼 타오르는 붉은 오러를 두른 여기사가 푸른 불꽃의 앞을 막아섰다.
꽈아아아앙!
화르륵.
“지금!!”
푸른 불꽃에 휩싸인 에일렌의 고함을 신호로, 황금빛 광채가 찬란하게 주변을 밝혔다.
신검 비전의 9식, 빛 가르기(광령참, 光靈斬).
로건의 눈에 보이는 이상,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힘.
인과를 뒤집는 권능이 황제에게, 마법이 막혀 버린 마법사에게로 향했다.